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4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종로구 환기재단 별관에서 환기재단 지원작가 박지하전을 하고 있다. 6월 17일부터 7월 27일까지 약 1달간이다. 별관만 입장하면 3천원.


박지하 작가의 2021년 작품을 보면 왜 환기재단이 지원하는 작가인지 알 수 있다. 기하학적이고 패턴화되지 않은 아이 필체의 반복 스트로크, 삐뚤빼뚤 무질서하면서 방향성 있는 흐름과 유동, 서정적 추상 사이에서 느껴지는 정동과 명상성이 환기의 작품과 닮았다. 


전시 설명에는 "박지하의 작업은 김환기 화백이 일생을 두고 탐색한 예술의 본질 - 사물 너머의 울림과 시적 직관 - 에 대한 동시대적 응답이자 확장된 해석이라고 써있다."

박지하, Untitled Landscape09, graphite and oil on canvas, 101x152cm, 2021

박지하, Untitled Landscape11, graphite and oil on canvas, 91x117cm, 2021



1973년에 타계해 커뮤니케이션 발달, 냉전종식, 디지털시대 전환 등을 알지 못한 환기 작업의 2020년대 버전이라는 의미다. 여전히 김환기의 생각이 유효할까? 에 대해서 그와 비슷한 생각의 결을 품고 살아가는 작가들이 각자 작품으로 답할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지난 전시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젊은 작가 지원) 

김호남이 해저광케이블의 에코체임버로 송신과 수신의 미세한 버퍼링에 주목한 백남준의 화두를 LED 디스플레이와 사운드 스케이프로 재현한 것처럼.


요즘 조각은 돌, 나무, 철, 청동의 조각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형설치예술로 진화했다. 캔버스에 오브제를 부착해 돌출시키거나 프레임을 조각처럼 깎는 등의 활용은 조형예술의 특징을 띠기도 하고, 아예 플라스틱 같은 다른 물성이나 디지털 활용작품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20년대에는 작년 MMCA 권하윤처럼 VR을 활용했고, 30년대에는 홀로그램도 등장할 기세다.

박지하, manipulable dreaming machine(feat. 뒤샹의 조각), 혼합재료, 33x41cm, 2021.


김환기의 본질적 생각이 조형예술로 구현되면 어떨까? 박지하의 2021년 작품(manipulable dreaming machine. feat. 뒤샹의 조각) 그런 느낌이 사뭇 든다. 물체의 배치나 원형성, 빛바랜 유리 등의 구도에서 그렇다. 


스마트글래스는 차세대 기술 중 가장 상용화되기 쉽고 범용성이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무겁고 못생긴 기기가 아니라 패션을 입어 젠틀몬스터가 런칭하면 크게 퍼질 것 같다. 그전에 자율주행 자동차의 앞면 유리에는 깔리기 시작할 것이다. 네비게이션을 화면으로 보고, 주변 가게의 가격과 맛집 정보가 바로 화면 위로 펼쳐질 것이다. 


그러한 스마트 디스플레이 시대의 김환기 작품은 어떨까? 어떤 위대한 예술가의 생각을 새롭게 갱신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전통의 위대한 계승자이다. 유럽 인상주의 화풍을 똑같이 그리는 인상주의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홍보된 이자벨 드 가네도 있고, 인상주의 풍경화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그림을 특히 크리스마스 눈풍경을 중심으로 다른 필치로 그리는 미셸 들라크루아(프랑스인이라는 것만 같다)도 있으나, 그런 방식이 아니라 기득권에 대한 반항적 시대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뒤샹이나 쿤스도 인상주의 정신의 계승자는 아닐지. 넓은 의미에서 프랑스 혁명정신의 계승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통의 양식과 방법을 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의식없이 구태의연하게 따라하지 않고 발전시키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흑인 혼혈 국악 작곡가 이하느리나 프랑스어로 판소리를 부르는 카메론출신 로르 마포나 국악창법을 쿨닝, 흐미 등 세계민속악의 한 지위로 올려놓은 송소희처럼 말이다.


박지하, Untitled Landscape10, graphite and oil on canvas, 73x53cm, 2021



김환기 작품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환기의 정신을 현시대의 어법으로 번역하기, 관리 힘든 브라운관 작품을 보여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백남준의 아이디어를 오늘날 기술로 구현하기. 그렇게 과거를 현대에 복원하기.


2035년 환기재단 지원작가가 누가될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화역 아르코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드리프팅 스테이션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장은만 작가의 달팽이 파라다이스 영상작품이다.


장은만, 〈달팽이 파라다이스 3부작:항해 시작 혹은 마지막 장〉, 비디오 14:35, 2021


영상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한밤의 열대에서 대왕달팽이를 잡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폴리네시아계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대만 원주민 청년이 옷 뜨개질, 채소 다듬기, 장작 떼기 같은 가사노동을 하는 가운데 노동요로서 살짝 살짝 중국어가 섞인 원주민어로 노래를 부른다. 중국어는 지명과 고유명사에서 드러난다. 알파벳으로 음차를 했는데 e가 '으'로 들린다. 알파벳 중에서 e가 가장 음성학적으로 문제다. 아, 이, 에이, 으 등 전세계인이 e하나에 수많은 음을 결합시키고 있다. 영국법처럼 체계가 없는 케이스를 관습에 의거해 분류할 수는 있으나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출퇴근길처럼 통제가 안될 정도로 그 가짓수가 다양하다.


노래는 동아프리카의 대왕달팽이가 마다가스카르,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폴을 거쳐 1933년 일본 군인들에 의해 당시 식민지였던 대만에 10개가 도착했다는 내러티브를 구체적으로 읊는다.


식용목적으로 들어온 대왕달팽이가 천적이 없는 열대환경에서, 호주의 토끼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백랑payrang이라고 부르는 한족이 가난했을 때는 원주민처럼 달팽이를 주워다가 요리해 먹었지만 부자가 되니 점액이 꺼려져서 안 먹게 되었다고 말하는 얼개의 내용이 이어진다. 원주민의 관점에서 노래한 역사를 채록한 기억의 정치학이다. 일본제국이라는 외삽된 소수의 지배층이나 전후 한족이라는 또 다른 내생 지배엘리트가 만든 단선적 서사가 아니다.


작가는 달팽이를 주제로 생태, 식민-피식민의 위계, 원주민 소수자 기억을 구술전통으로 복원한다. 달팽이의 로지스틱스를 통해 아프리카와 대만 원주민 문화를 상상의 차원에서 결합한다. 리듬감 있는 노래에 흔들리는 노동하는 몸에 가사는 민속적, 인류학적으로 풍부해 특이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리움 피에르 위그전이 종료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전시 오프닝에만 주목하고 클로징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전시 시작하고 몇 주, 길면 한두달 바이럴되다가

전시 끌물에는 거의 사람들이 없다.

정말 마지막에 밀리고 밀린 숙제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긴 있지만.

모네의 수련처럼 왠만큼 유명하지 않고서는 저물어가는 태양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드물다.

전시의 쓸쓸한 뒷모습.

2025년 봄을 뒤흔들었던 한 전시가 오늘 끝난다.

새로 시작하는 전시들을 쳐내기에도 바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06418.html



다시 ‘씨너스’로 돌아가보자. ‘유럽의 흑인’이었던 아일랜드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백인’이 된다. 미국 사회의 백인 우월주의에 동화되어 흑인들 위에 군림했고, 일부는 케이케이케이(KKK)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처럼 ‘백인성’이란 단순한 피부색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획득되는 정체성이다. ‘씨너스’는 이런 역사를 뱀파이어가 된 아일랜드인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다, 주크 조인트 앞에 찾아온 이들은 그냥 아일랜드인이 아니라 뱀파이어들이었다.




그러나 동화란 결국 흑인의 문화를 탈취하고 영혼을 빼앗아 무력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영화가 또 한편 있다. 21세기 블랙 웨이브 대표작인 조던 필의 ‘겟 아웃’(2017)이다. 이 작품에서 백인들은 흑인 신체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탐하면서도 그들의 주체성이나 경험, 목소리를 철저히 지워버리려고 한다.



모두를 뱀파이어로 만들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과 뱀파이어가 되지 않으려는 흑인들,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 한판 전쟁이 펼쳐진다. 그리고 아프리카계의 블루스와 아일랜드계의 포크가 스크린 위에서 자웅을 겨루게 된다. 이 영화의 장르는 호러가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영화는 질문한다. “사악하다”는 것은 누구의 언어인가? ‘씨너스’는 이 단어를 다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노예제로 인해 삶을 짓밟힌 흑인을 위로했던 건 음악과 종교였다. 음악이 사악한 것일 수 있다면, 그건 그 노래가 노예들을 위로하고, 그들 자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탱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주크 조인트란 백인들에겐 지극히 사악한 공간, 두려운 공간이 되었다.



쿠글러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22)에서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 선주민의 이야기를 교차시켰다. ‘씨너스’에 이르러서는 그 위에 아일랜드계와 중국계 이민자들의 역사를 덧붙인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했으되, 주류 역사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들의 사연을 초자연적 스펙터클과 함께 되살려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4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