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6일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이것으로 세 번째이다. 어쩌다 처음 접한 <리셋>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똥을 밟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딘가에서 많이 읽은 듯한 내용에 구성까지, 마지막 결론까지 반전 한 번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로써 이 작가의 작품은 두 번 다시 읽지 않겠다... 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너무나 예쁜 표지에 감성적일 것 같은 내용에 홀딱 반해 빌려온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같은 작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마치 에세이 쓰듯 잔잔하게,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오래오래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은 책이었다. 보통 작가의 책들은 비슷하다. 한 번 좋으면 죽~ 좋아하거나 실망하면 그 이미지도 계속되기 마련인데 기타무라 가오루의 책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이 작가의 추리소설 보다는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이 훨씬 좋다.

 

<8월의 6일간>은 후자 쪽의 책이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다행스러운지~. 앞으로 기타무라 가오루의 책을 계속 살펴볼 수 있어 말이다. <8월의 6일간>은 일종의 산행기이다. 이제 곧 마흔. 언제나 바쁘고 힘든 편집자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도 없다. 더 깊은 곳을, 더 나쁜 점을 보여주기 싫어 스스로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고 어느 것에도 애정을 줄 수 없어 스스로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 우연히 한 후배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다.

 

"내일, 산에 안 갈래요?"...13p

 

흠~ 솔직히 난 산이 별로다. 아니, 산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등산이라는 것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일단 체력이 안되고 그래서 힘들기만 하다. 물론 체계적으로 노력을 해 보거나 조금씩 늘려볼 생각을 안 해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죽을 것 같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하고 다리가 후들거리게 만드는 등산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등산이 하고 싶어졌다면, 역시나 작가의 이 감성적인 소설이 또다시 내 마음을 관통한 것이리라.

 

다섯 번의 등산을 하면서 주인공은 30대 후반에서 마흔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 와중엔 편집자에서 부편집장으로, 다시 편집장으로 승진을 하기도 하고 예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기도 하는가 하면 옛 친구의 죽음을 겪기도 한다. 아랫 사람에서 윗사람으로 자신의 위치가 변하며 겪는 어려움이라든지, 바쁜 일상 속에서 겪는 외로움이나 우울함, 앞뒤로 꽉 막힌 것 같은 스트레스들을 그녀는 꾹꾹 담아 두었다가 2박 3일 혹은 3박 4일 여정의 산을 오르며 조금씩 날려보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절경의 위대함 앞에 숨을 토하며.

 

단순한 일을 반복하거나 오랜 시간을 걸을 때 우리는 곧잘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주인공 '나'는 바로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것도 혼자서. 때론 등정 중 낯선 만남이 따르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산을 오르며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산을 계속 타는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오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도피가 아니다."...58p

 

잔잔하지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가 등산을 계획하고 짐을 쌀 때마다 고르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 즐거움들 중의 하나이다. 가끔 몸이나 마음이 지칠 때 꺼내들고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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