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분열하는 제국 - 11개의 미국, 그 라이벌들의 각축전
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7월
평점 :
한국인에게 직접선거 대신 주 별로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제도일 것이다. 지난 대선의 클린턴처럼 총 득표수가 더 많아도 낙선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불합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미국 특유의 대선 제도는 미국이 말 그대로 United States of America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합중국"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미국 연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1776년 당시 미국은 13개 주의 연방으로 탄생했고, 그 규모가 50개 주로 늘어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미국은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50개 주의 연방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분열하는 제국>은 미국을 11개의 nation(국민, 국가, 민족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책에서는 문화권이 제일 적절해 보인다)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nation은 주의 경계를 뛰어넘고, "북부, 남부, 서부, 동부"의 구분도 뛰어넘고, 심지어 캐나다와 멕시코의 국경까지도 뛰어넘는다. 얼핏 듣기로는 황당무계하지만, 각각의 문화권이 다른 기우너과 역사, 전통,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1. 엘 노르테: 여느 미국 역사책과 달리 이 책은 17세기 영국인들의 미국 이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16세기 후반부터 북진을 시작하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 도시들을 만들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 텍사스 남부, 아리조나 남부, 뉴멕시코를 미국에 넘겨야 했다. 이들 지역과 멕시코 북부의 히스패닉들은 다른 지역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체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2. 뉴프랑스: 17세기 초반, 프랑스인들이 북미 대륙에 진출한다. 영국인들과 달리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이들은 영국 식민지인들과 패권을 두고 다투다 18세기의 프렌치-인디언전쟁에서 패배하고 영향력을 상실한다. 현재는 루이지애나 남부의 일부와 캐나다의 퀘백 지역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3. 타이드워터: 1607년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영국의 귀족 사회를 모델로 하여 이 지역을 다스렸다. 한때는 양키덤에 맞서며 북미의 패권을 가지려 했지만, 19세기 이후에는 담배 산업의 쇠퇴로 디프 사우스에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4. 디프사우스: 17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에서 미국의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 이들을 가리키며, 노예제를 중심으로 한 독재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세계관을 수호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남북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플로리다, 루이지아나, 아칸소, 텍사스에 해당하는 지역.
5. 양키덤: 1620년대 메이플라워호를 시작으로 청교도들이 미국 북동부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청교도는 불관용적인 종교였지만, 민주주의와 교육을 중시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었다. 이들의 종교적 색채는 20세기 들어서 세속화되었고, 현재는 민주당의 핵심 지역으로 디프사우스와 패권을 다투고 있다. 메사추세츠, 뉴잉글랜드에서 시작하여 오대호 주변으로 세력을 넓혔다.
6. 레프트 코스트: 캘리포니아부터 앨라스카까지의 북미대륙 서해안에 위치한 지역. 19세기 뉴잉글랜드인들이 진출하면서 양키덤의 영향이 강했고, 현재까지 양키덤과 동맹 관계에 있다. 양키덤보다 종교적 색채가 없고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꽃피웠다.
7. 뉴네덜란드: 양키덤과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인들이 현재의 뉴욕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 지역은 곧 뉴잉글랜드에게 정복당했지만, 개방적이고 상업 중심적인 분위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8. 그레이터 애팔라치아: 18세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경지대에 있던 이들이 가난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애팔라치아 산맥에 정착했으며, 현재는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미주리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독립적인 성향이 짙으며 엘리트, 양키덤에 대한 반감 때문에 현재는 디프사우스와 동맹을 맺고 있다.
9. 미들랜드: 19세기 퀘이커 식민지로 시작했으나, 이후 독일계 이민들이 많아졌다. 세력권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북부, 오하이오 중부, 사우스 다코타, 캔자스, 캐나다의 온타리오까지에 이른다. 중도적 성향을 가지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 왔다.
10. 파웨스트: 아이다호 ,몬타나, 콜로라도,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 동부 등 미국 서부의 광활한 지역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왔다.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11. 퍼스트 네이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는 캐나다 북부의 삼림지역. 환경주의와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은 최근 독립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사를 이들 11개 문화권의 각축으로 보는 이책의 관점은 획기적이고 대담하다. 예를 들어 미국 독립혁명은 양키덤, 디프사우스, 타이드워터, 그레이터 애팔라치아의 동맹으로 성사시켰고, 뉴네덜란드와 미들랜드는 소극적이었다. 남북전쟁의 경우,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던 디프사우스의 독립을 양키덤과 그 외 세력이 주축이 되어 저지한 것이었다.
현재의 민주당, 공화당의 대립은 양키덤-레프트코스트-뉴네덜란드 동맹과 디프사우스-타이드워터-그레이터 애팔라치아의 연합의 대결의 연장에 있다. 파웨스트, 엘노르테, 미들랜드는 부동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현재 파웨스트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공화당에, 히스패닉이 주가 되는 엘노르테는 인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방불케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인종, 종교, 정부의 권한을 둘러싼 미국 정치의 단층들을 11개 문화권으로 분석하는 관점은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재미있으면서도 알기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