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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오후의 성찰
정성채 지음 / 싱긋 / 2014년 11월
평점 :
아침, 가족들이 회사와 학교에 가고 조금은 한가한 시간이 오면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신문을 펼친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도 가져보고, 내 일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들은 열심히 스크랩도 하고, 요즘 즐겨 읽는 연재 만화도 꼭 챙겨 읽으며 나름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옆에는 이제 갓 돌이 지난 막내딸이 가끔 방해를 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엔 그녀에게도 활발히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라 하루 중 그래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점심과 저녁의 딱 한중간인 오후이다. 햇살이 뒤로 넘어가며 부드러운 빛을 보낼 때,
조금은 나른한 몸으로 진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다. 지금의 나에겐 엄청난
사치이지만.

<어느 늦은 오후의 성찰>이라는 제목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이 시간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뒷표지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소회"라는 소제목이 더욱 좋았다. 딱 읽고 싶은 책이다...라는 느낌!
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작가 소개를 빼놓지 않고 읽는다. 또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작가들이 써놓은 머리말 등도 꼭 읽는다.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데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전초작업이랄까. 그런데 <어느 늦은 오후의
성찰>은 책 한 권의 가장 큰 교훈과 감동이 이 "들어서며"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평소 생각해 오던 것들과 같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그랬을까.
"세상 모든 글은 자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밖의 어떤 대상이나 관념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소거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략) ... 자기의 반영과 투사가 글입니다. 매끄러우면 매끄러운 대로, 논리적이면
논리적인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실존의 작업입니다."...7p
어떤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 작가의 수필을 찾아 읽는 수고를 하는 이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의 경우는 소설보다 수필로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기도 했다. 정성채 작가의 수필은 그의 앞의 문장들처럼 그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읽는 내내 그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대로
그대로 따라가며 생각도 해보고 상상도 해보았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제 1장은 어느 늦은 오후의 성찰, 제 2장은 먹고사는 언저리에서, 제 3장은 깨달음이 불편할 때인데
제 1장과 제 2장이 작가가 생활하며 깨닫고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낸 글이라면 제 3장은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작가는 좀 더 잘 보이려고,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천천히, 조금씩
풀어놓는다.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하고 어떤 사건들을 통해 깨닫고 더 깊이 사유하게 된 것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 해 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인지. 그가 작가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깊은 생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는 할 수가 없다. 꼭 어떤 장소, 어떤 분위기가 되어야만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나 자신을 돌아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젠가 작가처럼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단 한 편이라도 나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