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절판


바보상자라고 불리우는 TV는 사실 그렇게 바보스러운 존재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조명하는데, 때로는 누군가를 부각시키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하는 것이 바로 그 바보상자이고, 사람들은 그 바보상자를 바라보며 시대의 인물상을 만들어내고, 꿈을 그리며, 현실을 반영하는 무엇인가를 끝없이 보여주니까 말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끝없이 말하기만 하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바보상자. 그 바보상자인 TV는 이제 시대의 현실이자 우리사회의 모습이고 당신과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보상자 앞에서 가끔은 지혜를 얻고 희미했던 무엇인가의 윤곽을 그려내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꿈, 사람들이 원하는 인물들을 그 안에서 찾는 것은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때 정조라는 우리 역사의 개혁군주가 그랬고 지금은 김만덕이라는 여인이 그렇다. 바보 상자에서 꺼내든 보물. 김만덕의 이야기가 이제는 바보 상자 바깥으로 나와 책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숨비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때 간간히 물 밖으로 나와 몰아쉬는 호흡이라고 한다. 한껏 숨을 들이쉬고 물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 그녀들이, 숨을 참아가며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손에 들고 물 위로 올라와 탄성과도 같이 내뱉는 그 한번의 호흡말이다. 생소한 단어였지만 살아있는 느낌을 전달하는 단어, 그리고 그 의미 안에 한권의 책이 담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그런 단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 그것이 바로 <숨비소리>라는 이 책의 제목이었다. 거상 김만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한 여성, 제주의 여성으로 태어난 그녀가 최하층의 관기라는 신분을 딛고 일어서 거상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걸었던 인생의 모습을 그토록 잘 표현한 제목이 있을까? 매일매일을 숨을 참고 물 속을 자맥질 하듯, 그리고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물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건져올려서야 몰아쉴 수 있었던 단 한번의 탄성과도 같은 그 짧지만 값진 호흡처럼 그녀의 인생을 잘 표현한 단어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기도 했다


화면을 통해 거상 김만덕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이 되고 난 후, 드라마 자체는 그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TV라는 바보 상자가 꺼내어든 김만덕이라는 인물은 보물과도 같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물로서의 조명을 충분히 받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신분의 제약을 넘어서는 재주를 빛내고, 그 재주를 발판삼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누군가의 인내, 그리고 그 노력과 재주로 이룩한 것들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과 아량이 그녀를 제약하려하고 가두어 두었던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진정한 힘이었음을 보여주며 진정한 가치와 인격에 대해 말하면서 말이다. 제주라는 지역적 제한 뿐 아니라 신분이라는 사회적 제약에도 묶여있었던 그녀, 그리고 관기라는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후에는 백성을 돌볼 줄 알았던 진정한 거상으로서의 모습으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저 천한 신분의 여성이 아니라 한명의 사람으로서 인격을 말할 수 있었던 그녀. 거상 김만덕은 현재에도 이겨내지 못한 여러 제약과 편견에 맞선 한명의 투사이자 지도자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숨비소리라는 제목의 한권의 책이 김만덕이라는 거상이라 불리워 아깝지 않은 한명의 인물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만을 말하는 사료가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따라가며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이니 말이다. 하지만 숨비소리라는 제목에서처럼 이 이야기는 그녀의 인생 전체를 끝없는 자맥질과 한번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부단한 노력으로 설명한다. 또 그녀가 내뱉었던 한마디 탄성의 숨비소리가 아니라 그 숨비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자격, 끝없이 숨을 참아가며 물 속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자맥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녀를 대변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숨비소리, 듣기에는 아름다우나, 그 이름만큼 곱지만은 않은 한번의 호흡. 그녀의 인생은 그 한번의 호흡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끝없는 자맥질 끝에 한번의 호흡을 얻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숨비소리의 진정한 가치는, 그래서 한번의 호흡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닌, 노력 끝에 얻었던 단 한번의 호흡이리라. 그녀의 인생을 통해, 그녀가 거상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한번 인생을 논할때 노력이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된다. 너무도 흔하게 쓰여 가끔 잊어버리는 그 단어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숨비소리 역시 그 가치를 말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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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절판


사람에게는 가끔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특정 이미지들이 있다. 너는 꽃같고, 나는 구름같으며, 누군가는 투명한 유리병같은 이미지들이 있는 사람들. 때로는 향기로 때로는 사물로 표현되는 그들의 이미지들은 그런 이미지들이 없는 사람들보다 설명하기 쉽고 이해받기 쉬운 특징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그들을 규정짓는 기준이나 편견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로 설명한다는 것.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를 사물로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물>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런 의문을 가지게 한 이야기였다. 과연 나는 어떤 사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말이다.

<물>은 독특한 소설이다. 물과 불, 소금과 금, 그리고 공기라는 이름의 가족들. 모두가 사물의 이름을 가지고 그 특성으로 자신을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독특하다는 표현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처럼 그 이름에 꼭 맞는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옛말에 있다는 "꼴 보고 이름지으라."는 말에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름만으로 그들을 가늠하고 그들의 규정지을 수 있게 만든다. 물의 상태에서 수증기와 얼음을 오가며 가족을 아우르는 어머니, 물의 기운을 가장 두려워하는 불의 아버지, 물이 되고 싶고, 물을 원했으나 물을 원할수록 자신과 물을 괴롭히게 되는 소금,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나는 금과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도, 혹은 소멸하게도 만드는 공기는 그 자체로 가족들을 설명하고 가족들을 말하는 이름들이다.


<물>의 가족들은 모두가 하나의 존재이다. 물과 불, 소금과 금, 그리고 공기. 말 그대로 모두 다른 이름을 가진, 가족이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각각의 존재. 서로가 너무 다르기에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이라 이름짓기에는 너무도 확고한 스스로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개인말이다. 그렇기에 <물>의 가족들은 끝없이 서로를 갈망하고 원하기도 하며,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 속으로 서로를 밀어넣기도 한다. 가족이기에 하나가 되려 하고 가족이기에 서로를 해치기도 하는 애증의 관계. <물>의 가족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한데 묶어 놓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집착, 그리고 그 욕심으로 인해 빚어지는 누군가 혹은 어느 가족의 고통과 해체에 대해 무엇인가의 이름으로 설명하고 말하려는 소설 <물>. 그 안에서 모든 것의 근원인 <물>이 가지는 의미와 가족 안에서 어머니의 이름이 가지는 진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 또한 <물>이 가지는 의미이다.

<물>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제목이 되는 <물>을 떠올렸다. <물>이라는 제목을 지었으니 작가는 아마도 불도 소금도, 금도, 공기도, 납도 아닌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리라. 때로는 의미없이 공간을 차지하는 불필요한 존재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존재로 인해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바로 그 물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300톤의 물을 몰아내고 하나의 집을 지었지만 물이 없는 집에서 가족이 끝없이 불화를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다 결국은 어떤 것도 지켜내지 못했던 것처럼, 그 곳에 존재하는 단 한방물의 <물>인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렀을때 결국은 물 없는 세상은, 그 스스로 빛을 내는 금을 가지고도 타인을 중독시키고 해를 끼치게 되는 납만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물>이라 이름 지어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근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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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절판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도 어떤 일을 할때에는 습관적으로 하게 되거나, 습관적으로 지키는 일들이 있다. 때로는 습관이나 버릇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징크스나 의도적이라는 말로 하게 되는 이러한 익숙한 일들은, 처음에는 일부러 그러했다가 나중에는 무의식중에, 원래 그러했다는 듯이 하게 되는 말 그대로 습관이 되어버린다. 책을 읽을때에도 나에게는 이런 습관이 몇가지 있다. 절대로 한번에 한가지 책을 읽지 않는다든지 (2~3권을 한꺼번에 읽는다) 혹은 책 뒤의 저자의 말이나, 번역서의 경우 옮긴이의 말 등 붙어있는 글들을 먼저 읽지 않는다던지, 혹은 절대로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한꺼번에 두어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은 이유마저 잊어버린 오래된 습관이고, 책에 밑줄 대신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것은 나에게 책을 빌려가는 몇몇 고정대여인들을 위한 습관이다. 그리고 저자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들을 본문 보다 먼저 읽지 않는 것은, 그들의 생각에 나의 시야가 갇히지 않아야 겠다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대부분은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생각인 이런 버릇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깨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딱드렸을 때 말이다. 그리고 <숨김없이 아낌없이>는 나에게 그런 예기치 못한 상황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의 옷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사고방식이 조금씩은 보이고,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와 생각의 방향이 보이듯, 한권의 책을 볼때에도 책의 표지를 보면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겠구나라든지 혹은 어떤 분위기를 담고 있겠구나라는 어느 정도의 감을 잡을 수 있다. 표지도 나름대로는 그 책의 옷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숨김없이 아낌없이>는 그런 의미에서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닌, 애매모한 표지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그리려는 것도 같고, 지우려는 것도 같은 끄적임, 아니 끄적임 축에도 들지 못할 것 같은 짧은 조각들이 흰 여백위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것이 다였으니까 말이다. 도대체 이 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아무리 보아도 표지만으로는 이 책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의 난해함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지러움을 말이다.


<숨김없이 아낌없이>에는 드라마틱한 사랑이야기도, 간절한 소망을 담은 꿈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다. 아름답지도 않고 희망에 들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가장 추하고 지저분한, 그래서 차마 고개 돌려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한 가득 담겨져 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이들. 세상에서 도망치고 누군가 자신들을 찾아낼까 두려움에 떨어야 할만큼 자신을 처절히 저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그리고 책안의 글자들을 통해 제목 그대로 숨김없이 아낌없이 까발려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이들을 당황하게 하고 화 나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당황스러움과 화가 끝나갈때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책 속의 누군가에 대해서 동정의 마음까지도 담게 한다. 세상에서 숨고 숨어, 기어이 책 속의 글자로 숨어든 사람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세상에서 자신을 감추지 못하고 책을 통해 자신을 낱낱히 보여주어야 하는 누군가의 인생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것만 같아서 말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격리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삶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인생의 한때 잠시 잠깐 찬란하게 피어있을 수도 없었던 철저하게 숨기고 싶은 그들의 삶과 숨고 싶은 그들. <숨김없이 아낌없이>안에는 단 한순간도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지나온 자신의 과거마져도 저주하면서 결국에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낙오자들에 대한 이야기만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나마도 가장 부자연스러운 글들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과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남아있기는 한것인지도 모를 어지러운 말들을 타고 말이다. 가장 처절한 인생을 가장 자극적인 단어로 쏟아내는 <숨김없이 아낌없이>.. 옮긴이의 말이라든지 작가의 말들은 절대 책을 다 읽기 전에 읽지 않는다는 나만의 습관을 깨고 기어이는 책의 뒷장부터 펼쳐들게 했던 이 한권의 책.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만큼 난해하고 복잡했던 이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해 책의 뒷편을 읽고 난 후에도 사실 나는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숨김없이 아낌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간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와 그 생각의 덩어리들을 <숨김없이 아낌없이> 말 그대로 여과없이 쏟아낸 그의 글들에서, 어느 한구석 웅크리고 있는 말도 안되는 세상과 그 안에 숨어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의 한 조각을 본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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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품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정말 사실일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사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그 불완전한 존재들이 경쟁하고 싸우며 지금에 이어져온 역사임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결국 이긴자들의 기억속에 남은, 혹은 승리한 자들이 필요로 하는 사실일 뿐이니 말이다. 결국 역사 또한 약간 불편한 시선으로 본다면 승리한 자들의 또 하나의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는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들이 많다. 승리하지 못한 자들이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어쩌면 진짜 진실일지도 모르는 또 다른 역사와 관점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요, 풀어야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보이니치 코드>는 바로 이러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하나의 사실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실제로 존재하는 보이니치 필사본을 소재로 하여 이 보이니치 필사본을 둘러싸고 역사속에 존재했던 수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 그리고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구성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몇년 전 세계를 거의 들었다 놨다 하다시피한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처럼 <보이니치 코드> 역시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절묘하게 섞어놓은 팩션이라는 장르의 소설이기도 하다. 아직도 해석되지 않은 문장들과 수 많은 그림들로 구성된 실존하는 보이니치 필사본에 관심을 가지고 이 필사본을 해독하기 위해 모이는 보이니치 리스트라는 이름의 온라인 동호회 회원들. 이 회원들 중 스페인 예수회 사제인 엑토르와 아름다운 멕시코 여성 후아나,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존이라는 이름의 학자가 주축이 되어 보이니치 필사본의 해독을 위한 모험을 진행하는 것이 <보이니치 코드>의 주요 내용이라고 간추릴 수 있다

<보이니치 코드>에는 예상치 못했던(물론 이것은 내가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들이 다수 출연한다. 뛰어난 수학자로 알려진 요하네스 케플러부터 루돌프 2세 그리고 튀코라는 또 한명의 학자와 예수회라는 종교단체등 실제로 존재했고 여전히 역사로 존재하고 있는 이들 말이다.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독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필사본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들과 그들의 추측들이 더해진 풍성함을 가지게 된다. 단순히 인디아나 존스식의 뛰고 달리는 모험이 아니라 지식들이 총동원되는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모험. 때문에 <보이니치 코드>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뛰고 달리는 생동감 대신 뛰어난 두뇌와 다량의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이야기를 긴장감 있고 풍성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라는 또 하나의 분야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킨다는 점에서는 이미 많은 인기를 누렸던 팩션의 대표작 다빈치 코드보다도 한 수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책을 통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 혹은 진실에 대해서는 어떠한 추측도 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강박감 없이 여전히 진행중인 보이니치 필사본의 신비함과 그 안에 가려져 있을지도 모를 진짜 진실에 대한 이야기만을 내어놓을 뿐이다. 혹자들은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뭔가 개운하지 못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반대로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진행중에 있는 수 많은 명확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태우는 것으로 이 책의 의미를 갈음할지도 모르겠다. <보이니치 코드>는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다. 게다가 그 안에 담고 있는 엄청난 양의 지식은 역사라는 분야, 그것도 세계사라는 분야를 한동안 멀리하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새록새록 그 깊이와 흥미로움을 다시 느끼게 해줄 요소도 갖추고 있다. 궁금하면 다음 편을 기대하라는 to be continued 방식의 맺음까지도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 <보이니치 코드>는 그런 면에서 팩션이라는 장르에 다시 한번 매력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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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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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휴일에, 나는 주말을 틈타 집에 들렀었다. 어린시절부터 딸들과 아들과 함께 어딘가를 여행하기를 좋아하셨던 아버는, 그날 오랜만에 집에 온 나를 그냥 보내시기 싫으셨던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 어딘가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셨다. 원래부터 우리집에서 늘 이루어졌던 큰 딸과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이렇게 무계획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어딘가를 가고 싶으면 "큰딸! 우리 내일 어디 놀러갈까?"로 계획을 삼으셨고, 그러면 나는 이곳저곳을 떠올리며 내일 아빠와 함께 놀러갈 어딘가를 기다리곤 했다. 그날의 그 드라이브도 대충 그런 식으로 준비되었던, 늘 있어왔던 무계획이 계획인 여행이었다. 한동안 집에 들르지 않아 그리웠던 딸과, 한동안 집에 가지 못해 그리웠던 아버지의 충동적 드라이브 말이다.

그날 어디에 갔었는지 목적지는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그 때의 그 여행이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날 아버지가 하신 차 안에서의 짧은 한 마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굽이굽이 한치앞도 시원하게 달릴 수 없는 국도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그날도 어느 시골의 논과 밭, 그리고 언덕배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도를 선택하셨더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절대 고속도로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풍경을 잔뜩 누리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를 전하셨다.

"꼭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도, 길 밖에도 길은 있단다."라고...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한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그 한마디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굽이굽이 굽어져 있어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드넓은 공간으로 자유를 주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더욱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그 국도변 어느 곳에서 길 밖에도 길은 있다는 것을, 그 길 밖의 길이 아니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길 안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길밖의 삶도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던 그날의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여행길의 의미를 말이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그래서 나에게 어딘지 모르게 특별함을 가지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길 밖의 삶. 책에서는 바깥이라 말하고 있는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만으로 언젠가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짧은 대화를 떠올리게 했고, 그 말 한마디를 자꾸만 곱씹고 되새김질했던 그 순간의 특별함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고 하면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이 될까? 아버지가 스치듯 말씀하셨던 그 길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길의 의미를 이 책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통해서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조금 더 아름답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 기대가 나를 설레이게 하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에는 스물여섯가지의 각자 다른 바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때로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물의 이야기이기도 한 바깥의 삶은, 말 그대로 남들이 모두 원하는 안락한 "안쪽"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기 쉽고, 돌아보지 않는 그런 외로운 삶이기도 하다. 모두가 바라는 삶의 바깥에 있는 것들.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에서는 그곳의 삶도 아름다움을 담고 있음을, 그곳의 삶도 가치있음을, 그리고 그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도 결국은 "안쪽"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존재들처럼 행복을 갈망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들을 아웃사이더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생의 의미를 모두 소진하고 이제는 지긋히 나이를 먹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의 잉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안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그리고 무엇인가의 삶들은 그렇게 언뜻보면 초라하고 낡았으며 힘없이 내려앉은 허름한 초가집 같은 모습이었다. 모두가 높고 높은 고층건물을 갈망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기준점 바깥에 존재하는 낡고 허름한 초가집. 그 초가집 안을 들여다 보는 일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가 하고 있는 것이다.

꿈을 쫓았으나 꿈을 쫓는 힘겨움에 지쳐 잠시 현실을 마주하기로 한 중견배우 택배기사도, 타인의 미래를 들여다보아주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나이든 무속인도, 언제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료 옆에서 그 빛에 가려 그늘만 차지하고 있는 수영선수도, 경주마로서의 생을 마치고 이제는 느긋히 자신의 이름을 이어받을 자손들을 만들어내는데에만 신경쓰면 되는 경주마도, 그리고 절판되어 폐지가 되어버린 한 권의 책도, 그렇게 평범한 시선을 빌려보자면 낡고 허름한 초가집처럼 볼 것 없고 그릴 것 없는 세상밖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주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이 사람의 삶이고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한째 목적지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고속도로위의 여행과, 굽이진 길을 가느라 속도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지만 길가에 핀 작은 들꽃, 계절을 알리는 푸르름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한적한 국도위의 여행 중 반드시 고속도로 위의 여행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의 행복과 무엇인가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길 위에 있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 행복으로 향하는 방법은 과정이 정해진 수학공식은 아니니까 말이다. 고층 빌딩위의 사장님보다 초가집 안의 단란한 가족이 더 행복하지 못하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안쪽"의 삶이 바깥의 삶보다 무작정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통해 만나는 스물 여섯의 바깥의 이야기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야에 대한, 아니 행복을 꿈꾸는 당신의 꿈에 대한 바로 그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록 바깥에 있어 춥고 배고플지라도, 바깥에도 행복과 가치가 있음을, 혹은 바깥이 아니면 누리지 못할 또 다른 행복도 있음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을 통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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