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혼자라고 느껴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 얼굴 붉은 혼들은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이 대지의 신성함을 잃지 않기를. 더 이상 우리의 형제자매인 힘없는 동물과 식물들을 망각의 어둠 속으로 내몰지 않기를. 더 이상 어머니 대지를 파괴하지 않고, 바다가 하루 두 번의 운동을 멈추는 일이 없게 되기를, 그래서 어느 날 사방을 둘러봐도 기쁨을 나눌 일 없어 후회로 흐느껴 울지 않게 되기를.

마침내 우리는 얼굴 흰 자들이 법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해서도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상대할 때 자신들이 좋은 사람들인 양 돋보이기 위해 법과 종교를 들먹일 뿐이다.

박새가 귀를 기울여 배움을 얻듯이 나 또한 내 평생 동안 배움을 얻고자 노력해 왔다. 다른 부족의 실수를 교훈삼아 내 부족을 도우려고 애써 왔다. 얼굴 흰 자들은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 다른 전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직 변화되지 않았으며, 의견이 다를 때마다 싸울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제발 들소를 그만 죽이라.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말살 정책을 중단하라. 그것이 미합중국 대통령과 미국인들의 의무다.

미타쿠예 오야신(‘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삶에서 내가 줄곧 지켜봐 왔지만, 혼자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큰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외로운 남자(이스나 라위카)_테톤 수 족

마침내 눈이 내려

모든 것을 덮어 버렸네.

어린 사슴(조셉 콘차)_푸에블로 족

치료사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치료사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묻는다. 자신이 치료사로 태어났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꿀벌에게 물어보라, 어떻게 여왕벌을 아느냐고. 인디언들은 그냥 알 뿐이다. 우리는 우리 것을, 당신들은 당신들 것을 아는 것이다.

약국에 가서 인디언들이 사용하는 약을 살 수 없듯이 인디언 치료사를 돈으로 살 순 없다. 그는 환자를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는 전투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들판을 혼자서 걸어 나갈 수도 있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것이 그의 행동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인디언이든 아니든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자기를 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그는 인디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우리 인디언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비춰 보곤 한다. 자연의 숨결과 자신의 숨결을 동일시하고, 대지의 맥박과 자신의 심장을 한 박자로 여긴다.

백인들은 인간의 힘이 자연을 다스리고 변형시키는 데 있다고 여기며 그것이 곧 생존의 길이라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힘과 진정한 생존은 자신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여겨 대지의 모든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잡초라 부르는데,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풀들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갖고 태어났으며,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무시하고, 나아가 ‘자기를 아는 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며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사방으로 퍼진다. 마치 암과 종양이 몸 전체로 번지는 것과 같다.

이해란 책이나 교사를 통해 어떤 사실을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는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 인디언은 모든 일에는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나면, 꾸며 낸 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나면, 겨울의 눈도 우리 자신이고 여름의 꽃도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져야 하며,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선택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뒤, 그 생각을 혼자 내버려 두면 곧 사라져 버린다.

우리 인디언들은 여전히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끼리 우리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을 누리고 싶고, 오랫동안 전해져 온 삶의 방식을 지키기를 희망한다. 옛날에 우리는 바람직한 삶을 살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 어울려서 조화롭게 지냈다. 아주 옛날에는 그렇게 살았다.

좋은 체제는 절대로 자신의 몸집을 불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체제를 확산시키려는 것은 잘못이다. 믿음을 확산시키려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혹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종교라 할지라도 그 종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그것을 말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종교라는 것은 없지만 말이다. 기독교,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그밖에 어떤 이데올로기든 사람들을 위협해 자신들의 생각을 확산시키려는 것은 옳지 않다.

삶의 기본 진리란 남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생명이 포함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거나 억압하고 지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개인이나 정부도 사람들을 강제로 어떤 조직이나 체제에 편입시키거나, 학교나 교회로 보내거나, 전쟁터에 내보낼 권리가 없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또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힘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인 힘이다.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원칙들을 깨달을 때 더욱 많은 것을 밝힐 때가 오고 영적인 힘도 다시 한 번 이 땅을 찾을 것이다.

의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완벽한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 그리고 모든 지식이 책 속에 담겨 있을 수도 없다. 지식에는 자연과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이 포함되며, 그런 지식은 너무도 광범위하다. 얼굴 흰 사람들이 잘 아는 것이 있듯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이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서로 지식을 나눠야 한다. 서로 지식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나아질 것이다.

우리는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흘러가며, 따라서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이란 형태를 바꾸는 일에 불과하다. 자신이 살던 땅에서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온 당신들의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냈다. 전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그렇게 믿음으로써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디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모든 것은 일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존재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고, 인간 역시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인디언들과 구르는 천둥의 시각은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인디언들의 순수한 정신과 메시지를 받아들여 지구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반전(사랑), 반권력(평화), 반공해(단순한 삶), 반원자력(비핵), 반체제(자유), 거기에다 새로운 가치관(조화와 균형)이 생겨났으며, 당연히 자연보호(어머니 대지)에 대한 의식도 높아져 갔다.

자신을 치유하라. 그러면 그대는 가족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족이 공동체를 치유할 것이고, 공동체가 나라를, 나라가 세상을 치유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세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늙으면 햇살 비치는 문가에 앉아 태양 아래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 졸음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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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한국의 도시 이야기

나는 꽤 오래전에 방랑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방랑 여행이 무엇이냐 하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곽재식의 도시 탐구 :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문득 싱그러운 산이나 숲 풍경을 보고 싶어서 최대한 가까이에 있는 산골 마을에 가 보기도 하고, 넓은 들이 펼쳐진 농촌 정경을 보고 싶어서 시골 버스가 달릴 만한 곳을 골라 아무 지역으로나 찾아가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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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방랑하다 죽으리라

사탄타

카이오와 족 추장

그다음에 또 다른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농부들이었으며, 나무를 자르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대지는 마구 파헤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지는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거저 준다. 당신들이 그것을 잘 받기만 하면 된다.

이제 자유롭고 행복하게 평원을 거닐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족하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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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잠시 동안만 자기 것일 뿐이다.

캡틴 잭(킨트푸애쉬)_모독 족

호카헤이! 오늘은 죽기에 참으로 좋은 날이 아닌가!

미친 말(티슝카 위트코)_오글라라 라코타 족

산들과 나는 하나가 되네.

약초들과 전나무와 하나가 되네.

이른 아침의 안개, 구름, 불어나는 물결과 하나가 되네.

야생의 들판, 이슬방울, 꽃가루와 하나가 되네.

나바호 족 노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붉은 구름(마히피우아 루타) 오글라라 라코타족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들이 그동안 우리에 대해 들어 온 소문들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마음씨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우리를 살인자나 도둑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결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들은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살기 때문에 인디언들이 얼마나 굶주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거의 굶어 죽기 직전이며, 절망감으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

나 자신이 삶 속에서 언제나 깨끗한 손, 똑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 주소서. 그리하여 저녁노을처럼 내 삶이 스러질 때 내 영혼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나는 인디언 전사

대지 위로 나는 오네.

나는 인디언 유령.

다코타 족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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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결혼한 인디언 부부는 결혼 첫해 동안 자신이 과연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서로 헤어져 다른 짝을 찾는다.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서도 함께 산다는 것은 얼굴 흰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부모도 남편과 헤어지고 돌아온 딸을 천막에서 내쫓지 않는다. 딸이 몇 명의 자식을 데리고 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딸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아이들을 먹일 솥은 늘 불 위에 올려져 있다.

검은 매(블랙 호크)_소크 족

결혼은 두 사람이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것과 같다. 남자는 앞에 앉아 노를 젓는다. 여성은 뒤에 앉아 있지만, 방향타를 잡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여자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했는가? 옛날에는 훨씬 쉬웠다. 여자가 남자의 물건을 싸서 집 밖에다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자는 그것에 대해 항의할 수 없었다. 그냥 떠나야만 했다.

너는 세상의 네 방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땅이 큰 물과 맞닿는 곳까지,

하늘이 땅과 맞닿는 곳까지,

겨울이 머물고 있는 곳까지,

비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달려라!

그리고 강해져라!

너는 부족의 어머니이니까.

생리를 시작한 소녀의 기도_메스칼레로 아파치 족

인디언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그런 식으로 한다.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물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한다. 따라서 인디언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한결 쉽다.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이 곧바로 이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당신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렵고 별다른 의미도 없다.

우리에게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히 질투나 경쟁 심리도 없었다. 저마다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의 위치를 갖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두려움이라는 것도 없었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위치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밀쳐 내리라는 두려움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원을 그리고 앉아서 우리는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그 특별한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따라서 원을 그리고 앉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함께 앉아서 누군가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의견을 내놓는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은 어떤 사람을 따르고 같이 행동함으로써 자신들도 그와 같은 우월한 입장이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거리를 만들고, 다른 패거리에 속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콜럼버스가 이들을 인도 사람들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콜럼버스는 이들을 ‘인디오Indios’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인 디오In Dios’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아니시나베와 이누이트 등은 단순히 ‘사람들’이란 뜻이다. 특히 아니시나베는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이란 뜻이다. 반면에 백인들이 부르는 에스키모라는 이름은 ‘날고기를 먹는 자들’이라는 경멸 섞인 뜻이며, 그것은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백인들이 코를 뚫은 사람들(네즈퍼스 족)이라고 부른 사람들의 원래 이름은 니미푸였다. 그것은 ‘사람들인 우리’라는 뜻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부족이 단순히 ‘사람들’, 또는 ‘두 발 달린 동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아무리 작은 부족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니누옥’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당신들의 말로 번역하면 ‘사람’ 또는 ‘참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을 ‘아와우나기숙’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단순히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사람’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 땅에서 인디언들은 영원토록 기억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이 언제까지나 불려지리라. 미네하하 강(‘웃는 물’ 강)이 우리를 보고 웃을 것이고, 세네카 호수(‘서 있는 바위’ 호수)가 우리의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미시시피(‘물들의 아버지’)가 우리의 고뇌를 중얼거릴 것이다. 드넓은 아이오와(‘이곳이 그곳’ 또는 ‘아름다운 땅’), 굽이치는 다코타(‘모두 연결된 사람들’), 비옥한 미시간(‘큰 호수’)이 그들과 입맞춤하는 태양에게 우리의 이름들을 속삭일 것이다. 천둥처럼 우르릉거리는 나이아가라(‘천둥처럼 구르는 물’), 한숨짓는 일리노이즈(‘잘난 사람들’), 노래하는 켄터키(이로쿼이 어로 ‘내일의 땅’)가 쉼 없이 우리의 타와에(‘죽음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기병대가 쳐들어오자 절벽 위에서 망을 보던 인디언이 "요세미티!" 하고 외쳤다. 그것은 인디언 말로 ‘핏발이 선 곰’이라는 뜻이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디언들에게는 ‘침략자’, ‘살인마’와 같은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군대를 핏발 선 곰에 비유해 "요세미티!" 하고 외쳤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저기 살인마가 나타났다!"라는 뜻이었다. 인디언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다 모두 그 산에서 쓰러졌으며, 인디언들의 피가 한동안 계곡의 폭포를 붉게 물들였다. 잔인한 대학살극이 끝난 후 백인 군대는 그 산에 이름을 붙였다. 인디언에게 들은 대로 ‘요세미티’라고.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

샤리타리쉬

파우니 족

얼굴 흰 대추장이여, 나로 하여금 내 나라에서 즐겁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 들소와 비버와 야생동물들을 쫓으며, 그들의 가죽을 당신들에게 팔게 해 달라. 나는 그런 식으로 성장했고,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삶이 아니면 고통 속에 죽어 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들소와 비버, 사슴, 그밖의 다른 야생동물들이 아직 많다. 말들도 충분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땅도 충분하다. 당신들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말이다.

뉴멕시코 산타페의 한 인디언 학생은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디언에게는 시인이 없다. 인디언은 모두가 시로써 말하니까."

당신들은 우리에게 왜 문명화된 길을 걷지 않느냐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당신들의 문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살기를 원할 뿐이다.

나는 당신들 얼굴 흰 자들이 싫다. 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보다 사냥하며 사는 삶이 더 좋다. 어떤 때는 먹을 것도 충분치 않은데 사냥마저 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평화를 원하며, 우리를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 대지 위에서 누린 우리의 생은 행복했다. 더 이상 후회가 없다.

한 인디언 추장이 백인들에게 처형당하면서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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