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아무도 없는데도 증거 인멸을 꾀하다니, 일단 비열하고 소심한 자야. 나 같은 사람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살인범을 추적하며 다니는 인간이 너무나 무서운 거지. 내가 잡아내겠어."

잡아낸다고 하지만 그 후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재판이니 이송이니 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강사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그렇게 지적할 수 없었다.

"……저어, 아가씨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몇 살이세요?"

"스물셋이요."

"아가씨라고 부르기에 딱 맞는 나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그 답답한 트렁크 속에서 이사가와 강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한다 선생은 혼잣말처럼 "히즈미 씨라는 분이었나" 하고 중얼거렸다.

"내 말은, 하루 짱은 면허 따면 어디론가 가고 싶은 거잖아? 운전은 아직 서툴지만 전진과 후진만 할 줄 알면 충분하지. 이제 원하는 곳으로 출발하는 게 어때?"

"왜 갑자기?"

"하루 짱은 나 같은 인간이랑 어울리는 걸 어려워하잖아."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착한 친구, 착한 동료,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데 영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닥친 지금 그 변신의 허울마저 벗겨지려 하고 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 대단하군요."

"왠지 최근까지 누군가 타고 다닌 것 같은 느낌이네, 저 차."

"외골수로 착실하기만 한 것도 사람 질리게 하지."

"우리는 한국으로 밀입국할 거야. 한국에는 북조선 핵무기에 대비해 견고한 쉘터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잖아. 거기라면 운석이 떨어져도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

한국의 쉘터가 안전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헛소문이다. 불행한 수요일 이후 끝도 없이 생겨나는 가짜뉴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무래도 형은 그것이 어리석은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쉘터에 들어가면 진짜 안전하다니까. 어때, 같이 가자."

"그러니까 나중 일은 여러분이 서로 협조해서 어떻게든 해 보세요"

"부자들은 생존할 권리를 살 수 있어서 좋겠다."

"하지만 우주로 도망쳐본들 살지 어떨지 알 수 없잖아."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 계획의 약점을 지적했다.

강사가 핸들을 잡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여자의 자전거를 따라갔다.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도로에 다른 차가 다니는 것도 아니니 상대방도 뻔히 알 수밖에 없는 미행이었다. 여자도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트그린 자전거는 태평하게 계속 움직였다. 나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놈이라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는 있으니까, 라고 할까. 잘 모르겠네."

"아니, 그 사람은 아마 전혀 반성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응. 그래도, 나는 반성하고 후회해."

"후회하세요?"

"그래. 후회해. 차라리 그때 내가 그놈을 때려죽였어야 했어. 그랬으면 와카나 짱이 죽지 않았지."

"네?"

"쓰레기 같은 자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야 해. 그게 어렵다면 전과자에게는 위치추적 목걸이라도 채워야 해. 나쁜 짓을 하는 순간 폭발해서 목을 날려버리는 걸로."

"경찰관은 자기 권력이 가진 폭력성을 이해하고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수사로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좀 우습지 않아?"

"전혀 우습지 않아요. 경찰관에게는 중요한 마음가짐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 나도 이론은 알아, 이론은. 하지만 나로서는 지켜야 할 시민인지 뭔지에 범죄자가 포함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남의 생명이나 정신을 위협한 범죄자를 왜 굳이 배려해야 하지? 범죄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격리해야지."

"나는 전부터 사형제도에 전적으로 찬성이었어. 빼앗긴 생명과 권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거니까 흉악범을 감방에 몇 년 처넣어둔다고 죄가 씻기지 않잖아. 인과응보, 즉각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세상의 조류는 사형 폐지이고, 전 세계의 형사법 연구자들은 ‘사형은 살 권리를 침해한다, 야만스럽고 잔학하고 비인도적인 제도다’라고 인식하고 있지. 다시 말하지만 나도 이론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감정이 받쳐주질 않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약탈한 놈이 이기는 거잖아."

타인의 인생을 위협한 악인에게는 목걸이라도 채워둬야 한다. 사람을 죽인 악인에게는 죽음으로 갚게 하자. 죄인은 무조건 엄하게 다스려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경찰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사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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