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괴담 雨中怪談

오늘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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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건물에 흥미가 있었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본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고성이나 성관城館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대다수가 영화용 세트였다고 생각되므로, 나는 실존하지 않는 건물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대학은 건축학과에 진학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현실의 건물에는 이상하게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집에,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된 장소로서의 건물에, 아무래도 나는 홀려버렸던 모양이다.

그곳이 일반적인 장소이기에 무서운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그 집’이 무대이기에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괴이 쪽이 역시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소재가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어느 남자의 유소년기 체험담’이 그야말로 딱 그런 이야기에 해당한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커다란 관심을 가진 것은, ‘집’에 관련된 그의 기억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온 괴이에 매료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저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꼭 좀 듣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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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귓가를 스치는 서간도 벌판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구십 평생 되돌아봐도 여한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달픈 발자국이었긴 하나 큰일 하신 어른들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그 대신머지않아 여러 영령들 뵈옵고 이토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을 말씀드릴 생각하면 마음뿌듯하다. 선열들의 피 흘린 노력의 보람을 오늘 이 나라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으시겠지.
- 허은 여사 회고의 말 중에서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고난과 극복으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를되새겨보게 하는 시점에 뜻 깊은 책을 간행하게 되어 연구소로서도 보람이 크다.
이 책이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등 사회 일각에서 자행되고있는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개정판을 펴내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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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여러분은 만보산에 있는 이백 명 동포의 생명이 위경에 든것처럼 생각하고, 또 어떤 악의를 가진 자의 생각인지는 모르게니와, 그 이백 명 동포가 학살을 당한 것처럼 아는 이도 있는 모양이나, 이것은 전혀 무근지설입니다. 무뢰배의 유언비어입니다." - P112

"이 ‘임정로드‘ 프로젝트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상하이에서 난징, 광저우, 류저우를 거쳐 충칭에 이르는 임시정부의 흔적 4000km를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만 12차례, 총 30차례 가까이 옮겨야 했던 이유는 일제에 쫓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방 한 칸 살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 P114

"처음부터 길이었던 길은 없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 P114

혁명열사기념탑
 1927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위증민은 동북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이끌었다.
강행군 속에 병을 얻었지만 굴하지 않고 활동하던 그는 불과 32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중국에서는 항일 열사로 추앙받는 인물이며 김일성도 항일 유격대에서 활동한 그의 수하였다. - P120

박재혁 의사 
박재혁 의사는 의열단 1차 의거의 실패 원흉인 당시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를 제거하는 의거를 성공시켰다. 위쪽 사진의 왼편이 박재혁 의사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왜놈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스스로 단식해 순국했다. - P134

"可期許多收益(가기허다수익) 
不可期再見君顏(불가기재견군안)" 
"수익은 기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 얼굴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소." - P135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 - P139

상남자 김익상이 그립다,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 주인공
"쓸데없는 소리 말게. 일주일이면 넉넉히 성공해 돌아올 것이니술상이나 차려놓고 기다리게."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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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정확히 정리되지 않았으나 몇 년 전에 밀양초등교에서 나온 자료에서 3월 14일로 나왔으니 맞는 듯도 합니다, 당시가 제대로 된 호적도 없던 시절이라 그것 역시도 정확한지 알수가 없지요" - P72

박차정 지사의 묘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박자정 여사의 묘라고 쓰여 있지만, 약산의 아내이기 전에 그 역시 당당한 독립운동가였고 애국지사였음을 기억하자. - P75

"약산, 우리 국내로 돌아가 독립운동을 함께 하자." - P94

의열단 창립지 지금은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저 자리에서 의열단이 탄생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말없이 그들을 생각하며 하얀 국화를 올려드렸다. - P99

<의열단 공약 10조〉
1. 천하의 정의를 맹렬히 실행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히 자라야 의열단원이 된다.
4.우선하고, 단원의 의도 급히 실행한다.
5. 의백 일인을 선출해 단체를 대표케 한다.
6.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한다.
7.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초회(부름)에 반드시 응답한다.
8. 피사被死(죽임을 당함, 함부로 죽음) 아니하며  단의에 전력을 다한다.
9. 하나가 아홉을 위하여 아홉이 하나를 위해 헌신한다.
10. 단의團義를 배반한 자는 척살한다. - P100

의열단 창립지 찾아가는 법 주소가 정확하다. 지린역에서 택시로 10분정도 걸리는 거리이고 찾기도 쉽다. 필자의 경우는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이동했다. 창립지를 중심으로 안창호 선생이 구금됐던 길림 감옥,
뒤에서 살펴볼 만보산사건 발생지, 손정도 목사 교회 터 모두 가깝다. - P104

약산의 휘호 
‘신국가는 신청년이 건립할 것이오, 신청년은 신사상이 확구한 자를 의미함이라.‘라고 씌여 있다. 약산 스스로 청년 시절부터 의열 정신이 투철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 P109

지린에서 약산이 남긴 공식적인 흔적은 의열단 창립지뿐이다. 1920년 초에 진행된 1차 암살파괴 계획까지 지린시 의열단 본부에서 준비하고 진행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약산이 지린을 떠난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약산과 의열단이 남긴 지린에서의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길게 보면 이 책을 통해 지린을 방문할 수많은 청년들이 우리가 잘 몰랐던 약산과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들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어언급할 조선일보 김이삼 기자의 암살지와 지사들이 활동했던 북산공원을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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