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힐링 - 상처받은 영혼들의 치유를 위해 떠나는 문학 기행
박철희 지음 / 렛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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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의 두개골을 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겠는가?(...) 내 생각에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프란츠 카프카


책을 읽는 이유가 무얼까. 어렸을 땐 재미를 위해서 읽지만 조금 크면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좀 무르익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더 나아가기 위해 읽기도 한다. 책 속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웃으며 위로 받기도 하고, 미처 나 스스로에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주인공을 통해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좋은 책, 좋다고 하는 책을 고른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읽었던 책도, 내가 겪은 상황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읽으면 깊은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문학 힐링>은 카프카와 브레히트 비평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가 말해 주는, 상처 입은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주인공들을 통해 함께 상처 입은 부분을 치유하고 공감하며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총 14편이 소개되고 파트 1 상처의 연원에서부터 깊어가는 상처와 파트 6 상처의 치유를 위하여까지 상처라는 주제로 각각의 작품 속을 들여다본다. 


여러 번 읽어 충분히 알고 있는 작품은 딱 한 작품 뿐. 읽었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이 세 작품, 너무 유명해서 제목만 알고 있는 작품이며 소장하고 있는 작품 두 작품이고, 나머지는 한 번도 듣도보도 못한 작품들이다. 처음 <가장의 근심>을 읽기 시작할 땐 쉬운 서평이 아니라 논문처럼 일부러 너무 어려운 어휘들만 사용해서 쓰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차근차근 작품이 늘어갈 때마다 이 책에 빠져들어갔다. 


우선 작품 선정이 너무 좋았다. 이 글들을 읽고 소개된 작품을 모두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왜 지금까지 이런 작품을 알지 못했는지, 혹은 난 도대체 그전까지 어떻게 책을 읽어온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브레히트의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책에서 소개한 대로 아주 짧지만 페부를 찌르는 듯한 촌철살인적인 주제와 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에피 브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처절하게 묘사된 그녀의 삶은 19세기 이야기가 아닌, 바로 여기 21세기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사회적 인습이 어떻게 사람을 짓누르는지 보여준다.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상처는 사람에 의한 것일 수도, 사회적 인습이나 폭력에 의하여, 불의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문학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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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다자이 오사무 지음, 하성호 옮김, 홍승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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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저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의 당당함보다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되기 일쑤다. 그것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남들처럼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아 고민이고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인간 실격>은 그렇게 인간과의 생활에 불편함을 넘어 괴로움을 느끼는 오바 요죠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서문은 아는 마담으로부터 전해받은 사진과 일기장을 읽은 작가가 사진 속 아이에 대해 설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정말 이상하게 기괴한 얼굴을 가진 아이. 그런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또다시 놀랄 정도로 미모의 얼굴이 되다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년 혹은 노인의 얼굴을 한 세 장의 사진이다. 알 수 없는 표정. 인간으로서 도저히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상을 쓰는 것 같기도 한 정말 이상한 표정이다. 작가는 그런 표정을 한 오바 요조의 일기장을 직접 소개한다.


일기는 총 세 수기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요조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야기이고 여기에서부터 요조가 얼마나 인간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서로를 속이는데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희한하게 상처 입지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점조차 깨닫지 못하는 듯 참으로 산뜻한 그야말로 맑고 환하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는 인간의 생활에 가득한 것 같습니다. "...32,p


두 번째 수기가 청소년기의 학교 생활이라면 세 번째 수기는 본격적으로 요조가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점점 망가져가는 그의 삶을 읽고 있노라면 요조에 대한 한없이 애처로운 감정이 솟아난다. 


내가 어느 정도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 또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고 내가 어떻게 해야 그들 마음에 들지, 아니면 그나마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사춘기 때에는 한동안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지내던 때도 있었고 그 긴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나 지금도 인간 관계는 나에게 무척이나 힘든 과정이다. 


오바 요조의 어린 시절에 얼마나 공감하며 읽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그런 그를 이해해주는 주변 인물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나마 요조를 꿰뚫어 본 학창시절 다케이치 덕분에 요조는 그나마 숨 쉴 틈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한 신뢰를 보여준 요시코로 인해 어느 정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요조에게는 끝까지 불행이 뒤따른다. 


요조는 그저 처세술이 없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남들보다 나약하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과 동떨어져 살아갈 수는 없지만 처세술에 뛰어나지 않다고 해서, 너무나 나약한 인간성을 지녔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쉽게 속일 수 있고 쉽게 부릴 수 있어서 괴롭혀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 너무나 연약하고 나약하기 때문에 보살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런 요조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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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할게, 꼭 - 두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한 통의 편지
케이틀린 알리피렌카 외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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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땐, 학교에서 펜팔을 유도하거나 어느 단체에 자주 편지를 보내곤 했다. 편지 쓰기를 통해 글쓰기 훈련을 할 수도 있었지만 위로, 위문의 편지를 쓰거나 나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글쓰기에 나 스스로 썼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군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는 항상 어렵게 느껴졌고, 다른 곳에 있는 친구들도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항상 아빠가 불러주시는대로만 써서 보내곤 했는데, 그나마 스스로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후부터는 학교에서 그런 행사 같은 것도 사라져버렸다. 모두 다 그러려니..하고 쓰고 받아서인지 나는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스스로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무척 특별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평생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 세상 어딘가에선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답장할게, 꼭>은 미국의 중산층 이상의 케이틀린과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도 너무나 가난한 동네에 살던 마틴이 주고받은 편지와 그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그저 학교 생활에서 관심 갖고 있던 것은 남자애들 뿐이던 케이틀린은 선생님께서 제시해 주신 펜팔 친구들 목록에서 우연히 읽을 수도 없는 나라 이름을 보고 그 나라에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미국을 벗어나본 적도 별로 없어서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아이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와 비슷할까, 무슨 생각을 할까가 궁금했던 케이틀린은 그럼에도 자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짐바브웨의 마틴에게 편지를 보낸다. 책은 한 장씩 번갈아 케이틀린과 마틴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직접 쓴 편지 글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삶과 생각에 집중된다.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마틴은 자신이 받은 펜팔 친구에게 그들과 다른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전부는 아니지만 솔직하게, 그럼에도 당당하게 자신을 조금씩 밝히며 언제나 답장을 하겠다고 약속하며우정을 다짐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지원하던 우표값이 중단되고 집안 형편도 점점 기울어가면서 마틴은 어떻게 하면 케이틀린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며 최선을 다한다. 

 

처음엔 한 통의 편지였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던 두 아이는 차츰 서로의 생활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성장해 나아간다. 특히 케이틀린은 마틴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이고 자신이 하던 고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생각하며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들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212p

"이미 마틴은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이제 마틴은 내가 그 세계 속에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게끔 해주었다."...333p

 

케이틀린의 부모가 마틴을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을 가진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에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틴의 모습이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지구 저편의 친구를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하는 케이틀린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자꾸만 나태해지는 큰딸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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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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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땐, 남녀차별이 심한 시대였다. 내 어머니 시대보다야 조금 나아졌겠지만 생활 곳곳에서, 사회 곳곳에서 차별은 만연했다. 무엇보다 안좋은 건 스스로 차별받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였다. 대학교에 들어가 교양으로 여성학을 들으면서 페미니스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연한 권리였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무척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꿈꿨다. 내 아이들 시대에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좋은 나라가 되기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페미니스트"는 왠지 위험한 말처럼 들린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과열 현상이 일어나더니 급기야 뜻 자체가 변질된 것이다. 급기야 성 대립 구조로 이어지며 학교에선 남학생이 페미니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여학생을 발길질 했다는 이야기도 기사를 통해 보았다.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완력이 센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져야 서로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나라>는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모계사회인 모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곳에서의 삶에 편안함을 느껴 지금도 1년의 반은 이곳에서 삶을 이어나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극도로 가부장적인 중국인 사회에서 자란 작가는 이곳에서야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아주 편안함과 휴식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모쒀족은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이 어머니쪽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시집을 간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가족의 개념도 어디까지나 어머니가 낳은 아이들만 해당된다. 삼촌도 장가를 가지 않고 어머니 아래 살면서 누이의 아이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서 처음엔 어리둥절하면서 무척 신기했다.

 

"비록 가모장제이기는 했지만, 모쒀 여성들은 전통 중국문화에서처럼 성별 간에 우열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의 세계에서 살았다. 이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바라보노라면, 가부장제 사회에서보다 권력구조가 더 균형 잡혀 있는 예를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177p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 부모가 의식이 깨어 그렇게 교육하지 않았더라도 학교에 가면, 사회에 나가면 다시 듣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집에서 제대로 교육 받아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 부당함을 말하면 이상한 아이로, 시끄러운 아이로 치부된다. 모쒀인의 삶에 가장 부러운 점이 바로 이런 점이었다. 가모장제이므로 여성으로서 말, 안할 말이라는 것이 없다. 해서는 안 될 행동도 없다. 그저 윗사람에 대한 예절과 서로에 대한 배려만이 있을 뿐이었다. 작가도 아마 이런 모쒀인의 생활에 감동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여자에게 너무나 부당한 세상임에도 얼마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이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천천히라도 제대로 맞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다음 세대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꿈을 접거나 입 다물고 있기보다 자신의 능력대로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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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빵집
김혜연 지음 / 비룡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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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내게 아주 특별한 해였다. 무려 11년 만에 태어난 늦둥이 덕분이다. 막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며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 얼굴 보며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 사건이 일어났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도 안 되고 너무 답답했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흐르는데,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희망이 하나씩 사라지고 이젠 그저 몸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던 그때... 우리 전 국민은 아마도 가장 우울하고 슬픈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우연한 빵집>은 바로 그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쪽 바다에서 사고가 난 뒤"(...23p)라는 문구 만으로도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소설은 한 작은 동네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빵집을 주요 배경으로 한다. 별다르지 않을 것 같은 이 빵집의 특징은 간판이 없다는 것. 그저 작게 "빵"이라고만 씌어있다. 그리고 이 이름없는 빵집에 상처 입은, 누군가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기호는 빵집을 운영한다. 원래 꿈은 작가였지만 몇 년을 허비하고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아버지가 남긴 가게를 물려받아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빵을 만들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자리와 빵을 만드는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만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능력 안에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최선을 다하는, 조금은 소심하고 조금은 순박한 주인이다. 그런 빵집에 키가 훌쩍 크고 느릿느릿한 하경이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남쪽 바다에서 친구를 잃은 태환과 진아, 연인을 잃은 소연과 딸을 잃은 은주가 모여든다.

 

어떻게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한 빵집에 우연히 모여든 걸까. 그런데 사실 하경을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같은 사건으로 친구를, 딸을, 연인을 잃은 사람들이다. 한 동네에서 일어난 일. 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다른 책에선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이런 우연성이 이 소설에선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빵집"의 빵 냄새가, 폭신하고 쫄깃하고 보드라운 빵 맛이, 그들의 행복했던 추억을 되살리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 힘을 합해야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지"...158p

 

 

이제 우리 큰 딸은, 나라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딸의 가방에는 광화문에 나갔다가 받아 온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두 딸을 키우는 나는, 다양한 이 위험성에 노출된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보단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 함께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정당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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