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설이 영화화되면 그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진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영화화되기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영화보다는 원작 소설 쪽이 훨씬 더 의미하는 바와 긴장도, 구성력, 재미까지 더 좋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최근의 영화들은 나름의 돌파력을 찾아 소설만큼 큰 재미를 주기도 한다. 영화와 그 원작 소설, 어느 쪽을 먼저 보아야 할까. 난 언제나 책이 먼저다. 시작부터가 무척 흥미롭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모르는 남자가 대답을 한다."...5p 그렇게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교통사고 후 며칠 간의 코마 상태. 깨어나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게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조차도. 자, 이 남자...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부조리에 대응할 도리가 없었다. 자명한 사실을 모든 이가 부인할 때, 그리고 내 진실 말고는 달리 맞설 증거가 없을 때,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9p 사소하게는 신분증에서부터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당하고나면...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혹시... 어쩌면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살아온 흔적들이 내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있는데 어떻게 내가 아니라고 나를 부정할 수 있을까! 당신이 마틴 해리스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통의 나약한 인간들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마틴에게 이야기하듯 나 자신이 마틴이 아니고 코마 상태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져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고 믿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틴은 자신이 자신임을 확신하는 어떤 증거를 쫓아가며 조금씩 자신과는 다르게 느끼는 또다른 면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쫓는 마틴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책은 철학책인가...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소설은 미스테리해지면서 급격하게 장르가 바뀐다. (내용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여기서 그만!)ㅋㅋ 뉴욕 타임스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결말"이라는 문구가 참 잘 어울린다. 원작 소설을 다 읽고난 후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소설과 기본 줄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세부 사항들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긴장하게 만드는 확실한 미스테리/액션 분야로 둔갑시켰다. 뭐랄까, 훨씬 상업적이다. 때문에 소설과 영화는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과를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면서 전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런 것이 원작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는 이유가 될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에겐 두 가지가 기대된다. 유머와 절묘한 무게 중심! 아무리 심각한 주제를 갖고 있어도 톡톡 튀는 그만의 위트로 중심을 잡을 수 있고 가볍게 보이는 대화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싸한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좋다, 그의 작품들은.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읽고나면 뭔가 마음이 짠~ 하다. <<꿈의 도시>>는 여러모로 그의 <최악>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도 그렇고 각각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한 정점에 모여드는 구성도 그러하다. 단, 일찍 만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고 아마도 그 차이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느냐 재미없게 읽느냐로 가른 것 같다. 적어도 난 <최악>은 정말 숨가쁘게 읽어내려갈 만큼 재미있게 읽었고 <<꿈의 도시>>는 몇 번이나 손에서 놨다 들었다하며 진정 괴로워했다. 끝까지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말로 생활보호비가 필요한지를 떠나 일단 그 수급자들을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미나리와 그저 그런 여고생 생활을 하며 이 작은 도시를 떠나 도쿄로 진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후미에, 노인들만 사는 집에 방문하여 사기 세일즈로 영업 실적을 올리며 살아가는 가토 유야, 마트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며 사슈카이라는 신흥 종교에 빠져 있는 다에코, 마지막으로 이 작은 도시에서 최고 권력을 잡기 위해 갖은 술수를 일삼는 시의원 준이치까지. 처음 이들의 삶은 그저 하루하루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꼬여가기 시작한다. 더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더 나빠진다. 왜? 이 도시는 발전이 되려다 멈춘 아주 작은 소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업은 늘어나고 관료 행정은 관료자들의 마음대로 흘러간다. 시의 재정은 최악의 상태에 빠지고 도시를 건설하는 업자들은 온갖 비리로 얽혀있다. 이 도시가 과연 꿈의 도시인가! 오쿠다 히데오는 이 다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통해 거대 자본에 조금씩 잠식되어가는 지방 소도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나 산만하고 끝이 없는 나락에 너무나 우울하다. 조금의 반성(뒤늦은 반성은 필요없다)이나 희망적인 노력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서로가 서로를 망치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이들 인물들이 나는 너무 싫었다. 그들은 사회에 부조리를 외쳐대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돌고 도는 실수로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최악>과 <올림픽의 몸값>을 통해 오쿠다 히데오는 자신만의 유머를 내려놓고 조금씩 "진중한 주제"를 드러내는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그 무게를 버틸만한 충분히 매력적인 장치들이 전작의 경우엔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오쿠다 히데오가 진화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꿈의 도시>>는 그의 또다른 변신일까.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4월 11일부터 17일까지...
다양한 책 속도 내어 읽어보자.
지난주 <꿈의 도시> 때문에 너무 지체된 듯.
1980년 5월 23일은 내게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아니 특별한 날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나는 너무 어렸을 때였다. 그런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줄 수가 있을까. 나 또한 시간이 흐른 후 단 몇 줄로 표현된 교과서를 통해 알았을 뿐인데.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그 시대를 처절하게 느끼며 살았던 나이가 아니라고 그냥 모른 척 살아갈 수는 없다. 그 일은 분명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그 시절을 거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에겐 관심 밖의 주제라 지루해질 수 있을 뻔한 이야기를 너무나 적절하게 판타지와 엮어내어 감동과 함께 선사한다. 외할머니가 이상해지셨단다. 이제 더이상 시골에 혼자 둘 수 없다고. 여름방학 동안 즐거운 계획을 잔뜩 새워둔 나빛이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외할머니라고 깊은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나빛이에겐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신나게 노는 계획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니댁. 그곳에서 나빛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엄마와 외할머니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 그리고 도착한 날 밤 할머니를 따라 곳간에 갔다가 나빛이는 투명인간인 채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을 적의 외할머니는 광주로 향한다. 1980년 5월 23일이란다. 그리고 목격하게 된 이상한 광경. 나빛이로선 이해할 수가 없다. 시민을 지켜주어야 하는 군인이 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지. 외할머니 등에 업혀 죽어간 사람은 정말 엄마인지. "나빛은 벌거숭이가 된 엄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가슴에 난 멍 자국이 이젠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98p 사춘기 아이라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선 오해가 생겨나고 이해하지 못해 한 쪽이 상처받곤 한다. 더욱 관심 받고 더욱 이해받고 싶은 나빛과 엄마나 나빛 엄마와 외할머니처럼 모녀 사이는 오죽했을까. 나빛은 외할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함과 더불어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며칠 간의 그 이상한 경험을 통해 나빛은 엄마와 외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또 한 사람, 밀짚모자 아저씨와 만나게 되면서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비밀이 밝혀지면 시원~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그 진실은 너무나 쓰리고 아픈 진실이다. "아저씨도 잘못 없어요. 아저씨, 죄책감으로 더는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 힘들게 살았던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에요. 시대가 만든 아픔이었지요. 그래도 지금 우리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170p 광주의 5.18 사태를 이렇게 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낼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을 통해 그 이후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또 단지 명령을 받고 가해자가 된 수많은 군인들은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왔는지가 절절하게 전해진다. 나빛이의 눈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본다.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나빛에게 얼마나 이상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외할머니에겐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이 분명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저 묻어만 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커다란 사건이나 한 개인의 말 못할 사정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나빛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듯이, 그 시절의 역사를 알게 된 나빛이는 이제 지금의 우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전해준 외할머니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
예전 우리 때에는,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밖으로 나가 뛰어 놀고 서로의 장기자랑을 보고..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에겐 소풍의 개념보다는 "계절학습"이나 "현장학습"의 이름으로 불리며 무언가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그다지 많이 배워오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죠.ㅋㅋ 현장학습의 의미가 책이나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방문함으로서 좀 더 현실감있게 느끼기 위해 계획된 것이겠죠. 그저 어디어디를 죽~ 줄서서 구경하는 것이 아닌, 책이나 교과서에서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것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의 효과가 있는 여행이라면 정말로 훌륭한 현장학습이 될 것 같아요. "미국 현장 학습 미스터리" 시리즈는 6학년 아이들의 현장 학습을 통해 직접 사건을 맞딱뜨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며 의미 그대로의 현장 학습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역사 자체가 익숙하지 않지만 특히 미국의 역사는 더한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들의 현장 학습을 따라가며 미국의 곳곳을 대리 경험하고 그곳의 문화를 사건을 통해 배울 수 있답니다. 캣과 샘, 에그, 껌네 반은 뉴올리언스로 현장 학습을 가게 되었대요. 우리에겐 이 뉴올리언스가 익숙하지 않지만 이 도시는 "마법과 좀비, 괴물들의 도시"로 유명하다네요. 시작부터 정말 으슬으슬하죠?^^ 미시시피강와 구식 외륜선을 소개하는 글을 보니 <톰 소여의 모험>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지식이 연결되면서 쌓이는 것이겠죠? 아이들은 선생님과 여러 곳을 방문해요. 프렌치쿼터, 세인트루이스 대성당, 자동차 경주장 등을 방문하며 옛날 뉴올리언스를 떠올리는 여행을 합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해요. 배 호텔에서는 좀비가 나타나더니 한 선물가게에서는 부두교 인형의 저주가 실현되죠. 뉴올리언스의 이미지 그대로 이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 모두 사실일까요? 캣과 그 친구들은 사건을 겪으며 그냥 재미없이 견학한 여행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기억에도 오래오래 남겠죠.^^ 이야기가 끝나면 다양한 형태로 뉴올리언스에 대해 알 수 있답니다. 캣네 반 아이들이 방문했던 여행지의 사진도 볼 수 있고 다녀온 후의 캣이 쓴 견학문도 흥미로워요. 뉴올리언스에 대한 모자란 지식과 함께 어떻게 글을 쓰면 더 잘 쓸 수 있는지도 함께 배울 수 있거든요. 또 "나라면~"이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견학하고 어떻게 행동했을지도 생각해보게끔 하는 페이지도 있답니다. 뉴올리언스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조금 더 알게 되었겠죠? 그리고 아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뉴올리언스가 배경이 된 문학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되겠네요. 원래 독서란, 이렇게 하는 거랍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