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만려, 그는 누구인가.
이제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백제에서 건너간 백제인이었던 것이다. - P5

제1장 태안만려 太安萬侶
제2장 풍운 風雲
제3장 연개소문 淵蓋蘇文
제4장 암운 暗雲
제5장 피의 요하 遼河
제6장 복수의 시작 - P7

"차는 손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가꾸는 거야"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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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이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검이다. 신검이다."
그러자 의복을 갖추고 서 있던 신관들은 모두가 일제히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 궤를 향해 배를 올렸다.
신검이다.
신검이다.
기다리고 있던 신관 하나가 북을 두드렸다.
둥둥둥둥둥둥둥둥둥두두둥. - P287

사전(傳)에 의하면 이 물건은 칼로 육지모(六)‘ 라고 불려오던 물건이었다. 말하자면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칼이라는 이름의 신체(神體)였다. - P293

병오정양조조백련 칠지도
(丙午正陽造百練七枝刀)…
순간 간은 손에 들었던 칼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었다.
‘칠지도(七枝刀)‘ - P295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부터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다. 먼 천축의 나라로 불경을 구하기 위해서 떠나는 삼장법사처럼. 그의 일을 돕기위해서 여의봉을 들고 함께 떠나는 손오공처럼.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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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오는 그 벽돌 두께 부분에 새겨진 명문을 읽어보았다.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한자의 훼손도 없는 완벽한 명문이었다. 순간 사코오의 가슴에는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 P173

삼가 생각컨대 옛적 추모왕(鄒牟王)께서 국기(國基)를 창사하시다.
북부여에서 나섰으며, 천제의 아들이시며, 어머니는 하백여랑(伯)이시다. 알을 깨뜨리고 아들을 낳으시니 성덕이 있으시다. - P182

수레를 타고 남쪽으로 내리실 때에 부여의 엄리대수(俺利大水)에다다르시다. 왕이 나루터에서 외쳐 가로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여랑이시다. 나를 위해서 나룻배를 발(發)할지어다‘하시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거북(浮龜)이 떠올라 연(連)해졌으므로 왕이 건너서비류국(治國) 홀본(忽本) 서성산상(西城山上)에이르러 도읍하시다. 불락세위(병고)하셨으며, 천제황룡(天帝黃龍)을보내시어 왕을 맞이하시니 왕이 홀본 속강(束昰)에서 황룡에 업히어하늘에 오르시다. - P182

후사를 세자 유류왕에게 부탁하였으매 도(道)로 나라를 다스리시다.
대주류왕(大朱留王)이 기업(基業)을 이어받아 전하여 17세손 국가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에 이르다.
29세에 등조하셨으며 호를 영락대왕이라 하였다.
은택(恩澤)을 황천(黃泉)에 받으시어 위무(威武)가 4해에 떨치시다. □□ 을 소제(掃際)하니 서민(庶民)이 그 업에 평안하며 나라가 - P183

부강하고, 백성이 은성하며 오곡(五穀)이 풍숙(豊)하다.
호천이 불조하시와 39세에 평안히 수레에 오르셔서 나라를 버리시다. 갑인년 9월29일 산릉에 모시고 비를 세워 공훈과 업적을 명기하여 후세에 전하니 그 사詞)에 가로되………. - P184

영락 5년(395년) 을미왕이 비(碑麗,契丹)가 □□을 침범하므로 사(師)를 거느리시고 거부산(巨富山) 부산(負山)을 토벌(討伐)한다음 염수상(鹽水上)에 이르러 그 삼부락(三部落) 600~700을 파(破)하고 노획(鹵獲)한우, 마, 양이 부지기수라.
이에 어가개(御駕凱) 선(旋)하매 평도를 지나 동으로 와 ㅁㅁ력성(力城)과 북으로 풍오비유(豊五備猶)를 거쳐 변방을 순찰하고 유럽(遊獵)하면서 귀국(歸國)하시다. - P184

백잔(百殘)과 신라는 옛적부터 우리의 속민으로 조공해 왔다. 그러하던 바 왜(倭)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과 □□□라(羅)를 파하고 신민으로 만들었다. ……….. - P185

6년 병신(丙申)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과잔국(百濟)을 토벌하여 군(軍)□□ 먼저 일팔성(壹八城)을 공취하고 ……………(중략)·····….
......
적(賊)이 □기(氣)치 아니하고 감연(敢然)히 나와 백전하는지라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한강)를 건너 정병(精兵)을 척박성(刺迫城)에 보내어 횡□□□□ 그 국성(國城)에 다다르니 백제왕(百濟王)이 곤핍(困逼)하여 남녀주(男女主) 1000인과 세포 1000필을 헌납하고 왕에게 귀순(歸順)하여 스스로 맹세(盟誓)하되 자금이후(自今以後) 영원히 노객(奴客)이 되겠습니다‘ 하였으므로 용서하고 태왕이 미지어(迷之御)로 하여금 항복문을 받게 하다…. - P185

약오만년지후, 안수묘자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사코오는 소리를 내어 그 문장의 뜻을 중얼거려 보았다.
・・・・・・ 나의 만 년 후까지 어찌 묘(墓)를 편안히 지킬 수 있으리오."
아마도 장대한 비문의 거의 끝부분인 모양이었다. 만 년 후일지라도 자신의 무덤이 타인에 의해서 도굴되지 않고 편안히 지켜지기를 바랐던 왕의 바람이 적혀 있는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 P190

이고 육군 포병 대위종6위, 혼5등 사코오 가게노부의 유적명치 27, 28년의 전역(戰役, 청일전쟁을 가리킴)에 이바지한 바 적지 않으므로 금 5백 엔을 하사함.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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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map 2023-11-1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로 해석한 일본학자가 영(永) => 불(不)로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후손이 조상 비문에 그렇게 쓰겠습니까? 영락세위 : 永樂世位 불락세위 : 不樂世位 초덕균 저본을 첨부합니다 일본학자가 임나일본부 주장하던 부분도 저본에는 동녁동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 첨부가 안되네요. 초덕균 저본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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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ㅁ役 以辛卯年ㅁㅁㅁ(不責因)破百殘ㅁㅁ (倭冠) 新羅以爲臣民 [원래 백제와 신라는 우리들(고구려)의 속민으로서 항상 조공을 바쳐왔는데 이후 신묘년에 조공을 바치지않으므로 백제와 왜적, 신라를 쳐서 이겨 신민으로 삼았다. - P84

하나하나 의식의 녹을 벗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문기사를 읽어내려가던 내 눈길은 순간 하나의 단어 앞에 멎어섰다.
나는 무심코 지나쳐 읽어 내려간 눈길을 돌려 다시 한 번 그 기사를 되돌아 읽어보았다.

명치 17년, 일본 군인이 탁본을 가지고 돌아온 이래………. - P87

"무릇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몽상가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환상을 갖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다." - P95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적을 완벽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진리로 평소 가츠라가 제일 좋아하는 전쟁 철학이었다.
청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완벽한 지도를 만드는 일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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