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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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기도 한 이길보라 작가 역시 '코다'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아이로서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영화'와 '도서'를 많이 접했을 뿐만아니라 자신 역시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에 있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작가 소개글부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개글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부모는 나에게 수어를 가르쳤고, 나는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장애'가 된 건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딸인 '코다'로 살고싶다.

이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이자,

'나의 역사'이다.

이길보라,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中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준 가족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사랑하는 '내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외부 사람들'에 의해 우리 가족은 '장애인 가족'이 되었다.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가족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때 세상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되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초반의 이 부분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가족의 품에서 '안전'하게 자라다가, 세상이란 위험한 곳으로 한발걸음 걸었더니 세상은 내 가족을 '불완전'하게 바라 보았다. 그나마 자녀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보라네 어머니'라는 학부모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다시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자녀가 사는 공동체 세계가 '사회'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었을때 내 부모는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고졸, (호떡,와플,풀빵 등을 파는) 자영업자, 청각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 말들 사이에서 이것이 그들의 '이력'이자 '특이사항'이 되었다.


뒤늦게 엄마의 생을 가늠해 본다.

농인이자, 여성이자, 비장애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삶을.

나는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


그리고 농인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신이 삶을 반추해본다. 그렇게 '장애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이다.' 라고 당당히 말하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 그대로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상깊게 본 부분들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의 프레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장애인은 불쌍해', '장애인들은 다 똑같은 장애인들아닌가' 라던가

'장애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존재들이니 다) 착할거야'라는 것들이다.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기쁘고 가슴 벅찰때도 있고,

화가나고 속상할 때도 있다.

대게 후자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럴줄 알았다'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찬다.

자신의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소유권과 주체성을 꺾어버린 채

나와 부모님을 그저 '불쌍한 사람'으로 '대상화' 한다.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영화 감독이기도 한 작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인터뷰 질문이 있다.

"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라는 이 말은 작가가 지겹도록 들어왔던 질문이다. 질문이 내뱉어 지는 순간 세상이 그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들 멋대로 동정과 연민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그래서 작가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원치 않는 순간들'과 '고통들'에 대해 스스로 말할 권리를 쥐고 있다기 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주목하려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이렇듯 에이블리즘(Ableism, 장애 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과 오디즘(Audism, 청인 우월주의로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았던 작가지만, 이런 질문에는 부모님이 농인이라서 불편한점보다 자신이 코다여서 좋았던 점을 강조해서 대답하는 쪽을 택한다.


누군가를 '대상화' 하여 항상 밝고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하는건 위험해요.

실제로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와 사기행위도 많아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은 또 하나의 선입견 아닐까요?


우리는 '장애인들'이는 한 범주를 대상화시킨 후 그들의 세계나 성격, 태도들에 대해 '이럴 것이다'라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건 사고에서는 '약자'인 장애인에게 성적, 금전적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사이의 범죄나 그들이 주가 된 사건들도 더러 있어왔다. '대상화' 시킨 그들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기도 어찌보면 '너네는 약자니까, 우리가 도와주면 고마워하기만 하고 그냥 착하고 얌전하게 있어'라는 더 폭력적인 시선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잔존청력, 수어 습득 시기 등에 따라 '엘리트'와 아닌자 들로 '계급'이 나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서 조차도 경쟁과 차별이 있어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할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들'이라는 단어와 '그들'이라는 대상화로 개개인의 개별성과 각기다른 정체성들을 너무 쉽게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계급차이도 그러하지만, 생각의 차이는 더욱 심하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상상하며 말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듣고 있는지,

어떠헥 하면 다르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작가는 '장애인의 날'에만 두각을 받는 것이 싫어 차라리 이럴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 이날이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알리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자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뒤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작가가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뀌는 과정을 주목한것 만큼 관심을 보였던 또 다른 주제는 '지하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생각이었다. 작가는 <썰전>프로에서 팽팽하게 나누었던 담론을 거론하였다. 청인인 장애인 차별철폐 대표가 나와서 하는 담론이였기에 '수어'나 '자막'통역 하나 없었던 방송, 그리고 '말'만 오갔던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연대의 투쟁에서 20년이 지난 2022년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도록 했다.

이 투쟁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외침과 함께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와 이를 위한 권리 예산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탈시설권리'란 시설에서 나와야 지역사회에서 '이동'받고 '교육'받고 '노동'할 수 있다는 모든 권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이다.


환경이 바뀌면 관계망이 변하고 활동범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한다.

'향유의 집' 사무국장 강민정


이런 말들을 보면, '이동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 투쟁의 과정에서 얼마나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는 수많은 '다름', 그러니까 장애와 질병을 겪는 사람들, 재일조선인, 다문화가정, 미등록 이주 아동, 불법체류자와 난민,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기후위기 활동가 등 수많은 '소수자'의 삶을 다룬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다름'을 마주하는 자세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손쉬운 연민, 구분, 단순하고 납작한 공감, 그뒤에 따라오는 편견, 차별, 거절까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를 경험하는데서 비롯되는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가져다 주는 가치나아가야 할 확장적 가치관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넓어진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이해와 납작하게 눌린 공감이라는 착각을 넘어설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공감과 이해가 전부가 아니라,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그러한 경험에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연결될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리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는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가. 우리는 어떤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당신과 나의 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거기서부터 다시 쓸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질문과 그에 따른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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