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터뷰에서 왜 무서운 이야기를 쓰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지요. "부모자식간의 애틋한 정을 소설에서 그대로 묘사하면 듣는 사람이 머쓱해질 수 있지만, 그걸 잃어버리거나 위협받는 상황을 그리면 얼마나 소중한가를 비로소 떠올릴 수 있"다고.

"소행성 충돌이라는 것은 언뜻 보면 비일상적인 설정 같지만, 이 소설은 현실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썼습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세계 속에서 하루의 정의감이나 도덕관은 여러 번 흔들리지요.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루 일행의 선택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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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아무도 없는데도 증거 인멸을 꾀하다니, 일단 비열하고 소심한 자야.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살인범을 추적하며 다니는 인간이 너무나 무서운 거지. 내가 잡아내겠어."

잡아낸다고 하지만 그 후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재판이니 이송이니 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강사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그렇게 지적할 수 없었다.

"……저어, 아가씨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몇 살이세요?"

"스물셋이요."

"아가씨라고 부르기에 딱 맞는 나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그 답답한 트렁크 속에서 이사가와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한다 선생은 혼잣말처럼 "히즈미 씨라는 분이었나" 하고 중얼거렸다.

"내 말은, 하루 짱은 면허 따면 어디론가 가고 싶은 거잖아? 운전은 아직 서툴지만 전진과 후진만 할 줄 알면 충분하지. 이제 원하는 곳으로 출발하는 게 어때?"

"왜 갑자기?"

"하루 짱은 나 같은 인간이랑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잖아."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착한 친구, 착한 동료,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데 영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닥친 지금 그 변신의 허울마저 벗겨지려 하고 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 대단하군요."

"왠지 최근까지 누군가 타고 다닌 것 같은 느낌이네, 저 차."

"외골수로 착실하기만 한 것도 사람 질리게 하지."

"우리는 한국으로 밀입국할 거야. 한국에는 북조선 핵무기에 대비해 견고한 쉘터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잖아. 거기라면 운석이 떨어져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

한국의 쉘터가 안전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헛소문이다. 불행한 수요일 이후 끝도 없이 생겨나는 가짜뉴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무래도 형은 그것이 어리석은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쉘터에 들어가면 진짜 안전하다니까. 어때, 같이 가자."

"그러니까 나중 일은 여러분이 서로 협조해서 어떻게든 해 보세요"

"부자들은 생존할 권리를 살 수 있어서 좋겠다."

"하지만 우주로 도망쳐본들 살지 어떨지 알 수 없잖아."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 계획의 약점을 지적했다.

강사가 핸들을 잡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여자의 자전거를 따라갔다.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도로에 다른 차가 다니는 것도 아니니 상대방도 뻔히 알 수밖에 없는 미행이었다. 여자도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트그린 자전거는 태평하게 계속 움직였다. 나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놈이라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는 있으니까, 라고 할까. 잘 모르겠네."

"아니, 그 사람은 아마 전혀 반성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응. 그래도, 나는 반성하고 후회해."

"후회하세요?"

"그래. 후회해. 차라리 그때 내가 그놈을 때려죽였어야 했어. 그랬으면 와카나 짱이 죽지 않았지."

"네?"

"쓰레기 같은 자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야 해. 그게 어렵다면 전과자에게는 위치추적 목걸이라도 채워야 해. 나쁜 짓을 하는 순간 폭발해서 목을 날려버리는 걸로."

"경찰관은 자기 권력이 가진 폭력성을 이해하고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사로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좀 우습지 않아?"

"전혀 우습지 않아요. 경찰관에게는 중요한 마음가짐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 나도 이론은 알아, 이론은. 하지만 나로서는 지켜야 할 시민인지 뭔지에 범죄자가 포함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남의 생명이나 정신을 위협한 범죄자를 왜 굳이 배려해야 하지? 범죄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격리해야지."

"나는 전부터 사형제도에 전적으로 찬성이었어. 빼앗긴 생명과 권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거니까 흉악범을 감방에 몇 년 처넣어둔다고 죄가 씻기지 않잖아. 인과응보, 즉각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세상의 조류는 사형 폐지이고, 전 세계의 형사법 연구자들은 ‘사형은 살 권리를 침해한다, 야만스럽고 잔학하고 비인도적인 제도다’라고 인식하고 있지. 다시 말하지만 나도 이론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감정이 받쳐주질 않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약탈한 놈이 이기는 거잖아."

타인의 인생을 위협한 악인에게는 목걸이라도 채워둬야 한다. 사람을 죽인 악인에게는 죽음으로 갚게 하자. 죄인은 무조건 엄하게 다스려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경찰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사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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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물러간 뒤에도 한동안 날리던 눈발이 8시가 지나서 구름 틈새로 창공이 드러나는 순간 뚝 그쳤다. 앞 유리에 남은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린다. 하늘은 서서히 투명함을 되찾고 있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거든."

다자이후 운전학원은 현도35호 지쿠시노고가선 옆에 있었다. 다자이후시 시내를 지나 지쿠시노시와 고가시를 잇는 현도35호는 국도3호선이나 규슈 자동차도로의 지름길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교통량이 제법 많다. 특히 운전학원 주변은 다자이후텐만구를 찾는 관광객으로 북적여서 평소에도 차량 왕래가 많다.

오늘은 십이월 삼십일, 수험 시즌이 한창일 때다. 본래는 수험생과 그 가족이 학문의 신에게 은혜를 빌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 때이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어서 어느 주차장이나 텅텅 비었다.

후쿠오카현 중서부에 있는 다자이후시. 스가와라 미치자네 공을 기리는 다자이후텐만구 등 많은 사적이 있는 관광도시이다. 고대에는 ‘서쪽 서울’이라 불리며 규슈의 정치와 문화의 요충지로 크게 번영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근방에 이렇다 할 상업시설도 없고 사영철도나 버스 환승이 복잡하고 번거롭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어중간하게 촌스럽고 갑갑한 시골마을이다.

이 세계 최후의 베스트셀러는 자살 매뉴얼 북이다. ‘그것’이 지구에 떨어질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과 공포와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은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자살을 택했다. 특히 인기를 모은 것이 자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살하기─오지 자살이었다. 광활한 숲이나 계곡, 푸른 초원 같은 곳에서 목숨을 끊음으로써 초목이 쓰러져 대지로 돌아가듯 위대한 자연과 자신의 영혼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구 궤도 가까이 접근하는 천체를 지구접근천체라고 하는데, 그중에 특히 충돌을 경계해야 할 천체를 Potentially Hazardous Asteroid ‘잠재적으로 위험한 소행성’이라고 한다. 스미소니언 천문대의 마이너 플래닛 센터는 2023NQ2를 잠재적으로 위험한 소행성 목록에 올렸지만, 당초에는 다른 대부분의 ‘잠재적으로 위험한’ 천체와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할 뿐 크게 주목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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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300만 이주는 실패하고, 해방이 될 당시에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80만 명쯤 거주하고 있었다. 그 36년 동안 우리 민족은 400여만 명이 죽어갔다. 일본인 한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 다섯씩을 죽인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문제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역사 공부란 무조건 연대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공부는 과거와의 대화인 동시에, 그 대화를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투사들 중에서 으뜸이신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설파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이런 문제를 계속 접하고 풀어가는 것이다. 그게 좀 힘들더라도 그 효과는 여러 가지로 크니까 피해서는 안 된다. 오지선다, 찍기를 능란하게 잘하려고 무조건 암기만 해대는 여러분들이 가장 허약한 것이 글쓰기이고, 가장 싫어하는 것이 논술 아닌가. 이런 문제를 손글씨로 써서 풀어가는 것은 그 효과가 아주 크다.

첫째 두뇌 개발과 발달을 촉진시키고, 둘째 컴퓨터 전자파 피해를 줄이고, 셋째 사고력을 심화 확장시키고, 넷째 문장력을 강화시키고, 다섯째 논리력을 증진시켜 준다.

국어 시간과 역사 시간에 이런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사고력에 균형이 깨져 불구가 된다. 여러분들의 평생 발전을 위해서 글을 일일이 다 읽어야 하는 귀찮음을 참아내는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지금부터 열심히 쓰도록!

우리나라 부모들 대부분은 자기와 자식들을 분리하고, 독립시키질 않고 자기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정 비극의 씨고, 뿌리입니다. 그 동일시로 인해 자식의 출세가 자기의 출세가 되고, 자식의 성공이 자기의 성공이 됩니다.

그런 비이성적 사고방식이 자식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그 집착이 자식이 1등 하기를 바라 자나깨나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 애들은 문제아로 몰리며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게 되는 것 아닙니까.

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를 객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그것부터가 자기를 객관화하는 일입니다. 그것부터 실행이 되도록 노력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꽃* 김용택

산에 가면

산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고요

들에 가면

들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어요

어두운 밤하늘엔

별들이 도란도란 빛나고요

우리나라엔

우리들이 반짝반짝 빛나요

 

산에는 산꽃

들에는 들꽃

밤하늘엔 별꽃

우리나라엔

우리들이 꽃이에요

혁신학교의 3대 정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그 세 번째 정신에 의해서 자신은 지옥에서부터 천당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배제 아닌 배려’, 그것은 일반학교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바다는 메꾸어도 사람 욕심은 못 메꾼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없다는 사람은 있어도 돈 남는다는 사람은 없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 있어 못난 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 돈 싫다 하고 계집 마다는 놈 없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한 가지 뚜렷이 세운 목표는, ‘낡은 것은 모두 버리고 학생 중심의 민주 질서를 창조한다’는 것이었다.

맨 처음 버리기로 한 것이 체벌이었다.

두 번째 버리기로 한 것이 학생들이 가장 지긋지긋해하는 ‘교문 지도’라는 강압적 단속이었다.

세 번째 버리기로 한 것이 생활지도부에서 선생들이 직접 나섰던 규율 위반 단속이었고, 이것은 학생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네 번째 버리기로 한 것이 반장, 부반장, 부장 등 학급 간부제였다. 그건 학급의 평화를 깨는 권력화였고, 동급생끼리의 인간 차별을 조장하는 병폐였다.

다섯 번째 버린 것이 모든 시상제였다.

여섯째 선생들이 전면적으로 작위적인 근엄한 얼굴을 버리고 언제나 모든 학생을 웃음으로 대하기로 했다.

일곱째 최소한 자기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완전히 외워 성을 빼고 이름만 다정하게 부르기로 했다.

여덟째 학생들에게 무조건 명령하거나 시키는 일을 하지 말고,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무라거나 책임 추궁 같은 것을 하지 말고, "괜찮아", "실수는 경험이야", "담에 안 그러면 돼" 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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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루에 40만 원, 한 달이면 얼마인 거야……?"

스미스는 큰 눈이 더 커졌다.

"그야 1,200만 원, 대략 1만 1천 달러 정도."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고

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차량의 과잉 경호로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되니까 대통령 차도 일반 신호를 지키는 게 좋다’ 이런 내용의 발언을 할 정도로 그는 민주주의의 처녀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어.

"공부는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하는 것만이 아니다.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한다. 바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딱 한마디로 하자면, 나만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하는 것처럼 남도 위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 남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예의를 몸에 익혀야 하고 기본 교양을 갖춰야 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 어린 청소년들은 어쩌면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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