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 너를 - 화가가 사랑한 모델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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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자오정의 <로빙화>에서 주인공 곽운천은 자신이 가진 심성과 가치관대로 행동하려고 하지만 결국 사회의 파벌 싸움에 밀려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제자를 그자리에 둔 채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젊은 미술대학생 곽운천은 사랑하는 이, 임설분에게 편지를 보내 그동안 못 다한 사랑의 말을 전한다.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화가에게 있어 모델이란 단지 하나의 피사체가 아닌 자신이 담고 싶은 영감과 영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피사체로서의 모델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리고, 또 그리고 싶은 이는 화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은 사람이라는 우주를 그린 화가들과 그 화가들의 우주가 된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그 가운데서도 '뮤즈'로 불리는,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모델들에 대한 책이다. "...4p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학예와 예술의 아홉 여신, '뮤즈' 후에 작가나 화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를 일컫게 된 말이다. 자꾸 그리고 싶고 새로운 창작열을 불러일으키는 이들 존재는 결코 그 자신들의 능력에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아름답거나 모두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만 특별한, 너무나 사랑해서 저절로 영감이 떠오르는 존재일 것이다. 많은 화가들은 그 예술적 섬세함에 따라 순탄치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이 많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다양한 여성들을 사랑한 이에서부터 파멸적인 사랑에 빠진 이들까지. 이 책은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서 그림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1장 "이브의 정원에서"와 2장 "베아트리체의 언덕에서"로 르네상스 이후의 라파엘로와 고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마도 시대순으로 정열이 된 듯한데 1부와 2부의 차가 크지 않아서 대부분은 미술사를 읽듯,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흔히 잘 알려진 유명한 화가에서부터 작품은 어디선가 보아 낯설지 않지만 이름은 처음 들어본 듯 낯선 화가들까지 두루 소개되어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아 즐거웠다.

 

 

 

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장의 라파엘로에서부터 시작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라 포르나리나>(1520)의 그림 설명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림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들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로마의 산타 도로테아에서 제빵사 프란체스코 루티의 딸로 태어난 마르게리타는 라파엘로가 로마에서 일한 12 동안이나 함께 한 정부이다. 워낙 성욕이 강해 여러 여인들과 사랑놀이를 한 라파엘로였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마르게리타와의 관계만은 계속 유지해 왔다고 한다. 

 

 

 화가와 모델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하나로 칭송되어 왔지만 결혼을 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역시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혼녀가 있었음에도 결혼을 미루며 마르게리타를 배려했던 라파엘로는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에 성모 마리아로, 마돈나로 그 부드럽고 자애로운 마르게리타의 표정을 그려넣었다. 그림의 표현에선 라파엘로의 마음이, 그림 속 여인의 표정이나 눈빛에선 마르게리타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19세기 화가들의 이야기 중 티소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인과 그녀의 아이들까지 아름답게 화폭에 담은 것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을 그의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곧이어 드리운 그녀의 병과 죽음을 앞다고 티소가 느꼈을 괴로움 또한 고스란히 그림을 통해 전해진다.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림 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감정들이다.

 

 

<그리다, 너를>은 내게 미술에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특히 19세기의 다양한 화가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좋아했던 클림트의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또한 그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몰랐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그림들. 특히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린 누드나 특이한 그림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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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코트 철학하는 아이 5
짐 아일스워스 글, 바바라 매클린톡 그림, 고양이수염 옮김 / 이마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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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습관이 있다. 신발 벗어 제자리 놓기, 치약 제대로 꼭~ 짜는 법, 물 절약, 전기 절약하는 법 등이 쌓여 가치관까지. 이런 것들은 나 스스로 쌓고 만든 것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들이 행동하시는 것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이 물려주시는 것들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이렇게 정신적인 것, 인생을 살면서 크게 도움 되는 것들이 훨씬 많다.

 

 

<할아버지의 코트>는 할아버지가 아끼시던 코트의 순환을 통해 할아버지의 정신이 딸에게, 손자에게 전해짐과 동시에 우리 삶의 순환이나 자원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아델과 사이먼>의 익숙한 그림체와 마치 만화처럼 그림과 글이 교차하며 쉽게, 즐기며 읽을 수 있지만 사실 쉽지 않은 주제를 담은 그림책이다. 물론 그렇게 심각하게 철저히 파헤치듯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히 읽고 흡수되도록 하면 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가 미국에 이민 와서 재봉사가 되고 할머니를 만나 결혼할 때 할아버지는 멋진 코트 한 벌을 만들었다. 결혼식 때 입었던 그 코트를 아주 좋아한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날마다 입고 또 입었다. 나중에는 너무 낡고 헤져서 ...

 

 

더이상 못 입을 지경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코트를 버리는 대신 자르고 오려서 박고 기워 재킷을 만들었고 그 재킷을 입고 또 입었다.

 

 

 

또다시 낡고 헤진 그 재킷은, 할아버지의 딸이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엄마의 엄마가 자라고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조끼로, 넥타이로 변신했다. 다시 그 손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자랄 때, 넥타이는 수명을 다 했고 이젠 버려지는가 싶었지만 ...

 

 

생쥐 인형으로 재탄생했다. 더이상 쓸모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넥타이의 또다른 변신은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증조 할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그 생쥐마저 찢어지고 헤져서 낡을 천 조각이 되어서야... 할아버지는 증손자를 안아주며

"괜찮다, 아가. 그만하면 됐어."라고 말씀해주신다.

 

아낌없이 내어준 할아버지의 사랑에 목이 메어 온다. 여기서 끝난 것처럼 보인 헤진 천 조각은 엄마 쥐가 가져가 새끼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재탄생 하고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새끼 쥐들의 안락한 둥지가 된다.

 

요즘엔 헤질 때까지 옷을 입는 사람들도 드물다. 유행에 뒤져서 조금 맞지 않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많은 물건이 버려진다. 아까워 하지도 않고 버리고 새 물건을 사기 급급하다. <할아버지의 코트>를 읽으며 잠시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버렸던 많은 물건들을 생각했다. 단지 그 물건들이 다른 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제대로 물건을 사용하는 법을 제대로 정의내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딸에게, 손자에게, 증손자에게 물려준 이 정신처럼 일상 생활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물려줄 많은 습관들이 올바른 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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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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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허무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그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매 순간이 소중하다고 해서 바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가치있는 만큼 자신에게 꼭 알맞게, 행복하게 사용해야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이들에게든 어른에게든 마찬가지이다.

 

<시간을 파는 상점>은 추리 기법과 철학을 결합한 청소년 소설이다. 혼자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를 돕기 위해 몇몇 알바를 해보다 실패하고 좀 더 색다른 일을 해보기로 결심한 온조. 인터넷 카페에 "시간을 파는 상점"을 오픈한다. 다른 사람의 일을 의뢰받아 그들의 시간을 대신 사는 것이다. 돈을 받는다는 께름칙한 기분 때문에 주위에는 아무도 알리지 않았지만 카페에는 자신의 신상이 올려져 있다. 온조가 처음 맡은 일은 다소 수상한 일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일들을 맡아 하면서 온조는 조금씩 시간에 대해, 삶에 대해,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청소년 도서,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의 대부분은 주인공들의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들에겐 결핍이 있고 사춘기를 겪거나 갈등이 깊어 사건들을 통해 해소되고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파는 상점> 속 온조는 조금 다르다. 아버지의 결핍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아픔이 크지는 않다. 사춘기 특유의 심한 갈등도 없다. 당차고 밝고 자신만만한,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온조는 오히려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의 갈등, 상처를 보듬어준다.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는 것은 청소년들 각자의 갈등 이외에 크게 "시간"이 함께 한다. 작가는 청소년 소설을 구상하며 철학을 결합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 속에 시간을 끼워넣었다. 그 대화가 사실 너무 강의식이라 책을 읽는 아이들로서는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라면 단연 <모모>를 떠올릴텐데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여 낸 시간의 가치가 아닌, "시간은 이런 것이니 잘 써야 한다"고 일러주는 듯한 구성이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일단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가독성에 책 읽기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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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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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에는 대부분 책을 좋아한다. 어떤 이유로든 저절로 책을 손에 놓게 되면서 책과 멀어지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게 될 때까지. 그때부터 다시 책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책들이 쏟아진 후였고 매년 매달 새로운 책들이 쏟아졌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읽었다. 남들이 베스트셀러라고 말하는 책들부터 도서관에서 앞뒤 표지를 보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서평을 보고 재미있을 만하다고 판단한 책들.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단편적인 이미지나 설명 만으로는 제대로 된 책을 고를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몇 년이 지난 후까지 기억되는 책은 그 많은 책들 중 극히 일부였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좋은 책들만 읽을 수 있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봤을 것이다.

 

책 <오 봉 로망>은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했을 만한 이러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소설이다. 처음엔 이 소설이 그런 소재의 추리 소설인 줄 알았다. 세 건의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누군가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누군가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 건의 사건, 그리고 이 피해자들이 연락한 이방 게오르그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오 봉 로망(좋은 소설이 있는 곳)". 개성 강한 서점 직원이었던 이방과 좋은 소설을 사랑하는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가장 우울했던 시간의 늪에서 그 시간을 구해준 좋은 소설들을 위해 만든 곳. 엄선된 좋은 소설들만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서점은 호황을 이루지만 곧 여러 군데에서부터 협박과 조롱을 당하고 조직적인 사건이 생기기에 이른다. 이들은, 우리는 이 서점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여러 책을 고르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나 또한 책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다. 그럼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개인의 취향이나 그때 그때의 감정에 따라 좋은 책은 달라질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몇 년이 지나도 다시 읽고 싶어지거나 여전히 생각나는 책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역니사 나도 오 봉 로망에 동의하는 편이다. 수없이 많은 책들이 매일 같이 쏟아지고 출판사의 입김이나 작가의 유명세에 따라 당연히 좋은 책인 것처럼 홍보되는 세상에서 간간이 너무나 좋은 책들이 조용히 묻혀 읽혀지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오 봉 로망>은 독자들의 이러한 열망 뿐만 아니라 출판 없계의 나쁜 관행이나 유통 구조, 저자들의 허영, 자만심 등을 가차없이 비판한다. 혹은 서점 오 봉 로망의 시스템에 따라 엄선된 책만을 판매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강요가 아닌지에 대한 생각거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은 좋은 책을 원할 것이다. 홍보에, 유명세에 유명해져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잠깐 지나가는 인기작이 아닌,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책을.

 

"우리는 좋은 소설을 원한다.

 인간의 비극도, 일상의 신비도 우롱하지 않는 책을 원한다.

 우리를 다시 쉬게 하는 책을 원한다."...353p

 

진심으로 서울 어딘가에 이런 서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쁨에 찬 비명을 지르며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팔 한가득 책을 안고 돌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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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6일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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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이것으로 세 번째이다. 어쩌다 처음 접한 <리셋>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똥을 밟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가에서 많이 읽은 듯한 내용에 구성까지, 마지막 결론까지 반전 한 번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로써 이 작가의 작품은 두 번 다시 읽지 않겠다... 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너무나 예쁜 표지에 감성적일 것 같은 내용에 홀딱 반해 빌려온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같은 작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마치 에세이 쓰듯 잔잔하게,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오래오래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은 책이었다. 보통 작가의 책들은 비슷하다. 한 번 좋으면 죽~ 좋아하거나 실망하면 그 이미지도 계속되기 마련인데 기타무라 가오루의 책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이 작가의 추리소설 보다는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 훨씬 좋다.

 

<8월의 6일간>은 후자 쪽의 책이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다행스러운지~. 앞으로 기타무라 가오루의 책을 계속 살펴볼 수 있어 말이다. <8월의 6일간>은 일종의 산행기이다. 이제 곧 마흔. 언제나 바쁘고 힘든 편집자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도 없다. 더 깊은 곳을, 더 나쁜 점을 보여주기 싫어 스스로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고 어느 것에도 애정을 줄 수 없어 스스로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 우연히 한 후배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다.

 

"내일, 산에 안 갈래요?"...13p

 

흠~ 솔직히 난 산이 별로다. 아니, 산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등산이라는 것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일단 체력이 안되고 그래서 힘들기만 하다. 물론 체계적으로 노력을 해 보거나 조금씩 늘려볼 생각을 안 해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죽을 것 같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하고 다리가 후들거리게 만드는 등산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등산이 하고 싶어졌다면, 역시나 작가의 이 감성적인 소설이 또다시 내 마음을 관통한 것이리라.

 

다섯 번의 등산을 하면서 주인공은 30대 후반에서 마흔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 와중엔 편집자에서 부편집장으로, 다시 편집장으로 승진을 하기도 하고 예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기도 하는가 하면 옛 친구의 죽음을 겪기도 한다. 아랫 사람에서 윗사람으로 자신의 위치가 변하며 겪는 어려움이라든지, 바쁜 일상 속에서 겪는 외로움이나 우울함, 앞뒤로 꽉 막힌 것 같은 스트레스들을 그녀는 꾹꾹 담아 두었다가 2박 3일 혹은 3박 4일 여정의 산을 오르며 조금씩 날려보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절경의 위대함 앞에 숨을 토하며.

 

단순한 일을 반복하거나 오랜 시간을 걸을 때 우리는 곧잘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주인공 '나'는 바로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것도 혼자서. 때론 등정 중 낯선 만남이 따르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산을 오르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산을 계속 타는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오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도피가 아니다."...58p

 

잔잔하지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가 등산을 계획하고 짐을 쌀 때마다 고르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 즐거움들 중의 하나이다. 가끔 몸이나 마음이 지칠 때 꺼내들고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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