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은이 전 세계로 퍼져가는 구체적 형태는 ‘레알 데 아 오초(Real de a ocho)‘라는 지름38 밀리미터(1.5인치)의 은화였다. 8레알 가치가있는 은화라는 의미인데, 영어로는 ‘piece ofeight‘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서 앵무새가 계속 이 말을 떠든다) 혹은 ‘에스파냐 달러(Spanish dollar)‘라고도 한다. 이 은화가 전 세계로 확산하여 최초의세계화폐로 기능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은화 표면에 따로 표시를 해서 지역 화폐로 통용하기도 했다.

이 두 경향은 언뜻 모순되어 보이나 내적으로연결되는 내용이다. 유럽인이 도착한 초기에는기존 경제와 문화가 완전히 파괴되고, 오직 모국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가만들어졌다. 그러나 2~3세기 동안 지속적으로발전하면서 인디오 문화와 에스파냐 문화가 합쳐진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사회·경제적으로도점차 독립성을 확보해나갔다. 그 결과 유럽과의교역도 단순히 원료 조달과 완제품 수입만 하는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경제 간에 교역이 이루어지는 구조로 점차 변해갔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중 하나다. 1,0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중간항해 (middlepassage)‘를 겪으며 낯선 땅으로 끌려가 고통스러운 강제 노동을 강요당했다.

노예무역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끌려간 노예의 수가 과연 어느 정도였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연구자들 사이에 수십년에 걸쳐 치열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교과서적인 설명으로는 1451~1870년 아프리카해안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사람 기준으로1,100만 명, 아메리카대륙과 일부 대서양 지역에
‘도착‘한 흑인의 수가 950만 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두 수치의 차이를 보면 중간에 선상에서 죽는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해안에 도달하는 과정에서도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체 희생자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아메리카대륙의 정복은 단지 인간들만의 관계뿐 아니라 생태계 차원에서도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구대륙의 동물과 식물, 게다가 병균까지 유입되어 기존 생태계가 격변을 겪었다. 원래 자연 상태에서도 이와 같은 ‘생물학적 교환(biological exchange)‘이 일어나지만, 인간의 활동은 이를 더욱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들이 대규모로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생물들이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일어난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 변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사례 중 하나가 앨프레드 크로스비의 ‘생태제국주의‘ 개념이다. (크로스비 200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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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1집 BC603, 기원전 603년, 빚이603만원 ?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1989년 발매, 1,000,000장 이상 판매
그의 노래는 7집까지....
어린왕자 이승환도 별수없이 늙었다.
6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58세

성주이씨, 세거인구 20만, 조선 문과급제자 107명
안탑깝게 30위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30위는 세거인구 4만도 안되는 풍산홍씨 129명

이조년, 이숭인, 이인임, 이여송...

이조년, 다정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냐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푸른 아침 상념(7집 egg)
정지찬 작곡, 이지은 작사, Paul Mills 편곡
https://youtu.be/yAmnIbmCQW8

바람이 날 일으켜
모두 잠든 세상 앞에
세우고 보라고
이 짙은 평화 잊을 수 있다고 웃네
별빛 녹아 푸르게
검은 어둠 위를 스쳐 흐르면
하얗게 다 지운 듯이
차가운 기억도 잊네
모두 버리고 맨발로 걷고파
아침 잔디 위에 서투른 발걸음으로
가버린 줄 안 바람이 돌아와
얼굴 만져 주면 갈라진 마음도
이슬 내린 풀잎처럼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될텐데

모두 버리고 맨발로 걷고파
젖은 모래 위에 내 짐을 내려놓으며
부서져 버린 파도가 밀려와
쓰다듬어 주면 메마른 꿈에도
쏟아지는 햇살처럼
설레는 아침이 다가올텐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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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05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승환 앨범중에 1,2집이 가장 좋더라구요~!! 이승환옹 나이가 벌써 58세군요 ㅜㅜ 빚이 603만원? 이걸로 예전에 본거 같은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ㅎㅎ

대장정 2022-06-05 20:29   좋아요 2 | URL
네, 세월엔 장사없습니다.ㅠㅠ 저도 1,2집을 젤 좋아합니다. 역시 텅빈마음이죠. 김종서가 빚이 603만원이라 추측했다죠 아마
 

박인환의 시를 위한 몇 개의 회상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꽃 향기, 열리지 않는 미륵의 세상.
그 아쉬움 속에서 재스민차를 마셨다.
먼 지평으로 몇 마리 낙타가 걸어갔다.
딱딱하게 굳은 빵이 차 향기에 풀어져 나갔다. - P196

마리서사는 스무 살의 박인환이 해방된 삶을 향하여 고개를 내밀고자 했던 이른바 전초기지였다. 당연히 이 전초기지에는 당대의 전위, 시인·소설가·화가·언론인, 혹은 그들의 어린 싹들이 모여들었다. 김광균, 김규동, 김기림, 이한직, 이시우, 김수영, 최재덕(화가)·····….  기타 이름을 알 수 없는 뭇 전위들이 무시로 서점을 출입하였다. - P201

김사인과는 인사동의 ‘평화만들기‘에서만나기로 했다. 그는 한동안 박노해의 어떤 관련성 때문으로 잠수함을 타야만 했다. 사람이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아파한 때문으로박해를 받는 시절은 아름답다.  - P203

삶의 양대 본질. 절망과 희망 곁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과 슬픔, 분노와 억압의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으므로, 인간이, 인간성이 무엇인지 뼈끝으로 찍어 바르는 눈물을 경험할 수 있는 절박한 시절이므로. - P204

축복받을진저 모든 새로운 것들이여, 그 탄생이여.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진 문단이피박 터져라 싸울 때 이들의 선택은 죄가 아니었다. - P205

어떻게 하여서든지 팔리지 않는 잡지와 책을 만들어야지. - P205

불가사의한 것은 언젠가 전쟁은 필히 끝난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것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끝난다‘는 명제는 곧 ‘인간은 살아남는다‘ 는 명제로 이어진다. - P208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박인환 <목마와 숙녀> 부분 - P210

‘전차삯 2원 50 전, 칠면조뼈다귀가 들어 있는 꿀꿀이죽 10원, 그야말로 양키 쓰레기 돼지죽이5월 일 때 인환 또한 처음으로 미국이란 존재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 P212

시대성은 명분 이상의명분을 축적할 때가 있다. 그 시대성이 오류로 판명되는 것은 전적으로 뒷날의 일일 뿐.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아름답고 쓸쓸하지 아니한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이야기하는것이 꼭 오류이며 퇴폐인가, 우리들의 삶이 역사가 그토록 진한 도덕성과 건강성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 P213

나는 걸음을 파고다 극장 쪽으로 옮겼다. 그곳은 3년 전 기형도가 세상을 뜬 곳이다. 그의 나이 서른 살. 그가  죽기전까지 아무도 그의 시 작업을 눈여겨보아주지 않았다. 문화부 기자로서 그는 외롭게 시를 썼다. - P215

박인환은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떴다. 과음에서 비롯된 심장마비였다. 죽기 1년 전, 그는 ‘남해호‘ 라는 배의 사무장 자리를 얻어 꿈에 그리던 미국을 다녀왔다. - P216

나는 극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밟았다. 습한 바람 한 줄기가 어디선가 휙 불어왔다. "조지 거슈인의 음악을 듣고 싶어. 그놈의 음악을 들으면 미칠 것 같아." 어디선가 인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가정 방문은 오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기형도의 어린 시절 목소리도 떠올랐다. 문득나는 박인환과 기형도 사이에 어떤 은밀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피곤하다. 차츰 생각하도록 하자. 나는 심야 프로의 좌석 위에 몸을 푹 주저앉혔다. 3년 전 3월 어느 날의 새벽 기형도처럼. - P217

윤이상의 고향 충무를 찾아서

그리운 통영 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거기에 앉아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로지, 혼자서, 별하늘 아래, 여름 밤하늘에는
무수한 유성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 P174

모든 여행이 혼자라는 것은 여행의 기본수칙이다. 둘 혹은 그 이상이 함께 떠들고 자고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은 아니다. 고독, 우수, 열정, 신비, 설레임, 그리고 자신과의 만남, 그 속에 여행의 진짜 의미가 있다. - P176

그 당시 이곳의 이름은 지금의 충무시가 아닌 통영이었다. 수군통제사가 머문 통제영이 바로 이도시 이름의 연유였다. 임진왜란 당시 가장 큰 한산대첩이 바로 이바다 언저리에서 일어났다. 통제사 이하  많은 수군들이 북적거리면서 자연스레 많은 군수물자의 납품이 필요했는데 나전칠기를 비롯한 유명한 통영12공방은 바로 이 군수공예품 발달의 소산이다. - P181

이곳의 부드러운 공기와 유려한 송림, 맑은 바다 풍경은 루이제린저의 회고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1975년 남한을 방문하고남한 방문기를 썼으며 80년대에는 또한 북한 방문기를 썼다. 서두에서 잠시 이야기했거니와린저와 윤이상의 대담 《상처받은 용》은 예술과 자연과 문화가 지닌 의미가 어떤 것인지 한 편의 섬세하고 눅은 수묵화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닿아 온다. - P185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을 찾아서

변혁기 지식인의두 초상

백련사의 동백꽃들이 우리를 마중했다.
따뜻한 바람 속에 이따금 떨어지는 붉은 꽃잎들이 감미로웠다.
존경하는 스승을 위해 계율을 팽개치는 물고기를 잡은옛 스님의 자취는 이제 알 수 없다. - P102

첫 곡 들으시겠습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 스텝 바이 스텝, 그리고는 곧장 환호성이 이어졌다. 열광 또 열광, 한 소절이 끝나자 음악이 잠시 멎고 여자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청취자 여러분 중이들의 음악 싫어하는 분 있겠죠? 소동의 원인은 어디 있었을까요?
음악에는 죄가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 노래와 환호성이 다시 이어졌다. 소동의 원인은 어디 있었을까요? 여자 아나운서의 물음이 귓전을 스친다. - P103

윤두서(1668~1715)는 정약용(1762~1836)의 외증조부가 된다. 윤두서의 손녀가 바로 정약용의 어머니인 것이다. - P109

모기는 일어나고 파리는 잠드니 날이 더울까 두렵고
설익게 누른 보리는 아직 밥 끓일 수 없누나
이웃집 개는 짖고 외상 술빚은 급한데
고을관리 세금독촉하며 깊은밤 대문을 쿵쿵 두드리누나.
- 윤두서 <전가서사> - P112

그것이 윤두서의 ‘초월의지‘ 라는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마치 오늘날 문학 작품 속의 ‘새‘의 이미지가 그러하듯이 말은 그 당시의 ‘자유의지‘의 상징일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보다 광활산 세계 현실적으로는 연경같은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은 필요한 존재였으며 특히, 출세길이 막힌 선비로서 그 자신의 꿈을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백마에 비유할 수 있음은 충분히예견되는 일인 것이다. - P116

<시구편>은 <시경>의 한 편명으로 뻐꾸기가 새끼 일곱 마리를 먹여 키울 때 한 마리도 거르지 않고 공정하게 먹이를 주어 기른다는내용으로 ‘분배의 공정성‘을 강조한 것이다. "같은 백성인데 빈부의차가 왜 생겼느냐? 분배의 공평성이 절실하다." 이러한 발상은 봉건왕조의 상황 인식 속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소련이 해체되기 전 모스크바에 있었던 동구 경제학자들의 한 연구 단체가 ‘다산학회‘ 였다는 사실은 다산의 이런 관점을 동양 사회주의의한 원형으로 파악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 P119

한림원 예문관 검열과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과 홍문관 교리, 성균관 직강, 비변사 낭관, 경기도 암행어사, 승정원 동부승지,
병조참의 등이 그가 살아낸 벼슬살이의 이름들이다. - P120

옆에 놓인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다산이 차달일 때 썼다는 약천물을 뜬다.
샘 안에 눈길을 주자 두꺼비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버리려던 물을 그냥 들고 마신다.
참 달군!

-황동규 <다산초당> 부분 - P122

김환기의 고향을 찾아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여름이 가기 전, 고향에 가는 시간을 그애는 그렇게 표현했다.
언제 어디서 다시 어떻게 만나자는 그런 약속은 어차피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하늘의 별들이 사라지고 대신 지상의 풀밭 위에
해일처럼 촉촉한 별들이 몰려왔다. - P126

시가 네게 준 게 뭐니?
평화.
넌 참 철저히 헤세를 사랑하는구나.
그애는 헤세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애의 깊고 아늑한 눈,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이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애가 헤세를 읽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P131

진도 소리를 찾아서 1

소리가 밥이고
소리가 사랑인 사람들

주위는 모두 꽃밭이었다.
내가 바라본 골목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이었다.
모든 부락 사람들이 내 맘 같다면 온 마을을 온통 꽃으로 뒤덮고 싶으요.
집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이 부서지는 웃음을 웃었다. - P148

된장 속에 묻은 고춧잎, 혹은 마늘종마냥. 소리 명창 따로귀 명창 따로라는 말이 있거니와 그의 소리의 미덕은 귀 명창이라는다소 현란한 수사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소리를 듣는 순간 그소리가 노니는 들과 강과 산으로 우리의 귀를, 시간을, 신명을 저절로 끌고 갔다. - P157

흥타령 특유의 비애와 한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다시금 쓸려 나갔다. 여기가 어디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삶의 의미는, 그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노래는 소리는,
문명은, 한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가. 꽃은 왜피고 별은 왜 반짝이며, 구름은 왜 흘러가는가 안 할머니와 김 할아버지의 주고받는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 속에서 우리는 아예 갈길을 잊고 말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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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곽재구의 책,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읽다 낡은 앨범을 꺼내본다.

육만엥이란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부산 거쳐 순천 지나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엥이란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 오르는 아침햇살
선선하게 터지는 박꽃넝쿨 바라보며
니빠나 모노데스네 니빠나 모노데스네
가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살살 혀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관광 다 끝난단다
육만엥이란다 낚싯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밤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 만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대접 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몸값이 육만엥이란다

- <유곡나루> 곽재구

니빠나모노데스네: 끝내준다(맞나?)

이 시에 정태춘은 곡을 붙이고 개사를 해서
1993년 나 살던 고향을 발표하였다.
원곡에선 마지막에 ㅈ되부렀다가 있었으나 검열로 삭제
눈물없인 들을수 없는 가슴아픈 시, 노래다.

23년 전 유곡나루에 갔었다. 나 살던 시골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은어는 나 어릴적 나 사는 웅천의 웅천천에도 엄청 많았다. 국민학교 다녀오다 다리밑을 내려다 보면 은어가 하얗게 올라왔다.
재첩국을 먹고 싶었다. 다 중국산이라며 참게장을 권한다. 하! 이건 중국산이 아닐까, 아니란다 섬진강서 잡은 거란다. ㅋㅋ 믿을수 없지만 참게장을 먹었다. 참게 또한 우리 웅천천에도 많았다. 밤에 작살하나 망태하나 들고 나가면 가득 잡았다.

93년에 산 정태춘 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테잎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30년 지났다
소리가 잘 나올까?
1988년 발매 <무진 새노래>도 소장,
내가 젤 좋아하는 정태춘 앨범.
실향가, 고향집 가세, 얘기2.
순서대로. 너무 조으다.
https://youtu.be/ZSEy0xTaC4w
음 실한 놈들은 다 싸보내고
무지랭이만 겨우 남아도~~
에헤이 에헤야 어머니 계신 곳
에헤이 에헤야 내 고향집 가세
https://youtu.be/iJmzcSw-dTI
https://youtu.be/gk8vxJxwJRo

나 살던 고향 1992.6. 만듬

https://youtu.be/2lYpsgpA7Rk

육만 엥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 버스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 장화 신고
은어 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 엥이란다
초가지붕 위로피어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까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혓바닥 사리살살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 음, 음
육만 엥이란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 장화 벗고
순천의 특급 호텔 싸우나에 몸 풀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써비스 한 번 볼만한데 음, 음
환갑내기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그저 아이스박스 가득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그 맑은 몸 값이
육만 엥이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나니나니나 ㅈ되부럿다

(곽재구 시집 「서울 세노야」 중에서
‘유곡나루‘ 전문과 작곡자 일부 가필)

<예술기행 40페이지>
이 글을 쓴 얼마 뒤 가수 정태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유곡나루>에 곡을 붙였는데 한 가지 양해할 일이 있다는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글의 맨 마지막에 임의로 ‘나의 살던고향은 ~ 좆되부렀다‘라는 가사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양해할 사항이 아니었다.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일 뿐.
그로부터 몇 달 뒤, 어느 공연장에서 그가 <유곡나루>를 처음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민요와 뽕짝을 가미한 그 곡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관객들이 제일 열렬한 반응을 보인 곳은 바로  그가 양해를 구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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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4 1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태춘 박은옥 공연 보면서 저 노래 들었을 때 역시 마지막 구절에서 빵터졌던 기억이 나네요. 정태춘씨가 진짜 맛깔나게 구사하잖아요. ㅎㅎ 요즘은 테이프를 가지고 있어도 플레이어가 없어서 재생을 못할 거 같은데 어쩌죠?

대장정 2022-06-04 13:15   좋아요 2 | URL
ㅎㅎ 그래서 전 정태춘씨가 전라도 김제나 고창 이런데가 고향일꺼라 생각했는데 경기도 평택이 고향이시더라구요. 플레이어 아직도 2개 보관하고 있어요. 파나소닉하고 소니. 근데 소리가 안나요ㅠㅠ 이거 고칠수 있는 전파사 찾아보는데 찾기 어려워요 😥😢😭

mini74 2022-06-04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태춘 이 분도 검열에 고생많으셨죠. 가난을 노래한다고 검열당하고 너무 사회비판적이라 검열당하고. ㅠㅠ한때 참 많이 들었었는데 잊고 있었어요. 테이프 우와!!! 넘 반갑네요. ~~

대장정 2022-06-04 22:24   좋아요 1 | URL
검열하면 아!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네요. 빨간앨범 골든앨범 너무 좋아요. 탁발승의 새벽 노래, 서해에서.
 

흰색, 파란색의 꽃무늬 격자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부딪치는 절망.
보광전의 벽면은 온통 돈으로 뒤범벅이었다.  그애의 발자국 소리도,
무지개도, 수도꼭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25

백일기도 수시접수 5만 원, 대학입시 백일기도(9월 14일~12월 22일) 3만 5천원. 목불 탱화 개금불사동참금 1만 원, 진입로 포장 불사 시멘트 한 포 5천원. 법당 청기와 불사한 장 5천원, 만불전 건립 불사 1인불 봉안 30만 원(2년 분납 가능), 영가천도 회향 5천봉안원, 남북 평화통일 섬진강 연등 대법회 일인 일등 5천 원…………. - P25

우리 시에 가식은 없었을까. 80년대에 광주 항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너무 근엄하고 조급한 도덕성과 정의감에 결박당한채 진실로 필요한 정신의 유영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금산을내려와 미조에 이르기 전 나는 두 개의 아름다운 작은 바닷가 마을에 들렀었다. - P29

백연동에는 옛 진시황이 서불이란 친구에게 동자 5백을 거느리고 이를 찾아오게 했는데 백연동 언덕 기슭에 ‘서불과차(徐t.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의 네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다. 탁본의 흔적이 있으되 글자는 알아볼 수 없었다. - P29

섬진강 화개 장터에서 김동리의 <역마>를 회상하며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의 끝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일인가.
램프 불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자락인 섬진강의 모래를 등에 지고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대로 램프의 꽃밭이었다. - P32

곡성읍을 막 지나 17번 국도에 접어들면서 차 안의음악을 죽인다.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 전인권의 목소리도함께 스러졌다. 계속 이어졌더라면 내일은해가 뜰 테니 가슴을 쫙펴라는 노랫말이 이어졌을 것이다. 선전이나 계몽도 삶의 어떤 피에 부딪쳐 올 때는 의외의 정직한 힘을 발휘한다. 삶과 사랑과 추억의 힘이 뒷받침될 때 더욱 그렇다.
드디ㄴㅇ - P33

<택리지>는 섬진강의 옛 이름이 강을 지니는 마을에 따라 ‘압록진수‘ ‘악양강‘ ‘섬진강‘으로 구분되어 불렀음을 알려준다. 교통이불편하고 문물의 집산이 한 지역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절에는 당연한 지칭이었을 것이다. - P34

‘유곡‘은 압록 바로 곁의 작은 나루 이름이다. 2년 전 여름 나는이곳에서 한 무리의 일본 관광단을 만난 일이 있다. 그때의 적지 않은 충격이 시 <유곡나루>를 쓰게 만들었다. 처음, 나는 섬진강의 은어가 관광자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가장맑은 강물과 그 강물에 터를 잡은 순정한 일년생 민물고기. 이쯤만으로도 넉넉한 관광자원이 될성싶었다. - P38

그런데 나를 더욱 기가막히게 한 것은 대부분 노년층인 이들의여행 목적이 은어잡이 외에 ‘인어잡이‘ 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낮에은어잡이를 마치면 밤이면 호텔로 돌아가 조선의 어린 인어들을 잡순다‘는 것이었다. 최고급 인어의 ‘꽃값‘이 일본에서의 5분의 1에도채 미치지 못하니 이건 숫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니겠느냐고 일본 관광단의 가이드 겸 포터 노릇을 하는 한 현지 노인이 이야기했다. - P39

이 글을 쓴 얼마 뒤 가수 정태춘으로부터 전화를받았다. <유곡나루>에 곡을 붙였는데 한 가지 양해할 일이 있다는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글의 맨 마지막에 임의로 ‘나의 살던고향은 ~ 좆되부렀다‘라는 가사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것은양해할 사항이 아니었다.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일 뿐.
그로부터 몇 달 뒤, 어느 공연장에서 그가 <유곡나루>를 처음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민요와 뽕짝을 가미한 그 곡은 관객들에게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관객들이 제일 열렬한 반응을보인 곳은 바로 그가 양해를 구한 대목이었다. - P40

"이 꽃이 떨어지게 되면 모든 사람이 애석하게 되니  이 땅은 모든 사람에게 애석함을 주는 인물을 낼 것이다"가 된다. 남과 북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이에서 아무도 챙기지 않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지리산파르티잔들의 운명이야말로 우리 현대사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하고 애석한 과제인 것이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그들을 위한 아름다운 헌시 한 편을 남겼다. - P43

서정주의 질마재 마을을 찾아서

선운사 골짜기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소쩍새 울음소리가 꽃잎이 다진 동백숲을 온 밤내 흔들어놓았다.
새의 울음소리는 보리밭을 넘고 개울을 건너 서해바다의 개펄을 다 채울 듯싶었다.
나는 새 한 마리가 그렇게 애절하게, 또한 그렇게 열정적으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P56

확실히 이 절집 안에는 스무 살의 나를 매료시킬 다양한 풍경들이산재되어 있었다. 우선 눈에 띈 것이 미당 서정주의 시비였다.
사하촌에서 동운암으로 가는 다리를 막 건너면 왼편의 호젓한 숲길에 자리한 이 시비는 상당히 순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빛이 도는 횃불모양의 자연석에는 <선운사 동구洞〉라는 시 한편이 새겨져 있었다. - P59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서정주 <선운사 동구> - P59

신라 24대 진흥왕이 만년에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이곳선운사에 들어와 수도로써 생애를 마감했다는 것이 내가 느낀아름다움의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도솔과 딸 중애 함께가한 수도 생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권력이었다고 한다면 지난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일개 불자로 돌아와 백제의 산 속에 들어온 신라 왕의 이야기는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 P61

불과 7, 80년 후면 국가의 흥망을 걸고 일전을 벌일 두 나라(선운사신라 진선사가의 창건 설화에 따르면,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년) 검단흥왕의 시주를 얻어 개창했다고 하니 백제의 멸망(660년)과는 정확히 83년의 시차가 있다) 사이를 평민의 신분도 아닌 왕이 넘나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 P61

동백 여관에서의 하룻밤은 상쾌했다. 선선한 아침공기 속에 절집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서정주가 노래한 ‘목쉰 육자배기 가락의막걸리집 여자‘가 자신이라고 믿는 옛 귀거래 식당의 이화성 (59세)여사에게서 복분자술과 구증구포한 작설차를 얻어 마셨다. 스무 살적 나는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의 칡(갈근차를 만들기 위해 칡을 말리는방)에서 며칠동안 비럭잠을 잔 일이 있다. - P68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인가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 P70

나는 다짜고짜 서정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찾아왔노라고 이야기했다. 먼 이야그를 어따가 쓰실라고 그라요?" 한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이민숙(85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미당의 친사촌 형수셨다.
행운이었다. 참새 방앗간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또한 방앗간에 모인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 P71

연탄불 위에 손수 쌀을 씻고 얹고 생활을 하면서 그는 틈틈이 산행을 하고 난을 캐기도하며, 그 나머지의 시간은 책을 읽는다. 그가 차지한 방의 반쪽은 책이 자리하고 있다. - P72

그의 논리는 그의 삶 못지않게 정연했으며 깨끗했다. 나는 그의삶 속에 한때 내가 사랑했던 미당 시의 순결한 숨결이 살아 있음을확인했다. 질마재 마을에 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미당이 그의시 속에서 ‘영원한 신부‘가 되어주기를 적어도 그의 또 한편 순결한시 ‘소 한 놈‘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 P73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서
다시,
껍데기는 가라
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래의 살이 하얗고 아름다웠다.
바람 또한 상큼했다. 나는 벼랑의 제일 모서리에 모둠발을 들고 서보았다.
허공에서 강물로 끝없이 하얀 꽃송이들이 흩날렸으며강물은 떠오른 꽃잎들로 인하여 때아닌 봄날을 이루었다. - P74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신동엽 <금강> 부분 - P76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P81

김수영은 신동엽의 시편들에 대해서 "신동엽의 시에는 우리가 오늘날 참여시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강인한 참여 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울리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 P82

그들의 결혼 생활은 곧 난국에 부딪쳤다. 동엽이 충남 보령의 주산 농고에 취직돼 살림이 안정되는 듯싶었으나 근무한 지 세달 만에 동엽은 각혈을 하게 된다. 이른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되었던 시절 얻은 디스토마가 원인이었다. - P92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에서 운두령까지

운두령에 핀
노란 들꽃

언제던가 별이 들어온 날 가슴은 별로 가득하였지만
그때부터 한 구석 빈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고요인 줄 알았던 것이별을 알고 나서
그것이 소용돌이임을 알았습니다. - P218

하나님이 세상을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3장 16절의 성경 말씀 - P232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대화, 진부, 봉평・・・・・・・ 도에서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낯익은 지명들이 펼쳐진다. 이효석. 그렇다. 바로 이 언저리 산골 마을들이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인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며 원두커피 향내를 떠올릴 만큼 기득권이 유지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메밀꽃 필 무렵>은여전히 한국 단편소설의 한 백미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다. 봉평의 운두령을 넘어가는 밤길은 말 그대로 숨막힐 듯 아름다웠다.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달빛이 고즈넉한 산길을 보호얗게밝혀주고 있었다. 조선달과 허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밤길이 바로 이 길일지도 몰랐다. - P235

사랑하는 시간 속에 다툼이 없다면 어찌그 시간을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들의이야기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모닥불처럼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 P237

나뭇잎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의 인생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다와 여자와 포도주가 있기 때문이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은 이 순간 바람과 꽃과 길로 바뀌어야 할것이다. - P239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장흥을 찾아서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

"소설가는 외로울 틈이 없어.
왜냐구? 주인공들의 공화국 속에 늘상 살게 되니까.
힘이 부칠 때면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 몸을 풀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지. 그러면 다시 충전이 돼." - P240

진도 소리를 찾아서 2

극락이 으디 별거드냐
우리들 마음속이 극락이제

하늘에서 몇 홉쯤의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야 삶은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 이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 P258

"씻김굿은 죽은 자의 영혼이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살아 생전의모든 원통함과 한을 풀어주는 천도의식이지요. 타지방에서 행해지는 씻김굿과 진도의 씻김굿은 다른 점이 많아요. 이를테면 다른 지방의 경우 대개 강신무인 무당이 작두나 불 위에서 춤을 추며 스스로 신과 만나는 조금은 사술적인 경향이 짙은 반면, 진도의 경우 대개 세습무인 무녀가 춤과 노래로써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한다고나할까요. 이 과정에서 무당 자신이 아닌 자손들이 직접 죽은 자의 영혼과 대면하게 되지요. 물론 이때 무녀들의 춤과 노래는 대단히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진도 씻김굿 음악은 79년 세계 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지요" - P259

인간이 만든 위대한 악기가 바로 인간 자신의 성대라는 사실의 확인이었으며, 또한 가지는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 부끄러움은 진도 소리를 처음 취재하던 순간부터 나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이른바 민족문학이니 민족 문화를 셀 수 없이 이야기해오면서도 기실 우리가 밟은 것은 허방다리가 아니었을까. - P264

아야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이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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