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책방 - 제일 시끄러운 애가 하는 제일 조용한, 만만한 책방
노홍철 지음 / 벤치워머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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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이라는 동네는 처음 들어봤다. 이름 그대로의 이미지대로 생각하여 부산 어디쯤일까... 생각만 해봤을 뿐. 북적거리는 서울 중심, 그것도 이태원 어딘가에 시골 같은 마을이 있다니 정말 의외이다. 전혀 서울 같지 않은 그곳이 요즘은 조금 들썩거리는 모양이다. 정이 가득하고 옛것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서 그곳으로 간 사람들일텐데 소문이 나며 사람이 많아지고 월세가 오르는 등의 부작용도 벌써 생겨났단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조용하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이웃 간의 정이 가득한 해방촌을 찾아간다.

 

TV 연예인들 중 가장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흥분 상태로 보이던 노홍철씨도 해방촌에 입성했다. 처음 노홍철씨의 독립책방 소식을 본 건 신문을 통해서였다. 전혀 성공할 것 같지 않았던 독립책방들이 몇몇 곳에서 성공한(자리잡은) 듯 보이면서 "책방 주인"의 꿈을 꾸던 많은 이들이 여기에 합류했다. 각각의 아이디어로, 자신이 좋아하거나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분류만을 중심으로 컨셉을 잡고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택한 것이다. 몇몇 독립책방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터넷이나 신문 기사로 소개된 것. 노홍철씨는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든가 하는 편견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직접 주인으로 들어앉아 책방을 운영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책방을 시작하기로 한 것인지, "철든책방"에선 어떤 책들을 파는지, 이 책방이 노홍철씨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책의 표지에서부터 노홍철씨 만큼 톡톡 튄다. 책방 입구가 찍힌 것과 그 안의 카운터 속 작업 중인 노홍철 씨의 사진 2장이 겹쳐 보이는 입체 카드가 겉표지를 장식한다. 이 표지 속 책방의 입구는 흔히 볼 수 있는 엔틱하면서 멋진 카페 같은 느낌이다.

 

책은 노홍철씨가 해방촌을 알게 된 계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공간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냥 도심 속 시골 같은 곳이 아니라 그 잠잠한 곳 안에는 아이디어가, 다양한 사람들의 즐거운 생각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홍철씨는 직접 그곳에서 지내며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기로 한다.

 

책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읽다 보니 노홍철씨를 다시 보게 된다. 책 표지 속 책방의 입구는 진짜 입구는 아니다. 그가 구한 책방의 위치 또한 주택가 한중간, 아주 조용한 곳이라 노홍철씨는 상가 건물을 주택으로 만들기 위해 전면을 막아버린 벽을 허물 수가 없었단다. 겉으로 띄이기 보다는 조용히 이 마을에 녹아들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정 많은 이 동네 어른분들이 장사하려면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충고해도 괜찮다고, 했단다. 주택을 개조할 때에도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재활용하거나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었단다. 그 마음씀씀이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얼마전 큰맘 먹고 큰딸과 홍대에 있는 독립책방 한군데에 다녀왔다. 오후에 일을 하고 있어 오래 시간을 못내니 간 김에 다 둘러보고 오리라는 마음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딱 한군데 뿐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책보다는 이미지 도서들을 많이 파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일상생활에 지친, 매일 같은 생활 속에 메마른 감성에 물을 부은 듯한 느낌이랄까. 우리 동네에도 이런 독립책방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무 때나 들러 주인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새로운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숨겨진 책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울까.

 

노홍철이라는 유명인이 낸 독립책방이 해방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는 모르겠다. 좋은 방향일 수도 있겠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해방촌까지 간 젊은 작업가들이 올라가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노홍철씨가 의도했듯이 조용한 동네에 조용하게 서로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유지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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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가 묻는 말
김미조 지음, 김은혜 그림 / 톡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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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를 처음 본 건 책이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화려한 배경음악과 아름다운 그림이 어린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피노키오>를 읽게 된 건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고 난 한참 뒤였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 보다는 그림이나 완역본에 더 신경써서 읽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긴 이야기였구나...하는 첫 생각과 피노키오는 어째서 매번 함정, 유혹에 빠질까 하는 멍청한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피노키오가 묻는 말>은 원작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에 집중하여 다시 재구성한 책이다. 작가에게는 나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피노키오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나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며 모험하는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항변하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해서 묻고 있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어쩌면 어린 피노키오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째서 나는 한 번도 피노키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안정된 집에서 얌전하게 놀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탐험하기를 바라는 아이들, 전체를 조망하고 계획을 세워서 영리하게 말하기 보다는 바로 앞의 순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을 말이다. 그건 영악하고 나쁜 게 아니라 그저 단순하고 순수한 것 뿐인데.

 

"앞으로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렴."

...(중략)...

"그거 알아요?"

"코가 늘어나는 길이만큼 내 마음도 상처를 입었어요."...68p

 

어릴 적 읽었던 <빨간머리 앤 8>에서 앤이 막내딸의 거짓말에 웃음을 참으며 호응해주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나 또한 그런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일도 말이다. 사실 큰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거짓말은 나쁘다고, 좀 얌전히 좀 있으라고, 조용히 좀 하라고 다그치고 잔소리를 하면서 키웠다. 어린 나이에 키운 것도 아니면서 뭔가 여유가 없었고 아이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훨씬 뒤에 둘째를 키우면서야 나는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조금씩은 잔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속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함께 장단을 맞춰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아이를 피노키오에 대입하고 나서야, <피노키오가 묻는 말>이라는 책을 통해서야 제대로 피노키오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아이야, 두려워하지 마. 넌 계속 너였단다. 나무였을 때도, 나무토막이었을 때도. 그러니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앞으로도 너는 너로 있을 거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60p

 

<피노키오>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었다면, <피노키오가 묻는 말>은 어른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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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지식의숲 K
메튜 베틀스 지음, 강미경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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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3,4 학년 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1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아주 오래 된 학교였다. 외관도 고풍스러웠고 책상이나 복도, 교실 바닥 등도 아주 오래 된 마루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아주 인상적인 기억은, 그 학교의 도서관이다. 큰 도서관은 아니었다. 복도 가장 끝 교실에 들어가면 1층 책장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 2층으로 올라가는 아주 좁은 나선형 나무 계단이 있었다. 그 위쪽도 낡은 책장과 책으로 가득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는 그 계단 아래 구석. 그곳에 앉아 고른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곳이 내가 경험한 첫 도서관이다.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인지 내게는 도서관이 언제나 동경하는 곳이다.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가고 싶은 곳.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런 도서관을 가깝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행이 아이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도서관의 역사라고 해봤자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기본 지식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내게 무한한 충격을 준 것 같다. 그나마 세계사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나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싶다.

 

책은 도서관이라는 곳을 정의내리면서 시작한다. 어떤 곳인가...하는 물음으로. 그렇게 시작된 도서관의 역사는 그야말로 "소란스럽다". 처음에 어떻게 도서관이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어가며 "지혜, 지식"의 창고로 만들어진 도서관이 권력을 위한, 자신만의 소유욕으로 시작했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불타버리는 도서관들까지, 도서관들의 발전과 사서들의 위치, 그들의 목표와 발전까지 이해할 수 있다.

 

몇몇의 선구적인 사서들로 인해 도서관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비록 그 시대에는 지탄받고 배제될지언정 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위의 만류나 비난에도 꿋꿋이 일 했던 밴틀리나 편집증적인 효율성을 강조했던 듀이 같은 사서들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사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도서관 자체의 이미지는 과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변했는가...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로 압축된다. 즉,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238p

 

도서관엔 많은 책이 모여 있고 이런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가. 1년 동안 단 한 권도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의 힘을 빌려서라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사서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과연 아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방대한 양의 지식에 눌리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인 매튜 배틀스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사서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끝도 없이 연관된 지식들이 줄줄이 연결된다. 저자의 어마어마한 지식이 그저 존경스럽다. 다양한 지식에 오랜만에 자극을 받았다. 아직도 내겐 공부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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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bomi 2016-11-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도서관에 가고 싶네요.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없어서 아쉬워요. 도서관에 가면 서가에 꽂힌 책등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곤 했는데, 그 분위기와 느낌이 떠오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ilovebooks 2016-11-22 01:21   좋아요 0 | URL
전 가까운 곳에 도서관을 두고서... 좀 멀리 중고서점으로 가는 것 같아요.ㅎㅎ
책 소유욕이 더 크다고나 할까요. 그 책장들 사이 누비면서 어떤 책을 살지, 그냥 바라보며 어떤 책이 있는지만 생각해도 막~ 행복해지더라고요.^^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2
친치아 기글리아노 글.그림, 유지연 옮김 / 지양어린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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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존 말루프는 경매를 통해 사진 필름들을 구매하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사진들은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나 개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개인의 모습을 담고는 있었으나 극히 사적인 개인의 사진이라고 하기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사진들 같아 보였죠. 한 여인이 자신을 찍은 사진들과 거리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있었어요. 존 말루프는 블로그에 이 사진들을 올리고 반응을 보았죠. 그의 생각처럼 이 사진들은 사람들의 호응을 일으켰어요. 결국 전시회도 열리게 되고 이 사진을 찍은 주인공,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사진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는 그 비비안 마미어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에요. 비비안이 애정했던 롤라이 플렉스. 시선이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길거리의 사람들은 특별히 비비안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비비안의 사진들은 거리 자체,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지요.

 

그림책은 담담하게 비비안이 찍은 사진들, 어떤 것들을 사랑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지요. 그녀가 찍은 사진처럼 그림책은 흑백처럼 분위기 있는 그림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흑백 사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비비안의 사진 분위기가 고스란히 책에 담겨있는 듯 해요.

 

 

 

비비안 마미어는 유명한 사진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팔려 알려지기 전까지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가가 있는지도 몰랐죠. 비비안 마이어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였다고 해요. 아이들을 사랑한 만큼 뉴욕 거리의 모습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진 속에 담아놓고 싶었을 뿐이죠. 그렇게 비비안이 바라본 거리의 모습은 필름에 담겨 이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네요.

 

비비안은 죽을 때까지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았던 듯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모두 다르므로 비비안이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외롭고 쓸쓸한 삶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창고에 보관된 필름을 찾을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하여 결국 경매에 붙여지고, 자신의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걸 알면 비비안은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안타깝기도 합니다. 자신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고 말이에요.

 

그림책이 항상 밝고 교훈만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인물의 삶이 주는 여러가지 감정이 아이들에게 주는 울림 또한 중요할 겁니다. 작년에 비비안 마미어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열렸다는데 직접 보지 못해서 무척 아쉽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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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짇고리 - 작은 상자에서 시작되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
송혜진 옮김, 무라야마 히로코 사진, 이치다 노리코 취재.구성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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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 번씩은 인형 옷도 만들어보고 커텐으로 주름 잡아가며 몸에 대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자랐다. 인형 옷 만드는 건 잘 안됐지만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사부작거리는 것들을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스퀼자수나 털실뜨기 같은 것들은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원대한 꿈을 품고 의류학과에 들어가 디자이너가 되려 했으나 좋아하는 것과 재능은 다르다는 사실, 취미와 직업은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잠시 손을 놓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이켜 보면 나는 계속 바느질인인 것 같다. 임신해서는 십자수, 좀 지나 퀼트에 손대며 조금씩 취미로 이어졌고 바쁜 지금도 새로운 자수법에 대한 책이나 바느질에 대한 책이 있으면 눈부터 가니 말이다.

 

<나의 반짇고리>는 일본에서 바느질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5명의 예술가와 그 외 평생 바느질을 해오신 여러 분의 반짇고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는 5명의 예술가(아동복 작가, 원단 작가, 자수공예가, 일러스트레이터, 아틀리에 오너)가 살아온 이야기와 바느질에 관한 이야기, 반짇고리와 작업실 이야기 등이 전개된다. 편안하고 좋다. 우선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이 깔끔하든 지저분하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자신이 편안한 다음에야 좋은 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책 속 그들의 작업실 사진과 이야기들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집집마다 반짇고리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나도 있다. 두 개나. 하나는 큰 작업(십자수나 퀼트, 옷만들기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 좀 큰 바구니에 담아놓고 뭔가 마음이 동할 때 꺼내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그 반짇고리에는 원단 가위, 색색의 실, 단추, 작은 원단, 지퍼, 고무줄 등 가지가지가 들어있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창고용 베란다에 처박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아주 작은 통에 담아두고 단추가 떨어졌거나, 기장을 줄이거나 늘릴 때 등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때문에 지저분한 화장대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나름 바느질인이었기 때문에 쪽가위나 니퍼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편하게 사용 중이다.

 

바느질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나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좋아서 하는 것일 게다. 바느질이라는 것은 움직임이 크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소함, 아주 작은 것들,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이르는 듯한 고용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바느질을 놓을 수가 없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을 통해서 제 마음의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무엇을 만드냐보다도, 만들고 있는 도중의 시간들이 소중한 거예요."...73p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 이미지들을 바느질에 담는다는 이 예술가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바쁘다고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창작열이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것 같다. 무언가 나만의 작은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별 것이 아닐지라도 그런 스스로 만든 작은 것들은 행복감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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