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개의 날 4 - 완결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철원의 군부대에서 자주포 사고로 육군 세 명이 또 죽었다. 대한민국 남성에게 국방의 의무로 부여되는 병역 중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 목함지뢰사건 등은 말할 나위 없지만, 불의의 사고, 선임의 괴롭힘, 무성의한 치료로 악화된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없다. 이래서야 아들 낳아서 군대 보낼 수 있겠냐는 한탄이 들려올 만하다.


만화 <DP 개의 날>은 헌병 소속 군무이탈 체포조, DP인 안준호와 박성준 콤비가 탈영병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DP는 탈영병을 잡기 위해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군대 밖에서 활동한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탈영병들 중에는 여친 때문에나 별 생각 없이 탈영한 인물도 있지만, 부대 내에서의 선임 및 간부의 구타 및 가혹행위, 내무부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탈영한 이들이 그려진다. 코를 곤다고 방독면을 씌우고 재우거나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는 등, 만화를 통해서 그려지는 가혹행위들은 탈영병들을 동정하게 만든다. 탈영병을 쫓는 DP 안준호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을 추격하면서 감정이입하게 된다.

억울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옳은 방법이 뭔데요?/ 생활관에 수류탄이라도 깠어야 하나요? 사격장에서 다 쏴 죽이고 나도 자살할 걸 그랬나요?/ 그러면 좀 덜 억울하긴 하겠네요. (4권, 104) 

DP의 존재는 군대와 민간, 가해자와 피해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경계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진다.주인공 안준호는 부대 밖에서 탈영병을 쫓다가도 부대로 복귀하면 헌병 안에서 행해지는 가혹행위와 부조리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위계질서의 피해자였던 동기나 후임마저도 나중에는 가혹행위의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군생활 내내 내가 본 건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도망다니는 불쌍한 애들이었어.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부서진 가족들이었고,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어./ 영화에 나오는 악당이 아니라,/ 바로 너 같이 생각하는 평범한 새끼들. (4권, 221)

이 만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탈영병 오성환과 안준호가 마주하고 나누는 다음 대화에 집약되어 있다.

군대가 바뀐다구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바뀝니다. 확실히 바뀝니다.
있잖아요. 제가 쓰는 수통 밑에 1953이라고 새겨져 있어요./ 육이오 때 쓰던 거예요./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4권, 107-111)

육이오 때 쓰던 수통은 군인의 열악한 처우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물건이다. 2013년 국정감사 때 논란이 되면서 전량 교체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실제로는 새 수통을 사 놓고도 전쟁 나면 쓰려고 아껴두고 병사들에게는 오래된 수통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어쨌든 수통 이야기는 그렇다쳐도, 나는 군대가 바뀐다고, 바뀌었다고 믿는다. 나는 2014년 1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카투사로 복무했다. 내가 입대한 때는 28사단의 윤일병 살해사건과 22사단의 임병장 총기난사사건으로 군대 내의 내무부조리 및 폭력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되던 시기였다. 동작도 굼뜨고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군대 내의 사건사고를 접하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물론 돌이켜 보면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군생활을 비교적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카투사라는 특수한 환경 덕도 있겠지만, 카투사 역시 육군에 소속돼 있다. 윤일병사건, 임병장사건의 여파가 있던 시기여서인지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당시부터 병사들의 인권과 처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군대에 있는 동안 선후임관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사실은 군대에서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제대한지 1년이 지난 요즈음,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하는 작대기 두세 개 짜리 현역병들을 보는 일은 드물지 않다. 요즘 군대에서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컬처쇼크를 받게 된다. 군대는 분명 바뀐다. 실제로 바뀌었고, 바뀌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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