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에 집착하고 있는 요즘 잊고 지내던 옛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이젠 내게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고 가슴 아픈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당시 감독도 출연 배우도 거의 모르고 무심한 가운데 봤던 이 영화는 씻기 힘든 큰 여운을 남겼다. 아니 남겼다기 보다 내 스스로 각인을 시켰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ㅎㅎ 대체 그시절의 나는 왜 그랬을까?〈잉글리쉬 페이션트〉에는 크게 두 가지 멜로드라마가 병행된다. 하나는 영국인 환자인 알마시 백작(랄프 파인즈)의 회상 속에서 벌어지는 알마시와 유부녀인 캐서린 클리프튼(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사랑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알마시 백작을 간호하는 한나라는 간호사(줄리엣 비노쉬)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 멜로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 이야기이고 한나의 이야기는 조금 부차적이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은 분명한 불륜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절절한 아픔과 비극의 생생함을 잘 느끼게 만든다. 알마시의 눈물을 마치 곁에서 보고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죽어가는 여인을 살리기 위한 그의 처절한 노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나면 불륜으로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건 그냥 사랑이었다.내게 인상적었던 장면은 영화 초반의 사막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을 캐서린이 알마시를 비롯한 사람들 앞에서 인용하여 들려준다. 리디아 왕국의 왕비 이야기는 무척 극적이면서 많은 내용을 암시한다. 특히 나중에 나오는 캐서린과 알마시의 사랑을 예고하기도 한다. 그 내용에서 재밌는 것은, 왕비가 남자를 선택하여 왕을 죽이게 만들고 자신이 그와의 사랑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당대의 일반적인 도덕과 윤리로 따진다면 분명히 불륜이고 반역 행위인데, 그들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살았다. 어쩌면 그런 스토리는 현재에나 있을 법한 것이지만 당시나 현재나 파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캐서린과 알마시의 사랑은 리디아 왕비와 달리 비극적으로 끝난다. 내게는 이런 장치가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인양 그 아픔을 느끼고 비극에 동참하는 사실이 웃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게 실감나게 다가오고 쉬 잊혀지지 않는다.이 영화만큼이나 영화ost를 사랑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듣고 있다. 너무 좋다. 이번에 보면서 캐서린의 남편으로 나온 배우가 <킹스맨>의 콜린 퍼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도 이런 배역을 맡을 때가 있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