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휴일에, 나는 주말을 틈타 집에 들렀었다. 어린시절부터 딸들과 아들과 함께 어딘가를 여행하기를 좋아하셨던 아버는, 그날 오랜만에 집에 온 나를 그냥 보내시기 싫으셨던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전 어딘가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셨다. 원래부터 우리집에서 늘 이루어졌던 큰 딸과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이렇게 무계획적이었다. 그냥 갑자기 어딘가를 가고 싶으면 "큰딸! 우리 내일 어디 놀러갈까?"로 계획을 삼으셨고, 그러면 나는 이곳저곳을 떠올리며 내일 아빠와 함께 놀러갈 어딘가를 기다리곤 했다. 그날의 그 드라이브도 대충 그런 식으로 준비되었던, 늘 있어왔던 무계획이 계획인 여행이었다. 한동안 집에 들르지 않아 그리웠던 딸과, 한동안 집에 가지 못해 그리웠던 아버지의 충동적 드라이브 말이다.
그날 어디에 갔었는지 목적지는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그 때의 그 여행이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날 아버지가 하신 차 안에서의 짧은 한 마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굽이굽이 한치앞도 시원하게 달릴 수 없는 국도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그날도 어느 시골의 논과 밭, 그리고 언덕배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도를 선택하셨더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절대 고속도로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풍경을 잔뜩 누리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를 전하셨다.
"꼭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도, 길 밖에도 길은 있단다."라고...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한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그 한마디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길을 빠른 속도로 달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굽이굽이 굽어져 있어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드넓은 공간으로 자유를 주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더욱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그 국도변 어느 곳에서 길 밖에도 길은 있다는 것을, 그 길 밖의 길이 아니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길 안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길밖의 삶도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던 그날의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여행길의 의미를 말이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는 그래서 나에게 어딘지 모르게 특별함을 가지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길 밖의 삶. 책에서는 바깥이라 말하고 있는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만으로 언젠가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짧은 대화를 떠올리게 했고, 그 말 한마디를 자꾸만 곱씹고 되새김질했던 그 순간의 특별함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고 하면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이 될까? 아버지가 스치듯 말씀하셨던 그 길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길의 의미를 이 책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통해서 조금 더 자세히, 그리고 조금 더 아름답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그 기대가 나를 설레이게 하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에는 스물여섯가지의 각자 다른 바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때로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물의 이야기이기도 한 바깥의 삶은, 말 그대로 남들이 모두 원하는 안락한 "안쪽"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기 쉽고, 돌아보지 않는 그런 외로운 삶이기도 하다. 모두가 바라는 삶의 바깥에 있는 것들.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에서는 그곳의 삶도 아름다움을 담고 있음을, 그곳의 삶도 가치있음을, 그리고 그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도 결국은 "안쪽"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존재들처럼 행복을 갈망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들을 아웃사이더라 말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생의 의미를 모두 소진하고 이제는 지긋히 나이를 먹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의 잉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안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그리고 무엇인가의 삶들은 그렇게 언뜻보면 초라하고 낡았으며 힘없이 내려앉은 허름한 초가집 같은 모습이었다. 모두가 높고 높은 고층건물을 갈망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기준점 바깥에 존재하는 낡고 허름한 초가집. 그 초가집 안을 들여다 보는 일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가 하고 있는 것이다.
꿈을 쫓았으나 꿈을 쫓는 힘겨움에 지쳐 잠시 현실을 마주하기로 한 중견배우 택배기사도, 타인의 미래를 들여다보아주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나이든 무속인도, 언제나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료 옆에서 그 빛에 가려 그늘만 차지하고 있는 수영선수도, 경주마로서의 생을 마치고 이제는 느긋히 자신의 이름을 이어받을 자손들을 만들어내는데에만 신경쓰면 되는 경주마도, 그리고 절판되어 폐지가 되어버린 한 권의 책도, 그렇게 평범한 시선을 빌려보자면 낡고 허름한 초가집처럼 볼 것 없고 그릴 것 없는 세상밖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주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이 사람의 삶이고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한째 목적지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고속도로위의 여행과, 굽이진 길을 가느라 속도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지만 길가에 핀 작은 들꽃, 계절을 알리는 푸르름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돌아볼 수 있는 한적한 국도위의 여행 중 반드시 고속도로 위의 여행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의 행복과 무엇인가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측정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길 위에 있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길을 찾아 행복으로 향하는 방법은 과정이 정해진 수학공식은 아니니까 말이다. 고층 빌딩위의 사장님보다 초가집 안의 단란한 가족이 더 행복하지 못하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안쪽"의 삶이 바깥의 삶보다 무작정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통해 만나는 스물 여섯의 바깥의 이야기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야에 대한, 아니 행복을 꿈꾸는 당신의 꿈에 대한 바로 그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록 바깥에 있어 춥고 배고플지라도, 바깥에도 행복과 가치가 있음을, 혹은 바깥이 아니면 누리지 못할 또 다른 행복도 있음을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을 통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