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대성당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쾰른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라인강 강변의 언덕 위에 세워진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보려고 매일2만여 명의 여행객이 방문하고 있다. - P289

ㅣ다폭화의 세계: 헨트 제대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세폭화에서 폭이 더 늘어나면 네폭화, 다섯폭화라고 하지 않고 다폭화라고 합니다. 아래에 보이는 헨트 제대화는 가장 대표적인 다폭화예요. - P292

이뿐만이 아니에요. 위를 보시면 교황이 세 명 보입니다. 1309년에교황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기자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교황을 선출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이 시기를 교회 대분열 시기라고 합니다. 맨 오른쪽부터 마르티누스 5세, 알렉산데르5세,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으로 추정해요. - P299

헨트 제대화는 종교라는 신비한 주제를 다루면서 당시 현실 문제에 대한 참여의 메시지도 전해줍니다. - P300

글쎄요. 가끔 제게 이처럼 고화질 도판이 나오는 세상에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작품을 보러 갈 필요가 있는지 묻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 저는늘 이렇게 되묻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만나보는 것이같으냐고 말이죠. - P308

작품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가서 눈에 담는 건 차이가 큽니다. 분명 고화질 도판이 주는 정보량은 엄청나죠. 그렇다고 실물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반 에이크 형제가 그린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그 어떤 사진이나 복제품이 주는것보다 강렬하지요. - P308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 작품 상당수는 성당을 장식하거나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제대 위에 놓이는 그림이나 조각인 제대화는 당시 교회 미술의 핵심이었다. - P309

종교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만이 진실이며,
철학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만이 신성하다.
- L. A. 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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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를 켰을 때 그림그리는 데쓸만한 나무판은 가운데 한두장뿐이다. - P246

오크나무가 그림 그리기에 좋은 나무였나요?
그렇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북유럽은 날씨 때문에오크나무가 많았습니다. 오크나무는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잘 뒤틀리지 않아요. - P246

중세 시대 화가의 작업실 풍경, 1403년경
화가 옆에서 조수가 물감을 개고 있다.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화가는 물감을직접 만들어 써야만 했다. - P249

슬슬 이쯤이면 이토록 경이로운 유화 기법을 누가 발명했는지 궁금해질 법도 한데요. 이에 대한 설은 16세기에 이미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설적인 화가가 바로 지금껏 여러 번 등장한 얀 반 에이크라는 거죠. 이탈리아 화가들의 생애를 정리한 조르조 바사리 역시 플랑드르의 대가 반에이크 형제가 유화 기법을 발명했다고 자기 책 『미술가 열전』에 적었습니다. - P254

이 시기 알프스 이북에서는이탈리아의 원근법을 배우려 했고, 알프스 이남 그러니까 이탈리아에서는 플랑드르의 유화 기법을 배우려했어요. - P260

1420 년에서 1430 년 사이, 북유럽에서는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 같은 화가들이나타나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보여준 놀라운사실성은 유화 기법이라는 새로운 미술 매체의 등장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곧이탈리아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 P267

신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P268

르네상스라고 하면 새로운 미술이 많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여전히 종교 그림이 지배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수준 높은 패널화들은 성당에서 제대화로 쓰였죠. 혹시 유럽에 여행 가서 성당이나 미술관에 들러 제대화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 P269

르네상스 시기에도 여전히 미술의 중심은 교회였어요. 그 가운데서도 제대화는르네상스 교회 미술의 핵심 중 핵심이었습니다. - P269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내부, 안트베르펜 
종교개혁기 안트베르펜은 일시적으로 신교 편에 선다. 이때 대성당 내부에 자리했던 미술 작품들은 우상으로 간주되어 파괴당했다. 하지만 이후복구 현재는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 P271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중앙 제대의 모습 
제대 위에는 루벤스가 1626년에완성한 성모승천도가 자리한다. - P273

초기 제대화와 알타프론트의 모습 상상도 
제대 위에 놓인 손햄 파르바 제대화는 현재 영국서퍽의 성모 교회에 있고 알타프론트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클뤼니국립중세박물관에 있다.
1330~1340년경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P275

이 시기 북유럽에서는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즉 현대적 신앙이라고 해서개인 묵상이나 영적 수련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 그림 속 남성은 이런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거죠. - P282

「그리스도를 본받아」 표지, 1505년, 네덜란드 출판본토마스 아 켐피스가 15세기에 썼다고 알려진 이 책은 개인 묵상이나영적 수련을 북유럽에 널리 유행시켰다. - P282

맞아요. 바로 메로데 제대화를 후원한 기부자 부부입니다. 그런데부인이 뒤로 밀려나 있네요. 기부자가 그림을 주문하고 제작하던도중에 결혼을 한 것 같아요. 급하게 부인의 모습을 넣으려다 보니한쪽으로 몰리게 된 거겠지요.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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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강한 종교적 열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예술은 늘 협력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P168

오늘날 예루살렘 예배당 뒤로는 작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칠하고 바깥쪽에 작은 창을 낸 단층 건물들을 여기뿐만 아니라 브뤼헤 곳곳에서 자주 보게 되실 거예요. 이런 건축물을 호츠하위스Godshuis라 부르는데요, 부유한 상인들이사재로 만든 일종의 복지재단입니다. 브뤼헤의 상인들은 늙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호츠하위스로 불러와 살게 했죠. 요양원이나빈민구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함과 소박함을 나타내기 위해 외벽을 흰색으로 칠했어요.  - P213

길가로 난 창이 하나뿐인 건 당시 세금이 창의 개수로 매겨졌기 때문이에요. 세금을 적게 내려면되도록 창을 최소한으로 내야 했던 겁니다. - P213

지금은 백작부인이지만 귀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조상은상인이었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귀족들이 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영주나 기사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상업적인 시대에 와서는 부를 축적한 제3신분이 또 하나의 지배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었어요.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상인 계급이 성장하는 데 미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이들이 후원한 미술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당당히 남아 제3신분의 꿈과 노력, 갈등과 고민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 P216

아무리 돈과 전문 기술이 있다고 해도 시민 계급은 여전히 가장 낮은 신분에 속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점차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성장해나갔다. - P217

제3신분
유럽의 신분 제도: 성직자, 기사, 평민 새로 등장한 상인, 장인은 모두 제3신분이었으며, 신분 상승은 매우 어려웠음 - P217

성 바보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무절제한 삶을 청산하고 속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준다.
플랑드르 곳곳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헨트 근처의 숲속에서 생을 마감한
성 바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 바보 대성당.
오늘날 성당 깊숙한 곳에는 성 바보의 인생만큼이나
곡절을 겪었던 헨트 제대화가 놓여 있고,
성당 앞에는 이 탁월한 제대화를 완성해낸
반 에이크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 바보 대성당, 벨기에 헨트 - P222

우리는 실수한 게 아닙니다.
그저 행복한 사건이 일어난 것뿐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거죠
- 밥 로스 - P224

예술사에서는 탁월한 예술가가 등장하면서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이 없었다고 상상해보세요. 서양 고전음악의 사회적 위상이나인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 P225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스타플레이어‘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 - P226

마치 요즘 고화질 화면처럼 디테일이 선명하네요.
누구나 이런 그림을 보고 나면 화가가 지닌 필력에 감동할 수밖에없었을 겁니다. 당시 북유럽 사람들이 이렇게 세밀하고 꼼꼼하게그린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었기에 화가들은 자기 직업에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죠. - P228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등장하는 1420 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노바 Ars nova, 즉 ‘새로운 미술‘이라 하는 거겠지요.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죠.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중요한 시대 배경이 되었습니다. - P243

멜키오르 브루델람이 그린 그림과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 보여주는 많은 차이는 상당 부분 재료와 기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볼 수 있습니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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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가 원근법을 통해
회화의 혁신을 이루어냈다면,
베네치아는 색채를 통해
회화의 혁신을 완성해냅니다. - P1

결국 자화상이라는
회화 장르가 탄생한 순간
우리는 북유럽 화가들의
강한 자의식을
목격하게 되는 거예요. - P1

북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은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걸
보여주는 거예요. - P1

당시 사람들은
성당을 꾸밀 때 제대에
가장 많이 신경 쓰면서 그 위에
올리는 제대화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어요. - P1

이 책은 또 다른 르네상스로 떠나는 시간 여행입니다. - P6

사실 근대의 여명을 알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을 가로지르는 알프스산맥 북쪽에서도 거대한 변화의 시간은 다가왔고 이 움직임을 북유럽 르네상스Northern Renaissance라고 부릅니다. - P6

이 책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과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을 한 권으로 엮어낸 점에서 새롭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은그간 일반적인 미술사에서는 거의 함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번영하는 상업 문화라는 관점에서 플랑드르와 베네치아가 아주 매력적으로 연결되기에 미술에 있어서도 두 지역은 같이 살펴볼 필요가있습니다. - P7

결과적으로 이 책은 서양 근대 문명의 키워드를 자본과 개인으로압축해냅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역사적 계보를, 그리고 그 속에서 개성을 갖춘 개인의 등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막대한 부의 이동에 따라 도시의 운명이 바뀌고, 그 속에서 한 걸음씩 성장해나가는새로운 시민 계층의 미술에 초점을 맞추려 했는데 이런 시도가 독자들에게 신선한 노력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 P7

바다보다 낮은 땅. 둑을 쌓고 운하를 파고,
물길을 바꾸고 또 물을 퍼내고…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척박한 땅을 개척해
인간의 치열함이 깃든 곳, 플랑드르
그 가운데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도시 브뤼헤에서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배로 운하를 오가며
한때 무역이 활발했던 상업도시의 옛 영광을 느낀다.
- 로젠후드카이에서 바라본 풍경, 벨기에 브뤼헤 - P12

내가 그 그림들을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할텐데.
--위다, 『플랜더스의 개」중 넬로의 대사 - P14

플랜더스는 대략 오늘날 벨기에의 북쪽 지역을 가리킵니다만, 원래는 벨기에 전역과 네덜란드의 옛 지명이에요. 보통 프랑스어로 ‘플랑드르‘라고 불려요. 플랜더스의 개』를 쓴 작가 위다가 영국 사람이라서 영국식으로 플랜더스라고 읽은 겁니다. - P16

『플랜더스의 개』 마지막 장면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넬로는 평소에 꼭 보고 싶었던 그림이 있는 성당으로 향해요.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습니다. - P17

그리고 넬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17세기 화가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입니다. 루벤스뿐만 아니라, 빛의 미술가라 불리는 렘브란트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그림으로 유명한 베르메르처럼 미술사에서 빛나는 화가들이 모두17세기 플랑드르에서 활동했어요. 잘 알려진 19세기 화가 빈센트반 고흐도 이 지역 출신이고요. - P19

라인강의 하수구 - P27

스스로 사자라 여긴 사람들 - P29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비슷한 환경 속에서 저지대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용맹한 사자로 생각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용맹한 호랑이로 여겼다는 점이 흥미롭지요. - P31

프레임 아랫단에는 "얀 반 에이크가 1433년 10월 21일에 그렸다"고쓰여 있고 윗단 중앙에는 "Als Ikh Kan"이라 적혀 있습니다.
영어로 옮겨보자면 "As I can "이 되는데, 얀 반 에이크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어요. 중간중간에는 그리스 알파벳을 섞어 썼습니다. - P37

어쨌든 이 말은 다양한 뜻으로 해석해요. 기본적으로 
"나/에이크는이 정도까지 그린다"라고 해석하는데요,  조금 과장하자면 "나/에이크는 이렇게 잘 그린다" 라고도 할 수 있죠. - P37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그림이 얀 반 에이크가 사람들에게 자신의실력을 증명할 때 쓰던 일종의 보증서였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얀반 에이크에게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고 물으면 이 그림을 보여줬다는 거예요. - P39

미술사에서의 북유럽과 남유럽 
미술사에서 북유럽은 알프스산맥 이북 지역 전체를, 남유럽은 알프스산맥 이남 지역 전체를 일컫는다. - P40

1430년에 접어들면서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성을 갖춘 미술을 아르스노바Ars Nova 라고 합니다. - P41

라틴어로 ‘새로운 미술‘을 뜻하죠. 중세 때의 장식적이고 호화스러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술이 나타났다는 걸 의미해요. - P41

이 시기 북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방식이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크게 보면 ‘새로운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걸 보여주는 거예요. - P41

19세기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시대를 개성의시대, 즉 개인의 인격이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확실한 근거가 바로 이 시기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등장한 개인초상화입니다. 왕이나 영주뿐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시민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열린 겁니다. - P64

땅이 척박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다. 플랑드르 사람들은 그런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만큼 자의식과 독립심이 강했다. 이런 특징은 플랑드르에서그려진 초상화에서 잘 드러나며 곧 시민 계급의 탄생과도 연결된다. - P67

플랑드르
위치 오늘날 벨기에 북부 지역. 예전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부 지역도 포함.북해로 나아가는 입구에 자리함.
→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 척박했기에 상업에 주력.  북해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
→ 상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큰 자유를 누리며 자의식 성장. - P67

부르주아 
성안에 사는 사람들, 즉 시민, 상인, 장인 등 새롭게 부를 거머쥐며 등장한 신흥 계층, 높은 정치의식을 갖춤.
자부심을 강하게 담은 초상화들이 등장. 강렬한 시선 처리와 정교하고 사실적인 세부 표현, 이중 의미가 특징. - P67

시민경제는 시장경제다.
시장이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 시민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경제학자 - P68

위의 오른쪽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팔라초 베키오가 그 전형적인예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건물이 시청사 역할을 했는데 브뤼헤에서는 시장 역할을 했다는 점이 다르죠. 어떻게 보면 플랑드르에서는 도시 자체가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 P76

그만큼 플랑드르에서는 시장이 중요했던 거군요. 그런 중요한 곳에서 있으니 종탑을 더 크고 높게 짓고 싶었겠네요. - P76

ㅣ증권 시장의 탄생: 자본시장의 시작 
브뤼헤의 경제 번영을 보여주는 굉장히 특별한 장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테르 뷔르제Ter Buerse라는 광장이에요. - P86

테르 뷔르제, 브뤼헤 
테르 뷔르제 광장은 15세기의 금융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테르 뷔르제집안이 운영하던 여관은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 P87

뷔르제 가문의 여관이 점점 금융 거래의 중심이 되자 그 주변으로외국 상인들이 출신지별로 모이는 장소가 생깁니다. 그리하여 이광장은 오늘날 금융가의 기원이 되었지요.
그럼 뉴욕 월스트리트나 여의도 증권가도 브뤼헤에서 시작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기합니다. - P88

한편 테르 뷔르제광장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지속됩니다. 프랑스어로 증권 거래소를 북스Bourse라 하고, 독일어로는 뵈르제 Börse라하는데요, 이게 다 여관 테르 뷔르제Ter Bucrse를 어원으로 삼아요.
영어로도 증권 거래소는 원래 부어스 Burse로 불렸는데 18세기에 국가로부터 왕립 거래소라는 명칭을 부여받아 이름이 바뀌었죠. - P89

증권 거래소라는 단어의 시작이 여관 주인 이름이었다니 생각도 못했어요. - P89

브뤼헤에 가셨을 때 테르뷔르제 광장에 앉아 ‘여기서 현대 금융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하시면 더욱 뜻깊지 않을까요? - P90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시작점이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시기와 겹친다는 점입니다. - P91

자본주의의 출발선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거예요. 그렇다면 무엇을 자본주의라고 할까요?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체제라고 할 수있죠. 다만 자본주의를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중 무엇을 우선으로 둘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마다 기준이 다 달라요. - P91

그런데 학자들 대부분은 산업자본주의 이전에 상업자본주의가 있었다고 봐요. 즉 자본이 상업으로 활성화되면서 국제화된 시기가한발 앞서 자리잡았다는 거죠. 그 시점은 빠르면 15세기, 좀 늦게잡으면 16~17세기라고 합니다. - P91

증권 거래소의 기원이 브뤼헤에 있다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에요. 정리하자면 15세기에는 브뤼헤가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이었고16세기에는 안트베르펜,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겁니다. - P93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플랑드르에서 나타난 미술이 얼마나 새로웠는지 보여주면서, 그림 구석구석에 당시 브뤼헤 시장에서팔리던 상품들까지도 아주 잘 반영해놓았거든요. - P94

플랑드르는 시장을 중심에 두고 도시가 발전했다. 상업자본주의의 고향이라 할 만한브뤼헤에서 15세기에 최초로 탄생한 증권 시장과 미술 시장은 16세기에 이르면안트베르펜에서 더욱 크게 발전한다. 이러한 시장의 활력이 북유럽 르네상스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 P105

브뤼헤
위치 북해에 가까운 내륙.
만에 위성도시 다머를 건설해 국제 항구도시로 발전.
1500년경 즈빈만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하며 쇠락. 이후 주도권은 안트베르펜으로 - P105

그림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은
그림을 재현하기보다는
그림에 대한 사유를 재현하는 것이다.
- 마이클 박산달 - P106

장르타베르니에, 미사를 드리는 선량공 필리프, 15세기, 브뤼셀왕립도서관 
부르고뉴 3대 공작 필리프는 나라를 잘 다스려서  ‘선량공‘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미사를 드리는 방 한쪽에 공작을위한 기도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선량공 필리프는 앞쪽에 두폭화를 펼쳐서 걸어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 P117

앙제 성 
프랑스 서북부의 도시 앙제에 자리한 이 성에 태피스트리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14세기에 제작된 호화로운 태피스트리를 감상할 수 있다. - P123

왕실에서 태피스트리 제작에 몰두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는 ‘노마드를 위한 벽화‘라고 부르기도 해요. 다시 말해 ‘움직이는 벽화‘입니다.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니다가 언제 어디에든 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앞서 보신 것처럼 규모도 큰 데다 장식도 무척 호화로워서 태피스트리를 걸어놓으면 어디든 아름답고 화사한 공간으로 바뀌지요. - P127

높이도 높이지만 벽 너비가 140미터가 되는 방을 가진 집도 드물지요. 이런 태피스트리를 소유하고, 또 벽에 걸 수 있다는 것 자체가엄청난 부와 권위를 상징해요. 그러니 당시 궁정에서 태피스트리를최고의 미술로 쳤을 만합니다.
높은 집중력과 노동력, 제작 비용을 필요로 하는 태피스트리를 만들 정도로 재력이 있고 그것을 걸 웅장한 공간까지 갖추었음을 한꺼번에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 P130

부르고뉴 와인과 에스카르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는 원래 부르고뉴의 전통 음식이다. - P132

송아지 한 마리에 독피지가 약 3~4장 나온다고 치면 송아지 50~70 마리가 이 책을 위해 몸을 바쳤겠죠. 이런 동물 가죽으로 제작된책장을 자세히 보면 벌레 물린 자국도 가끔 보입니다. 자기들끼리싸우다가 물고 물린 이빨  자국이 나 있기도 하고요.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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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쿨은 등교 거부아를 위한 민간 시설로, 오카자키는 교사경험이 있는 신지로에게 함께 일하자고 간곡히 부탁했다.

예전에는 동전이 왜 자꾸 늘어나는 걸까 이상했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계산이 서툴러지는 ‘계산 능력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는것을 며칠 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거나, 가정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되거나, 프리스쿨에서 일하는 것으로 새로이 제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건가? 마치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세상이변해버린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영문을 모르겠다.

"당신 집이라면 어딘지 압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남자가 어떻게 내 집을 알고 있을까 싶어 이상한 생각이들었다.

"3D 업종으로 알려져 있어서 전과가 있어도 쉽게 채용해줄 줄알았나?"
"아뇨……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하고요."

"아뇨, 모릅니다. 저는 도시락 배달원이 아니라서요."

"그럼
"제가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 그래서, 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마 조금 이따 누군가가 가져다주겠죠. 일단 앉으시죠."

"간이 좀 세구먼. 아무리 젊기로서니 짜게 먹는 습관은 주의해야 하네. 아내는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들지. 그런데 맛도 훌륭하지 않은가? 자네라면 밥을 몇 공기든 먹을 테지."

그렇기 때문에 만절을 더럽히는 행위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가급적 평온하게 보냈으면 한다.
그것이 아들로서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마.‘
문득 그 말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만약 훗날 쇼타에게 다쿠미의 존재를 밝힌다면 그것은 그가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여야 한다. 정규직으로취직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제대로마주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죄를 마주해야 한다.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요………. 미쓰히로군이 얼마 전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아이들도 여행 이야기를 꺼내서…………."

"아마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다쿠미를 봤다.
"…………왜어…………."
"미안해………… 다쿠미, 미안해……아야카는 그렇게 말하며 다쿠미를 꼭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는 거야? 나도 아빠랑 놀고 싶

"그렇지 않아. 앞으로 올 날이 훨씬 귀중하단 말이야. 우리는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해. 그랬으면 좋겠어."

마치 그때 같다.
사고를 내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지금처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지금 사죄하지 않으면 노리와 씨에게영원히 그 마음을 전할수없단 말이야.‘
알아. 그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

이제껏 읽기가 두려워서 개봉하지 않았다. 지금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 이 봉투 속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다오.
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도망치면 안 된다.
아무리 비난받아도, 그로 인해 마음이아무리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 전쟁…………. 그런데 죽인 사람의 대부분은 죄도 없는 시민이었어. 나를 죽이려 한 사람도,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 한 사람도 아니었네………….

"마음의 문제라네. 망령은 실재하지 않아, 망령은 마음속에 있지.

"이대로 계속 마음을 속이면 내 죄에 대한 응보가 또 나타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에 대한마지막 응보는 내가 죽기 전에 남은 가족을 먼저 데려가는 것. 그리고 저세상에 가도 기미코와 후미코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내 죄를 고해하고 싶었네. 그런데 가족에게는 차마 할 수가 없었지."

"왜 저를 선택하신 건가요?"

"나처럼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야. 다만 그뿐만이어서는 안 되었지. 나처럼 죄로 인해 고통받는 자가 아니면 이야기할수 없네."

똑같이 죄를 지었다 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털어놓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리라.

따라서 앞으로 평생을 걸고 내가 쇼타를지켜보겠다. 나도 함께 그 짐을 지고 옆에서 나란히 걷겠다. 내 죄와 함께.

"저를 인간으로 되돌려주셨습니다. 그뿐입니다."
이 파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그가 말했다.

지금껏 써온 죄와 벌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  《어느 도망자의 고백》. 그의 인생이 녹아 들어가 있는 작품인 만큼 야쿠마루 가쿠의 새로운 대표작이 되길  바란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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