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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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이름도 잘 못 외우는 나로선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이름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어떻게 지내요>라는 단 한 권으로. 줄거리만 보면 그저 두 친구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한 문장 한 문장, 안에 담긴 의미들이 삶을 되돌아보게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그 다음 책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를 만났다. 이 책 또한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저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하면 앞의 <어떻게 지내요>처럼 그보다 큰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나로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이 미국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고 해야겠다.


"우리가 함께 지낸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내 룸메이트는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었노라고 내게 말했다."...9p


이야기의 시작으로 너무나 평범한 듯 보이는 이 한 문장은, 책장을 넘기고 넘겨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는 두 여성의 삶의 한가운데서 다시 떠오른다.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 문장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끔찍한 생활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공부를 잘하여 엄마로부터 탈출한 조젯은 명문 사립대에 진학한다. 반면 부유한 집안에서 온갖 것을 갖추고 무한 애정을 받으며 자란 앤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격동의 60년대 미국에서 혁명 전사가 된다. 너무나 달라서 서로에게 완벽한 친구인 것 같았던 둘은, 하지만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앤과 이제 막 혼돈과 가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조젯으로서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헤어진다.


소설은 총 7부로 앤과 조젯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조젯의 가정환경과 유일하게 평생 함께 하게 될 동생 솔랜지의 이야기, 조젯의 사랑과 삶 더불어 예상치 못한 상태로 조젯의 삶에 다시 나타난 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 여성의 이야기와 더불어 미국의 역사를 보듬는다.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격동의 시기, 마음껏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것처럼만 보였던 미국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왜 거리로 나서 한없이 자유롭게 약에 찌들고 경찰에 반항하고 시위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후의 삶은 또 어떻게 정 반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1972년 여름 무렵의 시대 상황과 내 삶을 돌이켜보면 고통과 고난과 회의로 가득한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실제로 그것들이 내 삶의 일부였으니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도 그 어떤 삶 못지않게 거의 완벽했다는 생각이 든다.(나중에 몇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말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젊음이 빠졌기 때문이었다.)...214p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부류가 등장하지만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는 단연 앤이다. 누구보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했고 그 민감함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부류의 마지막 존재 말이다. 이젠 타인의 고통 따윈 잠시 애도해줄 순 있지만 나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이 아닌 것을 오히려 감사할지언정.


읽는 내내 나는 조젯이었다가 앤이었다. 아주 많이 소심하고 겁쟁이인 난 앤이기보다는 조젯에 가깝지만 조젯의 서사로 인해 앤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잔다르크나 시몬 베유, 혹은 개츠비일 수도 있는 앤은 분명 많은 시대 속을 살다 간 수많은 부류들의 마지막 존재일 것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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