세계는 원구, 원뿔, 원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폴 세잔 - P307

성 삼위일체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그림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본격적인 그림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마사초의 이 그림 덕분에 미술에서 원근법이 실현가능한 기법이 되었죠. - P308

맞아요.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도 피렌체만큼 중요한일이 일어났습니다. 1446년에 우리 고유의 문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으니까요. 15세기는 지역을 불문하고 중요한 문화 발전이 일어났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림을 마저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 P310

그런데 더 아래쪽, 제대 아래 무덤을 보세요. 해골이 누워 있습니다. 그 바로 위에 "나도 한때 당신이었다"라고 적혀 있는데,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거죠. - P311

해골 근처에 그런 말이 적혀 있어서인지 좀 으스스한데요. - P311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당시 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겁니다. 일종의 종교적 경구인 셈이지요. - P311

원근법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말 대단했군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원근법은 우리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착시를 만들어내는 기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실점을기준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기법이지요. - P311

시선이 모이는 점: 소실점 
여기서 소실점은 시선이 모이는 점을 말합니다. 예를들어성삼위일체 속에 있는 건축물의 모서리를 전부 연결해보세요.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데, 여기가 바로 소실점이에요. 그리고 이 소실점이 보는 이의 눈 위치입니다. - P312

마사초라는 이름은 ‘어리숙한 토마스‘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마사초는 이름 그대로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성삼위일체를 그렸을 때 마사초는 겨우 20대 중반에 불과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천재적인 젊은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1428년에 닥친 흑사병으로 이른 죽음을 맞았습니다. - P313

원근법이 이론화되다 
원근법 발명의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 말고도 ‘나도 원근법 발명에 참여했어‘라고 주장할 만한 사람을 한 명더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 덕분에 원근법이 회화의 기법으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되지요. 바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입니다. - P317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맨이란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 P318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원근법 발명 초기에 화가들이 보여준 열광에 관한 일화는 정말 끝도 없습니다. 파올로 우첼로라는 화가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서 원근법 작도만 내내 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이제 그만 자라고 채근하자 "아 너무도 아름답다, 원근법이여!" 하고 외쳤다고 하죠. - P327

잘 보셨네요. 왼쪽 천사를 그린조수가 누군지 눈치채셨지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대략 21세 정도였을 겁니다. 다만 베로키오가 붓을 꺾었다는 바사리의 글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입니다. 베로키오는 이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렸어요.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는 많은 것을 스승한테서 배웠던 것 같습니다.
베로키오, 예수 세례도(부분), 1476년경, 우피치 미술관 베로키오의 조수가 왼쪽 천사를 그렸다. - P335

모든 천재들도 학생이었다  - P336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시대였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아래 드로잉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어요.
이렇게 신체를 원과 정사각형 안에 배치시키는 방식을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최초로 제시했기 때문이에요. - P341

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다만 다른 화가들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며 만물의 척도‘라는 개념을훨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요. - P342

원근법은 정말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법이네요.
알베르티는 "그림은 세계로 열린 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르네상스 이전에도 그림은 여전히 세계로 열린 창이긴 했습니다.
다만 르네상스 이전의 창에는 유리에 먼지가 많이 끼어 있어 불투명했습니다.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나서야 먼지가 닦여 맑은 창이되었지요. - P344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 
그림 속에 이런 모습을 담은 건 이들이 거리에 실제로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어요. 브루니는 피렌체 찬가』에피렌체 사람 중 부자는 자신의 부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고 썼습니다. 부자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정부가 그 약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죠. 브루니는 이런 정부의 보호 시스템 덕분에 피렌체가 강한 국가가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 P348

얼마나 오래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지 긴 머리가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허리띠도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으로 두르고 있어요. 얼굴을 보면 야윌 대로 야위었고 치아도 몇 개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막달레나 마리아는 두 손을 조심스럽게 모아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거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잡아내려 했던 미술이 바로 15세기 피렌체의 미술이었습니다. - P352

성인과 거지의 구별이 사라지는 거죠. 실제로 성인과 거지라는 상반된 두 이미지가 모두 이 조각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볼 수 있습니다. - P354

1425년 피렌체는 대성당 위에 돔이 올라가고 있는 광경과 평면 위에 입체감을구현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의 등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원근법의 등장은 앞으로작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까지도바꾸어놓았다. - P355

원근법 소실점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성해 눈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기법.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하고 마사초가 최초로 본격적으로 그림에 적용해 성 삼위일체를그림. 알베르티가 회화론을 통해 이론화.
-참고 소실점: 시선이 모이게 되는 지점 = 눈의 위치 - P355

르네상스가 이룩한 업적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후원자 가문과 긍정이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높은 안목을 갖추고 재능을 가진 작가들을 발굴해냈으며 고전적 취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이 머물렀던 도시에는 지금도 여전히 그 화려한 유산이 남아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곤차가 궁정, 이탈리아 만토바 - P360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362

앞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렇게 되물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천재 작가가 없는 이유는 그런 작가를 알아봐줄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어쩌면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떤 경우든 단순히 작가만의 문제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P365

이렇게 작가들이 끊임없이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만들어줬던 이들을 후원자, 영어로 ‘패트론(patron)‘이라 부릅니다. - P365

후원자들과 작가들이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네요. - P365

메디치 가문의 정체 
르네상스의 미술 후원자는 작가들만큼 많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문은 역시 메디치 가문일 겁니다. 메디치 가문이주도한 역사적인 미술 프로젝트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작가들을 많이 발굴해서 후원했죠. 앞서 브루넬레스키나 도나텔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다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까지 모두메디치 가문과 인연을 맺으며 대가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 P366

메디치 가문은 상업으로 돈을 모은 집안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보면 집안의 내력이 담겨 있습니다. 문장에 있는 동그란 게 알약이에요. 메디치 (medici)라고 하면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메디치라는 가문 이름이 메디신(medicine; 약)에서 온 거거든요. 원래 의사나 약재상 일을 했던것같습니다. - P367

ㅣ한번 쌓은 신용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 P371

그렇죠. 프리마베라는 메디치 가문이 소유한 별장을 장식했던 그림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볼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걸려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 P399

먼저 프리마베라라는 이름을 살펴봅시다. 프리마베라(primavera)는봄이란 뜻입니다. 오른쪽은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인데 클로리스라는 요정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바로옆 장면에서 클로리스는 꽃의 신 플로라로 변합니다. - P399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5년, 우피치 미술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나오는 비너스의 탄생 이야기를 묘사했다. 비너스의 자세는 고대 조각에서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 P401

"요즘 우리나라 정치가 돌아가는 걸 보면 반세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우리 집안은 쫓겨날 것 같네. 비록 우리 집안이 쫓겨나더라도 나의 미술품들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네." - P407

분명히 그 점을 고려했을 겁니다. 코지모의 예상대로 메디치 가문은 1494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합니다. 하지만 피렌체 사람들은메디치 가문이 다스리던 시절에 점점 향수를 느꼈습니다. - P408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들은 단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들이 재능을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상인 출신의 유력한 가문들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미술을 이용했는데, 그들이 후원한 작품들에는 돈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한편 15세기 후반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궁정취향의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 P409

궁정신하는 뭐든지 태연하게 행동하도록 연습함으로써,
예술적 기교를 감추고 말과 행동이 꾸며냈거나 공들여 만드는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 카스틸리오네, 궁정론 - P410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인공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콘도티에로(Condottiero)라 불리는 용병대장들이죠. - P411

추측하건대 이런 벽화는 선전 효과를 의도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피렌체를 위해서 싸워주면 이렇게 거대한 기념물을 세워주니 피렌체로 오세요‘라고 실력 있는 용병대장들을 유혹하기 위한 거지요. - P414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덕목을 들 수있습니다. 이 말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카스틸리오네는 궁정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 꾸민 듯해서는 안 되지만그렇다고 너무 안 꾸며도 안 된다고 주장한 겁니다. 모든 행동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마치 꾸미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듯 해야 한다는 거죠. - P426

무기 제작 전문가, 발명가, 토목 공학자라고 소개하는 부분이 두드러지긴 합니다만 자기소개서 끝부분에 조각과 회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 P440

 프랑스, 손을 내밀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문화예술이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렌체, 밀라노, 만토바 등 지금까지 살펴본 도시국가들끼리 힘의 균형이 얼추 맞으면서 잠시나마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P450

방황하던 레오나르도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1세였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안정된 후원을 약속했고, 레오나르도는 63세의 나이로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무사히 프랑스에 도착해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루아르 지역에 머물게 되었지요. - P452

용병대장 출신의 영주들은 단지 용맹할 뿐 아니라 높은 안목을 갖추고 예술을 후원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풍의 건축에 관심을 보였고, 우아하고 지적인 궁정 문화를만들었다. 이들의 후원을 받은 작가들은 궁정 생활의 단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재미있는 시도들을 작품에서 선보였다. - P456

레오나르도다빈치
본래 피렌체에서 활동하다가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으로 자리를 옮김.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발휘했으나 안정적인 지원을 얻지 못하고 이후로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님.
청동 기마상 스포르차 가문을 기념하는 7.3미터 높이의 청동 기마상을 계획했으나 실패로 돌아감.
최후의 만찬 새롭게 개발한 벽화용 물감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탈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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