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쿨은 등교 거부아를 위한 민간 시설로, 오카자키는 교사경험이 있는 신지로에게 함께 일하자고 간곡히 부탁했다.

예전에는 동전이 왜 자꾸 늘어나는 걸까 이상했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계산이 서툴러지는 ‘계산 능력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는것을 며칠 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거나, 가정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되거나, 프리스쿨에서 일하는 것으로 새로이 제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건가? 마치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세상이변해버린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영문을 모르겠다.

"당신 집이라면 어딘지 압니다."
남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남자가 어떻게 내 집을 알고 있을까 싶어 이상한 생각이들었다.

"3D 업종으로 알려져 있어서 전과가 있어도 쉽게 채용해줄 줄알았나?"
"아뇨……얼마 전부터 계속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일,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하고요."

"아뇨, 모릅니다. 저는 도시락 배달원이 아니라서요."

"그럼
"제가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 그래서, 오늘 저녁밥은 누가 가져다주나?"
"아마 조금 이따 누군가가 가져다주겠죠. 일단 앉으시죠."

"간이 좀 세구먼. 아무리 젊기로서니 짜게 먹는 습관은 주의해야 하네. 아내는 그 부분을 특히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들지. 그런데 맛도 훌륭하지 않은가? 자네라면 밥을 몇 공기든 먹을 테지."

그렇기 때문에 만절을 더럽히는 행위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가급적 평온하게 보냈으면 한다.
그것이 아들로서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마.‘
문득 그 말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만약 훗날 쇼타에게 다쿠미의 존재를 밝힌다면 그것은 그가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여야 한다. 정규직으로취직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죄를 제대로마주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죄를 마주해야 한다.

"아니………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요………. 미쓰히로군이 얼마 전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아이들도 여행 이야기를 꺼내서…………."

"아마 아버지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다쿠미를 봤다.
"…………왜어…………."
"미안해………… 다쿠미, 미안해……아야카는 그렇게 말하며 다쿠미를 꼭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는 거야? 나도 아빠랑 놀고 싶

"그렇지 않아. 앞으로 올 날이 훨씬 귀중하단 말이야. 우리는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어른이 되어야 해. 그랬으면 좋겠어."

마치 그때 같다.
사고를 내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지금처럼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지금 사죄하지 않으면 노리와 씨에게영원히 그 마음을 전할수없단 말이야.‘
알아. 그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려워…………

이제껏 읽기가 두려워서 개봉하지 않았다. 지금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 이 봉투 속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다오.
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도망치면 안 된다.
아무리 비난받아도, 그로 인해 마음이아무리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 전쟁…………. 그런데 죽인 사람의 대부분은 죄도 없는 시민이었어. 나를 죽이려 한 사람도,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 한 사람도 아니었네………….

"마음의 문제라네. 망령은 실재하지 않아, 망령은 마음속에 있지.

"이대로 계속 마음을 속이면 내 죄에 대한 응보가 또 나타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에 대한마지막 응보는 내가 죽기 전에 남은 가족을 먼저 데려가는 것. 그리고 저세상에 가도 기미코와 후미코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내 죄를 고해하고 싶었네. 그런데 가족에게는 차마 할 수가 없었지."

"왜 저를 선택하신 건가요?"

"나처럼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야. 다만 그뿐만이어서는 안 되었지. 나처럼 죄로 인해 고통받는 자가 아니면 이야기할수 없네."

똑같이 죄를 지었다 해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털어놓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리라.

따라서 앞으로 평생을 걸고 내가 쇼타를지켜보겠다. 나도 함께 그 짐을 지고 옆에서 나란히 걷겠다. 내 죄와 함께.

"저를 인간으로 되돌려주셨습니다. 그뿐입니다."
이 파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그가 말했다.

지금껏 써온 죄와 벌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조명한  《어느 도망자의 고백》. 그의 인생이 녹아 들어가 있는 작품인 만큼 야쿠마루 가쿠의 새로운 대표작이 되길  바란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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