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죽음을 비켜갈 순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마주보아야 하는 이유죠." - P6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스러운 섭리입니다.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주변을 돌이켜볼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P8
책 제목은 섬뜩할지 모르지만 내용은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으로 기술했다는 점을 독자들이알아차려 주었으면 좋겠다. - P9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 P9
그렇지만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목적을 향해 힘겹더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할 수 없다. - P9
아이러니하게도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매주 시체와 마주하는 법의학자에게도 죽음은 언제나 낯설다. 법의학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 법의학자와 함께 새로운 삶의 지침, 죽음을 궁구해보자. - P13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이나 사망의 종류를 규명한다. - P16
현재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암이고 그다음이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이다. 1년에 사망하는 약 28만 명의 사람 중에서 13만 명이 이러한 질병으로 죽는다.
중환자 의료의 발달로 치명적인 상황에 빠진 환자를 상당수 살려낼 수 있게 되었으나, 이면에는 더 이상의 의료가 소용없는 경우 이를 중지하고자 할 때 그 절차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함께 가져왔다.
그때 이윤성 교수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시며 10년 만에 찾아온 제자라며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현미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는 ‘이것은 암이다’ 아니면 ‘단순 염증이다’ 등의 조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바로 병리 전문의다.
전국의 의과대학은 40개인데, 실제 법의학자가 교수로 있는 대학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충북대학교,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전남대학교, 부산대학교, 제주대학교뿐이라 얼마 되지 않는다. 법의학 교수가 없는 대학의 강의 또한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 강의 부담이 매우 크다.
포렌식이라는 말은 광장에서의 재판을 함의하는 포럼에서 유래했으나, 현재는 범죄 증거를 확정하기 위한 과학적 수사를 일컫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란 컴퓨터와 관련한 필수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으로 범죄 수사 기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법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에 포렌식을 붙이는 것이다. 어쩌면 법의학은 광장에서 법정으로 진화한 의학이라고도 하겠다.
내가 아마 서울대학교 교수에 법의학자니까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다 알 수는 없다.
최근 법의학에서 실시되는 가장 업데이트된 검사는 사망 후의 CTComputedTomography나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검사다. CT나 MRI는 보통 질병의 진단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실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검을 실시하기 전 진단을 위해 촬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사후 CT 기계가 서울 국과수에 단 한 대만이 존재하나, 미국, 일본, 독일 및 호주 등의 선진국에는 각 대학마다 또는 각 연구소마다 구비되어 있어 활발한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의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생명체는 잘 조직화되어 발달의 과정을 겪는데, 물질대사 및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며,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 및 적응을 통해 항상성을 유지하지만 점진적으로 진화나 변화의 과정을 겪는 존재다.
법적으로는 크게 민법과 형법이 있는데 형법에서 적용하는 대표적인 학설은 진통설이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의 범죄 처벌 여부와 그 처분의 정도나 종류를 규정한 법으로, 진통이 있다면 그때부터 사람으로 보아 법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진통 전의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를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진통이란 여성의 자궁 경부가 열리면서 아기가 머리를 내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따라서 만일 그때 누군가가 아기를 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또 다르다. 민법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내가 내 손자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민법에 따라 결정한다. 민법에서는 아기가 자궁 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 때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이처럼 민법과 형법에서 적용하는 학설은 약간 다르며 관련 학설 또한 진통설, 일부노출설, 전부노출설, 독립호흡설 등 여러 가지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은 사실상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엄청난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태어난 생명이며, 그렇기에 굉장히 신비로운 존재다.
장기사는 심장의 박동이 종지해 결국 개체가 죽는 심장사, 호흡 정지가 먼저 나타나는 폐사, 뇌 특히 뇌간의 기능이 종지하는 뇌사로 다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 심장사와 폐사는 오래전부터 죽음의 정의로서 사용되어 ‘심장이 멈추었다‘ ‘숨을 거두다‘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이렇게 장기가 사망하면 그다음에 세포들이 사망하게 된다. 심장이 멈췄다고 해서 세포가 바로 다 죽는 것은 아니라서 사망 직후에는 각막이라든지 뼈를 이식할 수 있다. 의사들이 임상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죽음의 판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흡계통 기능의 정지 - 자발적인 호흡 운동의 정지
순환계통 기능의 정지 -모든 동맥에서 맥박 감지 불가 -심장 박동 또는 심장음의 정지 -혈압이 측정되지 않으며 인공적 유지 불가
중추신경계통 기능의 정지 -의식이 소실 또는 자극에 대한 반응 상실 -각막반사나 동공반사의 소실 등 동공산대瞳孔散大
이러한 장기가 불가역적으로 정지하면 개체로서 생명 활동은 필연적으로 종지하는데 이를 개체사라 한다. 이러한 개체의 죽음은 바로 한 개인의 죽음으로 법적으로나사회적으로 사망을 일컫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7년 죽음을 초래했거나 죽음에 기여한 모든 질병, 병적 상태 또는 손상, 그리고 그러한 손상을 일으킨 사고나 폭행을 사망 원인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연명치료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 바 있었다. 가톨릭병원에 입원 후에 의사들에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미 신을 만나러 갈 준비가 다 되었고, 하느님을 만나는 게 기쁠 뿐이다. 그러니 내가 혹시 쓰러지더라도 애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고맙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이제 안 해도 된다. 나는 하느님께 갈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전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죽음 중에서 각자가 특별히 기억하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멀리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한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군 의문사의 대표적 사례가 된 김훈 중위의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죽음이든,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는 죽음이든 그렇지 않은 죽음이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의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일본, 대만 등의 동아시아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나라보다 더 안전한 나라, 즉 타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명당 0명인 기적의 나라도 있다. 바로 우리의 동포가 살고 있는 북한이다. 물론 국제보건기구는 10만 명당 4~5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1명 정도가 타살로 사망하는 반면에 10만 명당 150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자살이 우리 사회의 죽음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빼고는요.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였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 잠재하는 자살자의 준비를 눈치 채서 그의 삶의 방향을 돌려 세워야 하고 시도를 막아 그의 삶이 다시 새로운 빛으로 가득 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남은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잘못된 자기통제로 자살을 하게 되는 경우 결국 주변 사람들, 특히 유족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경우 자살 가능성이 4.2배 상승된다는 외국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도 알코올 접근성이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모든 음주 사고에 대해 외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 편으로, 알코올에 대해서 굉장히 너그러운 나라에 속한다. 알코올을 섭취한 순간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다음날 굉장히 우울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술은 기본적으로 뇌를 무장 해제시키는 물질로서, 음주 상태의 뇌에서는 탈억제 현상이 일어난다. 즉 억제하는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뇌의 전전두엽이 뇌에서 이성을 제어하는 기능을하는데, 술을 마시면 나를 이제까지 억제하고 있던 전전두엽의 억제 기저를 알코올이억제시켜줌으로써 ‘나사‘가 풀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것이다.
우리나라 자살의 마지막 특징으로 든 대중매체의 자살 보도 영향은 일명 베르테르효과Werther Effect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나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따라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를 두고 모방 자살이나 자살 전염이라고 이야기한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 가지의 죽음이 있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이유다.
죽음은 서늘한 여름과 같다. 과거에도 사람들이 나를 오해했고, 현재도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고, 미래에도 사람들이 아마 나를 잘못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지않다.
나의 몸은 이슬에서 와서 이슬로 사라진다. 나니와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런가.
擊鼓催人命 북치는 소리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回頭日欲斜 머리를 돌이키니 해가 넘어가려고 하는구나 黃泉無一店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던데 今夜宿誰家 오늘 밤은 뉘집에서 묵고 갈꼬
성삼문
○○야, 내 통장은 큰방책상 두번째 서랍에 있단다. 미안하다. 먼저 가서. 그리고 절대 내빚은 상속받지 마라.
미국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에서 삶을 즐거운 모험이라고 표현한 것과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에서 삶을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비유한 것처럼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끝이라고 보는 것이다.
명시적 의사 - 연명의료계획서 - 구체적 사전의료지시서 + 담당의사
의사 추정 - 평소 사전의료지시서 + 의사 2인 - 가족 2인 + 의사 2인
대리 결정 - 가족 전원 + 의사 2인 - 적법한 대리인 + 의사 2인 - 병원윤리위원회
내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마라. 소생하지 않으면 엄마, 동생 손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명하지 마라, 화장 후에는 보령 관촌에 뿌려라. 문학상 같은 것 만들지 말고 제사 대신 가족끼리 식사나 해라. 나는 이 세상 여한 없이 살다 간다.
이문구
이 글을 읽고 등골이 서늘했다. 2003년에 자신의 질병을 안 즉시 본인의 마지막 스토리를 직접 세밀하게 짠 것이다. 남한테 짐 된 것이 없나 살펴서 동시집을 완성하고, 남한테 부탁받았는데 혹시 미루느라 못 한 일이 없는지를 살펴 모두 끝내고, 그렇게삶을 정리하고, 심지어 자신의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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