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배경



▲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에서 주인공 아리 폴먼의 친구 카미가 고백한 경험사례다. 병사들은 적군이 득실대는 해변에 도착하고 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 간에 총으로 쏘았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가족이 탄 차량이 있었는데 병사들은 그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선량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은 날이 완전히 밝고 나서야 밝혀졌다.


외신에게 알려진 이스라엘 병사들의 학살 경험

최근 외신을 통해 이스라엘 병사가 가자지구에서 있었던 학살의 만행을 고백한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와 보병으로 가자 전쟁에 참전했던 이츠하크 라빈 예비군사학교 졸업생들이 지난 13일 학교 심포지엄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털어놨다고 현지 일간 하레스 등이 19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바시르와 왈츠를>(다른)이라는 책의 내용과 흡사하다.

"가족들을 한 방에 몰아 넣었는데, 며칠 후 그들을 풀어주라는 명령이 있었다. 보병 지휘관은 그들에게 '오른쪽으로 나가라'고 했다. 여성과 두 자녀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갔지만, 지휘관은 지붕 위에 있는 사수에게 '그들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수는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즉시 총을 쐈고 그들은 죽었다."

병사들은 전장에서 테러의 위협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 끝에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는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명은 이스라엘군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의도된 실수도 정당화되곤 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분대장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스라엘군이 접수한 주택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을 걸어가는 나이든 팔레스타인 여성을 총쏴 숨지게 한 병사는 "이 여성은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총을 쏴야 했다. '길에서 사람을 발견하면, 무기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쏴라. 왜냐하면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에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동안 높은 수준의 도덕적 행동기준을 지켰다고 공언했는데 병사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인권단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망자 1,300여명 중에서 3분의 2인 870여명이 민간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바라크)는 "보도된 것은 예외적인 사례들"이며 "이스라엘 군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라고 논평했다.

★ 관련뉴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01807345&code=970209


이스라엘 국방부, '이스라엘 군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언제나 전쟁상황에 노출된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같은 이웃 나라가 쏘는 폭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전국민 징병제이기 때문에 군대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한다. 

어디서든 전쟁이 펼쳐진다. 실제로 총을 쏘고 사람을 죽여야 하고, 부당한 명령을 감수해야 한다. 
1982년 9월의 그리스도교 민병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에 참여했던 한 병사가 사라진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기 위해 당시 동료들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 <바시르와 왈츠>는 영화와 책으로 동시에 출시됐다.

영화는 일찌감치 제6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선정작, 2009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로 표현하지 못한 세심한 부분들을 책으로 표현했다. 영화와 책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감상하면 좋다.

주인공 아리 폴먼의 무의식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가장 끔찍한 기억을 '블라인드' 처리해 버린다. 어느날 친구로부터 우연히 악몽 이야기를 듣고 무의식의 결계가 깨지면서 폴먼은 자신의 기억을 좇게 된다. 기억에 다가가면서 끔찍했던 그 날의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심리학자인 친구 오리의 조언으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폴먼 : 위험하지 않을까?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잖아?
오리 :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람들에겐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어두운 면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기제가 있어. 아마 네가 알고 싶은 부분에만 다가갈 수 있을 거야. (<바시르와 왈츠를> 중에서)



 


▲ 바시르와 왈츠 표지. 주인공의 표정 속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뉴스에 보도된 것처럼 자신의 행위를 고백한 이스라엘 병사, 자신의 경험을 영화와 책으로까지 만들어 세상에 밝힌 이스라엘 퇴역군인을 보면서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괴롭혔을 죄책감과 그들이 행위를 고백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적과 아군이 너무나 확실히 구분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가득 채울 만큼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다만 전쟁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일부분의 시간들을 징집한다. 하지만 징집된 사람은 평생 동안의 기억을 지배하는 전쟁의 상황을 견뎌야 한다. 전쟁에 참여한 순간은 잠깐이지만, 전쟁의 안 좋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사람은 너무나 오랫 동안 비용을 들이는 이 전쟁상황을 대면한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도 드디어 전쟁정부의 세뇌에서 조금씩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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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학살' 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




 

학살 1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실천문학사.

 

 

하마터면 결코 기억할 수도 없었을 그 시대의 일들이 이렇게 우리곁에 살아 있다.

1980년 5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학살'의 기억은 풍문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이같은 노래의 한 자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를 내동댕이 쳤다.

격동의 80년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 그날의 '비디오'를, 글들을,

찾아 읽으며, 나누고 또 나누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사람사는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새날은 오는 듯 하였다. 

20세기의 끝자락, 민주주의는, 온전한 정치적 자유는

사람들의 움켜잡은 손에 거의 다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Ⅱ. '학살', "홀로코스트" 

 

어느날 영화를 보러갔다.

2차 세계대전중 일어난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학살의 내용보다 독일인이 유대인을 구해낸 실화라는 사실에 솔깃하여

만나러 갔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적어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사람이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야마는건지..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학살'은 기억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흥분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으리라.

하지만 80년 5월, 이 땅의 학살도 쉬 잊혀지는데

더 오랜 남의나라 이야기가 어찌 기억속에 여태 남아 있으랴...

 

학살은 학살 그 자체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상까지 죽여버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Ⅲ. 그리고 이 '학살'을 보라,  [바시르와 왈츠를]

 

학살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쉬 말해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한 유대인들이

이제는 학살자가 되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철저히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다.

자신들이 그만큼 역사속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던 이들이 보여주는 만행을 보라.

글이 아닌 그림으로, 사진으로 생생히 전해지는 학살의 기억들.

 

 

 

지은이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한번 잊어보라고, 꽁꽁 숨겨두고 묻어두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라고....

과학이 더 발전되어 정말 기억을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다면

그들은 이 학살에 대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문득문득 솟아나 어떤 계기로 하여금 잊어버리고 묻어버렸던 그 기억들을 찾아내도록 만든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정말로 잊고 싶었던 아픈 학살의 진실들이다.

 

레바논 민병대의 학살을 방조하고 실질적으로 도운 이스라엘 병사들의 기억은

이 책에서처럼 결코 지워지지 앉는다. 다만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고 피냄새가 번지면 이윽고 기억속 장면들이 처참히 살아나

살아남은자들의 상처를 후벼판다.

우리는 이 책을 덮으려 하지만 덮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절규하는 난민의 모습과 총상에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이들의 사진이

마치 그날 오월의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제는 그만 잊고 살아도 될 것 같았던

'학살'의 기억들이 오롯이 살아나 밤을 지새우게 한다.

 

우리는 우리네 형제끼리...

저들은 저네들끼리....

게다가 주인공인 이스라엘인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서

드디어 가해자로! 변한 것이다.

 

정녕 '학살'의 피해자가  '학살'자가 되는 일이 생기고 만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몽땅 잊었단 말인가?

이 책은 제발 그러하지 말자고 조심스레 반성의 기색을 내보이는

이스라엘 자신의 목소리일까?

 

에니메이션이 원작인 이 다큐멘터리만으로는 조금은 기대를 걸어도 좋으리라. 

하지만 최근 '뉴스 속 세계'에는

다시 자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악화되는 것인가?

책 한 편이 던져주는 '학살'의 아픔과 충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리라.

 

끊이지 않는 국지전 속에 분단조국의 현실도 녹록치않게 악화되어가고 있다.

정녕 우리는, 사람들은 어디쯤에 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지....

묻고 또 묻는 시간들이다.

 

'학살'은 결코 잊혀지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이런....젠 장.

 

2009. 2. 12.  불어닿는 저 바람처럼 흔들리는 깊은 밤

 

들풀처럼
*2009-03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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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가끔 김남주 시인 평전을 꺼내 읽으며, 그 서늘한 숫돌위에 제 마음의 칼날도 갈아보곤 합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관함에 넣어주고 선뜻 꺼내들지 못하는 것은 마주보기에 너무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에 학살지 아닌 곳이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문뜩 듭니다. 이 포스트를 읽고 바로보지 않고서는 바로 인식하고 바꿀 수 없을테니 용기를 내어 읽어보고자 합니다.

다른 2009-02-18 12:57   좋아요 0 | URL
FTA반대휘모리 님~ 안녕하세요. 김남주 시인의 시는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시를 고민하던 때에는 김남주 시인이 쓰는 시어는 제게는 금기어였지만, 금기어를 가지고서 금기어가 아닌 어떤 언어들로 빚은 시보다 더 시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엄청난 시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시르의 작가도 김남주 시인만큼은 아니지만 '만화',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짧은 페이지 안에 그 충격을 담아냈으니 '시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