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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바비큐 파티와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7p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이야말로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일 것이다. 650페이지나 되는 이 두꺼운 소설의 시작이 정말 그 바비큐 파티에서 시작되니까.
저 첫 문장은 작가가 쓴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클레멘타인이 한 강연회장에서 그날의 사건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첫 시작이다. 그래서 절묘하다. 이 강연회장에는 그날에 함께 했던 에리카가 맨 뒷줄에 앉아 클레멘타인을 격려하지만 끝까지 듣지 못하고 강연회장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독자는 그 궁금한 바비큐 파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리안 모리아티를 알게 된 건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을 통해서였다. 그 책 또한 두꺼움을 자랑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가독성만 좋은 건 아니었다. 그 안에 등장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정말 이 현실 세계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아서, 그 안에 녹아든 인간의 심리 묘사가 너무 뛰어나서, 단 한 권으로 작가 이름을 외워버린 책이 되었다.
그렇게 읽게 된 <정말 지독한 오후>는 나와 내 이웃, 내 친구를 떠올리게 한 작품이다. 머릿속에 많은 애정을 품고 있으나 제대로, 제때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거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속으론 온갖 짜증과 비난을 일삼던 내가, 온갖 변명을 일삼으며 행동의 이유를 갖다붙이던 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 "바비큐 파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좀처럼 발히지 않는다. 무려 책의 2/3가 지나서야 그날,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밝혀진다. 그때까지 너무나 궁금해서, 도대체 무슨 일인데 다들 이러냐고 할 만도 싶은데 그날 모인 세 가족의 가족들이나 이들 한 명 한 명의 생각, 변화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어 오히려 이 상황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들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그들의 심리를 쫓아가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을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뒤쪽의 숨겨진 이야기들까지 밝혀지고 나면 정말 한숨이 휘유~하고 나올 수밖에.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모두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 그 사람의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해 준다는 듯이. 나만 힘들고 나만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처럼.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건... 이제 반백살이 된 지금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