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 과타리 『카프카』 수업 그린비 수업시리즈 2
성기현 지음 / 그린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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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과타리 수업 재밌게 읽었다.


원서를 오래 읽어 온 저자가 비유를 곁들여 자기 스타일대로 해설해주는 서적은 늘 흥미롭다. 과거에 박제된 고전이 현대적 감각을 입는다. 비유하자면 EDM으로 재해석된 클래식 같은 스타일 변환이다. 이런 책의 효시는 세기말에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이진경 선생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로 기억한다. 지금은 그린비에 판권이 있으나 94년엔 새길출판사에서 나왔다.


깊은 내공을 지닌 철학 원서를 읽고는 싶으나 고전 문체는 너무 딱딱하여 페이지를 쉬이 넘기기 어렵다. 초심자의 열정으로 가득 차 책을 펼쳤다가,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니, 중얼중얼하다가 탁 덮어버린다. 자기 생의 현실적 문제를 진단해 줄 오컴의 레이저를 바라나 옛 글의 생각의 결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읽기 힘든 번역투의 글은 독서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냉동식재료보다 갓 잡은 원물과 채소가 신선하듯, 책도 번역서보다 원서가 좋다. 그러나 동서양 고전을 원서로 읽고자해도 외국어 공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당장 니체나 사르트르를 읽고 싶어도 유럽언어 C1까지 가는데 복습을 제외하고 수업시간만 천 시간이 걸린다. 쇼펜하우어를 읽기 위해 알파벳부터 관련없는 수많은 다이얼로그와 현대문화를 지나쳐야하는 머나먼 여정이다. 설령 한 언어는 마스터했어도 다른 언어까지 원서를 읽을 수 있는 깊이를 지니기는 어렵다. 열개 국어를 하더라도 또 다시 모르는 마이너한 외국어가 나온다. 러시아어와 튀르키예어 티벳어 등등. 한 정상에 오르는 것도 만만찮은데 어떻게 다 오를 수 있을까. 전문가의 존재가 귀한 이유다. 나 대신 올라가 준다. 그런 전문가가 베푼 좋은 해설서를 통해 몰랐던 귀한 학자과 글을 알 수 있다. 살면서 보물 같은 전문가들을 수없이 만나고 그들에게 사숙해 나의 배우는 지경을 넓혀간다.


해설서는 밸런스가 중요하다. 성공학을 버무린 대중서나 뇌피셜을 곁들이 교양서가 아니라 원전을 바탕으로 하는 해설서여야한다. 그리고 해당분야의 원서를 오랫동안 제대로 읽은 이가 써야 한다. 그래야 깊이와 너비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최근 들뢰즈 과타리 번역본이 없는 마당에 원서에서 일부 발췌한 저자의 번역은 적절하고 흥미로웠다.


저자의 마지막 일갈은 이렇다. "덧붙여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철학의 개념과 논리는 암기해 두었다가 지적 허영을 부릴 때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과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진단하고 예측하며 거기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것이죠" p296


이는 논문을 읽다가 동서양 학자들의 위대함에 탄복한 나머지 그간 자신의 무지를 탓하는 방어기제가 나와, 개념을 소유하고 개념을 잘못 쓰는 타인을 재단하는 감찰자들에게 주는 조언이자 권고로도 읽힌다. 우리는 타인의 모름에 조금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내 자신의 탐독에 더 집중해도 모자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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