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 보아즈의 기억에 갑자기 찾아온 '개꿈'. 이것은 아리 폴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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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특이한 것 같다. 남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곧잘 떠올린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빨간 열매를 따 먹으로 뒷산에 올라갔다가 깨진 콜라 병을 밟은 일이다. 그 일로 산에서부터 피를 질질 흘리면서 집으로 내려왔고, 한 달간 방안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한 기억이다.


그 밖에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아버지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일, 초등학교 시절에는 노래를 조금 잘 불렀다는 것, 중학교 시절에는 남학생으로 구성된 반이라 교실 뒤쪽에서 힘 꽤나 쓰던 아이들이 싸움질을 했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조용한 모범생으로 살았다는 것, 그것들만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내 아내는 나와 정 반대다. 아내에게 어린 시절을 물어 보면 뭐든지 다 떠올리곤 한다. 아내는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특별히 6살 때의 기억도 내게 해 주곤 하는데, 그 시절 여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머니가 몹시 아팠던 기억까지도 생생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곧잘 따르는 후배 녀석이 나의 늦깎이 대학시절을 떠올린 일도 있다. 나는 27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4년 동안 몇 차례 이사를 한 기억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배 녀석은 내가 이사할 때마다 봉고차로 짐을 실어서 함께 이삿짐을 날라줬다는 것이다. 후배 녀석은 이사하면서 겪은 재미난 이야기도 곁들어 주었지만 나는 도통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왜 나는 옛 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 찍어 놓은 사진들이 없어서 그럴까? 사진이라도 찍어 놓았더라면 해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연차적으로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의도적으로 내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것일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혹시라도 아이들이 '건망증 많은 아빠'라고 놀려대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이 3천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떠올리게 하다


그런데 최근에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만화책을 읽으면서 중학교 시절에 했던 몹쓸 짓이 떠올랐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이스라엘군의 묵인과 협조 하에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이 3천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현장 속에 있던 주인공이자 이 책의 지은이인 아리 폴먼도 꿈속에 나타난 26마리의 개를 통해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지난 시절의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책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의 바시르 제마엘 대통령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바시르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까닭에 친 이스라엘 정책을 펼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갑작스레 암살을 당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진격해 들어간다. 물론 그곳에는 이미 기독교 측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이 시가지 곳곳을 점령해 들어간 상태였다. 다만 팔레스타인 민병대원들은 이미 그 시가지를 떠나고 없던 때였다.


바로 그 시가지 곳곳에서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어두컴컴한 한 밤중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군이 조명탄을 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른바 이스라엘 군은 그들의 살육 현장을 돕는 지원군이자 공범인 셈이었다. 주인공 아리 폴먼도 그와 같은 몹쓸 짓을 여태껏 자신의 뇌리 속에서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가 지독한 전쟁 참사를, 자신의 손으로 무참히 쏴 죽인 그 살육현장을 지워 없앴던 것일까? 주인공은 전쟁 트라우마의 세계적인 권위자를 통해, 그와 같은 기억을 지웠던 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종의 '방어 기제'였던 것이다. 아리 폴먼은 여태껏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서 그 살해 현장에 있던 자신을 머리 속에서 없애왔던 것이다.


 

 


 불현듯 중학교 시절에 행한 나의 몹쓸 짓이 떠오르다


〈바시르와 왈츠〉라는 책을 덮고 난 후, 불현듯 내 머리 속에서 지워왔던 중학교 시절의 몹쓸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로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이었다. 그 일은 당시 한 동네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몰아세운 나머지 그 집에 쳐들어가 집안 안팎을 벌집 쑤시듯 들쑤신 사건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집이 우리 집과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시절 시골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몇 몇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주도하여 그 집을 쳐들어갔는데, 당시 순진했던 나는 교회 어른들이 하는 방식대로 무조건 따라 하기에 바빴다. 당시 교회 어른들은 피켓만 안 들었을 뿐 일반 시위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다 했다. 우리들은 그 집안 어르신과 아주머니를 향해 수많은 고함과 삿대질과 욕설들을 마구 퍼부어댔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왜 그와 같은 기억들을 지금 이 순간에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나도 아리 폴먼처럼  '방어기제' 때문에 여태껏 머리 속에서 지우고 있었던 것일까? 더욱이 현직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어린 시절에 했던 그 몹쓸 짓을 사죄하지 않고 그냥 버텨보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은 그 어르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 집도 다 허물어져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그런데 몇 해 전에 그 어르신의 둘째 아들이 시골 뒷산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아 초보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가 된다면 그 둘째 아들 되는 분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지난 날 그 어르신에게 했던 몹쓸 짓에 대해 정중하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posted by littlech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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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푸르 탈영병의 충격적인 고백

"여자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집을 불태우고 우물에는 독을 풀었다."
"상관들이 총을 든 채 우리를 감시하면서 아이들까지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숨어 있던 아이들을 찾아내 죽였다. 우물에는 독을 타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여자들을 성폭행하지 않으면 상관들이 우리를 때리고 고문했다."

2002년 말부터 1년여 동안 다르푸르의 코르마 마을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작전'을 벌이다 탈영한 할리드(가명)라는 남성이 밝힌 충격적인 학살 경험이다.

그는 "비인간적 범죄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 2003년 탈영했다"고 고백했다.


▲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4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다르푸르의 학살은 전 세계인이 다 아는 현대의 대표적인 학살 사건이다.
1980년대 초반 사막이 확장되면서 물이 모자라게 된 아랍계 유목부족들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와 아프리카계(흑인) 농민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이웃한 리비아와 차드 등지에서 무기가 밀반입되면서 두 집단의 충돌은 유혈사태로 번졌다.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는 정부의 비호 아래 학살, 고문, 성폭행, 방화, 약탈 등을 저질렀다. 2003년 2월 잔자위드에 맞서는 반군이 조직되자 정부군은 잔자위드와 함께 소탕을 명분으로 한 조직적인 학살 행위를 벌이게 된다.

6년 동안 다르푸르에서는 30만명이 숨졌으며 250만명이 난민이 됐다. 희생자가 대부분 아프리카 주민들이었으므로 ICC는 이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하고 있다.


바시르와 민병대의 추억

이번에도 바시르라는 이름이다. 바시르는 1982년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팔레스타인)의 계기를 마련한 레바논 민병대의 수장 이름이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당'이었는데 잔자위드와 팔랑헤당은 쌍둥이 형제처럼 흡사하다.



▲ 위의 그림은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3월 4일 수단 수도 하르툼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뒤 카퍼레이드에서 손을 흔들며 군중들의 환영을 받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다. 아래 그림은 팔랑헤당 민병대들의 시계나 목걸이, 총, 반지 등 어디서나 발견되는 팔랑헤당의 우상 바시르 제마엘. 1982년 9월 14일 대통령 취임식을 9일 앞둔 시점에 폭탄테러로 사망했고 이 일을 계기로 피의 학살이 자행됐다.


다루프르 탈영병의 고백과 같이 수단 민병대 잔자위드의 잔인성을 상상을 초워한다. 그것은 레바논 민병대 팔랑헤당도 마찬가지다. 팔랑헤당은 무슬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수치감을 주기 위해 가슴에 십자가 모양을 칼로 세기고 학살터로 끌려가는가 하면 노인과 아이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 팔랑헤당 민병대원 한 명이 자신이 노인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이스라엘 군에게 몸동작으로 자랑하고 있는 장면

학살장면을 읽는 것, 학살장면을 모아놓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인간의 잔인성을 매일같이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단 한 하지, 우리가 이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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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르푸르 탈영병, 막가파, 그리고 성선설..
    from 승주나무의 책가지 2009-03-06 16:18 
    오늘은 신문을 보는데 수단 탈영병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 주었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것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는 비인간적 범죄를 더 이상 참아낼 수 없어서 탈영했다고 하니 말은 다 한 것 같다. 예전에 서당에서 훈장님께 맹자를 배우던 시절에 '측은지심'이라는 말을 배웠다. 맹자는 측은지심의 예로 유명한 '우물 이야기'를 든다. 아이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당장 달려가 아이를 구하려는 마
 
 
 


학살을 인정하는 데 60년이 걸려..


▲ 1950년 9월1일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이 희생 현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트럭에 타고 있는 모습. 영국 보도사진작가 버트 하디가 촬영해 잡지에 게재했다. |진실화해위 제공


국가기관이 60년 만에 학살행위를 공식 시인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부산·마산·진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민간인 중 최소 3400여명이 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부대), 헌병대, 지역경찰, 형무관(교도관)에 의해 불법 희생됐으며 그 가운데 576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으로 전국 형무소 20여곳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들과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국민보도연맹원 2만여명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구체적인 내역은 다음과 같다.

부산형무소 :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500여명(희생자 대부분은 총살 당했으며 일부는 부산 오륙도 인근 바다에 산 채로 수장)
마산형무소 : 최소 717명
진주형무소 : 1200여명


이번에 밝혀진 희생자들은 대부분 육군형사법·국방경비법 등을 위반한 징역 3년 이하의 단기수들이었다.

정부가 낸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2003년 통과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는 제주4.3 당시 제주 인구 30만 명의 1/10인 약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대부분은 학살된 것이다. 이 사건은 6.25 직전에 제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 2000년대에도 학살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을 당시 우파 세력은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학생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그 때 사망자가 수십 명에 달했고 수 천 명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학생들을 학살한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것이 학살의 무서운 특징이다.


▲ 1982년 9월 16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3000명 이상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학대하기 위해 가슴에 십자가를 칼로 새기고 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단 한 명도 되돌아오지 못했다.


1982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한 학살은 현대에 벌어진 가장 잔인하면서도 규모가 큰 학살행위다. 특히 제3국이나 후진국에서 의해서 이루어진 학살이 아니라 최선진국이 주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3세계, 후진국의 학살에는 미국이나 제국주의 국가가 관여돼 있지만 적어도 제국주의 국가들은 배후 조종하는 식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사브라ㆍ샤틸라 학살사건에는 이스라엘이 사실상 주도한 것이 정설이다.
먼저 사브라ㆍ샤틸라 지역을 포위하고 밤에 조명탄을 쏘는 등 후방을 튼튼히 받쳐 준 것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소행이다. 그리고 학살사건을 방조했다. 극우파 기독교 정파인 레바논의 팔랑헤당은 이스라엘이 깔아준 밥상 위에서 마음껏 학살 행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현대 학살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유형을 총망라해주고 있다.

전쟁상황이 되면 적군에 의한 희생이 부각되는데 그보다 다 참담한 것은 바로 '말의 죽음'이다.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은 전쟁 상황을 몹시 반긴다. 모든 논리를 뒤엎고 강경논리로 권력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우파의 공통공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극우파들이 많다. 전쟁은 정적을 처단하는 '처리장'으로 되며, 국가주의를 한껏 퍼뜨리는 '마이크'로 이용되며, 전쟁물자를 잔뜩 만들어 팔아넘길 수 있는 '대목 장'이 된다. 이것이 현재에도 전쟁이 '상품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학살사건이 다시 벌어질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언론이 죽고 일방통행이 시작되면 국가주의와 충성이 강요되고 상대국과의 전쟁상황은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기 전에 프랑스가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은 독일의 공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를 목격한 사람들과 역사가들에 의하면 '순식간'에 전쟁상황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촉수가 예민한 사람들은 전쟁상황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다.

학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의미로 정부에서 학살 사건을 처음으로 시인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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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0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지인의 작은할머님이 전남에서 학살당하셨는데, 몇해전 유해발굴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도 가족들이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고 해요.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러겠습니까. 민간인 학살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살아있는 상처입니다.

다른 2009-03-06 16:32   좋아요 0 | URL
집단학살도 비참한 고통이지만 집단학살 이후 세월의 고통도 정말 무거운 것 같습니다. FTA반대휘모리 님의 말씀처럼 학살은 우리나라에서도 살아 있는 상처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외할아버지도 제주 4.3때 끌려가서 쥐도새도 모르게 학살됐습니다. 하지만 연좌제라는 게 있어서 억울하게 죽어도 말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다니기 어려웠죠. 과장 없이 제주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고, 고통스런 트라우마를 견디고 있습니다.

다른 2009-03-06 16:32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주 4.3은 현대사의 블랙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미 제국주의 역사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 시절 결코 나에겐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었다. 그 당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남산의 한 구석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자 영원한 자유민주주의 표상이었다. 어린 시절 즐겨본 서부 영화는 언제나 인디언은 악당이고, 기병대는 악당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해주는 영웅들이었다. 이런 만들어진 환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 동안 변함이 없었다. 몇몇 주장이나 책들이 강하게 미국을 비판하였지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나의 의식과 지식이 너무 굳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십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하워드 진의 역작이라는 <미국 민중사>를 만화로 각색한 것이다. <미국 민중사>에 대해 이름을 들은 것도 개인적으로 몇 년 되지 않는다. 이 책이 1980년에 발간 된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더 힘든 시기였다. 현재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언젠가는 꼭 읽고 말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책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로 나왔다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것도 한 권이다. 각색이란 과정을 통하면서 많은 내용이 누락되었겠지만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20세기와 그 후의 이야기 일부는 그의 자서전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원작의 내용을 모르니 만화로 나누어진 12장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시작을 국내의 제국으로 삼고, 운디드니 학살을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 읽은 운디드니 학살 관련 책 기억이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디언 학살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북미 대륙 백인의 지배가 확고해졌기 때문이며, 이후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국의 제국주의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알려주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고, 군대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약속을 깨고, 민중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은 국내에서 인디언과 악덕 자본가와 대립한 민중들을 먼저 다룬 후 미국의 문호 개방 정책으로 말해지는 제국주의에 시선을 돌린다. 그 처음이 쿠바인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쿠바에서 스페인을 쿠바 혁명군과 함께 몰아낸 후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놀랍도록 해방 후 한국의 모습과 닮아있다. 친일파를 그대로 둠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읽는 순간 미국의 정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본질이 결코 변함없이 겉모습만 바꾸고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많은 글 중 나에게 가슴으로 와 닿은 문장이 있다. “돈에서 생겨나 법으로 유지되는 독단적인 힘에 대한 분노”라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의 법들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지는지 알려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들을 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하워드 진이 이런 감정을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느꼈다니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많은 이야기 중에서 미국 체제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방어 방법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다. 첫 번째 방어는 진실을 부인한다. 만약 진실이 드러나면 두 번째 방어는 조사를 하되 깊이 있게 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이 그 조사를 보도하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결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인다.


만화로 보니 딱딱함이 많이 사라졌다. 원작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볍게 작가의 주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 만화는 오만한 제국 미국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렸다. 사실을 다루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외면하고자 한다면 결코 마음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자유 민주주의의 미국만 본 사람들에겐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제국의 이면에 숨겨진 더러운 역사와 정책은 이 만화에 극히 일부분만 실려 있다. 원작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고 있다.
 


                                                                                                                    

posted by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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