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결혼한 인디언 부부는 결혼 첫해 동안 자신이 과연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서로 헤어져 다른 짝을 찾는다.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서도 함께 산다는 것은 얼굴 흰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부모도 남편과 헤어지고 돌아온 딸을 천막에서 내쫓지 않는다. 딸이 몇 명의 자식을 데리고 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딸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아이들을 먹일 솥은 늘 불 위에 올려져 있다.
검은 매(블랙 호크)_소크 족
결혼은 두 사람이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것과 같다. 남자는 앞에 앉아 노를 젓는다. 여성은 뒤에 앉아 있지만, 방향타를 잡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인디언
여자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했는가? 옛날에는 훨씬 쉬웠다. 여자가 남자의 물건을 싸서 집 밖에다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자는 그것에 대해 항의할 수 없었다. 그냥 떠나야만 했다.
너는 세상의 네 방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땅이 큰 물과 맞닿는 곳까지,
하늘이 땅과 맞닿는 곳까지,
겨울이 머물고 있는 곳까지,
비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달려라!
그리고 강해져라!
너는 부족의 어머니이니까.
생리를 시작한 소녀의 기도_메스칼레로 아파치 족
인디언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그런 식으로 한다.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물이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한다. 따라서 인디언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한결 쉽다.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이 곧바로 이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당신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렵고 별다른 의미도 없다.
우리에게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히 질투나 경쟁 심리도 없었다. 저마다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의 위치를 갖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두려움이라는 것도 없었다.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위치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밀쳐 내리라는 두려움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원을 그리고 앉아서 우리는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그 특별한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따라서 원을 그리고 앉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함께 앉아서 누군가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의견을 내놓는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은 어떤 사람을 따르고 같이 행동함으로써 자신들도 그와 같은 우월한 입장이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거리를 만들고, 다른 패거리에 속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콜럼버스가 이들을 인도 사람들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콜럼버스는 이들을 ‘인디오Indios’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인 디오In Dios’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아니시나베와 이누이트 등은 단순히 ‘사람들’이란 뜻이다. 특히 아니시나베는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이란 뜻이다. 반면에 백인들이 부르는 에스키모라는 이름은 ‘날고기를 먹는 자들’이라는 경멸 섞인 뜻이며, 그것은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백인들이 코를 뚫은 사람들(네즈퍼스 족)이라고 부른 사람들의 원래 이름은 니미푸였다. 그것은 ‘사람들인 우리’라는 뜻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부족이 단순히 ‘사람들’, 또는 ‘두 발 달린 동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아무리 작은 부족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니누옥’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을 당신들의 말로 번역하면 ‘사람’ 또는 ‘참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을 ‘아와우나기숙’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단순히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사람’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이 땅에서 인디언들은 영원토록 기억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에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이 언제까지나 불려지리라. 미네하하 강(‘웃는 물’ 강)이 우리를 보고 웃을 것이고, 세네카 호수(‘서 있는 바위’ 호수)가 우리의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미시시피(‘물들의 아버지’)가 우리의 고뇌를 중얼거릴 것이다. 드넓은 아이오와(‘이곳이 그곳’ 또는 ‘아름다운 땅’), 굽이치는 다코타(‘모두 연결된 사람들’), 비옥한 미시간(‘큰 호수’)이 그들과 입맞춤하는 태양에게 우리의 이름들을 속삭일 것이다. 천둥처럼 우르릉거리는 나이아가라(‘천둥처럼 구르는 물’), 한숨짓는 일리노이즈(‘잘난 사람들’), 노래하는 켄터키(이로쿼이 어로 ‘내일의 땅’)가 쉼 없이 우리의 타와에(‘죽음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기병대가 쳐들어오자 절벽 위에서 망을 보던 인디언이 "요세미티!" 하고 외쳤다. 그것은 인디언 말로 ‘핏발이 선 곰’이라는 뜻이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디언들에게는 ‘침략자’, ‘살인마’와 같은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군대를 핏발 선 곰에 비유해 "요세미티!" 하고 외쳤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저기 살인마가 나타났다!"라는 뜻이었다. 인디언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다 모두 그 산에서 쓰러졌으며, 인디언들의 피가 한동안 계곡의 폭포를 붉게 물들였다. 잔인한 대학살극이 끝난 후 백인 군대는 그 산에 이름을 붙였다. 인디언에게 들은 대로 ‘요세미티’라고.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 샤리타리쉬
파우니 족
얼굴 흰 대추장이여, 나로 하여금 내 나라에서 즐겁게 살도록 내버려 두라. 들소와 비버와 야생동물들을 쫓으며, 그들의 가죽을 당신들에게 팔게 해 달라. 나는 그런 식으로 성장했고,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삶이 아니면 고통 속에 죽어 갈 것이다. 우리에게는 들소와 비버, 사슴, 그밖의 다른 야생동물들이 아직 많다. 말들도 충분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땅도 충분하다. 당신들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말이다.
뉴멕시코 산타페의 한 인디언 학생은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디언에게는 시인이 없다. 인디언은 모두가 시로써 말하니까."
당신들은 우리에게 왜 문명화된 길을 걷지 않느냐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당신들의 문명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살기를 원할 뿐이다.
나는 당신들 얼굴 흰 자들이 싫다. 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보다 사냥하며 사는 삶이 더 좋다. 어떤 때는 먹을 것도 충분치 않은데 사냥마저 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평화를 원하며, 우리를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 대지 위에서 누린 우리의 생은 행복했다. 더 이상 후회가 없다.
한 인디언 추장이 백인들에게 처형당하면서 남긴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