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이유정 푸른숲 작은 나무 13
유은실 지음, 변영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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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도, 집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일부분이다. 작가 유은실님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모두 같다고, 누구나 문제가 한가지씩은 있으니 안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멀쩡한 이유정>>에는 한두가지씩 어려움을 갖고 사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 : <할아버지 숙제>이 될 수도 있고, 학원에 다녀야하는 짜여진 스케줄 속의 갑갑함 : <그냥>이 될 수도 있으며, 방향치에 길치 : <멀쩡한 이유정>도 될 수 있다. 그뿐이랴.... 너무 가난하여 자장면 한 번 먹어보지 못한 것 : <새우가 없는 마을>이나 세상에 대한 불공평함을 토로하는 것 : <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숙제>



멋지고 용감하신,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를 두지 못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이들 탓이 아니다. 게다가 친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외할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었다는 "진실"을 아이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엄마의 도움으로 경수는 할아버지 두 분이 겪으셨던 일 중에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추려서 숙제를 아주 끝마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경수는 우리 할아버지들 말고도 훌륭하지 못한 할아버지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냥>은 학습지와 학원이 너무나 싫은 9살 진이의 이야기다.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 계시는 동안 진이는 더 좁고 불편한 고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는데, 진이는 이곳에서 밀린 학습지와 학원 걱정없이 마음껏 탐색하고 생각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어느 하루의 외출을 통해 진이가 어떤 것들을 느끼고 마음이 더욱 성숙해져 가는지 잘 알 수 있는 단편이다. 좁고 불편한 고모네 집이 그 어떤 집보다 넓고, 그 마을 전체와 하늘까지 다 고모네 집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만큼 고모가 진이의 게으름도 한번쯤 눈감아주고 아이의 감성을 이해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멀쩡한 이유정>은 엄청난 길치에 방향치이다. 4년이나 다니는 학교도 새로 이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동생을 따라 등교하는 아이. 유정이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혹은 친구 엄마들에게 이런 사실을 들킬까봐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어느날 동생이 먼저 집으로 가버리고, 유정이는 몇 십분이나 걸려 아파트 안에 들어선다. 그래도 도저히 자신이 사는 집 102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순간 학습지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 "아파트 단지를 십 분째 헤매고 있었거든."(...89p) 어른도 자신과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정이는 알았을까? 

<새우가 없는 마을>에서 기철이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생활 보호 대상자여서 여태껏 "진짜 자장면"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다. 이 단편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가 참 재미있다. 할아버지도 손자에게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숨기려고 하고, 손자는 그걸 알면서도 반쯤은 속아넘어가 준다. 꼭 먹어보고 싶다는 손자의 바램을 들어주려고 할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럼에도 왕새우를 사기 위해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 벅찬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할아버지로서는 가슴을 칠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왕새우가 있는 마을에서 살라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약속은 가슴이 찡~하도록 아픈 약속이다.

<눈>은 세상에 불공평한 것들이 가득하다고 믿는 영지의 이야기. "우리 영지는 불공평해서 억울한 게 많습니다. 우리 영지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133p)라는 엄마의 기도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깜찍한 아이다. 눈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옆 건물 옥탑에 사는 여자 아이가 장갑도 없는 것을 보고 영지는 눈 또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려는 것 같다면 하나님을 방해하기로 하지만,  결국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장갑을 아이에게 던져준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분홍 장가이 그림 같았다는 영지의 표현.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다. 



5편 모두 나만 힘들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컴플렉스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조금씩 다를 뿐이지 우리 모두는 같다고.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던 아이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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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소리 내어 읽어라 - 우리 아이 잠재력을 깨우는 낭독의 힘 우리아이 시리즈 2
홍경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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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임신소식을 접했을 때 결심했던 것이 몇가지가 있다.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엄마를 닮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태교는 몰라도 책을 많이 읽어주고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걸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과묵했던 나는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뱃속의 아이를 의식했던 것은 아니었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미리 연습해 두었던 것인데, 태명으로 부르며 말을 걸었으니 결국 뱃속의 아이와  말을 한 것이 된다. 5개월 무렵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가지 이야기가 있는 동화를 아빠에게 읽어주도록 부탁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 매일 2~3권의 책을 읽어주었고, 6개월 무렵이 되었을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생길 정도로 발전했다. 좋아하는 책은 하루에도 열댓번씩 읽어달라는 의사표현을 했고, 그 권수는 나날이 늘어났다. 그리고 대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쑥스럽기도 하고 바보짓 같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엔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우리집에 많은 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는 같은 책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읽었고,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지은양은 첫 단어("엄마"가 아닌 가장 좋아하는 "쥬스"였다)를 늦게 뗀 편(만 14개월)이었지만, 불과 3개월만에 완벽한 문장으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엔 "이 아이가 천재인가보다..."라는 모든 엄마들의 오류에 빠져들었으나, 어느 순간 아이가 유난히 "언어"에 재능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내가 노력한 댓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섯 살, 소리 내어 읽어라>>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내 교육법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에 응해주고, 시간을 들여 귀찮아하지 않고 많은 책을 읽어준 것들이 아이에게 믿을 수 없을만큼의 교육 효과와 감정적인 안정을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게 슬럼프가 없어던 것은 아니다. 만 3세가 되기 직전, 하루에 3~4시간씩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한글교육을 시켰으니 말이다. 혼자 읽게 되면 내가 좀 편해지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에서였다. 지은양은 이 책 제목에서와 같은 "여섯 살"이다. 물론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 동화구연하듯이 읽어줄 줄 알면서도 집에서는 절!대!로! 스스로 책을 읽지 않는다. 꼭~ 내 옆에 앉아 몸을 기대고서는 읽어달란다. 그런 아이가 때론 귀찮고 짜증날 때도 분명 있다. 그래서 때론 다음에 읽으면 안되겠냐고 회유도 해보고, 짜증을 부려보기도 했었는데...... 그런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를 준 행동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 어떤 사랑 표현보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스킨십), 혹은 옆에 붙여놓고 책을 읽어주는 행위가 더 많은 사랑을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홍경수 PD의 말에 많은 공감이 갔다. "낭독"의 힘(단순히 관념적인 행위가 아니라 몸이 깨어나고 몸에 활력을 주는 적극적인 신체활동...30p)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부모까지 더 트이게 된다는 사실. 그 어떤 매체를 통해서보다 엄마, 아빠의 말과 책을 통해서 아이들은 더 많~은 것들을 배워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 알고 있음에도 잘 실천하지 못한다. 이유는 많다. 피곤하다, 힘들다, 할 일이 많다, 바쁘다...하지만 그 어떤 핑계도 아이들이 자라고나면 모두 소용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 번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혀주어 잘 키우신 분들의 많은 경험담을 통해 조금 더 실전의 "낭독법"을 배울 수 있고, 낭독할 때 궁금해할 것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통해 어떤 식으로 낭독을 해주어야 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각 분야의 분들께서 추천해주신 낭독에 좋은 책들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집에서는 책 읽어주기가 이미 일상화되어있어 <<여섯살, 소리내어 읽어라>>에 소개된 "가족낭독회"를 통해 발전시켜볼까 생각중이다. 아이만을 위해 읽어주던 책읽기나 잘 읽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아이 혼자만의 낭독이 아닌, 서로 돌아가며 좋은 글귀를 찾아 읽어주는 모든 가족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낭독 말이다. 홍경수 PD님의 말대로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이 책을 지침삼아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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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에 친구 동물 - EBS TV 방영.종이 놀이 시간
밀라 보탕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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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유치원을 가기 위한 준비로 바쁜 그 시간에 지은양이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그림 그려줘, 루이>와 <빠삐에 친구>이다.
시간이 날 때는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등원 준비로 바빠 열심히 시청만 한다.
신기한 건 하원 후에 눈으로만 보았던 것을 척척 그려내거나 만들어 낼 때이다.
물론 앞에서 하라는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니 똑같이는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똑같지 않기 때문에 더 대단해 보인다.
나름대로 치장에도 더욱 힘쓰고, 배경도 만들어주고...
이렇게 나중에도 좋은 활동을 하게 해 주는 두 프로그램에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으로 나왔다니...^^
나도 팔짝 뛰고, 지은양도 팔짝 뛰고... 정말 너무너무 신날 수밖에 없다.

일단.... 구성은
1. <빠삐에 친구>를 따라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물 알려주기.
아이들을 위해 이런 세심한 설명까지 해주다니 정말 감동이다.

   준비 완료!!!


2. <빠삐에 친구>에서 가장~ 중요한 "아바, 리코, 테오" 만들어주기.

<<빠삐에 친구>> 뒷부분을 보면 이렇게 세심하게 종이도 준비되어 있다.

   열심히 만들고 있는 지은양.^^

    

아바, 리코, 테오의 모습은 원래 이렇지만서도....^^   지은양이 만든 주인공들은...뭔가 좀 다르다.ㅋ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 혼자 해냈다는 것!!!
처음에는 뭔가 이상한 비율이 되는 것을 우려해 이것저것 참견했던 지으니맘, 
그런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지은양의 태도에 잠자코 지켜보기로 결정!
설명서에 있는 그림의 비율이 1:1이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힘들어하더니 이내 자신만의 생각대로 나름 잘 만들어갔다.
엄마의 도움없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든 책의 구성이 참 좋다고 생각되었다.
책의 주인공들과는 조금 달라보여도 아이만의 주인공이 탄생했으니 아이는 더욱 뿌듯해한다.

3. 주인공을 만드는 페이지를 넘기면 간단한 에피소드 형식의 동화가 있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동물들을 만드는 설명이 있다.

    

그냥 보고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화 속의 이야기에 따른 동물을 만드니 아이가 더욱 좋아한다.
TV용 <빠피에 친구>와 같은 구성이다.

   

역시나 뒷장에 있는 종이를 뜯어서, 설명을 보고 혼자 잘도 만들어낸다.

    
역시나 원본과는 많~이 다른 복실복실 양이 탄생했으나, 
이 양들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지은양의 특성을 정말 제대로 나타낸다.^^

<<<직접 만들어 보니....>>>

밝은 색감의 일러스트가 참 마음에 들었고, 
그냥 색종이에다 하는 것이 아니라 뒷부분에 만들 종이를 준비해 준 것이 좋았다.
그 종이들은 각각의 부위에 맞게 사용하도록 부위 명칭이 적혀 있고, 점선으로 표시되어 아이들이 뜯기 쉽도록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TV에서 보던 것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호기심으로 작용한 것 같다.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고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빠삐에 친구>>를 만드는 동안에는 정말 완벽한 집중력을 보여주어 더욱 기뻤다.
이 만들기를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자신감이 많은 아이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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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전쟁 생각하는 책이 좋아 5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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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를  표현하는 몇몇의 단어들이 있다. 베트남 전쟁, 히피, 케네디가(家), 비틀즈 등등...  이런 무거운 주제들이 단 한 권의 청소년 도서를 통해 어떻게 전해질까. 하지만 <<수요일의 전쟁>>은 그런 무거운 주제들을 전하기 위한 소설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한 평범한 중학생이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카밀로 중학교 아이들은 수요일 오후에 ’리 거리’를 경계로 남쪽에 사는 아이들은 ’성 아델버트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고, 북쪽에 사는 아이들은 유대교 교회인 ’베델 성전’으로 간다. 그런데 남쪽과 북쪽 그 어느 곳도 아닌 딱 그 중간인 "완벽한 집"에 사는 홀링 후드후드는 장로교라 그 어느 곳에도 가지 않고 베이커 선생님과 단 둘이 남게 된다. 그 때문에 베이커 선생님의 미움을 사게 됐다고 믿는 홀링. 이제 수요일 오후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선생님과 <셰익스피어>를 읽는 건 아니었다. 잡다한 심부름과 청소들..이라는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하면 아이를 조금 더 지루하게 할 수 있을까..(이것은... 소심한 복수?ㅋ) 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였다. 하지만 <<보물섬>>을 좋아하는 홀링은 <<베니스의 상인>>도, <<템피스트>>도 <<보물섬>>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으며 셰익스피어가 말하려고 하는 "인간다움"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라 생각했던 시간은 베이커 선생님과의 교감으로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홀링이 겪는 사건들과의 연계성을 통해 홀링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현실에서의 사건이나 인물들(그의 완벽무구한 아버지나 히피족 누나, 베트남에서 구출된 친구 마이티 등등)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헨리 5세>>의 아리엘 역을 맡아 노란색(엉덩이에 하얀 깃털이 달린) 타이츠를 신게 되어도 그런 흉측한 모습 따위는 셰익스피어의 감동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우상처럼 떠받들던 야구선수가 그 타이츠를 비아냥 거렸을 때 당당히 그 우상을 버릴만큼 성장한 홀링은 진정한 마음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우상은 죽을 때 아주 힘겹게 죽는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거나, 곱게 늙어 죽거나, 편하게 잠드는 식이 아니라, 불에 타 죽는 식으로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리고 우상이 떠나면 우리의 가슴은 숯덩이가 된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우상이 떠난 빈자리를 다른 우상이 채울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니면 아예 우리가 다른 우상이 빈자리를 채우기를 바라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몸속에서 불길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149p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을 때, 홀링의 생각 변화는 정말 놀랍다.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던 홀링은 좋아하는 메릴 리와 아픔(어른들의 암투와 지저분한 경쟁 속에 말려드는...)을 겪고 나서 진정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셰익스피어 작품들 속의 문장으로 말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사건들을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 홀링은 완벽만을 추구하고 현실 속의 물질만을 쫒는 앞뒤가 꽉 막힌 아버지도 이해하게 된다. 친구의 유대교 성인식을 보며 홀링이 느낀 것(혹은 그의 아버지만 빼고 모두들 느낀 것), 성인식에는 성인식 그 이상의 것이 있고, 이제 친구 대니는 진정한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바로 볼 수 있게 될만큼 훌쩍 커버렸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이나 비극처럼 현실에서도 희극처럼 보이나 비극일 수 있고, 비극처럼 보이나 사실은 희극(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홀링은 그 누구보다 멋진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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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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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국영화들을 보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상황이 있다. 평소에 각별한 애정이 있거나 혹은 잘 모르던 친척에게서까지 느닷없는 유산을 받게 되는 상황 말이다. 현금을 받게 되는 경우보다는 대저택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종류의 영화들 중 가장 최근에 보았던 영화로는 <어느 멋진 순간>이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드넓은 땅과 멋진 저택, 그리고 포도밭까지...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의 첫 부분은 바로 이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갑작스런 삼촌의 죽음과 삼촌이 남긴 멋진 저택 등등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어느 멋진 순간>에서 만났던 첫사랑의 설레임이나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들은 없다. 대저택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폭삭 주저앉기 직전이고 이 저택을 사람이 살 만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겁나게, 악 소리 나게, 살 떨리게 비싼...(18p)" 돈을 들여야만 한다. 그래서 주인공 폴 타네씨가 선택한 방법은 불법 노동자들이 우글대는 '인력시장'에서 자신을 도울 사람들을 고르는 수밖에....^^ 이런 과감한 도전이 타네씨의 '호화여객선'을 침몰시키고, 해적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게끔 하리라는 것은 타네씨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타네씨의 일꾼들이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없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2인조 기와공(심지어 나중에 도둑질까지 서슴지 않는..)과 하루종일 섹스 이야기만 해대는 2인조 미장공, 하루에도 몇 번이나 미사를 드리는(일보다 미사가 우선시되는..) 전기 배선공, 일단 일을 받아놓고 뒷감당을 못하는 굴뚝 수리공 등 다양한 일꾼들은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사고만 친다. 타네씨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 타는" 일일까.^^ <옮긴이의 말>에서 주인공 "폴 타네"를 "속 타네"로 바꿔 부르는 것이 너무나 공감이 될 정도이다. 

" 집을 수리하는 내내 나는 나한테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낼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생기느니 말썽이요, 찾아오느니 도둑놈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말투나 행동을 보면 다들 나를 '봉'으로 여기게 되는 모양이었다."...(127p)

이 문장들이 속 타는 타네씨의 마음을 얼마나 잘 대변해주는지...ㅋㅋ 또한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를 떠올려주었다. 길에만 지나가면 도를 닦거나 관상을 보는 이들이 왜 자꾸 나만 잡는지, 또 사기꾼들은 왜~ 자꾸 나한테만 말을 거는지 그들에게 속는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바보같다고 생각하던 때 말이다. 내 얼굴에 "봉"이라고 써져 있나...라며 한탄하던 그 때... 하지만 타네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같이 속상하거나 안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지 자꾸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원래 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이런 일쯤 겪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타네씨도 그렇지 않았을까.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도저히 사람이 살 수없는 큰 집을 수리하며 이사람 저사람과 만나 부딪히고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집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절대로 집을 가질 수 없다. 그 안에 들어와 살 뿐. 즉 '생활'할 뿐. 어쩌다 운이 좋으면 집이랑 친해질 수 있다. 그러자면 시간과 노력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일종의 '말없는 사랑'이랄까. 우리는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 힘과 연약함도. 그리고 수리를 할 땐 오랜세월에 걸쳐 그 안에 자리 잡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해 한 해가 지나면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우정이. 그때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집이 절대로 우리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를 평생토록 든든하게 지켜주리라는 것을."....(78p)

나도 이런 집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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