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파란색의 꽃무늬 격자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부딪치는 절망. 보광전의 벽면은 온통 돈으로 뒤범벅이었다. 그애의 발자국 소리도, 무지개도, 수도꼭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25
백일기도 수시접수 5만 원, 대학입시 백일기도(9월 14일~12월 22일) 3만 5천원. 목불 탱화 개금불사동참금 1만 원, 진입로 포장 불사 시멘트 한 포 5천원. 법당 청기와 불사한 장 5천원, 만불전 건립 불사 1인불 봉안 30만 원(2년 분납 가능), 영가천도 회향 5천봉안원, 남북 평화통일 섬진강 연등 대법회 일인 일등 5천 원…………. - P25
우리 시에 가식은 없었을까. 80년대에 광주 항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너무 근엄하고 조급한 도덕성과 정의감에 결박당한채 진실로 필요한 정신의 유영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금산을내려와 미조에 이르기 전 나는 두 개의 아름다운 작은 바닷가 마을에 들렀었다. - P29
백연동에는 옛 진시황이 서불이란 친구에게 동자 5백을 거느리고 이를 찾아오게 했는데 백연동 언덕 기슭에 ‘서불과차(徐t.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의 네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다. 탁본의 흔적이 있으되 글자는 알아볼 수 없었다. - P29
섬진강 화개 장터에서 김동리의 <역마>를 회상하며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의 끝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일인가. 램프 불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자락인 섬진강의 모래를 등에 지고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대로 램프의 꽃밭이었다. - P32
곡성읍을 막 지나 17번 국도에 접어들면서 차 안의음악을 죽인다. 비가 새는 판잣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 전인권의 목소리도함께 스러졌다. 계속 이어졌더라면 내일은해가 뜰 테니 가슴을 쫙펴라는 노랫말이 이어졌을 것이다. 선전이나 계몽도 삶의 어떤 피에 부딪쳐 올 때는 의외의 정직한 힘을 발휘한다. 삶과 사랑과 추억의 힘이 뒷받침될 때 더욱 그렇다. 드디ㄴㅇ - P33
<택리지>는 섬진강의 옛 이름이 강을 지니는 마을에 따라 ‘압록진수‘ ‘악양강‘ ‘섬진강‘으로 구분되어 불렀음을 알려준다. 교통이불편하고 문물의 집산이 한 지역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절에는 당연한 지칭이었을 것이다. - P34
‘유곡‘은 압록 바로 곁의 작은 나루 이름이다. 2년 전 여름 나는이곳에서 한 무리의 일본 관광단을 만난 일이 있다. 그때의 적지 않은 충격이 시 <유곡나루>를 쓰게 만들었다. 처음, 나는 섬진강의 은어가 관광자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가장맑은 강물과 그 강물에 터를 잡은 순정한 일년생 민물고기. 이쯤만으로도 넉넉한 관광자원이 될성싶었다. - P38
그런데 나를 더욱 기가막히게 한 것은 대부분 노년층인 이들의여행 목적이 은어잡이 외에 ‘인어잡이‘ 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낮에은어잡이를 마치면 밤이면 호텔로 돌아가 조선의 어린 인어들을 잡순다‘는 것이었다. 최고급 인어의 ‘꽃값‘이 일본에서의 5분의 1에도채 미치지 못하니 이건 숫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니겠느냐고 일본 관광단의 가이드 겸 포터 노릇을 하는 한 현지 노인이 이야기했다. - P39
이 글을 쓴 얼마 뒤 가수 정태춘으로부터 전화를받았다. <유곡나루>에 곡을 붙였는데 한 가지 양해할 일이 있다는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글의 맨 마지막에 임의로 ‘나의 살던고향은 ~ 좆되부렀다‘라는 가사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것은양해할 사항이 아니었다.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일 뿐. 그로부터 몇 달 뒤, 어느 공연장에서 그가 <유곡나루>를 처음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민요와 뽕짝을 가미한 그 곡은 관객들에게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관객들이 제일 열렬한 반응을보인 곳은 바로 그가 양해를 구한 대목이었다. - P40
"이 꽃이 떨어지게 되면 모든 사람이 애석하게 되니 이 땅은 모든 사람에게 애석함을 주는 인물을 낼 것이다"가 된다. 남과 북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이에서 아무도 챙기지 않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지리산파르티잔들의 운명이야말로 우리 현대사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하고 애석한 과제인 것이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그들을 위한 아름다운 헌시 한 편을 남겼다. - P43
서정주의 질마재 마을을 찾아서
선운사 골짜기로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소쩍새 울음소리가 꽃잎이 다진 동백숲을 온 밤내 흔들어놓았다. 새의 울음소리는 보리밭을 넘고 개울을 건너 서해바다의 개펄을 다 채울 듯싶었다. 나는 새 한 마리가 그렇게 애절하게, 또한 그렇게 열정적으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P56
확실히 이 절집 안에는 스무 살의 나를 매료시킬 다양한 풍경들이산재되어 있었다. 우선 눈에 띈 것이 미당 서정주의 시비였다. 사하촌에서 동운암으로 가는 다리를 막 건너면 왼편의 호젓한 숲길에 자리한 이 시비는 상당히 순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빛이 도는 횃불모양의 자연석에는 <선운사 동구洞〉라는 시 한편이 새겨져 있었다. - P59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서정주 <선운사 동구> - P59
신라 24대 진흥왕이 만년에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이곳선운사에 들어와 수도로써 생애를 마감했다는 것이 내가 느낀아름다움의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도솔과 딸 중애 함께가한 수도 생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권력이었다고 한다면 지난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일개 불자로 돌아와 백제의 산 속에 들어온 신라 왕의 이야기는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 P61
불과 7, 80년 후면 국가의 흥망을 걸고 일전을 벌일 두 나라(선운사신라 진선사가의 창건 설화에 따르면,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년) 검단흥왕의 시주를 얻어 개창했다고 하니 백제의 멸망(660년)과는 정확히 83년의 시차가 있다) 사이를 평민의 신분도 아닌 왕이 넘나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 P61
동백 여관에서의 하룻밤은 상쾌했다. 선선한 아침공기 속에 절집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서정주가 노래한 ‘목쉰 육자배기 가락의막걸리집 여자‘가 자신이라고 믿는 옛 귀거래 식당의 이화성 (59세)여사에게서 복분자술과 구증구포한 작설차를 얻어 마셨다. 스무 살적 나는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의 칡(갈근차를 만들기 위해 칡을 말리는방)에서 며칠동안 비럭잠을 잔 일이 있다. - P68
신부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인가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 P70
나는 다짜고짜 서정주 선생님의 이야기를 찾아왔노라고 이야기했다. 먼 이야그를 어따가 쓰실라고 그라요?" 한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이민숙(85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미당의 친사촌 형수셨다. 행운이었다. 참새 방앗간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또한 방앗간에 모인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 P71
연탄불 위에 손수 쌀을 씻고 얹고 생활을 하면서 그는 틈틈이 산행을 하고 난을 캐기도하며, 그 나머지의 시간은 책을 읽는다. 그가 차지한 방의 반쪽은 책이 자리하고 있다. - P72
그의 논리는 그의 삶 못지않게 정연했으며 깨끗했다. 나는 그의삶 속에 한때 내가 사랑했던 미당 시의 순결한 숨결이 살아 있음을확인했다. 질마재 마을에 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미당이 그의시 속에서 ‘영원한 신부‘가 되어주기를 적어도 그의 또 한편 순결한시 ‘소 한 놈‘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 P73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서 다시, 껍데기는 가라 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래의 살이 하얗고 아름다웠다. 바람 또한 상큼했다. 나는 벼랑의 제일 모서리에 모둠발을 들고 서보았다. 허공에서 강물로 끝없이 하얀 꽃송이들이 흩날렸으며강물은 떠오른 꽃잎들로 인하여 때아닌 봄날을 이루었다. - P74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신동엽 <금강> 부분 - P76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 P81
김수영은 신동엽의 시편들에 대해서 "신동엽의 시에는 우리가 오늘날 참여시에서 바라는 최소한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강인한 참여 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울리고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 P82
그들의 결혼 생활은 곧 난국에 부딪쳤다. 동엽이 충남 보령의 주산 농고에 취직돼 살림이 안정되는 듯싶었으나 근무한 지 세달 만에 동엽은 각혈을 하게 된다. 이른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되었던 시절 얻은 디스토마가 원인이었다. - P92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에서 운두령까지
운두령에 핀 노란 들꽃
언제던가 별이 들어온 날 가슴은 별로 가득하였지만 그때부터 한 구석 빈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고요인 줄 알았던 것이별을 알고 나서 그것이 소용돌이임을 알았습니다. - P218
하나님이 세상을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3장 16절의 성경 말씀 - P232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대화, 진부, 봉평・・・・・・・ 도에서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낯익은 지명들이 펼쳐진다. 이효석. 그렇다. 바로 이 언저리 산골 마을들이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인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며 원두커피 향내를 떠올릴 만큼 기득권이 유지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메밀꽃 필 무렵>은여전히 한국 단편소설의 한 백미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다. 봉평의 운두령을 넘어가는 밤길은 말 그대로 숨막힐 듯 아름다웠다.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달빛이 고즈넉한 산길을 보호얗게밝혀주고 있었다. 조선달과 허생원이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가는밤길이 바로 이 길일지도 몰랐다. - P235
사랑하는 시간 속에 다툼이 없다면 어찌그 시간을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들의이야기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모닥불처럼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 P237
나뭇잎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의 인생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다와 여자와 포도주가 있기 때문이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은 이 순간 바람과 꽃과 길로 바뀌어야 할것이다. - P239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장흥을 찾아서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
"소설가는 외로울 틈이 없어. 왜냐구? 주인공들의 공화국 속에 늘상 살게 되니까. 힘이 부칠 때면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 몸을 풀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지. 그러면 다시 충전이 돼." - P240
진도 소리를 찾아서 2
극락이 으디 별거드냐 우리들 마음속이 극락이제
하늘에서 몇 홉쯤의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야 삶은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 이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 P258
"씻김굿은 죽은 자의 영혼이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살아 생전의모든 원통함과 한을 풀어주는 천도의식이지요. 타지방에서 행해지는 씻김굿과 진도의 씻김굿은 다른 점이 많아요. 이를테면 다른 지방의 경우 대개 강신무인 무당이 작두나 불 위에서 춤을 추며 스스로 신과 만나는 조금은 사술적인 경향이 짙은 반면, 진도의 경우 대개 세습무인 무녀가 춤과 노래로써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한다고나할까요. 이 과정에서 무당 자신이 아닌 자손들이 직접 죽은 자의 영혼과 대면하게 되지요. 물론 이때 무녀들의 춤과 노래는 대단히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진도 씻김굿 음악은 79년 세계 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지요" - P259
인간이 만든 위대한 악기가 바로 인간 자신의 성대라는 사실의 확인이었으며, 또한 가지는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 부끄러움은 진도 소리를 처음 취재하던 순간부터 나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이른바 민족문학이니 민족 문화를 셀 수 없이 이야기해오면서도 기실 우리가 밟은 것은 허방다리가 아니었을까. - P264
아야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이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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