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린다 노클린)

원제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린다 노클린은 미술가가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위대함, 재능,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근거가 미술사의 이데올로기적인 토대에 있다는 비판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글을 발표(『아트뉴스』, 1971년 1월)하며 페미니즘 미술사의 기반을 마련했다. 글이 발표된지 50년이 흐른 지금, 50주년 기념이자 동시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라는 스스로 재평가 하는 글(『밀레니엄시대의 여성 미술가들』, 2006년) 두편이 실려있다.

그녀는 최초로 미술사에서 '젠더 관점'을 도입했다. 이 '페미니즘 미술사 관점'은 그동안 역사 속에서 당연한듯 언급되어지 않았던 소외된 여성미술가들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그동안 얼마나 당연한듯 남성중심주의로 미술계가 흘러가고 있었음을 동시에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녀는 미술사에 젠더 관점을 도입하여 미술교육, 제도, 문화 전반을 재검토 하게 만들었다. 여성 재현, 오리엔탈리즘, 리얼리즘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과 여성 미술가의 역사와 성취를 주제로 한 기획전 등을 마련했던 린다 노클린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떤 것'을 '자연스럽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23p)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발명가와 탐험가로 보아야 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질문들을 꾸준히 포용해야 한다. (18p)

마음에 들었던 세 단어.

발명가, 탐험가, 질문가가 될 것.

그래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그만큼의 넓은 세상을 포용할 수 있기에.


린다 노클린의 글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당사자의 반응이다. 이 질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의 가정들을 심문해야 한다고 그는 글 속에서 경고한다. 즉, '천재'와 '위대함'의 개념을 예리하게 분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미술가는 주로 천재성을 가진 사람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천재성은 위대한 미술가 속에 내재한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으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제도 지향적인 접근방식은 미술사라는 전문분야가 낭만적이고 엘리트적이며 개인예찬과 전기 위주의 집필을 하부구조로 삼고 있음을 폭로한다.

"예술은 형태라고 하는 자기 일관성 있는 언어로 만들어진다.

이때 형태는 일시적으로 규정되는 관습이나 계획,

그리고 표기체계로부터 자유롭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는 의존하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학교 교육이나 도제식 교습 또는 독학으로

오래도록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

습득하고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9p)"

1. 미술가는 '제도'적이고(후원제도) '교육'적인 지원(미술교육기관)을 통해 길러진다. 여기서 교육이란 사람이 의미있는 상징과 기호체계, 그리고 신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람에게 발생 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위대한 예술의 생산 조건에 대해 올바르게 질문할 때

단순히 예술적 천재성만을 고려하기보다는

지능과 재능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의미상 우리가 천재성이라고 부르는 지능은

정적인 본질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인 활동으로 봐야하며

주체가 어떤상황에서 활동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44p)"

2. 미술 제작이란 미술가 개인의 발전부터, 미술품 자체의 본질이나 질적 차원까지 모두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사회적 상황은 구체적이면서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사회제도(미술교육기관, 후원제도, 천부적 창조자 신화, 남자로서의 예술가, 사회적 소외자 처럼 사회구조에 내제한 요소가 사회제도)에 의해 중재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예술분야에서 여성과 여성이 처한 상황은

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남성 엘리트의 눈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다.

여성은 비록 실제는 아니더라도 잠재적으로는

자신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생각해야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혼자만 꽁무니 빼는 일 없이

기꺼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직면해야 한다.

누구나 동등하게 성취할 수 있으며

사회제도적으로도 개인의 성취를 적극 보장하는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여성은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33p)"

3. 페미니즘 미술사는 말썽을 일으키고 의문을 제기하며 가부장적인 보금자리를 헤집어 놓기 위해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를 망라해 여성이 예술 분야뿐 아니라 무슨 직업에서든 경력을 쌓고 싶다면 어느종도 탈 관습적일 필요가 있다. 여성 미술가가 미술계에 진출하려면 흔들림없이 한 줄기의 강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회제도가 여성에게 자동으로 부과하는 유일한 역할(아내, 어머니의 역할)에 자신을 내맡겨서는 안된다. 미술계에서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나 장인정신에 대한 집중력, 집요함, 외골수적으로 몰입하는 특성을 택해야만 한다.

"내적 확신이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고상하거나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 때 요구되는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절대 기준과 자기결정력을 말한다. (83p)"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라는 질문은 미술사 뿐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까지 커다란 반향을 남겼다. 많은 분야에서 젠더 편향적인 관점에서 쓰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학계에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의 핵심은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였다.

'위대함'이라는 기준과 '성담론' 프레임을 처음으로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제 학자들이 정설로 인정받은 기존의 '편향적인' 지식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누구의 관점에서, 어떠한 사회 구조와 제도에 의해 편향되어가고 있었는지. 제동을 걸고 '중립적'이라는 시선을 새롭게 등장시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향할 것인지를 묻는다. 이것이 오늘날의 비평적 담론의 큰 화두가 되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명인듯 보이지만 실은

주입되고 내재화된 사회적 산물이다.

-117p

성 담론이란 성의 특성에 관해 남녀의 성차이를 기반으로 말해지는 모든 가치를 지정한다. 백과전서파의 지식인들의 남성성, 여성성의 대조를 통한 유형 범주화가 아니라 그 유형 범주화 앞에 씌워진 '편견'의 구조적 프레임을 살펴보고, 거기에서서 비롯된 '위대한'이라는 말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고 굵직한 획을 그으며 잠시 멈춤을 외쳤던 린다 노클린. 그녀의 기념비적인 첫 저술을 읽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