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대 아시아학과 한국.디지털인문학 담당교수 조희경이 편집한 한국문학 학술서는 750쪽에 달하는 방대한 편집본으로 전세계 방방곡곡의 한국학자들이 집필한 37편의 글꼭지가 실려있다. 한국학 연구자의 필독서다


하버드 동아시아문명학과 전근대 한국문학 담당교수 박시내(구비문학, 야담연구)의 글이 흥미롭다


국가출판(관판)=인쇄, 사적출파=필사본이라는 이분법에서 국가권력이 사적출판을 억누른다는 주장을 비판하며 사적출판에서도 목판본(판각)도 있었으며 state vs private의 대립이 아니라 국가주도출판이 사적출판의 모델이자 활성화의 원천으로서 한국도서사의 결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기존 논의가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에 대한 연구를 동아시아 맥락에 맹목적으로 소환하는 경향에 대해 각기 다른 역사 속의 도서문화를 톺아보는 대신 유럽경험을 보편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선행연구조차도 유럽인쇄혁명 이전의 필사본전통을 간과하고 발명 후 4세기 동안 필사본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지적한다


https://www.academia.edu/59909655/_Book_Chapter_Manuscript_Not_Print_in_the_Book_World_of_Chos%C5%8Fn_Korea_1392_1910_2022_?email_work_card=title



The trouble here is that the focus on the state’s dominant role in publishing is misleading, as it was

not a situation unique to Korea but a general trait of the book world of East Asia. “A central issue in

the history of the book in East Asia . . . is the relation between books and the state, or between books

and political power,” because the preservation of knowledge and the canon pertained to governance

(Kornicki 2005:11) while the trajectory of the development of printing in Europe was primarily a

commercial afair (McDermott 2015:105). Moreover, while Kang (2014) envisions an opposition

between state and private publishing, and the dominance of state publishing as a suppressive force

on private publishing, Lucille Chia (2020) reminds us that ofcial editions provided commercial and

private publishers with “exemplars of new or previously rare books.”


Still, the more serious issue here is the invoking of Gutenberg’s printing to understand the signifcance of the Korean experience. Doing so perpetuates a “tendency to universalize the European

experience” at the expense of viewing the trajectory of diferent book cultures in history in their

own terms (Blair 2011:359). Importantly, the view of Gutenberg’s invention as an “agent of change,”

frst put forward by Elizabeth Eisenstein (1979), has been rethought in a number of ways, especially

due to its tendency to exaggerate print’s capacity to impose textual fxity, neglect scribal practices as

antecedents of printing, and underemphasize the continued use of manuscripts for at least “the frst

four centuries” after the arrival of Gutenberg’s printing press in Europe (Chartier 2007). Such comparative insights makes clear the need to refne generalizations about the Chosŏn state’s dominant

role in printing the history of the book in Korea as a huge case of a lack and fail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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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르르 쏟아진 일정을 뜻한 바의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다 쳐내기는 쉽지 않다.


일상이 바쁘면 글을 쓸 여유가 없고

글을 쓸 여유가 있다면 그 하루는 보잘 것 없는 심심한 하루다

심심하지만 생산성있는


그러나 바삐 아이디어를 채집하러 다녀야 내 안에 축적되는 자산이 생기니

발효와 여과는 집에 돌아 온 이후의 것


파울료 코엘료의 최대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다 감상하러 걸어다니는 동안

들고다니는 찻숟가락 위 기름 두 방울을 떨어뜨리지 않게

균형을 맞추기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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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참 쉬운 AI 인공 지능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참 쉬운
레이첼 퍼스 지음, 힐튼 바르부르턴 그림, 신인수 옮김, 제이비 볼 디자인 / 어스본코리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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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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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나온 캐롤라인 부트 캠브릿지대 고전학과 교수의 책이다. 기원전부터 시작하는 그리스로마→15-16c르네상스→18-19c신고전주의→박물관과 오늘날에 시사점으로 이어지는 챕터다

.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읽었는데

챕터9의 이 부분은 인상깊어 함께 공유하고자

채선생에게 번역해달라해서 복붙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왜곡(warping)”이 감탄, 수집, 발굴, 연구와 함께 수반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특정 유물에 집착하고 다른 것들―혹은 사회, 사회의 일부―을 축소하거나 아예 배제하는 과정 속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알렉산드리아와 아탈리드 왕조의 페르가몬에서 르네상스 이탈리아,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문화”로 전환되었고, 그리스와 로마의 이미지를 다듬고, 계승하고, 전해주었다. 이것은 분열적이기도 하고, 분명히 과장되었지만동시에 우연히도 유익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양심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유산”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원한다면 그리스와 로마를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예술,” “유물,” 혹은 우리가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그것들을 단지 현재의 그리스 땅에서 발견된 물건으로 정의하는 것은 부분적인 이야기만 전할 뿐이며 여전히 거짓된 동질성을 만들어낸다. 공화정 로마의 시각에서 보면, 지중해 전역에서 생산된 방대한 물질문화―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처럼 가까운 곳에서조차―는 “그리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올림피아나 델포이 현장에서는 아테네인 봉헌물은 아테네적으로, 낙시아인 봉헌물은 낙시아적으로 보였다. 후자는 심지어 낙시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스적”이라는 말은 로마에서, 비잔틴이나 근세 유럽에서, 그리고 다시 그리스 독립 이후에 각각 다른 의미를 가졌다. 


로마 미술에 관한 책에서 “그리스적” 내용을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고전주의”나 “제2소피스트기의 고전주의”로 한정하는 것 역시 단순화이다.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발견된 모작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복제품은 단순히 “특유의 고대풍”이나 “그리스 문화의 부흥”의 상징이 아니라, 로마의 웅변과 문학 속에 뿌리내린 것이었다. 그것들은 원재료이자 완성품이었으며, 로마적이면서 동시에 그리스적이었고, “제국적” 이미지와 “해방 노예 예술”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과정은 후기 고대 예술을 형성했고, 끊임없는 전시와 점점 더 노골적인 투자 속에서 서구의 조각과 회화, 심지어 중국의 그것과도 연결되었다. 만약 그리스 조각과 회화를 “예술”이라 한다면, 로마에서 그 예술은 인기와 위신을 더해갔고, 로마의 제단, 기둥, 초상화, 보석, 주화 같은 생산물을 그 궤도 안으로 끌어들였다. 


“로마인들이 문학 속에서 예술을 논할 때, 그들은 매우 자주 그랬는데, ‘예술’은 곧 그리스 예술을 의미했다.” 오늘날 오직 그리스 예술만을 수집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그들은 키츠적인 위상에 이끌린다.


수집가들은 적이 아니다. 예술이 적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개인 수집가들과 후원, 그리고 본문 전체에서 드러나는 수집 활동은, 그리스 성소에서 로마 공화정 사원으로, 로마에서 파리로, 아테네·바세·보드룸에서 런던으로 조각이 옮겨졌던 더 넓은 차원의 전유, 거부, 반응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이 조각을 복원하고 스케치하면서 자신의 창작의 기초로 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 이들은 모형에 충실했고, 또 어떤 이들은 너무도 정교해 구매자를 속이고 진품으로 통과되기도 했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속성을 덧붙여 고대 대리석을 헤라클레스나 가니메데로 변모시키는 것과, 약탈된 유물을 두드려 부수거나 잘라서 세관의 눈을 피하고 대서양을 건너 보내는 것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차이가 없다. 그것들을 스티로폼, 혹은 유리 구체나 마오 수트로 재현하는 것―다브셔, 제프 쿤스, 쉬지앙궈 같은 이들이 해온 것―은 비교하자면 오히려 경건한 행위이다.


그리스와 로마 유물을 향한 감탄과 수집은 언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노골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으며, 그러한 논쟁들은 형성적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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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S/F시즌이 되면 미술계는 새 전시, 키아프, 프리즈로 북적이고 F&B는 헤이즐넛, 밤, 햅쌀, 말차 등의 다크 브라운톤의 차분하고 단정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돋우며, 영화계는 베니스와 부국제로 들썩인다. (ㅂ으로 두음이 같지만 너무 먼 거리고 v는 한글에서 기능정지된 유성 순치 마찰음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용언에 디귿과 비읍을 활용했다)

오늘자 더코리아타임즈에서도 펼친 두 면이 문화 소식으로 빼곡할 정도


그렇지만 나는 학창시절부터 늘 이 즈음 새학기 때 공간을 감싸는 요란한 소동에 발맞추기가 힘들었다. 이맘 때 약간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도태되어 트렌드에 동기화가 잘 안된다. 유금을 잘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남들이 바깥으로 다닐 때 내면에 침잠해 공부하는 날이 더 많았다. 옛날에는 선선한 천고마비의 계절이어서, 기후위기의 폭격을 맞은 지금은 연장된 폭염에 피신하느라. 두꺼운 양서가 잘 읽힌다. 일본 2007년 드라마 화려한 일족 10화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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