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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평점 :
"젊음"이란 그 자체만으로 빛나고 아름답기에 많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기 위해, 혹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은 점점 늙어간다. 특히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에 "불혹의 나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것일게다. 하지만.... 만약! 한창 빛나는 스무 살의 얼굴 그대로 전혀 늙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그 방법을 따르지 않을까? (현대에서 보톡스 주사를 맞고, 주름 제거 수술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스무 살의 도리언 그레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미모를 지녔다. 이런 그를 숭배하게 된 화가 바질은 도리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이 초상화를 본 헨리는 너무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그 나이 때에 어울리는 약간의 자만심과 당당함 그리고 젊은이만의 솔직함을 지닌 도리언에게 강한 호기심을 가진다. 그렇게 절대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세 사람이 만나게 된다. 도리언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바질로서는 인생 최고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그럼으로서 도리언은 자신의 외모에 나르시즘을 갖게 되고, 언제나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헨리의 철학이 도리언에게 영향을 미치며 도리언은 그림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소망을 빌게 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나는 점점 늙어갈 테고 끔찍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겠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은 모습 그대로일 거예요. 오늘 이 6월의 어느 한 날만큼도 늙지 않겠지요....... 다른 방식이 있기만 하다면! 언제까지나 젊음을 간직하는 것은 나고, 늙어가는 것이 이 그림이라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줄 거예요. 이 세상을 통틀어 내가 주지 못할 건 하나도 없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도 바칠 거예요."...41p
그리고 그 소원대로 도리언 그레이가 조금씩 성장하며(성장한다는 것은 더이상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 온갖 죄악을 이해하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지르는 악행들에 따라... 그토록 아름답던 초상화는 점점 비열해지고 잔인한 미소를 띠며 늙어간다. 자기 대신 온갖 죄를 떠안고 늙어가는 초상화를 바라보며 도리언 그레이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 자신은 더이상 늙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생기는 기쁨! 그림이 변할 때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따라 너무나 추악하게 변해가는 그림에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며 드는 혐오감까지!!!
도리언으로서는 아주 간절했지만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망이 정말로 이루어짐으로서, 그 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점점 더 바닥으로 추락해 간다.
"아! 그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짐은 초상화가 짊어지고, 그는 때묻지 않은 찬란한 젊음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달라고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기도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얼마나 소름 끼치는 시간이었나! 그의 모든 실패가 그 일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살아오면서 죄를 저지를 때마다 바로바로 확실한 처벌이 뒤따랐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인간을 정화시켜준다. "...321p
아름다운 얼굴이란, 미적으로 아름다운 얼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 사람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 온화한 미소가 주는 기분 좋음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거울도 자주 보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택하겠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라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마치 희곡을 풀어놓은 듯한 서술이다. 각 장은 한 장소에서 일어나고 대화와 사건이 지문과 구별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한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한 인물의 대사나 서술을 통해 너무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쏟아냄으로서 지루함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 철학들은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 본인의 생각을 잘 드러내 주겠지만,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갈길을 잃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