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 청어람주니어 고학년 문고 2
임다솔 지음, 정은민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1980년 5월 23일은 내게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아니 특별한 날이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나는 너무 어렸을 때였다. 그런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줄 수가 있을까. 나 또한 시간이 흐른 후 단 몇 줄로 표현된 교과서를 통해 알았을 뿐인데.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그 시대를 처절하게 느끼며 살았던 나이가 아니라고 그냥 모른 척 살아갈 수는 없다. 그 일은 분명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그 시절을 거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에겐 관심 밖의 주제라 지루해질 수 있을 뻔한 이야기를 너무나 적절하게 판타지와 엮어내어 감동과 함께 선사한다. 

외할머니가 이상해지셨단다. 이제 더이상 시골에 혼자 둘 수 없다고. 여름방학 동안 즐거운 계획을 잔뜩 새워둔 나빛이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외할머니라고 깊은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나빛이에겐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신나게 노는 계획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니댁. 그곳에서 나빛이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엄마와 외할머니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 그리고 도착한 날 밤 할머니를 따라 곳간에 갔다가 나빛이는 투명인간인 채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을 적의 외할머니는 광주로 향한다. 1980년 5월 23일이란다. 그리고 목격하게 된 이상한 광경. 나빛이로선 이해할 수가 없다. 시민을 지켜주어야 하는 군인이 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지. 외할머니 등에 업혀 죽어간 사람은 정말 엄마인지. 

"나빛은 벌거숭이가 된 엄마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가슴에 난 멍 자국이 이젠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98p

사춘기 아이라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선 오해가 생겨나고 이해하지 못해 한 쪽이 상처받곤 한다. 더욱 관심 받고 더욱 이해받고 싶은 나빛과 엄마나 나빛 엄마와 외할머니처럼 모녀 사이는 오죽했을까. 나빛은 외할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함과 더불어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며칠 간의 그 이상한 경험을 통해 나빛은 엄마와 외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또 한 사람, 밀짚모자 아저씨와 만나게 되면서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비밀이 밝혀지면 시원~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그 진실은 너무나 쓰리고 아픈 진실이다. 

"아저씨도 잘못 없어요. 아저씨, 죄책감으로 더는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 힘들게 살았던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에요. 시대가 만든 아픔이었지요. 그래도 지금 우리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170p



광주의 5.18 사태를 이렇게 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낼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을 통해 그 이후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또 단지 명령을 받고 가해자가 된 수많은 군인들은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왔는지가 절절하게 전해진다. 나빛이의 눈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본다.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나빛에게 얼마나 이상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외할머니에겐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이 분명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저 묻어만 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커다란 사건이나 한 개인의 말 못할 사정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나빛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듯이, 그 시절의 역사를 알게 된 나빛이는 이제 지금의 우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전해준 외할머니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