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전치사는 직역하기 보다 우리말로 옮길 때 술어로 바꾸면 적절하다.
국중박 로버트리먼전에 있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유명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영어로 two young girls at the piano다. at을 '~에서'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치는(playing)'이라고 용언 어간에 관형사형 어미를 붙여주여야 우리말에서 자연스럽다.
같은 영어전치사지만 문맥에 맞게 다르게 바꿀 때도 있다. 쥘 뒤프레의 소 떼가 "있는(with)" 리무쟁의 풍경(Landscape with Cattle at Limousin)이고 폴 시냐크의 주전자를 "그린(with)" 정물(Still Life with Jug)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한 단어에 다층적 뉘앙스가 있고 번역가는 문맥의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적절한 단어 하나를 그물로 잡아 건져낸다.
간단하 글자지만 우리말로 풍성하게 풀어야할 때도 있다.
알베르 마르케의 식민지에 파견된(of) 연대 부사관(Sergeat of the Colonial Regiment)이고 이젤 앞에 선(and) 마네(Manet and His Easel)다.
그리고 같은 유럽어족이지만 영어와 불어의 전치사도 기계적으로 치환되지 않고 각 언어권의 원어민 나름대로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감각이 있다. 언급한 르누아르 작품 불어로는 Jeunes filles au piano로, au는 à+le, 즉 at+the를 부드러운 발음을 위해 축약한 말이다. 그럼 영어의 앳과 불어의 아가 늘 같은가? 그렇지 않다.
분홍색과 검은색 모자를 쓴 소녀는 Jeune fille au chapeau rose et noir로, 불어의 à가 영어에선 in을 바뀌어 in a .. hat이 된다. 안경을 "쓴"도 à lunettes고
영어는 in glasses지만 때에 따라 wearing glasses도 쓴다.
at이나 with을 à가 아니라 전치사 없이 분사형태로 바꾸기도 한다. 르누아르의 landscapes with a woman은 산책하는 여자와 풍경(Paysage et femme jardinant)이다. with a woman이 아니라 walking woman이다.
그러니 같은 유럽어족이라고 영어의 at과 불어의 à가 기계적으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