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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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퍼블릭 북스 시리즈를 맨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조금 이쁜 표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 권 한 권 만나다 보니 볼수록 매력적이고 정말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잘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엄선한 것이 눈에 보여 조금씩 욕심 내서 시리즈를 믿고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책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살인의 예술>. 어디선가 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추리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가 뭔가 다른 분위기에 앞표지를 살펴보니 "범죄 추리 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특히 하드보일드파의 거장이라고 알려졌다니, 작가님을 너무 늦게 알아봤다.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준다는 하드보일드파의 거장답게,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영화를 보듯 묘사된다. 읽을 때에도 여러 정황이나 실마리를 통해 추리를 하기보다는 묘사된 상황과 대사를 통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읽게 된다.


<살인의 예술>에는 총 5건의 단편(사실 중편이라고 해도 될 듯)이 담겨 있는데 조금은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다. 비슷하다고 느꼈던 점은, 아마도 각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사립탐정이라는 점.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의감(그렇다고 무조건 착한 사람은 아니다)에 의뢰받지 않은 사건들에도 간혹 끼어들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 무관심한 듯 시니컬한 듯한 성격에 좋은 체격, 지적인 사건 해결 방법 등으로 보지 못했지만 멋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ㅎㅎㅎ 앞의 단편들은 처음 읽는 분야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읽다 보니 이 작품들에는 여성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등장은 하는데 거의 모두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딱 한 명 정도만 등장한다는 것. 따라서 이 소설은 무척 남성적이다.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 한중간의 사건 중간부터 보는 느낌이다. (옳게 설명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등장인물과 사건이 터지고 나면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따라가기 바쁘다. 장편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 호흡이 짧은데 그냥 뚝! 떨어뜨려 놓는 식의 묘사 때문인 것 같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역시나 예술이다. 책 내용이 어쩌면 여기 다 담겨있었을지도.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살인의예술 #레이먼드챈들러 #레인보우퍼블릭북스 #하드보일드파 #범죄추리 #단편소설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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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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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가르치는 중학생에게서였다.

유튜브에서 북트레일러를 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열심히 나에게 설명해 줬다.

평소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친구라 그렇게라도 읽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살인이니 복수니~ 하는 얘기가 나오니 읽어도 되는 건가... 싶은 것이 ㅎㅎㅎ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이 벌써 오래전인데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눈데 띄어 데려옴.

앞부분 전개까지는 그 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지라

(어지간히 내게도 인상적이었나보다. 여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ㅋㅋ)

어서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사실 그 다음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은 한참 뒤쪽이라

내가 앞쪽 이야기를 몰랐더라면 훨씬 더 재밌게 읽었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니 혹평이 많아서...ㅎㅎ

난 그것보다는 재밌게 읽었다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지내왔던 경험에 의해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찌 보면 뻔한 결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 재밌게 읽었다고~

정말 읽었음을 알리는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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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온 왕국과 하늘을 나는 아이들 아이들판 창작동화 11
함기석 지음, 김우현 그림 / 아이들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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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화는 생활 동화가 많다. 생활 속에서 배웠으면 하는 교훈을 담은 동화들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활과 비슷한 주인공들의 생활에 공감하고 거기서 교훈을 찾아낸다. 그래서 특히 저학년 때는 생활 동화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페이지 수를 늘리고 좀더 깊이 있는 책에 적응하려면 생활 동화로는 부족하다. 페이지가 길어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도록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직접 겪을 수 없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는 아이들이어도 힘든 현실의 문제들을 잠시 잊게 할 수도 있고 다양한 모험을 통해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가리온 왕국과 하늘을 나는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본격 판타지 동화이다. 내용과 일러스트 모두 우리나라 동화에서 잘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라 겉으로만 훑어보면 마치 외국 동화인 것 같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 어떤 동화보다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한글 사랑이 빚어낸 결과이다.




원홍이는 할아버지의 고서점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어난다. 그곳에서 만난 아주 작은 여자아이. 손가락 길이 정도의 크기에 날개도 있는 이 여자아이는 마루얼 별의 가리온 왕국에서 온 온새미로라고 한다. 나쁜 커린캐 마왕에게 왕국을 빼앗기고 아빠는 감옥에 갇혔다는 온새미로는 이제부터 아빠와 왕국을 구하러 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지구별의 하지인 오늘, 마루얼 별에서도 밤이 가장 짧고 낮이 가장 긴 날, 태양의 기운이 강해서 가리온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 왕국을 구하기 위해 나선 온새미로와 아빠가 돌아가신 후 말을 잃은 동생 불휘를 낫게 할 보라색 사과를 얻기 위해 원홍이는 함께 가리온 왕국으로 떠난다. 원홍이는 이 모든 모험을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판타지 동화의 모든 조건을 아주 잘 따르고 있다. 원홍이 모험을 떠나게 된 계기, 그 모험에서의 여러 미션, 그 미션을 잘 해결하고 얻게 된 원홍이의 새로운 자신감 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원홍과 가리온 별의 아이들이 여러 미션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를 함께 따라 읽으며 아이들은 조마조마함, 모험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력, 모든 것을 해결한 후의 성취감까지 원홍이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새미로나 불휘 등의 고유어를 이름으로 정한 것이나 말들을 가리온 별의 아이들이 다루면서 펼쳐지는 마법 등은 한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영상이 아닌,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어야 하기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이렇게 한글의 조합으로 마법을 펼친다는 설정이 무척 기쁘다. 이런 설정은 우리의 과학적인 한글이기에 가능한 것이므로.


책을 좋아하려면 우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푹 빠져서 읽는 경험이 자꾸 책을 쥐고 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교훈이 없어도 사실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재미와 감동, 교훈까지 다 잡아낼 수 있는 책이라면 더욱 좋겠다. 이번 방학엔 아이들이 많은 책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가리온왕국과하늘을나는아이들 #아이들판 #판타지동화 #초등동화 #전학년 #모험 #용기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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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
유디트 타슐러 지음, 홍순란 옮김, 임홍배 감수 / 창심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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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리소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일본이다. 정통이라는 몇몇의 유럽 추리소설도 읽어봤지만 그야말로 "정통"으로서의 느낌이라면 일본 추리 소설은 그야말로 섬칫함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였는지~ 책 표지 띠지에 버젓이 "독일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고 씌여있는데도 표지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영~ 일본 추리 소설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형식이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다. 처음, 프롤로그에서는 메일로 시작한다. 티롤 주 문화서비스국에서 국어 교사 마틸다 카민스키와 작가 크사버 잔트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독자는 티롤 주의 고등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워크샵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 작가인 크사버 잔트가 마틸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일정을 조율하는 모습, 곧 주고받는 메일을 통해 두 사람이 이 만남 훨씬 이전부터 알고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열렬한 연인의 모습으로 십수 년을 보낸 후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억이 너무나 다름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별의 상처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 이렇게 사건이 시작되나 보다...하고.


메일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던 소설은 또 한 번 변신한다. 보통의 소설처럼 두 사람의 예전 이야기를 그저 서술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또 한 번의 변신! 두 사람이 16년 만에 재회한 공간의 이야기는 마치 희곡처럼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독자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식을 따라, 16년 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한 사람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시공간을 넘어 추리해야 한다. 시간도, 공간도 어느 하나 일률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므로. 형식뿐 아니라 두 사람이 주고받는 상상의 이야기들은 두 사람 사이의 빈 시간과 공간을 채워주는 데 일조하게 되고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느라 독자는 더욱 더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가며 정말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마틸다가 크사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게 되면 이 소설은 결국, 그저 어마어마한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전율이 얼마나 크던지!


마틸다는 사람마다 '모티브'가 있다고 했다. 그 모티브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면 그 사람의 모든 것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때문에 이 모티브로 인해 단 한 번뿐인 인생에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 모든 것까지 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국어교사 #창심소 #유럽소설 #장편소설 #추리소설 #사랑 #비극 #과거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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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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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이름도 잘 못 외우는 나로선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이름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어떻게 지내요>라는 단 한 권으로. 줄거리만 보면 그저 두 친구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한 문장 한 문장, 안에 담긴 의미들이 삶을 되돌아보게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그 다음 책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를 만났다. 이 책 또한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저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하면 앞의 <어떻게 지내요>처럼 그보다 큰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나로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이 미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고 해야겠다.


"우리가 함께 지낸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내 룸메이트는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었노라고 내게 말했다."...9p


이야기의 시작으로 너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이 한 문장은, 책장을 넘기고 넘겨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는 두 여성의 삶의 한가운데서 다시 떠오른다.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 문장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끔찍한 생활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잘하여 엄마로부터 탈출한 조젯은 명문 사립대에 진학한다. 반면 부유한 집안에서 온갖 것을 갖추고 무한 애정을 받으며 자란 앤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격동의 60년대 미국에서 혁명 전사가 된다. 너무나 달라서 서로에게 완벽한 친구인 것 같았던 둘은, 하지만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앤과 이제 막 혼돈과 가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조젯으로서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헤어진다.


소설은 총 7부로 앤과 조젯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조젯의 가정환경과 유일하게 평생 함께 하게 될 동생 솔랜지의 이야기, 조젯의 사랑과 삶 더불어 예상치 못한 상태로 조젯의 삶에 다시 나타난 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 여성의 이야기와 더불어 미국의 역사를 보듬는다.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격동의 시기, 마음껏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것처럼만 보였던 미국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왜 거리로 나서 한없이 자유롭게 약에 찌들고 경찰에 반항하고 시위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후의 삶은 또 어떻게 정 반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1972년 여름 무렵의 시대 상황과 내 삶을 돌이켜보면 고통과 고난과 회의로 가득한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실제로 그것들이 내 삶의 일부였으니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도 그 어떤 삶 못지않게 거의 완벽했다는 생각이 든다.(나중에 몇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말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젊음이 빠졌기 때문이었다.)...214p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부류가 등장하지만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는 단연 앤이다. 누구보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했고 그 민감함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부류의 마지막 존재 말이다. 이젠 타인의 고통 따윈 잠시 애도해줄 순 있지만 나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이 아닌 것을 오히려 감사할지언정.


읽는 내내 나는 조젯이었다가 앤이었다. 아주 많이 소심하고 겁쟁이인 난 앤이기보다는 조젯에 가깝지만 조젯의 서사로 인해 앤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잔다르크나 시몬 베유, 혹은 개츠비일 수도 있는 앤은 분명 많은 시대 속을 살다 간 수많은 부류들의 마지막 존재일 것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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