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의 숨은 왕 - 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송익필이란 이름을 표지에서 봤을 때 친숙함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낯선 이름, 그렇지만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그가 조선 당쟁사의 시작이라니. 대체 그는 누구였고, 왜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했을까? 무엇보다 드러나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조선 당쟁사의 시작이라는 것일까?
역사 공부를 할 때 가장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부분이 조선의 당쟁사였다. 어쩜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쩜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안타깝게도, 조금은 어이가 없게도 그 대부분의 사건에서 수 많은 목숨들을 잃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부터가 막막한 그 엄청난 사실들. 송익필은 그 시작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학문을 지녔던 사람, 그럼에도 신분상의 한계로 앞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만 있어야했던 사람.
송익필은 사실 전망이 밝은 학생이었다. 과거에 붙기만 하면 높은 벼슬은 문제 없을. 그러나 과거를 바로 앞둔 시점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그에겐 과거의 길이 애초에 닫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의 조상 때문에. 절망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원망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보다는 과거의 길을 접고 보다 학문에 열중했다. 비록 직접 관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그에겐 학문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덧 그는 조선의 정치를 뒤에서 움직이는 거물이 되었다. 직접 관직에 오른적은 없지만 조선의 정치인 누구라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도 욕심이 났던 걸까?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 힘을 모으던 중 그가 사실 면천이 도지 못한 노비임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도망 노비 신세가 되었고,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된다.
조선이란 나라는 참 묘한 구석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요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당쟁사다. 유교를 나라의 본으로 삼았던 나라, 선비의 나라였던 조선 사회에서 고작 -고작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긴 하지만-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관직은 물론 목숨까지도 그리 쉽게 빼앗을 수 있었다니..유교를 중요시하던 사람들이..
쉽사리 목숨을 잃곤 하는 경우를 보면서 찍어내려야한다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사람을 상대로 찍어내려야한다고 하는 표현이 좀 심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말 몇 마디면, 그에 왕의 수긍 한 번이 더해지면 사약이 떡하니 내려지곤 하는 상황이니..
말 그대로 목숨을 전제로 하는 정치, 그럼에도 끝까지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
솔직히 이해가 되지도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다. 그만큼, 그 정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자신만을 위한 욕심으로만 보여서.
"자네에게 정치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은 않겠네. 나도 그 유혹을 이겨내지는 못했으니. 대신 굳이 정치를 하려거든 민생을 중심에 두는 곧은 정치를 해야 하네. 오로지 위만 바라보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야. 곧은 정치를 할 수 없으면 미련 없이 초야에 머무르시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예( 禮)라는 것은 이미 잘 알 테고. 정치를 하더라도 예로써 하시게. 예가 없는 정은 아귀다툼에 불과하다네. 시국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시고 대국을 짚어 진퇴를 결정해 주길 바라네. "
위의 글은 송익필이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모든걸 전수했다 생각하는 제자에게 남기는 말이다. 책이 약간 소설같은 느낌이 나기에 위의 말을 정말 그분이 가시는 길에 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위의 글을 읽으면서 송익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이해를 하게 되었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내신 분께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고 있기에.
소설같은 역사서를 읽으면서, 그간 전혀 모르고 있던 한 분의 삶을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보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일들을 보면서 이러고도 조선을 선비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기 때문에 조선을 선비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말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 역사서라고 하면 아무래도 조금 뻑뻑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의 경우 소설과 같은 형태로 쓰여졌기에 읽는데 부담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소설틱함이 이 책의 진정성을 조금 떨어뜨린다고 할까? 물론 사실에 기초해서 쓰여진 것은 맞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