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보았다.
무릎 뒤 오금을 구부려 권총 꽃아 재장전하는 창의적인 총기 액션 두 쇼트와 조도 높은 백색등의 유리박스를 방어물로 활용하고 바퀴 경첩을 쏘아 전진을 막는 지형지물 액션,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눈 쌓인 광장 회전 드리프트 카체이스, 입항 차체이스 카메라 패닝, 이런 액션과 차체이스는 훌륭하다.
한편 빚다 말은 캐릭터 디자인, 절뚝거리는 스토리, 설득력 없는 전개와 엉성한 각본은 아쉽다. 아무리 킬링영화로 생각하더라도 인물의 행동과 발언이 합리적이지 않아 출중한 액션으로 감동할 뻔한 마음이 사그라든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모두 호불호가 심하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나, 호랑이와 노루 CG완성도가 낮아 화면에서 튀어보이고 과하게 발랄한 엄흥도와 서글픈 단종의 연기톤이 극단을 오간다.
넘버원도 연기가 좋은데 신파의 재탕이라 차별점이 없다.
폭풍의 언덕은 채털리부인식으로 성과 광기에 초점을 맞추어 최대치로 각색한 현대버전이나 원작 파괴가 심하다.
휴민트는 액션과 카체이스만 좋다.
찹찹찹 세 합을 주고 맞고 때리는 쇼트를 편집점을 짧게 삽입해 액션의 흥이 좋다. 박정민의 후진 장면도 인상적이고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달리는 장면은 모두 좋다.
베를린의 스토리가 이어져서 공화국 영웅 표종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초반부도 좋았다. 킬복순-사마귀 같은 하위 스핀오프나 존윅처럼 시리즈물이 아니라 대등하게 연결된 독립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어쩔수가없다>에서도 보인, 옛 영화감독들이 사용하는 디졸브 화면전환이 17번 정도 보였다.
허나 스토리가 산만해 현행 2시간에서 20분 정도 줄였어도 좋았을 것 같다.
어디서 멋을 부리고 싶었고 어떤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는지 추측된다.
인신매매현장에 북조선 공작원이 아니라 조인성이 먼저 진입하고 박정민이 나중에 진입해 일시적 동맹을 맺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또한 결말에 보위성-총영사-국정원 셋이 팡팡팡 한 방에 쓰러지게 해 세르지오 리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놈놈놈과 김지운의 만주 웨스턴 오마주 놈놈놈의 장면을 비슷하게 오마주하고 싶었을 것 같다.
베를린이 느와르물로서 더 완성도 있었다. 휴민트는 아쉽다.
느와르 작중 배경은 남성이 많은 공간을 하는데 남초 직업은 시대마다 다르다. 서부개척시대에는 보안관과 카우보이다. 지방까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해 사적조직이 범람했던 시대에는 조폭과 마피아다. 그리고 이들이 밀수거래하는 항만과 하역노동자는 주된 배경이고 가끔 특이하게 버스 운수회사와 그 지하밀실도 등장한다. 조폭 잡는 검사와 경찰도, 잡아 가두는 교도소 죄수들도 남초사회다. 산업시대의 건설붐 때는 짓다만 건설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Y2K 세기말엔 폭주족이나 양아치인데 이젠 잘 없다. 요즘엔 남성이 초식화되어 시대극 속 국정원, 5공의 중정에서 찾아보고, 댓글부대, 더테러라이브처럼 디지털 해커가 느와르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 훗날엔 배달라이더가 되리라
그래서 휴민트는 디플 <메이드인코리아>처럼 너무 70년대 시대극으로 가지 않고 <7급공무원>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코미디를 섞지 않으며 총기 액션이 비중이 큰 고전적이면서 당대적인 느와르를 만들려고 했다. 그럼 결국 총기 소유에 정보전이 들어가면 검찰경찰의 마약단속이거나 북한과 첩보전을 하는 국정원이 등장 할 수 밖에 없다. 전자는 <범죄도시>가 확고한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불한당> 이나 <낙원의 밤>처럼 처연한 시네마토그래피를 추구하거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창의적인 복도액션이 들어갈 수도 있다. 혹은 <모가디슈>처럼 국제적으로 넓힐 수 있다. 영화는 안전하게 기존 흥행작 <베를린>의 연장선을 택했다.
원래 남성의 세계인 느와르물에서 여성 캐릭터는 납작해 마녀-창녀-성녀 중 하나로 나타난다. 여성이 평면적이다. 신세경도 살 길을 알아서 찾는 시대의 희생양이자 불쌍한 포로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설령 여성이 킬러로 주연하더라도 젠더적으로 남성 역할이다
이런 한계를 다 감안하는데, 액션을 위해 만든 신에서 인신매매로 잡힌 여성들이 조도 높은 백색등의 방탄박스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갖혀있는데 조금 과한 스펙타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나체는 아니더라도 매매되고 전시된 여성의 몸이 들어있는 방탄 유리박스를 지형지물인양 총을 쏘고 피한다. (러시아 마피아 두목 알렉세이가 뜬금없이 방탄이라고 으시대면서 미리 유리박스가 안 뚫린다고 복선을 주었다) 이에 더해 빛으로 내부가 자세히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그렇지만 뻔히 사람이 들어있는데 박스를 향해 슈팅하고 넘어뜨려 그 안에 있는 여성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이 과한 스펙터클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 액션이 창의적인 것과 별도의 이야기다.
심지어 인신매매 여성들이 구출되어 그 추운 밤 영하에 죽은 조직원들 외투만 빌려입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핍진성이 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총영사는 기관총으로 이 민간인 여자 셋에게 총을 갈겨댄다. 외교관 대표로서 할만한 처신인가는 둘째치고 빌런 캐릭터인 것도 알고 인권이 아무리 없는 것을 감안하더라도도 인신매매 대상이자 상품에 훼손을 가하는 것은 전혀 납득이 안된다.
채선화(신세경)-박건(박정민)이 서로 어느정도 아끼고 사랑하는지 왜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얼핏 알겠으나 그닥 전달은 안된다.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총영사의 행동과 발언들이다.
발단이 동남아의 마약사건과 연루된 인신매매라는 것은 알겠지만 방점이 마약인지 인신매매인지도 산만하다. 조인성이 동남아 정보원을 살리지못한 트라우마로 채선화가 죽기 전에 빨리 가서 살리고자 한다는 동기부여도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동남아 때는 담당자가 그렇게 경거망동하지 말라 쪼아댔는데 러시아에선 아무도 터치하지 않고 고독한 늑대처럼 다닌다. 임대리는 조금 더 빌드업할 수 있는 캐릭터인데 너무 쉽게 소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