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촉오, 스타크래프트의 테란-프로토스-저그 삼각관계처럼 국제정치학에선 세 핵심 패러다임이 있다.
힘과 국익을 중심으로 냉혹한 무정부 상태의 국제 질서를 바라보는 현실주의(Realism)와
제도와 협력을 통해 국가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자유주의(Liberalism)와
문화, 정체성, 상호작용에 의해 국제정치의 규칙과 위협이 사회적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그것이다.
참고로 이때, 문학, 미학, 철학, 미술사학에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리얼리즘/사실주의와
법경제학에서 말하는 책의 이론이 아닌 사회적 실제를 말하는 사실주의와
철학에서 인식과 무관하게 객관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는 실재론과
미디어학, 아트앤테크놀로지와 공학에서 말하는 시청각적으로 핍진하게 구현하는 리얼리즘과
정치외교학에서 말하는 힘밖에 없는 냉혹한 국제정치판을 의미하는 현실주의는 모두 같은 단어를 다른 학술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그런데 이제 군사력만 중요시 여겨지는 오늘날의 국제정치에서 이런 삼각관계 외교론의 패러다임이 이제 틀렸다고 외교정책지(포린 폴리시)의 칼럼은 말한다. 이론과 현실이 따로논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주의가 현실설명력이 없으니 학자들은 현실주의 이론을 보완하고 업데이트해야하며, 그만 다음 세대 학생들을 가스라이팅하라고 강하게 외친다.
왜 현실주의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가? 워싱턴 정계가 이론의 정반대로 갔기 때문이다. 칼럼을 쓴 이는 이렇게 일갈한다.
현실주의 이론에 따르면 핵무기는 방어용으로 최소한의 제2격 핵억지력만 적당히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경쟁국을 압도하는 최강의 권력을 쥐고 핵 우위를 가지려고 질주했다.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테러리즘을 막고 핵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했으나, 미국 정부는 비용이 얼마가 들든 그 극단적인 조치들을 그대로 강행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전쟁까지 폭주하며 돈과 피를 뿌리고 있는데 가성비와 효율성을 따진 이론의 소구력은 어디로 간 것인가
대만,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같은 취약한 최전선 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현실주의 이론은 진단했지만 미국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하며 이 국가들에게 천문학적 비용을 지원해 지정학적 화약고의 난제에 얽혔다.
저자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관료 등 정책 입안자들은 현실주의 학자들이, 비록 현실정책에는 쓸모없을지라도, 학계 내에서만큼은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한다.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론이지만 대학교수들이니 학문적으로는 대단한 걸 연구하고 있겠지, 라며 좋게 생각해준다.
하지만 현실은 폭망이다. 현실주의자들이 학문적 성과도 못 내고, 현실정치인들에게 삿대질만 하며 실제정책입안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현실주의자들은 학문적 깊이와 정책적 유용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잡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둘 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비행기가 왜 날아다니는지 분노하며 우기는 물리학자들과 같다(physicists angrily insisting that airplanes should not fly)
이 마지막 블랙유머가 정말 재밌다. 현실주의 외교론을 주장하는 학자의 무능함과 아집을 비행기를 부정하는 물리학자에 빗대어 비꼬았다. 비행기가 나는 원리를 설명해야 하는 물리학자가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현실을 보고 자기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이론이 맞고, 저 비행기가 잘못 날고 있는 거야! 비행기는 날면 안 돼!, 라며 화를 내는 꼴과 같다.
다시 말해, 국제정치학자라면 실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자기들의 낡은 이론에 현실 세계가 맞춰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며 징징대고 있다는 뜻이다.
https://foreignpolicy.com/2026/08/19/realism-international-relations-power-america-cold-war-hegem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