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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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 뜨고, 매일 밤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핸드폰 속 뉴스 기사를 훑어보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유독 눈에 띄게 늘어난 기사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바로 가정 폭력 문제다. 특히 아이에 대한.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몇몇의, 나와 상관이 아주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주 한순간, 조금만 어긋나도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적절히 아이와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다. 

 

<완벽한 아이>를 읽기 전부터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담담히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결론을 알고 있으니 조금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그 이상의 내용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말도 안되는 절망의 상황은, 그것을 감내해야 할 대상이 독자가 아니라 바로 모드 자신이었기에 더욱 비참하고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모드 아버지의 기이한 행동들은 "미쳤다"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그 어머니를 직접 고르고, 교육시키고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를 위한 어머니로 준비시킨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 또한 아무도 소통할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 칩거하며 사회와 분리된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이냐 말이다.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준 자체가 틀렸다. 이 아버지에게 있어 완벽한 아이란, 자신이 살던 가난과 전쟁이 난무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아이이다. 더 나아가 그런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 우위에 서야 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이 아버지가 아이에게 가르친 것들이 마치 첩보원이나 스파이가 배워야 할 것들처럼 인간성이 배제되고 기계처럼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살아남기 위한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 낙점되어 교육받아 온 모드의 어머니 또한 모드에게 "엄마"로서의 존재보다는 완벽한 아이로 만들기 위한 선생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모드의 아버지를 남편으로서가 아닌, 구렁텅이 가난한 삶에서 구해준 영웅과 다시 아이를 교육시켜야 하는 감금된 생활로 내몬 장본인으로 바라보며 모드에게서 동지애와 질투심, 경쟁심을 느끼며 바라보는 인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아이에게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놓고 자신의 감정 해소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누군가 내 안에서 절규한다. 린다처럼 죽도록 절규한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116p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도 부족한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이 생활을 15년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너무 어릴 때부터 자행된 이 폭압적이고 말도 안되는 교육은 모드를 점점 피폐하게 만들지만 그녀에겐 조건 없이 사랑을 나누어주는 동물들과 몰래 접하고 읽었던 훌륭한 책들이, 그 등장인물들이 그녀에게 그나마 숨통을 틔어줄 수 있었다. <변신> 속 그레고르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몬테크리스토 백작> 속 당테스를 통해 긍정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통해서는 아버지가 말하는 완벽한 인간들과 전혀 다른, 삶으로 진동하는 인간상을 발견하고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도 한다. 청소년기가 오고 부모의 세뇌에서 조금씩 벗어나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모드는 더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에게... 왜 우리 부모가...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완벽하게 미워할 수도 없어 미워하는 자신의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모드는 <적과 흑>의 마틸드를 통해 전사가 되기로 하고, <페스트>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정하기도 한다. 또, 음악도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배우기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이 음악을 통해 모드는 좋은 스승을 둘이나 만났고 그들에게서 진정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모드를 이 악의 소굴로부터 구한 것은 역시나 "사람의 온정"인 것 같다.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데콩브 선생님의 엄격하지만 따뜻한 눈빛, 무엇보다 그녀의 공정함은 어른 모드가 다른 어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인물이다.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데콩브 선생님을 기억하고 데콩브 선생님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두 번째 선생님이었던 몰랭을 통해서는 결국 모드가 이 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했던 몰랭 선생님의 끝없는 애정이야말로 모드가 마지막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이 집을 떠나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동시에 두려워서 떨리기도 한다. ...(중략) ...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벌써 아버지가 그립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서 도망치고 싶다."...310p

 

어릴 적 기억의 파편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하교 후 안방에서 주무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아마도 난 그날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나 보다.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엄마를 안았다. 그때 엄마가 내 손을 잡더니 "얘가 왜 이래~ 더워 죽겠는데!"하며 뒤로 휙! 치우셨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정말 오래된 기억이다. 벌써 30년도 넘었으니. 그런데 이 기억 하나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그때 즈음 <빨강머리 앤> 열 권을 친구들과 돌려 읽고 있었다. 8권인가에서 앤이 막내 딸의 말에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들어주려 하던 장면이 내겐 가장 감명깊은 장면이었다. 그때 다짐했다. 나도 꼭 앤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비웃거나 무시해서 아이가 민망해 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부모의 말 한 마디는 생각보다 아이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부모는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거나 농담일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인생의 지침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진로를 정하거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에게 말 할 때 무섭다고 느끼곤 한다. 농담일 때에는 정확하게 농담이라고 밝힌다. 혹시 나도 모르게 상처주는 말을 했다면, 며칠이 지난 후에라도 미안했다고 사과한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나면 아이의 기억과 내 기억이 또 다르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했을 때보다 5배의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절대로 1 대 1이 아니라고. 

 

모드가 결국 그 집을 나와 비록 너무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훌륭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모드가 자란 시대는 이미 한참 전이다. 그런데 이 세상엔 모드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자식이 자신의 소유물 쯤 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더라도 얼마든지 내 아이가 나 대신 이루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 어느 정도의 훈육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 스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부모들까지. <완벽한 아이>를 통해 지금 자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되돌이켜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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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ilovebooks 2021-09-13 09:33   좋아요 0 | URL
우왓! 전 이제 알았네요...ㅎㅎㅎ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8-0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lovebooks님 당선 축하드려요^^

ilovebooks 2021-09-13 09: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계정에 들어온 적립금을 보고서야 알았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