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지식의숲 K
메튜 베틀스 지음, 강미경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3,4 학년 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1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아주 오래 된 학교였다. 외관도 고풍스러웠고 책상이나 복도, 교실 바닥 등도 아주 오래 된 마루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아주 인상적인 기억은, 그 학교의 도서관이다. 큰 도서관은 아니었다. 복도 가장 끝 교실에 들어가면 1층 책장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 2층으로 올라가는 아주 좁은 나선형 나무 계단이 있었다. 그 위쪽도 낡은 책장과 책으로 가득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는 그 계단 아래 구석. 그곳에 앉아 고른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곳이 내가 경험한 첫 도서관이다.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인지 내게는 도서관이 언제나 동경하는 곳이다.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가고 싶은 곳.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런 도서관을 가깝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행이 아이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한다. 그런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다. 도서관의 역사라고 해봤자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기본 지식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내게 무한한 충격을 준 것 같다. 그나마 세계사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나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싶다.

 

책은 도서관이라는 곳을 정의내리면서 시작한다. 어떤 곳인가...하는 물음으로. 그렇게 시작된 도서관의 역사는 그야말로 "소란스럽다". 처음에 어떻게 도서관이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어가며 "지혜, 지식"의 창고로 만들어진 도서관이 권력을 위한, 자신만의 소유욕으로 시작했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불타버리는 도서관들까지, 도서관들의 발전과 사서들의 위치, 그들의 목표와 발전까지 이해할 수 있다.

 

몇몇의 선구적인 사서들로 인해 도서관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비록 그 시대에는 지탄받고 배제될지언정 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위의 만류나 비난에도 꿋꿋이 일 했던 밴틀리나 편집증적인 효율성을 강조했던 듀이 같은 사서들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서관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사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도서관 자체의 이미지는 과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변했는가...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로 압축된다. 즉,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238p

 

도서관엔 많은 책이 모여 있고 이런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가. 1년 동안 단 한 권도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의 힘을 빌려서라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사서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과연 아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방대한 양의 지식에 눌리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인 매튜 배틀스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사서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끝도 없이 연관된 지식들이 줄줄이 연결된다. 저자의 어마어마한 지식이 그저 존경스럽다. 다양한 지식에 오랜만에 자극을 받았다. 아직도 내겐 공부가 더 필요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bomi 2016-11-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도서관에 가고 싶네요.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없어서 아쉬워요. 도서관에 가면 서가에 꽂힌 책등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곤 했는데, 그 분위기와 느낌이 떠오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ilovebooks 2016-11-22 01:21   좋아요 0 | URL
전 가까운 곳에 도서관을 두고서... 좀 멀리 중고서점으로 가는 것 같아요.ㅎㅎ
책 소유욕이 더 크다고나 할까요. 그 책장들 사이 누비면서 어떤 책을 살지, 그냥 바라보며 어떤 책이 있는지만 생각해도 막~ 행복해지더라고요.^^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42
친치아 기글리아노 글.그림, 유지연 옮김 / 지양어린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7년 존 말루프는 경매를 통해 사진 필름들을 구매하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사진들은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나 개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니, 개인의 모습을 담고는 있었으나 극히 사적인 개인의 사진이라고 하기보다는 좀 더 의미있는 사진들 같아 보였죠. 한 여인이 자신을 찍은 사진들과 거리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있었어요. 존 말루프는 블로그에 이 사진들을 올리고 반응을 보았죠. 그의 생각처럼 이 사진들은 사람들의 호응을 일으켰어요. 결국 전시회도 열리게 되고 이 사진을 찍은 주인공,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사진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는 그 비비안 마미어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에요. 비비안이 애정했던 롤라이 플렉스. 시선이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길거리의 사람들은 특별히 비비안을 의식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비비안의 사진들은 거리 자체,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지요.

 

그림책은 담담하게 비비안이 찍은 사진들, 어떤 것들을 사랑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지요. 그녀가 찍은 사진처럼 그림책은 흑백처럼 분위기 있는 그림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흑백 사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비비안의 사진 분위기가 고스란히 책에 담겨있는 듯 해요.

 

 

 

비비안 마미어는 유명한 사진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팔려 알려지기 전까지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가가 있는지도 몰랐죠. 비비안 마이어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였다고 해요. 아이들을 사랑한 만큼 뉴욕 거리의 모습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진 속에 담아놓고 싶었을 뿐이죠. 그렇게 비비안이 바라본 거리의 모습은 필름에 담겨 이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네요.

 

비비안은 죽을 때까지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았던 듯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모두 다르므로 비비안이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외롭고 쓸쓸한 삶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창고에 보관된 필름을 찾을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하여 결국 경매에 붙여지고, 자신의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걸 알면 비비안은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안타깝기도 합니다. 자신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고 말이에요.

 

그림책이 항상 밝고 교훈만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인물의 삶이 주는 여러가지 감정이 아이들에게 주는 울림 또한 중요할 겁니다. 작년에 비비안 마미어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열렸다는데 직접 보지 못해서 무척 아쉽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반짇고리 - 작은 상자에서 시작되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
송혜진 옮김, 무라야마 히로코 사진, 이치다 노리코 취재.구성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어릴 적 한 번씩은 인형 옷도 만들어보고 커텐으로 주름 잡아가며 몸에 대보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자랐다. 인형 옷 만드는 건 잘 안됐지만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사부작거리는 것들을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스퀼자수나 털실뜨기 같은 것들은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원대한 꿈을 품고 의류학과에 들어가 디자이너가 되려 했으나 좋아하는 것과 재능은 다르다는 사실, 취미와 직업은 다르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잠시 손을 놓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이켜 보면 나는 계속 바느질인인 것 같다. 임신해서는 십자수, 좀 지나 퀼트에 손대며 조금씩 취미로 이어졌고 바쁜 지금도 새로운 자수법에 대한 책이나 바느질에 대한 책이 있으면 눈부터 가니 말이다.

 

<나의 반짇고리>는 일본에서 바느질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5명의 예술가와 그 외 평생 바느질을 해오신 여러 분의 반짇고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는 5명의 예술가(아동복 작가, 원단 작가, 자수공예가, 일러스트레이터, 아틀리에 오너)가 살아온 이야기와 바느질에 관한 이야기, 반짇고리와 작업실 이야기 등이 전개된다. 편안하고 좋다. 우선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이 깔끔하든 지저분하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자신이 편안한 다음에야 좋은 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책 속 그들의 작업실 사진과 이야기들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집집마다 반짇고리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나도 있다. 두 개나. 하나는 큰 작업(십자수나 퀼트, 옷만들기 같은 것들)을 하기 위해 좀 큰 바구니에 담아놓고 뭔가 마음이 동할 때 꺼내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그 반짇고리에는 원단 가위, 색색의 실, 단추, 작은 원단, 지퍼, 고무줄 등 가지가지가 들어있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창고용 베란다에 처박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아주 작은 통에 담아두고 단추가 떨어졌거나, 기장을 줄이거나 늘릴 때 등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때문에 지저분한 화장대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나름 바느질인이었기 때문에 쪽가위나 니퍼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편하게 사용 중이다.

 

바느질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나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좋아서 하는 것일 게다. 바느질이라는 것은 움직임이 크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소함, 아주 작은 것들,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이르는 듯한 고용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바느질을 놓을 수가 없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을 통해서 제 마음의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무엇을 만드냐보다도, 만들고 있는 도중의 시간들이 소중한 거예요."...73p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 이미지들을 바느질에 담는다는 이 예술가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바쁘다고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창작열이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것 같다. 무언가 나만의 작은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별 것이 아닐지라도 그런 스스로 만든 작은 것들은 행복감을 선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몬이 가득한 책장 라임 청소년 문학 23
조 코터릴 지음, 이보미 옮김 / 라임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비슷한 표지 그림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까. 처음 <레몬이 가득한 책장> 책을 접하고서는 특별한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책 제목 속 "책장"이라는 말만 흥미를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나에게만 일어나는 반응이니 솔직히 책 표지만 보고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이 책이 읽고 싶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평범한 책이다. 예쁘장한 표지이니 예쁜 걸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흥미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책은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한 전학생 메이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칼립소는 책에 푹~ 빠진 소녀들이다. 우리 딸과 같은 나이인 14살.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빠와 둘이서 생활하는 칼립소는 학교에선 언제나 혼자이다. 아이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상처받기 보다는 혼자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좋다. 걱정하시는 선생님 말씀에 아빠 또한 선생님 보다는 칼립소가 옳다고 하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하고 "내면의 힘"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칼립소에게 이상한 전학생 메이가 다가온다. 한 번도 같은 취향의 친구를 만나본 적 없던 칼립소에게 "책"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는 정말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비로소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함께 발전시키고 다시 담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칼립소가 메이를 만나기 전의 생활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도 하고 지금의 우리 딸의 단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상하게 주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지 책을 통해 얻고 즐긴 것들을 나눌 친구를 만드는 것이 참 힘들었다. 또래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아이는 언제나 요상한 아이로 비쳐지나 보다. 처음부터 칼립소에게 이렇게 공감되었기 때문인지 이후 드러나는 칼립소네 가정의 이야기는 무척 마음을 아프게 했다.

 

칼립소는 메이네 집을 드나들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집의 이상함을 깨닫게 된다. 밝고 활기참이 아닌, 어둡고 고요함, 외로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드러난 아빠의 병. 지금껏 아빠는 칼립소에게 사람은 내면의 힘을 키워 바깥의 문제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빠가 틀렸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언제까지고 혼자 떨어져 살 수는 없다. 그런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라 머릿속에서 충돌하며 폭발하자, 서서히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181p

"아빠는 혼자가 아니다. 아빠에겐 내가 있다. 이제야 내 내면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깨달았다. 내면의 힘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받는 거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할 때, 나는 그 사람의 일부를 넘겹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힘을 얻는다. "...182p

 

지금도 나는 여러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 시절처럼 온전히 혼자서만 지내지는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삶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겐 내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나의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 또한 같은 취미를 가진 단짝 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취미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혼자 지내지는 않는다. 다른 이야기로 공통 분모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스스로 관심을 가져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딸은 나보다 더 나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레몬이 가득한 책장>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나, 지금의 딸, 또 부모로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좋은 책은, 다양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아닐까. 칼립소에게 이입되어 온전히 책에 빠져 읽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태자의 첫사랑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유명한 오페라의 원작 완역 소설"... 이라고 하던데, 사실 난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책이나 오페라, 영화 제목으로도 처음 들어봤다. 처음 제목이 주는 느낌은 예전 여중생의 마음을 흔들었던 할리퀸 시리즈 제목 같기도 하다. 중학생인 딸도 그렇게 느껴졌는지 지나가며 한 마디! "어우~ 왜 그런 책을 읽어~!" 이럴 땐 고전으로 답하는 거지~. "아주 유명한 고전이래~!" ㅎㅎ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이 가을의 길목에서 감성 흠뻑 젖을 수 있는 로맨스물에 빠져보고 싶었다. 아직 늙지 않았음을 느끼고 싶었을까. ^^;

 

내가 좋아하는 "고전" 치고는 책이 무척 짧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라 한 손에 쏙! 19세기 작품이라서 처음 읽기 시작하면 조금은 고루한 느낌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황태자의 고문관인 위트너 박사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여행이 주는 설렘에 함께 몸이 들썩하게 될 것이다.

 

위트너 박사는 어린 황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며 궁정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남들은 출세했다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카를부르크에서의 궁정 생활이 얼마나 자신을 갉아먹고 나이 들게 했으며 병마에 물들게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가 없었다면 조금도 이 궁정 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황태자의 하이델부르크로의 대학 생활에 고문관으로 따라가게 된 것이, 위트너 박사로선 더없는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생각들은 앞으로 황태자의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닌 것 같다. 사실 이제 막 자유를 만끽하며 독립하게 된 황태자와 자유분방한 캐티와의 사랑은 무척이나 갑작스럽고 황당하기도 하다. 공감은 전혀 되지 않고 오히려 부모처럼 뒤에서 "귀엽네~" 하는 정도랄까. 아마도 시대 차이로 인한 느낌일 것이다. 때문에 황태자와 캐티의 사랑 이야기 보다는 황태자 자신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느끼게 되는 자유, 모험이 더욱 눈길을 끈다.

 

"대학을 찾아온 바로 이 첫날에 받아들인 수많은 새로운 인상들과 새로운 생각들 때문에 지금까지의 그의 사고방식이 폭풍을 맞은 듯 송두리째 흔들렸다. "...32p

 

지금까지 황태자가 카를부르크에서 보냈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하이델베르크는 드디어 황태자 저 내면 깊숙히 숨겨져있던 열망, 자유, 독립심을 일깨운다. 하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숙부인 대공의 병마로 인해 카를부르크로 돌아가 대공 대신 업무를 맡게 되면서 황태자의 청춘은 끝이 난다.

 

사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그토록 즐겁고 행복했던 하이델부르크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다시 갑갑하고 얽매인, 기대되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궁정으로 돌아가 맡은 바 책임을 다 해야 하는 카를 하인리히의 변화 말이다. 그리고 그 우울하고 냉담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가 대학 친구들을 만나고 캐티와 재회한 후 다시 이별하는 순간까지의 황태자의 변화는 진정 이 책이 고전의 목록에 오를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생각났다. 주위의 기대와 얽매인 삶을 견디지 못했던 한스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황태자는 분명 이 소중한 첫사랑을 기반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불태웠던 청춘을 떠올리며 너무나 갑갑하고 힘들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궁정 생활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조금 힘이 들 때, 고난의 연속일 때 힘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일 수도, 누군가에겐 아름다웠던 첫사랑일 수도, 누군가에겐 열정을 불태웠던 순간일 수도 있겠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그런 아름다웠던 청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