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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치누아 아체베 ㅣ 조규형 옮김 ㅣ 민음사
그의 삶은 하나의 큰 열정, 즉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용수철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때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민족들의 슬픔을 담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현재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좀 낯설고 생소하며 조금은 발달되지 않은 미개의 문화처럼 느껴지지기도 하고 그들의 삶은 산업과 문명이 발달 되기 전의 우리들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외부의 문명,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서구화되어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삶들이 점차 외부인들에 의해 무너져가는 전초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 문학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가 이질적으로 다가왔지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끝을 알고 있기에 그랬을까? 그들의 순수한 문화가 언젠가는 무너짐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슬펐고 제목마저 슬픔을 가중시켰다.
음악을 좋아하고 흥청망청 놀았던 아버지에 비해 강하고 훨씬 현실적인 남자였던 오콩코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남자였고 인근 마을에까지 소문난 씨름선수였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오콩코는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지켰으며 더 나아가 부족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남자다움', '강함' 등에 강박관념을 보이는 남자였다. 자수성가했고 좀 더 자신의 강함을 부족에게 보이려 애썼다. 오콩코라는 남자를 통해 이보민족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높은 충성심 또한 이야기 곳곳에서 뚜렷하게 보여진다.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 절대적이다. 이런 그들에게 외부의 신이 마을에 들어오고 마을은 술렁인다. 부족이 믿던 신은 신이 아니고 오로지 유일한 신만이 존재한다며 교회를 짓는 외부인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데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부인하고 신을 아버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오콩코의 큰아들 은워예도 그중 하나다.
내가 믿던 신들이 신이 아니라고? 옳다고 믿고 지키며 살아왔던 민족에게 새로운 신의 존재는 당황스럽다. 그런데 이 신의 존재가 그들의 마음에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고 점점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외부의 힘, 그것에 의해 무너져가는 민족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다. 결국 부족은 그들이 만든 법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한 남자의 운명을 통해 아프리가 민족이 무너짐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강한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오콩코가 한순간의 실수로 유배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을 느끼는 것을 아프리카 민족의 운명과 동일시 한 것이다.
치누아 아체베라는 나이지리아 작가는 그동안 아프리카 민족들의 삶을 다큐멘타리로 만 접해왔던 내게 보다 디테일한 삶과 그들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이야기 속 그들의 풍습이라는 것은 미신적인 것에 가깝고 여성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 작가는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서구, 외부의 세력이 그들의 문화를 잠식함에 있어서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이 작가가 치우치지 않고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재림>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이츠는 이 시에서 기존 체제의 붕괴가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노래했다고 한다. 이 점을 치누아 아체베는 공감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것이 꼭 희망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예이츠의 시를 따서 제목을 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