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죽음을 비켜갈 순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마주보아야
하는 이유죠." - P6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스러운 섭리입니다.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주변을 돌이켜볼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P8

책 제목은 섬뜩할지 모르지만 내용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기술했다는 점을 독자들이알아차려 주었으면 좋겠다. - P9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 P9

그렇지만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목적을 향해 힘겹더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할 수 없다. - P9

아이러니하게도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매주 시체와 마주하는 법의학자에게도 죽음은 언제나 낯설다. 법의학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 법의학자와 함께 새로운 삶의 지침, 죽음을 궁구해보자. - P13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이나 사망의 종류를  규명한다. - P16

현재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암이고 그다음이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이다. 1년에 사망하는 약 28만 명의 사람 중에서 13만 명이 이러한 질병으로 죽는다.

중환자 의료의 발달로 치명적인 상황에 빠진 환자를 상당수 살려낼 수 있게 되었으나, 이면에는 더 이상의 의료가 소용없는 경우 이를 중지하고자 할 때 그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함께 가져왔다.

그때 이윤성 교수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시며 10년 만에 찾아온 제자라며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현미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는 ‘이것은 암이다’ 아니면 ‘단순 염증이다’ 등의 조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병리 전문의다.

전국의 의과대학은 40개인데, 실제 법의학자가 교수로 있는 대학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충북대학교,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전남대학교, 부산대학교, 제주대학교뿐이라 얼마 되지 않는다. 법의학 교수가 없는 대학의 강의 또한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 강의 부담이 매우 크다.

포렌식이라는 말은 광장에서의 재판을 함의하는 포럼에서 유래했으나, 현재는 범죄 증거를 확정하기 위한 과학적 수사를 일컫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란 컴퓨터와 관련한 필수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으로 범죄 수사 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법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에 포렌식을 붙이는 것이다. 어쩌면 법의학은 광장에서 법정으로 진화한 의학이라고도 하겠다.

내가 아마 서울대학교 교수에 법의학자니까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다 알 수는 없다.

최근 법의학에서 실시되는 가장 업데이트된 검사는 사망 후의 CTComputedTomography나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검사다. CT나 MRI는 보통 질병의 진단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실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검을 실시하기 전 진단을 위해 촬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사후 CT 기계가 서울 국과수에  단 한 대만이 존재하나, 미국, 일본, 독일 및 호주 등의 선진국에는 각 대학마다 또는 각 연구소마다 구비되어 있어 활발한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의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생명체는 잘 조직화되어 발달의 과정을 겪는데, 물질대사 및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며,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 및 적응을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지만 점진적으로 진화나 변화의 과정을 겪는 존재다.

법적으로는 크게 민법과 형법이 있는데 형법에서 적용하는 대표적인 학설은 진통설이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의 범죄 처벌 여부와 그 처분의 정도나 종류를 규정한 법으로, 진통이 있다면 그때부터 사람으로 보아 법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진통 전의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를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진통이란 여성의 자궁 경부가 열리면서 아기가 머리를 내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따라서 만일 그때 누군가가 아기를 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또 다르다. 민법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내가 내 손자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민법에 따라 결정한다. 민법에서는 아기가 자궁 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 때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이처럼 민법과 형법에서 적용하는 학설은 약간 다르며 관련 학설 또한 진통설, 일부노출설, 전부노출설, 독립호흡설 등 여러 가지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은 사실상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엄청난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태어난 생명이며, 그렇기에 굉장히 신비로운 존재다.

장기사는 심장의 박동이 종지해 결국 개체가  죽는 심장사, 호흡 정지가 먼저 나타나는 폐사,  뇌 특히 뇌간의 기능이 종지하는 뇌사로 다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 심장사와 폐사는 오래전부터 죽음의 정의로서 사용되어 ‘심장이 멈추었다‘ ‘숨을 거두다‘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이렇게 장기가 사망하면 그다음에 세포들이 사망하게 된다. 심장이 멈췄다고 해서 세포가 바로 다 죽는 것은 아니라서 사망 직후에는 각막이라든지 뼈를 이식할 수 있다. 의사들이 임상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죽음의 판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흡계통 기능의 정지
- 자발적인 호흡 운동의 정지

순환계통 기능의 정지
-모든 동맥에서 맥박 감지 불가
-심장 박동 또는 심장음의 정지
-혈압이 측정되지 않으며 인공적 유지 불가

중추신경계통 기능의 정지
-의식이 소실 또는 자극에 대한 반응 상실
-각막반사나 동공반사의 소실 등 동공산대瞳孔散大

이러한 장기가 불가역적으로 정지하면 개체로서 생명 활동은 필연적으로 종지하는데 이를 개체사라 한다. 이러한 개체의 죽음은 바로 한 개인의 죽음으로 법적으로나사회적으로 사망을 일컫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7년 죽음을 초래했거나 죽음에 기여한 모든 질병, 병적 상태 또는 손상, 그리고 그러한 손상을 일으킨 사고나 폭행을 사망 원인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연명치료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바 있었다. 가톨릭병원에 입원 후에 의사들에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미 신을 만나러 갈 준비가 다 되었고, 하느님을 만나는 게 기쁠 뿐이다. 그러니 내가 혹시 쓰러지더라도 애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고맙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이제 안 해도 된다. 나는 하느님께 갈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전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죽음 중에서 각자가 특별히 기억하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멀리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한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된 김훈 중위의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죽음이든,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는 죽음이든 그렇지 않은 죽음이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의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일본, 대만 등의 동아시아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나라보다 더 안전한 나라, 즉 타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명당 0명인 기적의 나라도 있다. 바로 우리의 동포가 살고 있는 북한이다. 물론 국제보건기구는 10만 명당 4~5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1명 정도가 타살로 사망하는 반면에 10만 명당 150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자살이 우리 사회의 죽음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빼고는요.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였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 잠재하는 자살자의 준비를 눈치 채서 그의 삶의 방향을 돌려 세워야 하고 시도를 막아 그의 삶이 다시 새로운 빛으로 가득 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남은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잘못된 자기통제로 자살을 하게 되는 경우 결국 주변 사람들, 특히  유족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경우 자살 가능성이 4.2배 상승된다는 외국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도 알코올 접근성이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모든 음주 사고에 대해 외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편으로, 알코올에 대해서 굉장히 너그러운 나라에 속한다. 알코올을 섭취한 순간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다음날 굉장히 우울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술은 기본적으로 뇌를 무장 해제시키는 물질로서, 음주 상태의 뇌에서는 탈억제 현상이 일어난다. 즉 억제하는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뇌의 전전두엽이 뇌에서 이성을 제어하는 기능을하는데, 술을 마시면 나를 이제까지 억제하고 있던 전전두엽의 억제 기저를 알코올이억제시켜줌으로써 ‘나사‘가 풀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것이다.

우리나라 자살의 마지막 특징으로 든 대중매체의 자살 보도 영향은 일명 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나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따라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를 두고 모방 자살이나 자살 전염이라고  이야기한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 가지의 죽음이 있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이유다.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나를 오해했고, 현재도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고, 미래에도 사람들이 아마 나를 잘못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지않다.

나의 몸은 이슬에서 와서 이슬로 사라진다. 
나니와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런가.

擊鼓催人命 
북치는 소리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
머리를 돌이키니 해가 넘어가려고 하는구나
黃泉無一店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던데
今夜宿誰家 
오늘 밤은 뉘집에서 묵고 갈꼬

성삼문

○○야, 내 통장은 큰방책상 두번째 서랍에 있단다.
미안하다. 먼저 가서. 그리고 절대 내빚은 상속받지 마라.

미국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에서 삶을 즐거운 모험이라고 표현한 것과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삶을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비유한 것처럼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끝이라고  보는 것이다.

명시적 의사
- 연명의료계획서
- 구체적 사전의료지시서 + 담당의사

의사 추정
- 평소 사전의료지시서 + 의사 2인
- 가족 2인 + 의사 2인

대리 결정
- 가족 전원 + 의사 2인
- 적법한 대리인 + 의사 2인
- 병원윤리위원회

내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명하지 마라, 화장 후에는 보령 관촌에 뿌려라. 문학상 같은 것 만들지 말고 제사 대신 가족끼리 식사나 해라. 나는  이 세상 여한 없이 살다 간다.

이문구

이 글을 읽고 등골이 서늘했다. 2003년에 자신의 질병을 안 즉시 본인의 마지막 스토리를
직접 세밀하게 짠 것이다. 남한테 짐 된 것이  없나 살펴서 동시집을 완성하고, 남한테 부탁받았는데 혹시 미루느라 못 한 일이 없는지를  살펴 모두 끝내고, 그렇게삶을 정리하고, 심지어 자신의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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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이란? 法醫學, Forensic Medicine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의 인과관계를 밝혀냄으로써 법운영과 인권 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다. 법의학은 입법, 사법, 행정에 모두 적용되며 그 중 사법의 형사상 문제에 가장 많이 활용된다. 변사자에 대한 검안, 부검 등을 통해 살인이나 상해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범인 색출, 죄의 유무 판정, 형량의 정도 등을 결정하는 데에 응용된다. 법의학은 법 운영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출하는 학문이므로 전문적인  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필수적이다. - P3

검시(檢屍, postmortem examination)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의 목적으로 변사체 및  현장을 조사하는 것을 검시(檢視)라 하고, 검시에 입회하거나 감정을 의뢰받아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시체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검시(檢屍)라고 한다. 검시에는 검안과 부검이 있다. - P4

검안(檢案, postmortem inspection)
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검사하는  일이다. 검안 의사는 검시에 입회하거나 또는입회하지 않은 경우라도 검안의 목적과 시체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자세한 외표  검사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사망의 원인, 손상의 정도, 질병의 유무, 중독의 여부를 결정한다. 가능하다면 사망의 기전과 사망의 종류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 P4

부검(剖檢, autopsy, necropsy)
시체를 해부해 검사로 사인 등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부검 과정에서 시체가 훼손되며 법적규제를 받는다. 부검은 목적에 따라 계통부검,  병리부검, 행정부검, 사법부검으로 나뉜다. - P4

해부(解剖, dissection)
시체를 절개해 관찰하고 장기나 조직을 적출하거나 채취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일본의 영향으로 해부와 부검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다. - P4

안락사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용도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 조력사망, 연명의료 중단 등 다양한 형태로 쓰인다. - P4

존엄사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치, 난치의 환자가 품위 있게 죽기를 바랄 경우 치명적 의약품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자살 원조행위, 또는 식물인간 상태와 같이 환자에게 의식이 없고 생명이 단지 인공심폐기로 연장되고 있는 경우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생명 연장 장치를 중단하는 행위 등으로 해석한다. 즉 중의적 맥락이 있는 용어다. - P4

가사(假死)
외견상으로 호흡과 맥박이 멈춰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 P4

뇌사
뇌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뇌의 기능이란 사고와  판단을 주관하는 대뇌피질과 맥박, 호흡 등 기본적인 생명 활동을 주관하는 뇌관의 기능을  포함한다. - P5

식물인간
인간에게는 운동, 감각, 정신 작용의 동물성 기능과 소화 흡수, 호흡, 배설, 혈액순환의 식물성기능이있다. 이중 동물성 기능이 정지되고 식물성 기능만 가능한 상태의 환자를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인공호흡기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뇌사와는 구분된다. - P5

줄기세포
크게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로 나뉜다. 배아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수 있어 활용 범위가 넓지만, 생명의 씨앗인 배아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성체 줄기세포는 특정  조직으로만 분화할 수 있어 제한적이지만,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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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어 그의 권좌는 반석 위에 놓인 듯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라면정 통성 문제였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형제들을 죽여 가며 등극했다는 건 - P13

창덕궁 대조전
창덕궁 내 중궁전으로 왕비가 기거하며 공적  활동을 하던 곳인데, 대조전의 첫 주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이곳에서 조금도 행복하지 못했다. 현재의 건물은 1919년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을 헐어 이전한 건물이다. - P46

성산포 앞바다
태종의 처남들로 태종이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는 태종의 왕권강화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자진 명령을 받고 죽는다. - P78

창덕궁 전경
태종이 즉위하여 지은 궁궐. 태종 5년(1405년)에 완공되었으나 궁궐의 모습이 갖춰진 건돈화문이 건립된 태종 12년이 되어서였다.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이 소실되고 조선말기에 복구될 때까지 약 300여 년 간 본궁의 구실을 하였다. - P132

초기 태종 정권을 구성한 핵심인사들 면면을  보면 동북면출신 무장들과 종친들을 제외하고는 공교롭게도 거의가 역성혁명에 반대했던 인물들이다. - P148

인정전 용상
세자란 장차 이 자리에 앉을 것으로 예고된 존재. 그러나 태종의 장자인 세자 양녕대군은 계속된 비행 끝에 폐세자됨으로써 앉아보지 못하고 셋째인 충녕이 대신 이 자리의 주인이 된다. - P154

과거에 급제할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까?
도발적인 세자의질문에 대한 권근의 답변이 근 사하다.
보통 사람이야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출세할  수 있지만. 임금은 공부하지 않고선 정치를 잘할 수 없고 정치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 P157

‘임금의 아들이라면 누군들 임금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라고 했습지요.
지금 대군께서 학문을 좋아하시니 제 마음이  기쁩니다. - P168

충녕은 학문을 좋아하고 정치의 원칙을 알아,  건의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합당하고 보통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풍채도 좋고 행동과 예절도 반듯하며, 술도 적당히 마실 줄 안다. - P189

나는 충녕대군을세자로 삼겠노라!
신들이 생각하는
‘어진 이‘가 바로 그 분이옵니다. - P189

세자는 우리 주상전하의아들! 굳이 사양했으나윤허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군주의 차림을 하셨으니 되돌릴 수 없습니다. - P196

충녕대군이 조선의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니  이가 곧 세종대왕이다.
세자가 된 지 고작 두어 달밖에 안 된 1418년 8월 10일이었다. - P197

세자의 자리에 있던 기간이 워낙 짧아서 제대로 된 군왕 교육은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보다 준비된 임금이었음을 세상은 곧 알게 된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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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교
옛 강화 나루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강화대교.
야사에 의하면 고려 왕조를 이끌었던 왕씨들이 이곳 강화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한다. - P8

그 제자의 제자의 ・・・・・・ 제자들이...
힘을 길러 장차 조선의 주인이 될 줄은 길재 자신도 몰랐으리라.
士사林림 - P25

그의 색깔을 보여주는익숙한 시조 한 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P25

비슷한 색깔의 시조 또 한 수.
운곡 원천석의 시조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 P26

끝끝내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니,
뒷날 이들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했다. - P28

종묘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
종묘는 사직단과 더불어 조선 왕조의 기틀과  근원을 상징한다. - P62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불렀어라.
임금이시여, 만년토록 큰 복(景福)을 누리소서‘ 의 시구 중 ‘경복‘을 따서 경복궁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 P87

개국의 주역 정도전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나라를 세운건 유방이 아니라 장자방이야!
나라를 세운 건 태조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다.
나는 조선의 장자방! - P88

천하제패에 성공한 유방은 건국의 일등공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다 잡았으니 사냥개를 삶겠다. 이거지?
말이 많다. - P89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조선 초기의 세계 지도. 당시 중화적 세계관을  반영해 중국과 조선을 과장되게 그렸다.
이러한 지도 제작은 조선 왕조의 국가적 권위와 왕권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P104

표문이란 황제에게올리는 글이고,
전문은 황태자에게올리는 글이다. - P117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앞 거리가 1차 왕자의  난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 P142

자조(自嘲) -정도전

조심하고 조심하여
공력을 다하여 살면서
책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거스르지 않았다네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일
송현방 정자 한잔 술에
그만 헛일이 되었구나. - P160

조선을 세운 이는 조선조 내내 역적으로 지탄받고, 목숨 바쳐 조선 건국을 막으려 했던 이는충신으로 숭배되었으니, 역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연출하곤 한다. - P162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평가 또한 달라지는 법이다.
조선 말 대원군에 의해 정도전은 마침내 신원되고,
정도전의 훈작을 회복시켜주고 시호도내려주라. - P162

오늘날에 와서는 탁월한 혁명가로,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개혁 정치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좋겠네. 한턱 내,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는 정도전을 기리는 문헌사란 이름의 사당이 있다. - P162

근정전
경복궁의 정전으로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이다.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며 드디어 이곳에서 왕으로 즉위한다. - P170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에서 최강의 적수들과 싸워가며 지존의 자리에 올라선정치투쟁의 달인, 태종 이방원!

군주로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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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원이 빼앗아 쌍성총관부를 두고 통치해 오던 동북면 지역을 되찾기로 하였다. - P25

아들 성계와 함께 개경으로 가서 벼슬을 하게  된다. 원에 투항했던 반역자 집안에서 왕이 직접 하사한 집에 사는 공신의 가문으로 거듭난  것이다. - P26

태조대왕께서 삼한을 통일하시어 세운 이 나라고려이거늘, 네 놈들이 뭐길래 감히 이 나라의 보위를 멋대로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 P31

적이야 무찔러버리면 그만이지만 동료들로부터 고립되면 여간 곤란한게 아님을 뼈아프게  경험한 덕이다. 그렇게 전투와는 다른 정치적 처신법을 배워갔다. - P52

심양 근교
1370년 동북면 원수 이성계는 동녕부를 정벌하기 위해 요동의 중심지(현재의 중국 선양 근교)까지 공격하여 성을 빼앗았다. - P10

도담삼봉
충북 단양에 있는 3개의 바위섬. 정도전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경치를 즐겼다고 해서 그의 호를 ‘삼봉‘으로 했다. - P54

집을 옮기다 -정도전

오년에 세 번 집을 옮겼는데
올해에 다시 옮겨야 한다.
들은 넓은데 초막은 자그마하고
산은 길고 길지만 고목은 성글어라.

밭 가는 농부는 서로 성을 물어오건만
옛 친구는 편지마저 끊어버렸다.
천지가 나를 능히 용납해주리니
표표히 가는 대로 내맡겨두자. - P106

위화도
평북 의주에 있는 압록강 하류의 섬. 최영의 요동정벌론에 따라 출병한 이성계는 이곳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심한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조선 창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 P110

최영! 영웅 중의 영웅이지 허나......
주욱...
우선 너무늙은데다귀족 출신.
천지개벽을도모할 사람은못 되지.
어찌됐건이인임과한 부류아닌가?! - P115

이성계!
전공도 백성들의 청송도제일 높건만 권력의 주변에머물고 있는 사람. 강력한 자기만의 무장력을 갖춘 변방출신의 비주류라...
일단 코드는맞을 듯 한데.
과연 그가더불어 꿈을 이룰만한 인물인지... - P117

엄정한 군기에 절도 있는 움직임,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 P119

선죽교
고려 태조 왕건이 개성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만들어진 다리. 원래 이름은 ‘선지교‘ 였는데,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그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랐다고 해서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 - P146

만월대
개성의 송악산 기슭에 위치한 고려의 궁궐터.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불타버리고, 지금은 주춧돌과 계단만 남아 있다. - P184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1392년 4월 개경 선죽교. 그의 나이 56세였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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