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쿄는 바다와 강, 수로와 도랑과 같이 물의 변화–가령 유유히 흐르는 물 혹은 움직이지 않고 고여서 죽어버린 물 등등–가 매우 많은 도시다.

시나가와 만의 흥미로운 경치는 시대 흐름과 함께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이를 대신할 새롭고 멋스러운 경치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나는 에이타이바시를 건너며 강어귀에 약동하는 광경을 접할 때마다 알퐁스 도데가 센 강을 오가며 화물선 생활을 그린 애처로운 단편 「라 벨 니베르네즈」가 생각난다.

스미다 강 하구 일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제껏 밝혔듯 에이타이바시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아즈마바시, 료고쿠바시 주변은 아직 정돈이 안 되어 에이타이바시처럼 감흥을 한데 집중시키기 어렵다.

갓난아기는 그 주위에서 마치 버려진 아기처럼 모래 위로 나가 마른 닭이 흘리고 간 먹이를 찾으려 애쓰거나 말 엉덩이에서 말똥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이런 광경을 접할 때마다 나는 호쿠사이나 밀레가 떠올라 회화적 사실주의에 깊이 감동한다.

그리고 내게 그림 소질이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도쿄 나들이가 처음인 지방 사람들은 전차 승강장을 잘못 알거나 시내에서 길을 헤매며 화가 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이러한 허위 지명 역시 도시의 얄미운 악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도시의 도랑은 원래 하수에 불과하다. 『지치 한 그루紫の一本』에도 시바의 우다 강을 설명하는 부분에 "다메이케 저택의 하수가 아타고 아래부터 조조지 뒷문을 흘러 이곳으로 들어온다. 아타고 아래 주택가 하수도 흘러들어 우다가와바시에 이르면 작은 강물처럼 보이지만 물의 근원은 이와 같다."라고 나와 있듯, 예로부터 에도 시내에는 하수가 흘러들어 강을 이루는 곳이 적지 않았다.

도시는 활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예부터 전해오는 유물을 최선을 다해 보존하여 그 품위를 지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룻배와 같은 것을 나 같은 사람 하나의 편협한 퇴보 취미로만 논해서는 아니 되리라.

고독하고 덧없는 삶도 있다. 은거의 평화도 있다. 실패와 좌절과 궁핍의 최후 보상인 태만과 무책임의 낙원도 있다. 서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신혼살림이 있는가 하면, 목숨 건 모험에 몸을 맡기는 밀애도 있다. 골목은 좁고 짧기는 해도 풍부한 멋과 변화를 지닌 장편소설과 같다 할 수 있으리라.

눈, 비, 바람, 달, 석양의 도움 없이는 이 어정쩡한 시가지에서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시내 대로를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함과 혐오감이 나의 관심을 그늘에 숨은 골목 풍경으로 잡아끄는 가장 큰 이유다.

료고쿠의 넓은 대로를 따라 난 돌이 깔린 좁은 길에는 여성용 장신구 파는 가게나 일용품 가게, 센베이 가게 등 다양하고 작은 가게가 성행하여 마치 지붕 없는 지하 상점가를 보는 듯하다.

개나 고양이가 무너진 담장이나 벽 사이를 찾아내 자연스레 종족끼리 통로를 만드는 것처럼 큰길가에 집을 세우지 못한 서민은 큰길과 큰길 사이에 그들이 살기 적당한 골목을 직접 만들었다.

골목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생활의 비애 속에서 스스로 심오한 골계적 정취를 풍기는 소설 세계다. 따라서 모든 속된 감정과 생활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격자문과 하수구 덮는 널빤지, 빨래 건조대와 울타리 문, 철책 등 온갖 도구와 일치한다. 골목은 어엿하게 예술이 조화를 이룬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시내를 산책하다 보면 마침 앞 장에서 논한 골목과 비슷하게 흥미로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공터다. 번화한 도로 사이로 나팔꽃이나 메꽃, 달개비나 질경이 같은 잡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시내 번화한 마을의 창고와 창고 사이 혹은 짐배가 오가는 물길 근처 공터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염색가게 주인이 천을 말리고, 머리 올리는 끈 만드는 장인이 작업을 한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호쿠사이의 그림이 떠오른다.

분시치에게   밟히지 마라 뜰의   달팽이야
머리 묶을 끈   붙이는데 덧없이   벌레 우는 소리
커다란 줄이   볕 쬐는 곳 너머로   기러기 날다 

이 시는 기카쿠 시문집 『루이코지』의 ‘북쪽 창문’에도 실려 있다. 『루이코지』는 내가 즐겨 읽는 책 가운데 한 권이다.

공터는 말하자면 잡초의 화원이다. 비단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금방동사니’ 이삭, 털보다도 부드러운 ‘강아지풀’ 이삭, 따사롭고 연붉은 ‘개여뀌’ 꽃, 산뜻하고 창백한 ‘질경이’ 꽃, 모래알보다 작고 새하얀 ‘별꽃’,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잡초도 제법 그럴싸하게 가련한 정취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잡초는 와카(和歌 일본 전통적인 시조)에서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소타쓰 고린(宗達光琳 에도시대 화가 다와라야 소타쓰와 오카다 고린을 함께 지칭하는 말)의 그림에도 그려지지 않았다. 에도 서민문학이라는 하이카이(俳諧 골계적이고 해학적인 에도시대의 산문시)와 교카가 생기고 나서야 나서야 비로소 잡초가 문학에서도 다루어지게 되었다.

요즘 교외는 무서운 기세로 조금이라도 공터가 있으면 건축물을 세우고, 그렇지 않으면 쟁기로 주저하지 않고 갈아엎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쿠보 주변은 이렇듯 자연 대부분이 들판 그대로인 상태로 남겨져 있는가. 우습게도 이것이 실로 속물 중의 속물인 육군의 선물이다.

그저 시끄러운 게 아니라 울화가 터진다. 하늘 아래 모두의 길을 마치 제 것인 양 횡령하며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행태는, 우리 서민을 대단히 불쾌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불쾌하게 하는 거대 기관이 한편으로 옛날 무사시노의 정취를 간직한 이곳 도야마 들판을 보존해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언제나 이상하리만치 이것을 잃으면 저것을 얻게 된다. 이로움이 있으면 해로움도 있는 법, 새삼 일리일해一利一害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오늘 유난히 여름날 어스름한 황혼이 길었던 데다 휘영청 달이 밝아 이를 보지 못함을 원망스러워 하며 원래 왔던 사메가하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요즘 관리들처럼 멍청한 일을 생각해내는 인간도 없다. 도쿄라는 도시의 외관, 일본이라는 국가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빈민굴 철거보다도 우선 거리 곳곳에 세워진 동상부터 없애려 서둘러야 마땅하지 않은가.

도쿄 토목공사는 이리저리 손을 써서 부산하게 도쿄 경치를 훼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다행히도 잡초라는 것이 있어 불타버린 들판과 같이 나무 한 그루 없는 공터에도 푸르고 부드러운 양탄자를 깔아 달빛 흐르는 곳에 이슬로 자수를 놓는다. 박복한 우리 시인들은 전원보다도 세속의 도시에서 보다 깊은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벼랑은 공터나 골목과 비슷하게 나의 히요리게다 산책에 적잖이 흥미를 돋운다. 왜냐하면 벼랑은 야생조릿대나 참억새에 섞여 엉겅퀴, 거지덩굴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잡초가 우거져 있거나 때때로 맑은 물이 솟거나 하수가 골짜기처럼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까닭이다.

한편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시야를 가로막는 무엇 하나 없이 드넓은 하늘이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의 행방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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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은 과학이고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는 학문이다. 점성술은 사이비 과학으로 확고한 근거 없이 여러 행성이 인간의 삶을지배한다고 주장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대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이딱히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둘은 확실하게 서로 갈라섰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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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개 애벌레, 쥐똥나무 벌레, 하코네 산 도롱뇽, 엣추 도야마의 천금환 있어요!" 이런 소릴 가을 저녁이나 겨울 아침 같은 때 듣고 있노라면 서글프고 씁쓸한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옛 사찰과 신사를 보존한다는 명분 아래 이것저것 수리한답시고 도급공사에 들어가는 순간 죄다 파괴해버리는 꼴이 된다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는 내가 좋아서 히요리게다를 끌며 돌아다닌다. 도쿄의 황폐한 터는 그저 나의 개인적인 흥취를 돋울 뿐, 이 풍경은 쉬이 특징을 설명하기 어렵고 지극히 평범하기만 하다.

가난한 뒷골목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법으로 변변찮은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을 보면 연민과 비애와 더불어 솟아나는 존경심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집 외동딸도 지금쯤 직업소개소의 먹잇감이 되어 어디 게이샤라도 된 게 아닐까 싶을 때면, 나는 일본 고유의 충효사상과 인신매매 관습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이래저래 얽히고설킨 생각에 빠져든다.

나는 도무지 새로운 세계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에도의 음곡을 전기등 아래서 요란스레 연주하게 만드는 세속 일반 풍조와도 어울릴 수 없다. 큰 타격을 주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나의 감각과 취미와 사상은 나를 차츰 고루하고 편협하게 만들어, 마침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리라.

"눈물로 얼룩진 화장 번진 얼굴을 숨기고 억지로 술을 마시네"

나는 뒤에서 기세 좋게 달려드는 자동차 소리에 당황하여 큰길을 피해 해가 들지 않은 뒷골목으로 도망간다. 그렇게 남들보다 뒤쳐져 느릿느릿 걸으며 우리네 세대에서 흥미와 고뇌를, 우쭐함과 비애를 동시에 본다.

뒷골목으로 가자, 사잇길을 걷자. 히요리게다를 딸각이며 내키는 대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으레 사당이 나온다. 사당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정부의 비호를 받은 적이 없다.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두면 자칫 사라지기 십상인데도 사당은 오늘날 도쿄 시내에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사당을 좋아한다. 뒷골목 풍경에 멋을 더해주는 사당은 다소 거창하게 말해 단순한 동상銅像보다 심미적 가치가 훨씬 뛰어나다.

신록 우거진   산에 우는 두견새   첫 가다랑어

옛 도시 에도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 정취가 이 간단한 열일곱 자에 다 담겨 있다.

호쿠사이나 히로시게 같은 화가의 에도 명소 그림을 글자로 바꾼다면, 이 하이쿠(俳句 17자 안에 계절 언어를 포함시켜 짓는 일본 전통시) 한 소절로 충분하리라.

도쿄에 사는 이여, 시험 삼아 처음으로 아와세(袷 솜을 누비지 않은 기모노) 입는 날, 아침이 됐든 점심이 됐든 혹은 저녁 무렵이 됐든 외출 길에 구단자카나 간다묘진, 유시마텐진이나 시바의 아타고 산(愛宕山 천연 산으로는 도쿄 23구에서 가장 높다는 구릉) 등등 곳곳의 고지대에 올라 거리를 내려다보라.

반짝이는 초여름 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진 기와지붕 사이사이 어쩌면 은행나무, 어쩌면 모밀잣밤나무, 어쩌면 떡갈나무, 버드나무처럼 신록이 선명한 나뭇가지 끝에 태양이 곱게 내리쬐는 모습을 마주한다면, 아무리 도쿄가 서양을 모방한 건축물과 전선과 동상으로 추해졌다 해도 아직은 아주 몹쓸 도시는 아니라는 기분이 들리라.

아무리 도쿄가 서양을 모방한 건축물과 전선과 동상으로 추해졌다 해도 아직은 아주 몹쓸 도시는 아니라는 기분이 들리라. 어디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도쿄에는 어쩐지 도쿄다운 고유한 정취가 있는 듯하다.

만약 오늘날 도쿄에 도시의 미美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 으뜸이 나무와 물의 흐름에 있다고 단언한다. 야마노테를 뒤덮은 노목과 시타마치를 흐르는 강은 도쿄가 지닌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

정원을 만드는 데 나무와 물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 없다. 도시의 미관을 만드는 데도 역시 이 두 가지를 뺄 수 없으리라.

지금도 시바 타무라초에 남아 있는 은행나무처럼 도쿠가와 씨가 에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고목이라 불린 나무가 적지 않다.

소나무는 은행나무보다 절이나 신사와 한층 조화를 잘 이루어 일본답고도 동양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에도 무사는 자기 저택에 꽃이 피는 나무를 심지 않고 상록수 가운데 특히 소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다.

야나기바시柳橋에 버드나무柳가 없음은 이미 류호쿠 선생이 『류쿄신시柳橋新誌』에 "다리를 버드나무로 이름 지으니 한 그루의 버드나무도 심지 않는다."고 적었다.

히로시게가 그린 니시키에 「동도명승東都名勝」(동도東都는 서쪽 수도 교토에 대비되는 동쪽 수도인 에도)의 소토사쿠라다 풍경을 봐도 해자 옆 길가엔 버드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박쥐우산을 지팡이 삼아 히요리게다를 딸깍거리며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는 휴대하기 좋은 가에이시대(1848~1854) 에도지도를 항상 품에 넣고 다닌다. 그렇다고 요즘 석판인쇄로 찍어내는 도쿄지도가 싫어 일부러 옛날 목판지도를 즐기는 건 아니다. 히요리게다 끌고 걷는 거리 모습을 옛 지도와 비교하노라면, 크게 애쓰지 않고도 오래전 에도와 오늘날 도쿄를 눈앞에서 직접 대조할 수 있어서다.

그러한 아둔하고 무익한 재미 외에도 옛 지도의 편리성은 또 있다. 철 따라 눈, 달,꽃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와 절, 신사의 위치가 한눈에 들어오게끔 색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내책자처럼 여기서부터 어디어디까지 대략 얼마쯤 가면 정원수 가게가 많다든지 하는 설명도 달려 있다.

에도지도가 다소 부정확하다곤 해도 도쿄의 정확한 신식 지도보다 훨씬 더 직감적이고 또 인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서양식 제도는 정치, 법률,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이러하다. 현대 재판 제도는 도쿄지도의 번잡함과 같고, 오오카 에치젠(大岡越前 명판관으로 알려진 옛 에치젠 국의 태수)의 분별력은 에도지도와 같다. 도쿄지도가 기하학이라면, 에도지도는 무늬와 같다 할 수 있겠다.

현대 서양식 제도는 정치, 법률,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이러하다. 현대 재판 제도는 도쿄지도의 번잡함과 같고, 오오카 에치젠(大岡越前 명판관으로 알려진 옛 에치젠 국의 태수)의 분별력은 에도지도와 같다. 도쿄지도가 기하학이라면, 에도지도는 무늬와 같다 할 수 있겠다.

에도지도는 히요리게다 박쥐우산과 함께 나의 산책길에 없어서는 안 될 길동무다. 에도지도를 따라 낯선 뒷골목을 걷다 보면 내 몸이 저절로 옛 시대로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진다.

초여름  / 바바 긴라치

꽃은 모두 무즙이 되어 젖고 
가다랑어 닮은 오늘 아침 길게 누운 구름


신록   / 기노 미지카

꽃 핀 산 향기 주머니 봄이 지나고 
푸른 잎만 가득 우거지누나

 
철 따라 옷 갈아입네     / 지교 가타마루

여름 오니 옷 속에서 솜을 빼고
소맷자락에 남은 건 봄날 꽃종이

현대 관료 교육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충효인의의 도道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오차노미즈를 지날 때마다 ‘앙고(仰高 공자의 제자가 스승의 덕은 우러러볼수록 높기만 하다고 한 데서)’란 두 글자를 내건 다이세이덴(大成殿 공자를 기리는 사당) 정문을 올려다보면, 기와는 떨어지고 잡초는 뽑지 않은 채 비바람이 파괴하는 대로 내버려둔 황량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세상 사람들은 이를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으니 우리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도쿄의 서생이 미국인인 양 편리하다고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문학이든 과학이든 진정한 진보가 있기는 있었는가. 전차와 자동차는 도쿄 시민들이 시간을 절약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일본의 자연은 대단히 강렬한 색채를 지닌다. 이를 페인트나 붉은 벽돌 색채로 대신하려는 짓은 너무도 무모하다. 절 지붕과 차양과 복도를 한번 보라. 일본의 절 건축은 산과 강과 마을과 도시, 어딜 가든 주변 나무와 하늘 빛깔과 조화를 이루며 특색 있는 풍경미를 자아낸다.

일본 풍경과 절 건축은 서로 어우러져 있어, 따로 떨어진 모습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화롭다. 교토, 우지, 나라, 미야지마, 닛코 등의 절과 신사가 풍경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일본 여행자들의 몫으로 맡겨두고, 난 그리 자랑할 것이 못되는 이곳 도쿄 시내를 살펴보겠다.

본디 건축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풍토 기후가 어떠하든 아시아 땅에 유럽의 탑을 짓는다 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천연 식물은 사람의 뜻대로 함부로 옮겨 심을 수가 없다. 말 못하는 식물이 세상 어떤 예술가나 철학자보다도 자기 자신을 훨씬 잘 안다.

일본인이 이 땅에서 자라는 고유 식물에 대해 최소한의 심오한 애정이라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서양문명을 모방한다 할지라도 오늘날처럼 고국의 풍경과 건축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이런 난폭한 행위로 인하여 일본이 비로소 20세기의 강국이 됐다고 한다면, 이는 외관상 강국에 불과하며 존중할 만한 일본의 내면을 완전히 희생시킨 꼴이라 하겠다.

니혼바시 대로에서 미쓰이나 미쓰코시를 비롯해 주변에 경쟁적으로 들어선 미국식 고층 상점을 바라볼 때마다, 만약 도쿄의 실업가가 니혼바시를 스루가초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고 그 전설에 흥미를 느꼈더라면(스루가駿河는 후지 산이 있는 시즈오카 현의 옛 명칭. 니혼바시에서 후지 산이 보였기에 마치 같은 마을에 있는 것 같다 하여 스루가초라 했다), 이 번화한 거리에도 맑은 날 푸른 하늘 멀리 후지 산이 바라보이던 오래전 풍광을 조금이라도 보존시켰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도쿄 시내와 물의 심미적 관계를 고찰해보면 물은 에도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도쿄의 미관을 지켜주는 가장 귀중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육로 운송편이 없던 에도시대에는 천연 하천인 스미다 강과 여기로 이어지는 운하 몇 줄기가 그야말로 에도 상업의 젖줄이었다.

오늘날 도쿄 시내의 물줄기는 단순히 운송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탐미적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 지 오래다.

스미다 강은 말할 것도 없고 오차노미즈의 간다 강, 혼조의 다테 강을 비롯한 시내의 물줄기는 이제 현대의 우리에게 옛 사람이 즐기던 풍류를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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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사이 기카쿠(宝晋斎其角 에도시대 초 골계적인 풍류를 담은 산문시인 하이카이의 대가)가 『루이코지類柑子』에서 밝힌 바 있다.

스미다 강이 유명하긴 하지만 교토의 가모 강이나 가쓰라 강에 비해 천박하여 격이 떨어진다. 산줄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메구로는 어쩐지 예스러운 산고개가 있어 재미는 있는데 물가에서 한참 멀고 산이 험준해 적막한 느낌이다. 오지는 우지처럼 눈을 못 떼게 만드는 섬이나 산이 없고 (오지王子는 도쿄 북부, 우지宇治는 교토 남부 마을. 발음은 비슷해도 경치는 영 다르다는 말장난), 고코구지 절은 벚나무 천 그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시노 산(吉野山 교토 인근의 절과 신사, 벚꽃으로 이름 높은 산)의 눈 덮인 동틀 녘을 떠올리게 하지만 강이 흐르지 않으니 아쉽다. 스미요시 신사를 옮겨다 놓은 도쿄 쓰쿠다지마도 벼랑에 작은 소나무姫松가 적어 무지개다리 건너는 이 드무니, 사람들은 명성 높은 규슈 다자이후로 몰려가 소메 강 색色에 외투를 말리고(작은 소나무는 여성을, 소메 강 색은 여색을 상징한다) 오모이 강 강가는 쓰레기로 가득하다. 다자이후 간온지 절처럼 당나라 그림은 있지만 범종이 없으니 들통이 나고, 교토 호온지 절처럼 흰 기와를 얹겠다고 병풍을 세우는 마당이다. 나무숲은 성기고 매화나무는 단풍이 들지 않으며, 3월 말에 등나무를 꼬아 복도에 자리나 깔 뿐 들판에는 마음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쾌청한 날의 후지 산만이 에도 명소 가운데 오직 한 가지 흠잡을 데 없는 명작이라 했다. 아마도 이것이 에도 풍경에 대한 가장 공정한 비평이리라.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 나가이 가후 저, 정수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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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1879~1959.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가. 한시 시인이자 관료인 아버지 나가이 규이치로와 한문학자 와시쓰 기도의 차녀 쓰네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소키치, 호는 가후. 다른 필명으로 자신의 서재 이름을 딴 단장정주인断腸亭主人, 긴푸산진金阜山人 등이 있다

아버지의 권유로 1903년에 미국에서 일하다가, 1907년에 꿈에 그리던 프랑스로 건너가 자연주의 문학에 매료된다. 귀국 후 『아메리카 이야기あめりか物語』 『프랑스 이야기ふらんす物語』 등 여러 작품을 출간했으나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연이어 발매금지 당했다. 1909년에 나쓰메 소세키의 요청으로 <도쿄아사히신문>에 「냉소冷笑」를 연재했으며, 1910년에 모리 오가이의 추천으로 게이오대 문학과 교수가 됐다.

그러나 천황을 암살하려는 대역 사건을 보며 문학가로서 무력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 뒤 주로 화류계를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에도의 정서를 묘사하는 작품 창작에 전념했다. 또 「히요리게다日和下駄」를 비롯해 근대화 물결에 휩쓸려 망가져가는 도시 도쿄를 안타까워하며 골목과 공터, 언덕과 강 등을 느릿느릿 산책하며 손수 지도를 만들고 글을 남겨 ‘산책 예찬론자’로 불린다. 1952년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54년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대표 저서로는 『지옥의 꽃地獄の花』(1902) 『꿈의 여인夢の女』(1903) 『스미다 강すみだ川』(1911) 『에도예술론江戸藝術論』(1920) 『장마 전후つゆのあとさき』(1931) 『강 동쪽의 기담濹東綺譚』(1937) 『단장정일승断腸亭日乗』(전7권, 1958) 등이 있다.

해설 오토와 베니코音羽紅子

와세다대에서 일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홋카이도 북쪽 땅끝에서 어린 딸을 기르며 오호츠크 해를 노래하는 하이쿠 시인으로 살고 있다. 기타홋카이도의 하이쿠 잡지 『유키시즈쿠』 주간으로 하이쿠를 발표하면서 <홋카이도신문> 문화센터 문학강좌, 호타루시립문학관 기획전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하이쿠 「기타미北見」가 2013년 전통하이쿠협회상을 수상했다.

山(산)  산/센, 야마

川(강)  센, 가와

寺(절)  지, 데라

坂(언덕)  한, 사카/-자카

谷(골짜기)  고쿠, 다니/-야

町(마을)  초, 마치

門(문)  몬, 가도

原(들판)  겐, 하라/-바라

柳(버드나무)  류, 야나기

崖(벼랑)  가이, 가케

島(섬)  도, 시마/-지마

森(숲)  신, 모리

堂(당)  도

園(뜰)  엔, 소노

橋(다리)  교, 하시/-바시

通り(거리)  도리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 나가이 가후 저,정수윤 역

여기에 글 쓴 날짜를 분명히 기록한 이유는, 책이 세상에 나올 즈음이면 글 속의 거리 풍경은 이미 적잖이 파괴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탓이다.

목조 다리였던 이마도바시는 어느 새 철교로 바뀌었고, 에도 강 둔덕은 시멘트가 발라져 다시는 달개비꽃을 볼 수 없다. 에도 성 사쿠라다몬 성문 밖이나 시바 아카바네바시 건너편 공터는 지금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이 되는 덧없는 세상의 유물을 비록 서투른 글월로나마 남기고자 하니, 부디 훗날 두런두런 나눌 이야깃거리라도 될 수 있기를.

 

을묘년(1915) 늦가을

가후

『히요리게다日和下駄』

게다의 여러 종류 가운데 특히 맑은 날 신는 게다를 이르는 말. 비 오는 날 신는 아시다보다 굽이 낮지만 일반 게다나 서양 구두보다는 높아 옷자락이 바닥에 끌려 흙이 묻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남달리 키가 큰데도 나는 항상 히요리게다를 신고 박쥐우산을 들고 걷는다. 아무리 맑게 갠 날이라도 히요리게다에 박쥐우산이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쉬이 변하는 건 남자의 마음과 가을 하늘, 높은 분들의 나랏일뿐만이 아니다. 봄날 벚꽃놀이 무렵, 아침결에는 하늘이 맑게 개다가도 오후 두세 시면 으레 바람이 불고 저녁나절에는 비가 온다.

변화무쌍한 날씨 덕에 뜻밖의 비를 만난 선남선녀가 부득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옛 소설에도 나올뿐더러, 오늘날에도 연극이 끝나고 때마침 내리는 비로 요행히 남의 눈을 피해 장막 안 어딘가에서 은근하게 정사 장면을 연출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거리를 산책하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한여름 푹푹 찌는 날이면 나도 하굣길에 짐수레꾼, 마삯꾼과 함께 수건을 적셔 땀을 닦고, 둑 위에 올라 커다란 팽나무 그늘 아래서 쉬었다. 둑에는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올라가면 해자 너머로 멀리 마을이 보였다. 아마도 이 풍경은 외호 소나무 그늘에서 바라보는 우시고메, 고이시카와 고지대의 경치만큼이나 도쿄 내 절경이리라.

원래 에도(江戸 도쿄의 옛 명칭, 에도시대 막부의 수도) 명소 중에는 예로부터 별로 자랑할 만한 풍경이나 건축이 없었다. 이미 호신사이 기카쿠(宝晋斎其角 에도시대 초 골계적인 풍류를 담은 산문시인 하이카이의 대가)가 『루이코지類柑子』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쾌청한 날의 후지 산만이 에도 명소 가운데 오직 한 가지 흠잡을 데 없는 명작이라 했다. 아마도 이것이 에도 풍경에 대한 가장 공정한 비평이리라.

요사이 내가 히요리게다를 딸깍거리며 다시금 거리로 나와 산책을 시작한 건 물론 에도 경문학에서 받은 감화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특별히 이렇다 할 의무나 책임도 없는, 말하자면 은거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는 처지다. 그날그날을 살아갈 뿐, 세상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고 돈도 쓰지 않으며 말상대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그저 혼자서 멋대로 유유자적 살아가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거닐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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