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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한편, 제국주의에 영합해 대중을 선동한 고고학자와 달리 전쟁 이후 참담한 사회 현실속에서 고고학 본연의 길을 걸어 그 학문적 성취를 이룬 고고학자도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88년에 제작한 <이웃집 토토로>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시골로 이사한 고고학자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두 자매가 숲속의 요정 토토로와 만나는 이야기를 믿고 동조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의 직업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고고학자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아버지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감독의 연출 노트에 따르면 아버지는 ˝젊은 고고학자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번역 작업으로 어렵게 생활한다. 지금은 혁명적인 새로운 학설을 담은 논문을 집필하기 위하여 강의할 때 이외에는 서재에 틀어 박혀 있다˝고 되어 있다.
감독이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은 후지모리 에이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서 후지모리를 알았고, 평소에도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본 후지모리가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며 고고학을 연구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지모리가 생각하던 혁명적인 설은 무엇일까.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2300년 전 야요이시대가 되어서야 쌀농사를 짓는 농경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지모리는 그보다 훨씬 이른3500년 전인 죠몽시대의 중기에 이미 농사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학계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설을 주장한 후지모리인지라 실제 삶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가설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하고 평생을 재야에서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후지모리는 1930년대부터 또 다른 일본 고고학계의 민간영웅인 모리모토 로쿠지와.
함께 ‘도쿄고고학회‘를 창시했다. 하지만 동료였던 모리모토는 어렵사리 떠난 파리 유학중에 큰 병을 얻어서 요절했고, 후지모리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고생 끝에 그는 1941년에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독자적인 고고학 잡지를 간행하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곧바로불어닥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후지모리는 다행히 살아남아 일본의 패망을 보르네오섬에서 맞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건강을 크게 해쳤고, 시간강사와 헌책방을 전전하다가 1973년에 세상을떴다.
하지만 일본의 많은 고고학자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재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그의모습에 일본인들은 열광했고, 그래서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고고학자로 꼽힌다. 지금도재야의 고고학자들을 위해 ‘후지모리 에이지상‘이 제정되어 매년 수여되고 있다.
전쟁 이후의 참혹한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영화인 <이웃집 토토로>에 그를 등장시킨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과 전쟁이라는 탐욕 대신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을 그리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숲속에 텃밭을 만들고 어린 자매가 토토로와 도토리를 주고받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바로 후지모리가 그린 죠몽시대 농사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후지모리는 죠몽시대에는 쌀 대신에 도토리를 채집하고 수수 같은 잡곡을 텃밭에서 경작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2000년대에 들어서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꽃가루 분석을 비롯한 여러 방법이 계속 개발되면서 죠몽시대에 원시적이나마 농사를 지었다는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후지모리의 가설은 당시 부족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유물에 대한 통찰력과 유적의 위치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에가미 나부오와 후지모리 에이지는 전쟁을 겪으며 살았던 동시대의 고고학자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 명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부역했고, 또 한 명은전쟁으로 인해 그의 학문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불운한 고고학자였다. 각종 영화나 매체에서 주로 비추어지는 모습은 에가미와 같이 전쟁과 함께 사방을 다니면서 다른 나라의 유물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고고학의 가치를 실현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후지모리와 같이 자신이 살던 자연 속에서 사소해 보이는 유물을 통해 진정한 과거의 모습을찾으려 했던 숨어 있는 고고학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