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인조인간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조선시대 후기의 정씨 삼형제를 잘 알 것이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모두가 남다른 재능을 가졌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불운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영화는 그 중 맏이 약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는 그의 유배 이유, 유배지에서 약용과의 교류, 유배지에서의 생활들이 그려졌다. 특히 책 <자산어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잘 그려졌다.

영화에는 많은 명대사들이 나오지만 그 중 아래의 구절은 내 머리를 때렸다. 문제는 약전이 지적한 질문 안하고 달달 외우는 공부법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광범위하게 교육 현장에는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나 학교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교육이 필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입시라는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효과적이다. 이런 결과 질문 못하는 기자, 질문 안하는 기자가 나타나게 된 것 아닐까?

질문이 곧 공부야.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장창대에게 주목했다. 흑산도의 어부였던 그는 자신이 공부하고 배운 것이 그대로 사회에 적용되기를 바랐다. 성리학 경전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만 이해되는 죽은 지식이 되어서는 안되면, 목민관이 이를 공부하여 실제 적용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세도정치 하의 조선은 비리가 넘치고 가렴주구는 일상화되어 있었다. 학정의 말단에는 아전이 있지만 그들은 수족에 불과했다. 진짜 몸통과 머리는 그들의 직속 상전이거나 한양에 있는 높으신 나리들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외우고 공부했던 창대의 경전은 약용의 <목민심서>였지만, 그 저자는 당시로서는 유배 죄인이었다. 거기에 비해 스승 약전은 차라리 현실적이었다. 제자가 꿈꾸던 세상보다 그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 결과가 <자산어보>다. 약용의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는 당대에는 의미 없는 종이더미에 불과했다. 영화를 슬프게 읽은 것은 조선 후기의 사회 현실에 분노해서가 아니라. 창대에게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칙을 중시하고 현실과 타협하기 힘들어 하는 그런 모습을.

영화를 잘 그린 이준익 감독이 새삼 훌륭해 보였다.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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