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의 일방적 대상이었던 학생은 성장해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이 되어 가르침 받던 자가 시간이 지나 임계점을 넘어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


케이팝 무대를 시청하던 아이는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반복과 모방을 거쳐 연습생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 소비의 일방적인 대상이던 컨슈머는 생산에 개입하는 프로슈머를 거쳐 모디슈머가 된다.


소설을 읽던 독자는 세계관에 적극개입해 팬픽을 쓰는 2차창작자가 된다.


깃허브 등 오픈소스 유저는 버그 리포팅을 하며 시스템에 기여한다.


알게 모르게 클릭, 스크롤, 시청시간은 알고리즘의 학습 데이터가 되니 플랫폼 이용자는 무료 데이터노동자이며


게임을 소비하던 플레이어가 룰과 세계관을 바꾸는 모더다.


회사의 수족이던 직원은 얼굴이 되어 브랜드 채널로 시장에 등장한다. 심지어 충주맨처럼 공무원의 사례도 생겼다.


유튜브를 가만히 보던 시청자는 숏폼 제작자로 거듭나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입봉하거나 AI영화를 만든다.


환자가 의사와 함께 공동연구자가 되는 사례도 있는데 예컨대 데이터가 희소한 희귀질환 커뮤니티에서 환자들은 임상데이터를 조직해 학술용어를 이해하며 스터디에 기여한다.


인간과 도구의 이분법 속에서 객체로 분류되던 로봇도 센서의 힘을 입어 IoT가 되어 이젠 생활환경과 선택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자로 기능한다. 월-E처럼 단순수행자가 아니라 인간-행위자 네트워크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


그러니까 문서작업은 마우스-키보드-워드-컴퓨터-눈과 뇌를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공동 작업과정이다. 앞으로는 스마트 글래스-AI데이터센터-SMR-스타링크저궤도도 함께 사유해야한다.

도시공간에서도 신호등, GPS, 스마트 그리드 등이 되려 인간의 행동을 조율하기까지 한다. 


이런 모든 개별 사례를 톺아보면 수용에서 모방으로 모방에서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순환패턴이 보인다.


주체와 객체의 엄격한 구분은 시간이 지나 흐물흐물 무너져내리니, 초기모델이 충분한 학습과 기술적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교체되는 과정이다.


변화는 예외가 아니라 기본 상태다. 제행무상이다.


보는 이는 무엇을 보다가, 보던 자가 보던 것 안으로 천천히 편입되어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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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알이 생겼어 노란상상 그림책 127
주아나 바라타 지음,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라 그림, 오진영 옮김 / 노란상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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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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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많아서 줄줄이 소시지로 볼 수 있거나

두어편 모두 아이코닉한 외국영화감독 73명 (한국, 아시아 제외)

물론 전자의 경우 다작이 태작이라는 말은 아니고

후자도 과작이라는 사실이 대작을 반드시 담보하지는 않는다. 케바케다.

어쨌든 이런 영화감독은 2편 이상 볼만하고

73명x2편x2시간, 인생에 후회없는 292시간이다.


Christopher Nolan(1970)

Chloé Zhao(1982)

Coen brothers(1954, 1957)

Wes Anderson(1969)

Martin Scorsese(1942)

Peter Jackson(1961)

Steven Spielberg(1946)

James Cameron(1954)

Christian Petzold(1960)

Sam Mendes(1965)

Todd Phillips(1970)

Denis Villeneuve(1967)

Quentin Tarantino(1963)

Alfonso Cuarón(1961)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1963)

Mel Gibson(1956)

Daniel Kwan(1988)&Scheinert(1987)

Kathryn Bigelow(1951)

Francis Ford Coppola(1939)

Guillermo del Toro(1964)

Clint Eastwood(1930)

Leos Carax(1960)

Alice Rohrwacher(1981)

Damien Chazelle(1985)

Paul Thomas Anderson(1970)

Francois Ozon(1967)

Jean-Pierre Dardenne(1951) and Luc Dardenne(1954)

James Gray(1969)

Taylor Sheridan(1969)

Gareth Edwards(1975)

Kogonada

Edward Berger(1970)

Chris Columbus(1958)

Luc Besson(1959)

Joseph Kosinski(1974)

James Mangold(1963)

Jim Jarmusch(1953)

Greta Gerwig(1983)

Francis Lawrence(1971)

David Yates(1963)

Peter Weir(1944)

George Miller(1945)

Adam McKay(1968)

Lars Von Trier(1956)

Tim Burton(1958)

Alex Proyas(1963)

Roland Emmerich(1955)

Ridley Scott(1937)

Matthew Vaughn(1971)

Brian De Palma(1940)

Kenneth Branagh(1960)

François Truffaut(1932)

Jean-Luc Godard(1930)

Éric Rohmer(1920)

Sergio Leone(1929)

The Wachowskis(1965&1967)

Alfred Hitchcock(1899)

George Orson Welles(1915)

Lulu Wang(1983)

Martin McDonagh(1970)

David Fincher(1962)

Adam Wingard(1982)

Alexander Payne(1961)

Yorgos Lanthimos(1973)

Luca Guadagnino(1971)

Brad Payton(1978)

Jonathan Glazer(1965)

Richard Linklater(1960)

Lee Isaac Chung(1978)

James Gunn(1966)

Wim Wenders(1945)

Ari Aster(1986)

Federico Fellini(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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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가 되어 인터넷 시대보다 정보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많이 생산되는데 정작 사람은 소비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최근 코스피 5천까지 밀어올리고 경제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삼전, SK, 현대차 등 일부 섹터에 국한된다. 만약 이렇게 계속 특정 기업의 생산성이 극대화되고 극소수의 이공계 엘리트가 고임금 고강도 일자리를 가져간다면, 그리고 AI가 법조 회계 의료 전산 등 기존 화이트칼라 중산층을 약화시키고 일자리는 더욱 줄어든다면,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받거나 AI대체 안되는 물리노동을 하거나, 보건복지계통으로 워라벨 중시되는 저임금잡을 잡게 될 것이다.


시간이 많아진다면 무엇을 할까? 돈이 있다면 레져를 즐기겠으나 돈이 없다면 집에서 넷플만 보겠다. 음악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이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다.


그런데 엔터산업은 특성상 소수에게 부가 몰린다. 슈퍼스타는 타인이 대리할 수 없고 넷플이 외주한 제작사는 소규모 고용에 단기이득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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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지 감독은 전반부에 빠르게 성공시키고 느리게 파멸시킨다. 주식급등이나 대결승리, 조직장악 같은 사회적 성공과 빠른 쾌락을 먼저 체험시키고 그 대가로서 점진적 붕괴가 수반된다.


이미 정점에 오른 주인공이 어떻게 망하는지 지난한 과정이 오래 질질 따라온다. 이런 지속상태로서 파멸의 대척점에 이상일 감독이 있다, 전반부에 오랫동안 불안이 빌드업을 되고 뒷부분에 폭발시킨다. 상처를 전반부에 저축하다가 후반부에 응축된 감정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스크랩 헤븐(2005)에서 신고와 테츠는 나쁜 놈 제거라는 파이트클럽스러운 사적정의를 실행한다. 전반부까지는 새천년스러운, 애니콜 광고풍의 감각적인 연출로 유쾌하게 시작하다가 파출소에 잠입해 총을 탈취하고 현실의 살인이 발생해 정의놀이가 실제폭력으로 전이되면서 그간 응축된 감정이 폭발한다. 분노(2016)에서도 치바, 도쿄, 오키나와 세 지역에서 신원미상자와 관계를 맺다 살인사건의 도주범으로 의심하며 엔딩에서 신뢰가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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