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작한 예술의 전당 페르난도 보테로전에 다녀왔다.

평면성에서 입체성으로 이행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콰트로첸토)이라는 고전 회화사에서 착안해 양감(volume)과 관능미(sensuality)를 부각시킨 콜롬비아 미술가다. 토실한 하체비만형 스타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있다.

덕수궁에서 2009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2015년에 작품이 내한했었고 작가 사후(2023년) 올해 전시 열렸으니 꽤나 조명을 받고 있다 할 수 있다. 2015년 이후 작품은 수채화인 마티스를 따라 그린 오벨리스크(2022)와 술마시는 남녀(2019)가 있고 유화로도 기존 모티프인 축제와 투우수와 기마투우사(2019)와 목욕하는 사람(2018)가 있었다.

오전에 갔지만 널널했다. 좋게 보면 스타일이 일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사실 자기복제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뒷쪽 섹션으로 갈수록 관객의 걸음이 빨라지고 더불어 회전율이 빨라져 전시는 북적이지 않는 편이다. 카라바조전이라든지 최근 서양미술사전공자인양정무 교수마저도 무한반복 인상파전 그만두라 일갈했지만 이미 정해진 스케쥴을 지금 바꿀 수 없어 우후죽순 진행되는 서로 다른 인상파 전시 다섯 군데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세밀하게 감상해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탓에 병목현상이 두드러지는 것과 대비된다.

전시는 벨라스케스 등 미술사의 유명 작품을 어떻게 양식변환했는지 톺아보는 일고여덟 작품으로 포문을 열고 그의 지역성과 뿌리를 탐색하는 라틴아메리카 섹션을 지나 기법이 정물화에서 수채화로 전환되는 기법체인지를 살펴본 후 세부 주제로 넘어간다.

변주 지역 수채화 조각 종교 정물 투우 서커스의 순서다. 관객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직관적인 전시다. 비율의 변주play of proportions이자 불가능의 시학poetry of improbable인 기법의 시각적 특징은 살집을 늘리기 위해 세로대비 가로를 확대하고 주름과 접힌 살집의 곡선을 부각시킨다. 비율 변화의 디폴트값 고정전으로 눈 코 입 등을 작게 만들어 이목구비 대비 늘어난 차이가실감된다. 한 번 이 스타일을 확립한 후 50년간 꾸준히 그려왔다. 호주 감독 에덤 엘리어트의 클레이 애니 달팽이의 회고록(2024)에선 뚱뚱한 여성에게 페티시가 있는 인물을 그리는데 보테로도 그러한가?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뚱뚱한 알몸의 여성 그림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의 대답은 볼륨 입체성 감각성을 돋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렇게 대사질환자처럼 그릴 수 있지만 동물이나 무생물도 가능할까? 입체조각에 보년 새나 고양이나 말에서도 구현했다. 회화에선 낙타 사자 소도 보인다. 눈 코 입이 없는 바나나 오렌지 수박에서도 실현했다. 얼핏 불가능한 대상에서도 같은 양식을 적용했다는 점이 흥미롭고 창의적이며 선구자로서 존경받을 도전성이라 생각한다.

다만 세 가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면 안되었을 파트다. 혹은 그 결여 혹은 양식복제의 맹점, 자기복제하는 작가가 어느 순간 멈춰야하는 부분 드러내기 위해 반례로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개중둘은 바로 자전거 드로잉과 서커스의 공연 원숭이다. 관객의 흥미와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고 어디가서 뭘 먹을까가 뇌리에 가득 찬 전시장 마지막에 있어 자세히 보는 사람은 드물지 모른다. 보테로는 심지어 만돌린이나 기타(작품은 전시장에 없고 영상에서 순간 지나간다)도 같은 방식으로 뚱뚱한 볼륨감을 만들 정도인데 자전거 휠과 원숭이의 모습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원숭이는 다시 그린 흔적마저 있었는데 수정하다 실패한 것 같다.

이를 통해 그는 해부학적 이해도가 높지 않고 살에는 강하지만 뼈에는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전거 휠과 안장 같은 구조체를 그리고 원숭이의 섬세하고 조그마한 뼈의 움직임에는 장점이 부각되지 않았다. 나아가 그의 표현법과 삶이 합치된다고 묘사 대상과 제작 유통 방식이 닮았다고도 생각을 확장해볼 수 있다. 같은 방식의 작품만 평생 창작한다는 것과 탄수화물과 당만 섭취한 고도비만 대사질환자로서 근육이 아닌 살집만 늘리는 방식은 비슷한 점이 있다. 실제 사람이잘못되었다는 게 아니고 다양한 경로로, 특히 유전으로도 대사질환자가 되긴하나 이는 구체적 사람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방식에 대한 구조적 분별이다. 살을 늘리는 것과 양산하는 방식이 흡사하다

마지막 세 번째 불가능했던 지점은 앞 섹션에 있는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거울 반사면이다. 반사된 뒷모습은 과장된 비율확대의 고정점인 눈코입이 없고 어안렌즈형식이라 이미 비율이 왜곡되어있어 추가 왜곡이 어려웠나보다. - × - = +이듯이 왜곡에 왜곡은 정상으로 귀결된다. 이 세 작품은 글에 대한 시각보조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걸어가면서 쓰고있어서 인용은 추후에

이런 과장된 스타일은 풍자적인 면이 있고 풍자와 위트는 기득권이나 시대정신을 꼬집을 때 잘 수용된다. 안정적 희극은 없고 늘 당대 권력을 비틀 때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보테로는 50년대는 라틴아메리카의 성직자 주교를 80년대는 학살을 테마로 삼았다. 지금 그렸다면 어떤 금발의 백인 노년남성 두 명을 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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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인 - 세상 밖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
라미 카민스키 지음, 최지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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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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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르누아르> 어제 개봉했다. 고령화 사회문제를 다룬 <플랜75>의 하야카와 치에의 두 번째 작품이다. 새벽 여명처럼 느리고 차분하고 절제된 작품이다.


카와이 유미는 최근 집중적으로 40여편 활동해 다양한 작품 여기저기에서 보이는데 연기의 저점이 높다.

작년에 보았던 소마이 신지의 <이사>와 단발머리 아역배우 얼굴형태가 언뜻 비슷해보인다. 내용적으로도. 또, 80년대 후반을 시대배경으로 삼기도 하고, 타바타 토모코(1993)와 스즈키 유이(2025)는 키네마준보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최면물에 버무린 성장드라마로 주인공은 삶에 필연적으로 곁들여지는 고통, 이별과 슬픔을 배워나간다. 이런 커밍오브에이지물은 아직 세상물정을 다 모르는 아이의 시선을 택해 격한 감정을 파스텔 동화풍으로 조절한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최근 국중박, 세종, 도쿄에서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 3점 복본을 볼 수 있었다. 그 소녀도 언젠가 어른이 되어 <애프터썬>처럼 회고하겠지



청주 시립인가 천안 시립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옛날에 보았던 어떤 전시에서 작가가 자기 어렸을 때 자주 다녔던 백화점? 놀이공원? 에 대한 정보를 최면술사를 통해 되살려보려했던 영상이 있었다. 구체적인 정보가 기억이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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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에 하반기에 올라 올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의 레퍼런스가 데칼로그라고 해서 다 보았다 십계명 각 열 편 에피소드 리뷰는 나중에


한자서체만큼은 아니지만 알파벳도 나름 필기체가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건 알고 있는데 폴란드인이 이런지 이 사람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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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용아맥으로 보았다.

4월 내내 용아맥 좋은 스팟은 풀예약이다. 그만큼 아이맥스 화면으로 재관람은 의미가 있다. 특히 거대 화면에 표현된 적막한 검은 우주의 광활함이 몰입감이 높다. 타우메바 채취장면의 보라색 장면도 더 영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화면이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힌 것은 아닌데 예컨대 아스트로파지 1ng을 1mg으로 계량실수로 인한 폭발장면은 일반 시네마스코비 2.35:1이다.

외계생명체는 재료공학에 강하고 인간은 분자생물학에 강하므로 협업해 임무를 수행한다는 설정은 다시금 훌륭하다 생각했다. 단백질과 제노나이트, 자기 신체의 구성원리를 탐구하다가 학문이 발전했을 것이다. 에리디안은 구조와 물성과 설계에 강점이 있고 호모 사피엔스는 박테리아 채취 분석 및 배양에 재능이 있으며 서로 우주선 디자인에서도 이 특성이 드러난다.

페르로바선이라는 천문생물학의 창의적 통섭에서 착안한 원작SF소설과 영화의 시청각적 특징을 비교하면 글자와 스크린에서 상호 가감한 것이무엇인지 드러난다. 이를테면 그레이스가 농구하며 드리블할 때 로키가 손가락을 꿈틀꿈틀 찔끔찔끔대며 반응해준다. 교감을 나타내는 좋은 연출이다. 동시에 오디오로는 계획을 설명하니 한 장면에 과학 정보(음성)와 다양한 여가장면(시각)을 넣어 감각경험을 풍성하게 한다. 그이전에 리뷰를 간단히 쓴 바 있고 이처럼 재차 관람했을 때 생각한 점을 더해본다.

혼자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사회적 소통능력이 부족한 그레이스와 로키의 첫 만남은 중간에 투명한 벽이 있고 그레이스는 이런 배리어를 오히려 편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후 로키는 우주복처럼 스스로 벽체를 둘러싸고 그레이스네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런 자기세계가 확실한 INTP 너드형 캐릭터는 계속 사적영역을 존중하며 시간을 마냥 기다려줄 수 없고 ENFP가 으레 그러듯이 그냥 무작정 돌진해서 집에 쳐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울의 성에서도 소피가 그냥 성에 발을 딛고 방에 들어간다. 엔딩에서 로키네 우주선 안으로 결정체 모양 우주복을 입고들어가지만 에리드 행성에서 원주민인 에리디언이 그레이스를 위해 환경을 만들어주고 우주복을 쓰고 만난다. 자기에게 편한 방식을 버리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환대를 알 수 있다. 내 옆의 인간은 적대적이고 이기적이어 성악설에 가까운데 저 멀리 외계생명체가 순수해 성선설에 근접하다. 그레이스의 농담에서 슬쩍슬쩍 드러나는 자기비하와 실패한 소외자로서의 비뚤어진 커뮤니케이션이 말하는 강아지같은 로키앞에서 무장해체된다. 우주선 안에 들어 온 로키에게 선이 필요하다고 바운더리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로키는 무해한 T들처럼 그 바운더리를 물성의 바운더리로 여기는듯이 뭐가 문제냐고 댕청미를 뽐낸다. 억지로 미션에 합류해 엉망진창인 자기 내면과 옷이 널부러진 우주선 방안의 모습이 합치하는데 이제 그 자리를 로키가 영원히 차지한다. 처음엔 거부했으나 로키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이런 T적 성향을 메마르고 건조하게 보이는 인물은 스트랕인데 동독 청소년 합창단이라는 설정을 노래 전 대화에서드러낸다. 처음엔 기관과 프로젝트를 움직이고 구현하는 방식이 너무 현실에 맞지 않고 부자연스럽다 느꼈다. 아무리 개그적 요소라지만 실험실을 뚝딱 마련하고 민간인 이동에 제트기를 동원한다니.그러나 다시 보니 이렇게 로지스틱스를 쑹텅쑹텅 해야지 너드 주인공의 심리와도 일부 어우러지고 혼자 우주선을 운영하는 주인공과도 맞닿는다고 생각했다. 너무 진지한 태도를 지닌 수만 명의 프로젝트라고 설정하면 안 그래도 어깨 위에 짐이 많고 혼자 고민이 많은 그레이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
간단한 말 한 마디로 일을 진행시키는 부드러운 카스테라버전인 사회주의자가 하세요 해야지 되었다. 하지만 공감하는 인물이다 외톨이 그레이스와 대화 후 그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불러주었기 때문. 잘 부르느냐는 의미없고 그 마음과 미래까지 상징한다 승에 해당함

아 그리고 에리디언행성에 인간영역 만들어주는 아이디어는 그레이스가 아스트로파지 잡으려고 박스안에 박스 넣는 것과 동일한 시각적 장치다. 정거장 도착해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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