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아리 폴먼은 2006년 1월에 그의 친구 보아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보아즈와 30년 동안이나 우정을 나눈 사이였지만, 보아즈가 겪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아즈는 이년 동안이나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 보아즈의 기억에 갑자기 찾아온 '개꿈'. 이것은 아리 폴먼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보아즈는 1982년 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레바논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즈의 부대원들은 보아즈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신에 시끄럽게 짖어대던 마을의 개들을 쏘라고 했다. 보아즈는 그 당시에 개에게 총을 쏘면서 죽어가는 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갑자기 개들의 환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리 폴먼은 보아즈의 고백을 듣고 돌아온 날 밤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에 대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레바논, 서부 베이루트, 사브라와 샤틸라의 난민촌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날의 기억까지…….

 그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정신과 의사 오리 시반을 찾아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이십년 동안 전혀 기억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분명히 전쟁에 참여했지만, 그동안 실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했다. 오리는 아리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실험에 대해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어린 시절에 찍었던 실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실제 어린 시절의 사진이 아닌, 놀이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중 80%가 자신들이 결코 경험한 적도 없는 그 이벤트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20%의 사람들에게 집에 가서 그 사진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 실험의 결론은 ‘기억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EBS TV에서 방송한 ‘다큐 프라임 원더풀 사이언스-기억의 재구성’에서 그와 비슷한 실험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에서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다.

 오리는 아리의 기억을 검증해줄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아리는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릴까봐 걱정을 한다. 그렇지만 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에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자신이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친구를 찾아보라고 한다.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 카미를 찾아간다. 카미에게서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학살 이야기를 듣고, 아리는 점점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되는데…….

 수년간 레바논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1982년 7월 방위군을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이런 혈전들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끝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복수의 나날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량학살의 현장으로 몰리는 개개인의 군인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총을 쏘아대야 하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마구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인다. 죽지 않기 위해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군인들은 끔찍한 공포 속에서 다음 순간을 알 수 없는 한계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의식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넋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엄청난 살육의 현장에서 자신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격리시켜버린다. 그런 끔찍한 전쟁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실이 아닌,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마치 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잘못된 지원사격으로 생기는 사고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들 앞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이런 식으로 작동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도저히 그 상황에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자신들의 의식의 기억창고에서 교묘하게 제거해버렸던 것이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그런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상상해볼 수도 없기에 그런 상황이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고,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내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 즉 군인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생동안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죽이고 죽는다. 이 분노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오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할 것인가 .

 <바시르와 왈츠를>은 대량 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만행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를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만화로 만들어졌지만 데이비드 폴론스키의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화를 눈앞에서 볼 때처럼 생생하게 감동을 느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인간악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인간의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치를 떨었다. 그리고 최근에 붙잡힌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관한 기사까지 떠올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성인지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몹시 우울해졌다. 다시 한 번 그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지……. 

 



posted by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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