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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청춘"이라는 단어는 대게 젊은 시절을 뜻하지만 왠지 내게는 계속해서 낯선 낱말로만 다가온다. 무언가에 오롯이 빠져본 적이 별로 없었고 무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적도 별로 없었다. 그냥 계속해서 '난 무얼 좋아하고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만 생각하다 말고 생각하다 말고를 되풀이했다. 내 인생인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 상황에 떠밀려서만 결정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청춘"의 이미지와는 참 다르게, 그냥 미지근하게 살아온 내 청춘은... 어디쯤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가끔은 들곤 한다.
작가는,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을 쓰기를 바랬다는데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의 "청춘"이 내가 그동안 "청춘"이라는 단어에 이미지화 했던 것들과 딱 맞는 것 같다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서야 생각했다. 그러려면 그들의 청춘에 빠질 수가 없었던 "시대 상황"이 어느 정도 수그러진 다음에 대학에 입학했던 나는 어쩌면 그런 미지근한 청춘을 보낸 것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아마 성격이 다를지도. 깊은 사색과 고민에 잠기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리는 나라면... 아마도 같은 시대에 그들과 같은 현장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 나름대로의 미지근한 청춘을 또다시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부러우면서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신경숙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언제나 비슷한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상황,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생각들. 그런데 이번 소설의 그녀 곁에는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다른 친구들이 등장한다. 윤이, 단이, 명서와 미루. 하지만 서로에게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한 존재가 될수록 이들은 이들만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걸까.
단단하게 묶여 서로에게 위로가 되며 "죽음" 대신 "삶"의 희망을 바라보던 이들 앞에 윤미루의 화상 입은 손의 원인이 밝혀지면서 윤이 절망을 느꼈듯이 나 또한 좌절을 맛본다. 난 "밝음"이 좋다고, "희망"만 바라보고 살면 안되냐고... 간절하게 바래본다. 하지만 운명은... 아니... 그 시절, 어쩌면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때로는 깊은 절망과 좌절을 맛봐야지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이거나 미미한 사물이거나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런 순간이."...347p
네 명의 주인공들에게 청춘은... 함께 보냈던 약 일주일간의 일상을 함께 했던... 편안하면서도 행복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까.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반짝거렸던 바로 그 시간. "언젠가는..."이라는 기약을 남길 수 있었던 그 때.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그들은 어려운 시절도 견디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뭐든지 귀찮고 내 위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말해줄 수 있을까. 내가 주인공들에게 느꼈던 질투는 어쩌면 그러한 배려와 바지런함과 끊임없는 사색과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방법에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들의 청춘은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