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는 자신의 욕구는 알고 있지만 그 욕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고 있는 아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가 제한돼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인간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겠죠.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그렇지 않다면 자유를 보다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말 아닐까요.
철학소설 <드림위버>에서는 팬케이크의 예가 나왔네요. 주인공의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했군요.
네가 이성에만 의존했다면 너는 아직도 접시만을 바라보며 앉아 있어야 할 거야. 하지만 너는 팬케이크를 먹는 것이 굶어 죽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지.
이것은 뷔리당의 당나귀를 생각나게 합니다.
중세 철학자 장 뷔리당은 똑같은 건초더미 사이에 서 있는 당나귀 이야기를 재미있는 우화로 들려줍니다. 그 상황에서는 어느 것이든 아무거나 먹는 것이 합리적이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근거를 찾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두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한 당나귀는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시험을 볼 때 답을 선택해 놓고 다시 망설이다가 결국 시험을 망치는 일도 있고, 쇼핑을 가서 오랫동안 물건을 고민하다가 쇼핑을 망치는 경우도 있죠. 물론 쇼핑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서 가끔은 이성보다 직관이 더 쓸모가 있습니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죠.
당장 죽을 위기에 있는 철학자에게 이성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랄리스트 블레이즈 파스칼. 그는 인간이 비참하면서도 동시에 위대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을 고발하는 수상록 <팡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