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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첫사랑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유명한 오페라의 원작 완역 소설"... 이라고 하던데, 사실 난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책이나 오페라, 영화 제목으로도 처음
들어봤다. 처음 제목이 주는 느낌은 예전 여중생의 마음을 흔들었던 할리퀸 시리즈 제목 같기도 하다. 중학생인 딸도 그렇게 느껴졌는지 지나가며 한
마디! "어우~ 왜 그런 책을 읽어~!" 이럴 땐 고전으로 답하는 거지~. "아주 유명한 고전이래~!" ㅎㅎ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이 가을의
길목에서 감성 흠뻑 젖을 수 있는 로맨스물에 빠져보고 싶었다. 아직 늙지 않았음을 느끼고 싶었을까. ^^;
내가 좋아하는 "고전" 치고는 책이 무척 짧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라 한 손에 쏙! 19세기 작품이라서 처음 읽기 시작하면 조금은 고루한
느낌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황태자의 고문관인 위트너 박사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여행이 주는 설렘에 함께 몸이 들썩하게
될 것이다.
위트너 박사는 어린 황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며 궁정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남들은 출세했다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카를부르크에서의 궁정 생활이 얼마나 자신을 갉아먹고 나이 들게 했으며 병마에 물들게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가 없었다면 조금도 이 궁정 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황태자의 하이델부르크로의 대학 생활에 고문관으로 따라가게 된
것이, 위트너 박사로선 더없는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생각들은 앞으로 황태자의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닌 것 같다. 사실 이제 막 자유를 만끽하며 독립하게 된 황태자와
자유분방한 캐티와의 사랑은 무척이나 갑작스럽고 황당하기도 하다. 공감은 전혀 되지 않고 오히려 부모처럼 뒤에서 "귀엽네~" 하는 정도랄까.
아마도 시대 차이로 인한 느낌일 것이다. 때문에 황태자와 캐티의 사랑 이야기 보다는 황태자 자신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느끼게 되는 자유, 모험이
더욱 눈길을 끈다.
"대학을 찾아온 바로 이 첫날에 받아들인 수많은 새로운 인상들과 새로운 생각들 때문에 지금까지의 그의 사고방식이 폭풍을 맞은 듯 송두리째
흔들렸다. "...32p
지금까지 황태자가 카를부르크에서 보냈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하이델베르크는 드디어 황태자 저 내면 깊숙히 숨겨져있던 열망, 자유, 독립심을
일깨운다. 하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숙부인 대공의 병마로 인해 카를부르크로 돌아가 대공 대신 업무를 맡게 되면서 황태자의 청춘은 끝이 난다.
사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그토록 즐겁고 행복했던 하이델부르크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다시 갑갑하고 얽매인, 기대되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궁정으로 돌아가 맡은 바 책임을 다 해야 하는 카를 하인리히의 변화 말이다. 그리고 그 우울하고 냉담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가 대학 친구들을 만나고 캐티와 재회한 후 다시 이별하는 순간까지의 황태자의 변화는 진정 이 책이 고전의 목록에 오를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생각났다. 주위의 기대와 얽매인 삶을 견디지 못했던 한스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황태자는 분명 이 소중한 첫사랑을 기반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불태웠던 청춘을 떠올리며 너무나 갑갑하고 힘들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는 궁정 생활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조금 힘이 들 때, 고난의 연속일 때 힘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일 수도, 누군가에겐
아름다웠던 첫사랑일 수도, 누군가에겐 열정을 불태웠던 순간일 수도 있겠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그런 아름다웠던 청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