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에 살고 있던 히라야먀 부부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동경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동경 변두리에서 개업의를 하고 있는 장남 코이치, 미용실을 하고 있는 장녀 시게코, 그리고 언제 사람 구실 할지 알 길이 없는 막내아들 쇼지까지...장성한 아이들이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 가는걸 보는 것만큼 부모에게 흐믓한 광경이 있을까, 히라야마 부부는 그래도 자신들이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라고 , 그렇게 생각한다. 부모의 첫번째 동경 나들이를 하는 반기는 자식들, 하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자 다들 각자의 스케줄로 부모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동경 구경 한번 시켜드리겠다고 나선 장남은 갑작스런 환자의 호출에 서둘러 불려 나가고, 둘째 딸은 가뜩이나 좁은 집에 미용실 운영과 이런 저런 일정으로 챙겨드릴 여유가 나지 않자 짜증이 난다. 교사인 아버지로부터 뭘 해도 안 될 놈으로 어렸을 때부터 찍한 막내 쇼지는 눈만 마추지면 요즘 뭘 해 먹고 사냐고 다그치듯 물어보는 아버지가 영 불편하다. 자식들 보겠다고 큰  맘먹고 나선 길이건만, 얼마되지 않아 눈칫밥 신세로 전락한 히라야마 부부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자식들이 살아가느라 바빠서 그럴 수 밖엔 없다는걸 어른답게 이해한다고 해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들 제자리를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걸 봤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홀가분하다고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일본 영화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영화보다 일본적인 색채가 두드러진 영화였다. 절제된 감정과 대사, 흐트러짐이 없이 정갈한 배경,  한편의 화보 모음 같은 영상, 조곤조곤 언성 높아지는 법 없이 상대의 감정을 추하지 않게 정리하는 그들만의 대화법, 감사하다거나, 다행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아무리 바쁘고 슬퍼도 절도 있게 절하는 것만은 포기하는 법이 없는 일본인 특유의 미학을 광고하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일본의 문화는 이렇다고, 만약 일본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심 된다고 말이다. 아직은 끈끈한 부모 자식간의 정, 부모 자식 세대간에 존재하는 갈등을 그래도 이해하는 시선에서 바라보려 하고, 과거의 관습과 현대의 편리한 삶 속에서 그들이 지키려 하는 것과 그럼에도 흘려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그들이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은 정말 훌륭한 유산 아닌가요?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라는 현재의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거기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않은 채 현재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징. 일본 특유의 관조적인 태도랄까, 그런 것이 반영된 듯하다. 과거 인기 있었던 작품을 현대에 와서 다시 만들은 것이라고 하던데,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던 작품이라고 말이다. 보니 이해가 간다. 우리가 보기엔 한없이 심심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간직하고 싶은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엄하고 이해심이 부족한 남편을 다독이면서 자식들에게 헌신한, 그래서 자식이 잘 살아가는 모습에 이보다 더 다행일 순 없다고, 자신의 모든 행복이 다 실현된 듯 미소짓던 할머니의 모습 말이다. 아마 일본인들이 그리워 하는건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은 그 어머니의 사랑 아니었을런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영화속 배우들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듯 보이는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펼치던데,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아서 놀랐던 것이다. 과연 어느것이 더 힘들까? 미국처럼 리얼하게 연기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아니면 일본처럼 어떤 틀 안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려울까? 분재를 보는듯하던 일본 배우들의 연기가 더 힘든 것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연기를 해냈으니까. 부자연스러운데도 그게 하도 흔연스러워서 자연스러운 것을 보는 듯 착각이 일어났다고나 할까.  해서 정작 보는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연기하는 당사자는 힘들어 보이지 않는, 과연 어느게 진짜일까 싶은...얼핏 보기엔 하도 리얼해서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 미국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더 잘 하는 듯 보이지만서도, 어쩜 연기 하기는 일본 배우들이 더 힘든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틀 안에서 연기 하는 것이 더 힘들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틀은 아마도 가부끼인가 그런 전통의 영향을 받은 듯하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다보니, 과연 30년 뒤엔 일본인들은 어떤 연기를 펼치려나 궁금해진다. 그들은 그때도 여전히 이런 연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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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유괴범의 딸이 유명 신문사에 취직이 내정된다. 이를 알게 된 경쟁사는 큰 일이나 난듯 이를 문제 삼고, 이에 당사에서는 20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해보기로 결정을 한다. 몇년전 큰 사고를 일으켜 한직으로 물러난 전직 기자 가지는 사건을 알아보라는 상부의 지시에 이유를 몰라한다. 다른건 몰라도 이제와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봤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괴범이 몸값을 들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 버리는 바람에 그 사건에 어떻게 발생했고,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알길이 없었던 터였다. 당시 가장 크게 사건이 이슈화된 것은 유괴된 신생아의 행방을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는 것때문이었다. 과연 당시 유괴된 아이는 모두의 추측대로 살해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범죄자의 딸--그것도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유괴치사 범인의 자식--을 자신들의 체계속에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착한 척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마지막까지 끌고가던 다분히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지던 추리 소설이다. 무엇보다 가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사건의 실상을 풀어내던 기자 가지의 기지가 놀라웠다고 해야 하나. 쓴웃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거의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는데도, 그저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사건을 뚝딱뚝딱하고 풀어낸다는 것에 혀를 차고 말았다. 충격적인 반전을 위해 사건을 만들어낸 듯한 인상이 짙다는 것도 이 책에 대한 호감을 반감시키고, 사건에 관련된 아들딸들이 나중에 아는 사이가 되어 만난다는 것도 너무 작위적이다. 세상이 좁다고 해도 그렇게 좁을리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자연스런 전개를 기대하시지 않고 집어드신다면 그럭저럭 읽힐만한 퀄리티. 하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이나 흥미진진한 전개 뭐,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마시길...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고 한번이라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색하고 기다렸을 책. 이 책을 보면서 비로서 난 그가 왜 자살을 택할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거의 강박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유대인 학살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시는 듯 하던데,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성토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제 정신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난 그가 몇 권의 책을 통해 그의 원한과 고통과 분노와 애닮음을 어느정도는 털어내셨을 거라 생각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오히려 그 도가 점점 심해졌던 것이 아닌가 싶더라. 무엇보다 그 특유의 초연함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떤 인간도,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남을 미워하면서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건 정신이 피폐해지는 일이고,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파괴적이다. 그가 자신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것은 결국 죽음밖에는 없었겠구나, 싶어 그가 가여웠다.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젠 평화를 찾으셨기를 ....



 ★★☆☆☆  탐정 매뉴얼/제더다이어 배리


 갑자기 내가 난독증에 걸린줄 알았다. 읽기가 하도 힘들어서. 다른 책을 읽을때는 멀쩡하던 해석 기능이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멈춰 버리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 이상, 이 책을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난 믿지 못하겠다. 왜냐면 재미는 커녕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쩔쩔 매야 했기 때문에. 딱 초반 몇 페이지는 흥미를 끌어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분명 앞으로 나가긴 하는듯한데, 거의 제자리를 맴맴 도는 듯한 전개가 책 읽는 것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말은 이 책에는 오히려 과분한 단어이다. 지루하다는 것은 그나마 어떤 맥락이라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으니 말이다. 두서없고, 횡설수설에, 산만하고 뜬금없으며, 이상한 탐정의 나라에 온 듯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기나 한건지 의심하게 만들더라. 아무리 읽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긴 했다. 너무 취했거나 너무 졸려서 몸이 안 움직여줄때의 갑갑함을 기억하시는지. 제 정신인 상태에서 가위눌림을 겪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제정신인 상태에서 재밌는 독서를 하고 싶다시는 분들에게는 비추.


 ★★★☆☆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꼴찌에게 희망을! 이란 문장이 되겠다. 학창 시절 끔찍한 열등생이었다는 저자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과연 점수로 아이의 미래를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를 묻고 있던 책. 초반 자신이 열등생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모두를 걱정시키는 열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저자는 회상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숨은 재능을 알아봐 주거나 지식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몇몇 선생님들의 공이었고. 해서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현재의 점수로 단정짓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어른들에게 충고한다. 문제는 그것이 학교 밖에서는 너무 잘 보이지만, 학교란 독특한 상황속에서는 보이기가 어렵다는 점. 아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선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한 책. 특히나  열등생의 심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것에 주목하시길.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유용한 정보 같아 보이니 말이다.하긴 누가 그보다 열등생에 대해 잘 알겠는가. 어린 시절엔 열등생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열등생을 가르친 선생님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니 말이다. 어떤 아이들이건 보다 많이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열등생 시절을 아낌없이 털어 보여준 이 점잖은 노신사에게 공감의 미소를 짓지 않기란 힘들지 않을까 한다. 다만 초반의 신선함을 지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인데, 그건 읽는 사람이 가려서 읽으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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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의 카레, 내일의 빵/ 기자라 이즈미


 부부 각본가라는 말에 별 흥미가 없다가, 일본 드라마 <수박>과 <들돼지 프로듀스>가 그들의 각색 작품이라는 말에 들여다 보게 된 책.  과연 괜찮은 각본가가 괜찮은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저의기 의심스러웠는데, 역시나 <수박>의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답게 이야기가 흔연스럽더라. 칠년전 남편을 암으로 잃고, 그 이후로 쭉 시아버지( 이하 시부)와 살아가고 있는 데쓰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하지만 그녀가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일 듯. 


결혼 구년차지만, 남편과 살았던 날은 고작 이년, 스물 여덟살의 처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라고도 할 수 없는 모호한 입지에 서 있는 데쓰코는 자신이 며느리라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한 시부와 함께 살아간다. 냉정하게 보면 생판 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임에도 척척 생활의 호흡을 맞추며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그들. 그들의 완벽한 앙상블은 한편으로 더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 데쓰코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직장 동료에게 단호하게 선을 긋고, 시부는 은퇴후의 생활을 어찌할 것인가로 고민을 한다. 어느날 더이상 미소 짓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스튜디어스에서 백수 신세가 된 오다양은 그녀와는 반대로 병때문에 실실 웃는 것을 멈출 수 없어 잘린 산부인과 의사 동창과 사고로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 둔 스님 동창을 만나 새로운 직업을 구상하게 된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데쓰코의 남편은 어떻게 데스코와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며, 그녀는 남편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될 것인가 라는 이야기가 지극히 담담하게 하지만 신선하게 그려진다.


<수박>을 보면서 익히 느낀바대로, 저자가 착하지만 결코 멍청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으로 잘 그려낸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사람들이 어디 있어? 라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빠져들게 되는건 이상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이렇게 해석하고 풀어가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 싶은 깨달음 때문이 아닐런지. 그러니까, 착하고 모나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려 애쓰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어요. 인생이란 당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몰라요, 라고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 싶어서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들었다고 해도 흐믓한 채로 책을 내려 놓지 않을까 싶은, 쉽게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도 얻을 수 있는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다. 내 확신컨대, 이 작품은 반드시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내용이 워낙 좋아서 그냥 버려질리 만무하니 말이다. 과연 어떤 배우들이 출연할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진다고 하면 반색을 하면서 보게 될 것이다. 내용을 알기에 더 보고 싶어지는 드라마가 될 것이므로.




 ★★★☆☆  꿈을 파는 남자 /햐쿠야 나오키 


 재능도 열정도 없지만 미래의 조앤 롤링을 꿈꾸는 현실감 제로의 허무맹랑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 돈으로 책을 출간하게 함으로써, 불황이라는 출판업계에서 자비 출판이라는 분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마루에라는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출판업자의 눈을 통해, 작가라는 허영에 찬 집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특징. 더불어 그들을 꼬드겨 잇속을 챙기면서도 타인의 꿈을 이뤄주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편집자의 절묘한 내공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기꾼과 출판업자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도, 자기들은 그래도 그나마 양심이란게 있다고, 그저 자신들은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은 것 뿐이라고 --다른말로해 남들보다 조금 더 영리한 것일뿐이라고.--호언하는 마루에사의 편집자 우시가와라의 감언이설이 이 책의 포인트. 그의 입을 통해 출간이라는 행위의 적나라한 뒷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압권. 본인도 작가면서도 어쩌면 이리도 동료 작가들과 출간업자들을 통찰력 있게 비판하시던지, 이 책이 왜 블랙 코미디라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자비 출판의 함정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격점.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읽기 쉽도록 썼다는 것이다. 누가 읽어도 금방 이해가 되게. 이상한 미사 여구에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감상 나부랭이를 부끄러운줄 모르고 끄적여 대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런 글이야말로 생명력이 있지 않는가 한다. 고상한척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호감이 가던 책. 출판계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 싶으신 분들은 들어보시길.


★★★☆☆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오카다 다카시>


 어린 시절 가장 처음 경험하는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책. 나름 멀쩡하게 자라났지만, 속은 곪은대로 곪아버린 유명 인사들의 일화를 통해 저자는 어린 시절의 애착이 얼마나 파괴력이 큰지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애착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결국 상처를 가진 어른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애착을 " 제 2의 유전자' 라고 일컬으면서, 유전자 못지 않게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이유다.


일단 클린턴이나 헤밍웨이, 나쓰메 소세키,가와바타 야스나리,등 유명인사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이 애착장애의 희생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보듯, 일단 고착이 된 애착 장애는 쉽사리 고쳐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먼저 애착 장애를 가지지 않은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는 것. 하지만 그런 안정적인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어른들이라고 해도 실망하거나 억울해하진 마시길...알고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착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 행복한 어린 시절은 지극히 불가능한 환상에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것. 어른이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불안이건 회피건 자신안에 깃들여진 애착장애를 교정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성숙의 의미일수도...


이 책의 장점은 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행태 하나 하나를 애착 장애 하나로 설명한다는 것. 그가 언급한 유명 인사들의 예만 들어봐도, 그들 중에서는 소시오 패스나 경계성 인격 장애, 고기능성 자폐증으로 설명해야 할만한 부분임에도, 애착 장애라는 한가지 창으로만 들여다 보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인간이란 어찌나 복잡한지, 한가지 창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해서 모든 것을 애착 장애로 설명하는 작가의 태도에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심도있게 서술해준 것만큼은 잘 하지 않았는가 한다. 물론 이런 책을 읽고서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테지만서도...이젠 안다. 부모들 역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린 아이들일 뿐이고, 그들의 상처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도대체 어디서 끊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데, 위대한 작가의 원동력은 지극히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는 점이다. 과연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혀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이 인간적으로 더 나을 것일까? 내 아이들이라면 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닌 한 명의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주길 바랄 것이다. 위대한 작가는 이미 차고 넘치므로...



★★★☆☆ 박쥐/ 요 네스뵈 


요 네스뵈의 데뷔작이자 해리 홀레 시리즈의 탄생을 알린 작품. 호주에서 23살의 금발 노르웨이 미녀가 살해된 채 발견되자, 경찰청에선 해리를 파견한다. 이미 술에 절을대로 절은 뇌로 사고를 친 전적이 있는 해리는 낯선 땅에서도 금주를 이어가려 각고의 노력을 한다. 더불어 금발 미녀의 살해범 역시 잡아내려 하지만, 말도 유창하게 통하지 않는 호주에서 도착한지 며칠만에 범인을 잡는다는건 아무리 해리라도 무리. 호주 형사팀 역시 해리에게 시체나 인수해 가라고 별 기대하지 않는다는걸 분명히 하지만, 어디서나 자신이 유용하길 원하는 해리는 허수아비 역활은 사절한다. 그를 가이드해 다니는 호주 형사는 여기저기 해리를 끌고 다니면서 그의 친구들을 그에게 소개시켜준다. 처음에는 단순한 제스쳐라고 생각하던 해리를 단서를 쫓던 중 그들이 살해범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과연 호주 형사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범인을 알고 있었다면 왜 그는 자신이 직접 잡아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해리는 이번에도 특유의 고집불통을 내세워, 집으로 돌아가라는 호주인들의 말도 무시한 채 직접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는데...


데뷔작스러운 패기가 다분했던 책. 이만하면 데뷔작치고는 잘 썼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요 네스뵈의 최고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다행이지 뭔가. 데뷔작이 최고라는 것은 어쩜 작가에겐 저주이자 모욕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희미하건 노골적으로건 이 작품안에 들어있는 것도흥미거리. 술과 여자에 약점 투성이의 영웅이라. 그를 사랑하는 것은 명백한 죄라는 듯, 애인들을 다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되던데, 연쇄 살인범 못지 않는 타율, 작가가 왜 이런 설정을 고안해 냈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극적인 것을 강조하고, 해리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며, 그가 트라우마 있는 고독한 형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주인공에 대한 가학이 지나친게 아닌가 싶더라. 이것도 지나치면 질리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가마슈 경감을 보면서 안도하게 되는 것도 그가 살인 사건을 풀기는 하지만, 그건 그의 일일 뿐이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주는 안정감때문이니 말이다. 가마슈가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무도하게 살해되는 일들이 반복된다면 과연 누가 제 정신으로 살아남게 될까 궁금하다. 그게 그렇게나 반복될만한 일인가도 의문이고. 해서 다소 극단적인 설정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피곤해지고 있는 해리 홀레. 과연 그가 정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는 될른지 데뷔작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이방인이자 형사로써 호주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해리를 보는 맛이 꽤나 괜찮던 추리 소설. 살인범을 잡아가는 과정보다 그 주변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 내 안의 살인마/ 짐 톰슨


요 네스뵈가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완벽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칭찬한 작품. 텍사스 작은 마을의 부보안관 루 포드는 잘생긴 외모에 친절한 태도로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싸이코패스를 넘나드는 소시오패스라는 것. 지금까지 자신의 충동을 잘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는 마을의 창녀를 만나면서 일탈의 기회를 잡게 된다.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는 자신을 조여오는 난데없는 올가미에 당황하고 만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자신의 위기대처능력에 자신만만해하던 그는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데...


완벽한 소시오패스에 대한 보고서. 도대체 짐 톰슨이란 양반은 어떻게 소시오패스에 대해 이다지도 잘 아신다냐? 혀를 내두른 작품이 되겠다.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마치 진짜 살인범의 고백처럼 들려오던데, 어떻게 이런 신빙성을 작품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꿈을 파는 남자>의 주인공이 작가는 어딘가 감각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유명작가와 평범한 작가들 사이의 차이는 재능뿐이라고 단언하던데, 어느정도는 일리있지 싶다. 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런 소시오패스의 마음은 상상할 수 없던데 말이다. 통찰력 넘치는 심리 묘사, 소시오패스의 황량한 내면을 압도적인 절제미로 표현하는 것이 장점. 자신의 넘치는 꾀와 매력으로 살인을 하고도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내의 자신만만한 여정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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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새여인이 죽기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

  

  ★★★★☆  

  

 제목만 보고 오해를 했었다. 불새여인?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라고? 제목만으로 이 책이 어떤 성격의 책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감이 오긴 했는데, 그다지 건전한 쪽이 아니었다. 새미 포르노를 표방한 --쓰고 보니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냐라는 자괴감이 살짝 든다. 남 같으면 앙큼한 것 같으니 라고 하하하 하면서 비웃어줬으련만...--야한 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런데 전혀 아니더란 것이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이런 책인줄 알았더라면 내 반색을 하면서 기꺼이 읽어주었을텐데. 괜히 겁먹었잖아, 라면서 신나게 읽어제낀 책이 되겠다.


사자 머리를 27살의 괴짜 인턴인 나는 4층에 있는 불새 여인이 걱정이다.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그녀의 임종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간병인의 시간이 다 되간다는 말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그녀의 죽음을 어떻게 해서든 미뤄보기로 한다. 왜냐면 그녀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병원에서 인턴 근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온다는 아들은 화산이 폭발하고 비행기가 뜨지 않는 바람에 오지 못하고, 불새 여인은 오매불망 아들만 기다린다. 그녀의 처지가 딱한 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천일의 야화처럼 날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면 그녀가 호기심에도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병실 야화 1001 프로젝트...그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야기와 동료들, 선배들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풀어놓는다. 처음에 나의 오지랖에 못마땅해하던 동료들도 점차 나의 열성에 설득되어 불새 여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고민하면서...그것이 불새 여인에겐 삶의 마지막 여흥이 되었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병원 사람들에겐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과연 병실 야화 1001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물론 천일 야화의 문학성에는 미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천일야화의 모티브를 따온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서술된 작품이었지 않는가 한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을 줄이야. 더군다나 가끔씩은 감동적이고, 심금을 울리는데다, 묘하게 통쾌한 장면도 있고, 인간적이란 말이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나빠질 이유는 없겠다 싶은 괜찮은 책이었다. 거기에 의사는 환자를, 환자는 의사를 이해하려는 쌍방향 대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도 너무 너무 맘에 든다. 내가 당신을 이해할테니, 당신도 우리들을 이해해 달라고. 오해하는 길보다 이해하는 길을 선택해 달라고 무언의 주문을 하는 이 책의 설득력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테다. 하여간 이것 저것 떠나서 재밌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반응도 재밌기 그지없고, 도와주려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도 흐믓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기전 나처럼 뭔 제목이 저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번 들어서 보시길. 감동에 재미를 보장하는 책이니 말이다. 안보면 당신 손핸겨~~~



 세계 최상 사서/ 조쉬 헤나가니


 ★★☆☆☆


빈말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세계 최강 사서다. 이때의 최강은 힘이 세다의 의미다. 2미터에 가까운 키에 120킬로 미터의 덩치, 거기에 평소에 격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 도서관에서 그를 실제로 만난다면 일단 얼어붙고 말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비단결까지는 아니라도 고양이털처럼 부드러운 사람이다. 책을 좋아하고--최강의 독서가라는 말을 붙여도 무방할 정도로.--아내와 아들을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는 그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버리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 도서관에서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 아이들조차. 오히려 그가 도서관에서 무례한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아하~~~ 이제 아시겠지.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강아지 같은 심성의 소유자지만,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뚜렛 증후군 때문이 시도때도 없이 그를 덥치는 틱은 그런 그의 외관을 더욱더 극적이게 보이게 한다. 그가 극단적인 운동을 시작한 것도 틱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하니, 틱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근육들과 날마나 전투를 치르면서 그는 책을 읽고, 솔트레이크시립 도서관의 사서도 하고, 아들에겐 좋은 아빠가, 아내에겐 듬직한 남편이 되기 노력한다.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만큼 책이 흥미진진하거나 재밌었진 않았다는 것을 실토해야 겠다. 단지 투렛 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는 유용한 지침서로 적격이지 싶다. 투렛 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니,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이런 책이야말로 같은 증상을 앓는 사람들에겐 귀중한 지침서가 될 듯 해서 말이다. 저자가 틱과 함께 살아간다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 저런 방도를 모색하고 있던데,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싶었다.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텐데,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무언가 해보는 열정과 힘이 엄청난 사람이더라. 투렛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겐 좋은 롤모델이 되실 듯. 하지만 그런 위대한 점외에, 이 책에 한정해서 말해보자면,  그의 전인생이 그닥 흥미진진하진 않아서 책 자체가 재밌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내 말했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과 자신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서, 이 책이 별로 재밌진 않았어요 라고 말한다고 해도, 작가는 이해할 것 같다. 누구보다 그가 좋은 책의 가치를 알고 이해하는 애서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구원의 동아줄이기도 했고 말이다. 자신의 책에 객관적이기를 바라는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해는 해주지 않을까 한다.



 이제야, 비로서 인생이 다정해지기 시작했다./ 애너 퀸들런/


 ★★★☆☆

별 세개 반 주면 딱일 것 같은데, 역시나 반개 짜리 별을 찾을 수가 없다. 귀차니즘으로 인해 나중에 찾으면 바꾸어 주는 걸로. 애너 퀸들런 여사께서 별 세개를 준 걸 보면 기 막혀 하실테지만서도--뭐라고? 별 세개! 제대로 읽기는 한거야? --다행히도 그녀는 한국말을 모르니까. 한국 웹을 들락달락 하실 정도로 한가한 양반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자존심 강한 도시 여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와 위상, 그리고 똑똑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세련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지적인 면에서는 감히 태클을 걸 수 없다는 것을 평생에 걸쳐 증명해 보이신 분이기 때문에.


애너 퀸들런,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여류 작가중 한 분이시다. 단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난 그녀의 생각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는 있지만 딱히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 이끌어내 설명해주는 분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맞아! 바로 이거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라고 감탄하기 일쑤다.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분이시기도 하고, 특히나 여성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시는 분이라, 든든한 맏언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쩜 나와 생각이 비슷해서 그녀에게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지만서도, 하여간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면서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여류 작가라고, 나는 그녀를 그렇게 평가한다. 똑소리 나게 써대는 칼럼도 그렇고, 평범한듯하면서도 묘하게 날카로운 그녀의 소설들도 그렇고. 해서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작품들은 반색하며 보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그녀의 책이 나왔다는 말에 흥분하고 말았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시려나? 해서... 결론은 그녀가 이제 나이가 드셨다고 한다. 이젠 정말로 왕고참이 된 것이다. 자신만만하거나, 시덥잖은 말을 내뱉거나, 자신이 없어 움츠러들거나, 자신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병아리 후배들을 보면서, 그래, 한때 나도 한때 저랬었지, 라고 회상할 수 있는 나이가... 그녀는 그들이 앞으로 걸어갈 가시밭길이 그려진다. 왜냐면 그녀 역시 그런 길을 묵묵히 걸어왔음으로. 그래,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열심히 한 세상을 살았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가렴. 하지만 고백하건데, 나이든게 생각만큼 나쁘진 않구나. 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가족이 되어버린 남편과 모든걸 시시콜콜 나누는 친구와 자신이 한 일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세 남매가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편안하게 되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열심히 사신분이니, 이젠 남은 생을 즐기시라고. 젊은 시절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인생이 다정 또는 만만해질 수 있었던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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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새/ 케빈 파워스 

   ★★★★☆ 


   바빠서 셜록 찍을 시간도 없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 바쁜 와중에도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들여다 보게 된 책. 생각보다 얇아서 내용이 빈약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적어도 작가가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다하긴 한 듯하다. 얼핏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플래튠> 을 연상되던데, 25년전에 월남전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면, 이젠 이라크 전을 배경으로 신병들의 이야기가 쏟아질때가 된 모양이다. 얼마나 비현실적인 느낌일까? 미국이란 나라에서 별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 갑자기 떨어졌을때 말이다. 다른건 몰라도 천번 째 사상자가 되는 병신짓은 하지 말자고 농담삼아 다짐하던 두 전우, 바틀 이병과 머피의 이야기. 그저 멀쩡히 고향에 돌아가기만 바라던 그들은 실은 군대에 적응한다는 것조차 돌을 씹는 것처럼 힘들다. 살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 역시 만만찮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농담을 해대며 전투에 임하던 둘의 나이를 대충 스무살 안짝.  나중에서야 바틀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어리고 무지했었는가를 깨닫고는 기막혀 한다.  그리고 머피의 죽음을 되돌아 보게 되는데...음.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합격점. 다소 감상적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플래튠의 마지막 장면과 마찬가지로, 심금을 울리는 마지막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초반이 다소 밋밋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끝까지 읽어 보시길 권해드린다. 작가가 진심을 다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숨겨 두었으니 말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 다비트 지베킹 

  ★★★☆☆


오해를 했다. 이 책의 제목 <나를 잊지 말아요> 가 엄마가 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인줄 알았던 것. 알고보니,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향해 아들이 말한 것이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아들인 나를 이라고 말이다. 지적이고 아름답던 한 여성이 치매에 걸리면서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막내인 저자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치매로 서서히 정신과 건강을 잃어버리는 엄마가 죽음에 굴복하기까지 5년의 세월을 작가는 빼곡히 일기와 영상으로 담아낸다. 그것의 결과가 바로 이 작품.


엄마를 잃게된 이후에야 엄마를 알아가게 되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렇게 아름답고 지적이었으면서도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살았던 엄마를 아들은 추억한다. 과연 그녀는 행복한 시절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린 그녀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일까 하고.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보단 유럽에서 활성화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직접 본인의 일로 닥치기 전까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된다는걸 이 책을 보고서야 이해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치매로 정신이 없는 엄마를 어떻게 간병하고,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두고 우왕좌왕하던데, 그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인가 보더라. 그렇지, 이런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 누가 그것에 적응하고 정답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겠는가. 다들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놀라고, 당황하고, 애닮아 하다가 이별을 고하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들을 몰라보는 아름답던 엄마에 대한 아들의 절절한 애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름이 없는듯. 그녀의 고통이 끝났음에 안도를...


 네메시스/ 요 네스뵈

  ★★★★☆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중 가장 재밌게 본 작품. 별 네개 반을 주려 했는데, 별 반개 짜리를 찾을 수 없어 그냥 네개로 한다. 복수의 여신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뭐, 풀어낼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건 내가 요 네스뵈의 상상력을 얕잡아 본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 결론을 알기 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요네스뵈의 스토리 텔러로써의 역량을 다시 보게 해준 작품으로, 이야기를 꼬아 내는 솜씨가 대단하더라. 줄거리는 신출귀몰, 증거를 남기지 않은 은행 강도 사건이 터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 강도는 다만 은행원을 살해하기 전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양새를 남김으로써 형사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완벽한 강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살해된 파트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 거기에 양육권 분쟁을 해결하러 러시아에 가 있는 여자친구등, 해리의 머리는 터질듯하다. 하지만 기대하시라. 우리의 영웅 해리에게 이 정도의 고난으로 작가가 성이 차겠는가. 전 여자친구의 전화에 아무 생각없이 응한 해리는 초대받은 다음 날 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되자 깜짝 놀라고 만다. 문제는 여자친구 집에 들어간 후, 자신의 집에서 정신이 든 사이에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것. 과연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해리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 모든 의혹이 그에게 쏠리는 가운데 해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데...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 계속 헷갈리게 만들면서 독자를 애태우게 하던 작품이다. 사건의 의혹이 하나둘씩 풀려 가면서 인간의 본모습에 대한 통찰을 하게 된다는 점이 장점.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해리와 둘러싼 인간관계의 모습들이 흥미진진했다. 나중에 해리의 유력 조력자로 나오는 베아테와의 만남과 앙상블이 좋다. 그녀가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구나 싶어 작가에게 믿음이 간다. 요 네스뵈, 언젠가부터 믿을 수 있는 추리 소설 작가로 등극하신 분. 다음 작품이 빨리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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